PGR21.com


Date 2003/11/01 04:09:44
Name kimera
Subject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 그리고 그 이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먼저 적었던 김성제 선수를 필두로 해서,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박경락, 최연성, 전태규, 박용욱, 박정석, 이재훈, 강민, 주진철, 송병석, 조병호, 최수범, 이용범, 최인규, 장진남, 장진수, 서지훈, 성학승, 이재항, 성준모, 이운제, 도진광, 나경보.... 아는 선수들의 이름을 다 말할 생각이냐고 물으실 것인가요?

예.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선수들의 이름을 다 말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든 선수들이 정말로 좋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스타리그를 접하게 된 것은 한국야후에서 방송해주는 ITV의 재방송 경기를 보면서 부터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그당시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은 처지여서 케이블 방송을 직접 보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친구가 가르쳐준 url을 쫒아 처음으로 스타 방송을 접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한국에 들어갈 수 없어서 무료한 방학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정말 보지 않았을 것이지요.

시간때우기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잘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당시 저의 생각은 스타에는 상성이 있어서 그상성에 맞춰서 돌리는 가위바위보 개임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인기에 영합에서 이런 방송을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고 판단했죠.

제가 스타리그에 심취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2년 네이트 배에서 부터입니다.

그 당시 전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고있던 공부는 뭔가로 막혀있었고,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임요환과 변길섭 선수의 네오 버티고에서의 경기였죠.

그 경기를 볼 때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임요환 선수가 2회연속 챔피언에 엄청나게 강한 선수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심리적인 상태는 거의 공황상태였죠. 모든것에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그 경기를 온라인으로 보면서 제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쳇 이 경기에서 임요환이 지면 나도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 가련다."

잘알지도 못하던 선수의 승패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은 무모하죠.(그 당시에는 임요환선수 이외에는 알지도 못했고, 변길섭 선수는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제가 알고 있던 이름은 임요환, 홍진호, 장진남 선수 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올 적에 전 정말 자포자기 하고 싶은 심정이었고, 스스로 망가져서 나를 이렇게 만든 운명을 비웃어 주고 싶었습니다.

PGR의 분들이라면 그 결과를 다 아실 겁니다.

임요환 선수가 졌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당시 해설자분도 그냥 쇼맵쉽이라고 이야기하시고, 실제로 지는 마당에도 그런 행동을 한다고 비판했던 임요환선수의 플래이가 저를 감동 시켰기 때문입니다.

명성과는 다르게 조금씩 밀리는 임요환선수의 모습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운명같아서 정말 괴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중에 임요환 선수의 얼굴이 비추어지더군요. 처음에는 이 상황에서 왜 사람 얼굴을 비추어주는 것인지 PD나 카메라맨의 지능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경기를 포기한 얼굴이 아니더군요.

"어 포기를 안하네..."

고스트를 뽑아서 변길섭 선수의 배틀을 락다운 하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엄재경 해설위원님은 돌을 던지기 전에 팬서비스 차원의 행동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동형 공격이라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타격이 되지도 않는 무기로 자신이 락다운한 배틀을 쏘고 있는 고스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지고 있더라고 마지막 가능성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정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제가 그 고스트가 된 것 같았으니까요.

그 경기가 끝나고 전 종이에 "지더라도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는다." 라고 적었습니다.

나의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적에게 전 마지막 락다운을 걸고 최선을 다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습니다.

그해 6월 10일 우선적으로 가장 커다랗게 걸려있던 문제를 해결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쯤 제2의 전성기라는 이야기와 함께 임요환 선수의 본선경기 10연승의 행진이 이루어지더군요.

마음의 여유를 가진 후 온게임넷의 모든 VOD를 보았습니다.(집사람이 정말 싫어했습니다만,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해 줍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무언가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임요환 선수의 VOD를 중심으로 보았고,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경기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기속에서 그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보이더군요.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선수들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분명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시합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기거나 지거나 멋있었습니다.

온게임넷만으로만족하지 못하고, 제가 온라인상에서 볼수 있는 모든 VOD를 전부 구해서 봤습니다.  그리고 그뒤부터 뭔가 보이더군요.

모든 선수들이 끊임 없이 발전합니다.

챌린지리그에서 고배를 마시는 선수도, 스타리그 4강에서 눈물을 흘리는 선수도 모두 발전하더군요. 전에는 좋아하던 선수가 임요환선수에 한정 되던 것이 홍진호선수, 이윤열선수, 변길섭 선수, 박정석 선수(변, 박선수는 임요환선수를 이겼다는 것만으로 한 동안은 제 적이었습니다. 박경락선수도요..) 박경락선수, 성학승선수...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하시더군요.

몇번이고 감동하게 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발전하는 프로게이머 거의 전부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강점을 더욱 강하게 하기위해서 노력하고, 남의 좋은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알게 되니까 누구한명을 응원하기 보다는 그들의 경기 자체를 즐기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개임에서 제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고요.

그들이 더욱 더 발전 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게임리그 라는 것이 더욱더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그것은 단순히 즐기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감동은 사회에 유익할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1997년부터 거의 7년을 한개임을 가지고 이야기 했지만 제 눈에는 아직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수는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든 선수들이고, 그이유는 그들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from kimera

PS: PGR에 가입하고, 3주~4주정도 지난 다음 글쓰기 기능이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 글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성역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러다가 한번스기시작하니까 계속 쓰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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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키야
03/11/01 08:3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보는 듯 합니다. 글 주변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마음을 이렇게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여 주세요. ^^
백두산
03/11/01 09:18
수정 아이콘
kimera님의 마음이 이심전심하는 것 같습니다. 에헴;
멋진 글 잘봤구요.
그들의 경기 자체를 즐긴다... 훌륭합니다~!
Maphacker
03/11/01 12:59
수정 아이콘
본문에도 아주 동감하지만

추신에 더 동감하는 이유는 뭔지-_-;;
페널로페
03/11/01 16: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입니다..^^ 모든 게이머분들..힘내시고 열심히 하시길~
tongtong
03/11/01 23:10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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