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07/31 03:09:55
Name Typhoon
Subject 저는 PGR이 좋습니다.
게시판의 폭풍이 주말을 기해서 조금 잠잠해 지는 것 같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로 대변할 커뮤니티 운영의 자세는 사실 한 6~7년 전 까지만 해도 꽤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카페, 제로보드 등의 시스템을 이용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나던 시절에는 모두가 아마추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후죽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용합니다. 사실 모든 플랫폼, 시스템 등이 그렇지만 언제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면 문화는 뒤늦게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문화가 미쳐 자리잡지 못한 시절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낭만이 있습니다. 그러한 예전 시절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시절은 '낭만시대'로 기억되곤 합니다.

이 낭만시대에도 물론 커뮤니티에 여러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회원들이 존재했습니다. 광고, 타 커뮤니티 홍보 및 회원 빼내기, 상업적 목적, 단순히 이성교제를 위한 목적 등등,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컨트롤 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회원들에 대처할 적절한 방법이 없는 많은 수의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결국 자신의 결정만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해야 하기에 '제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실 분은 떠나십시오' 라고 말하며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십시오' 라는 식의 운영자세이겠지요.

저도 한때는 커뮤니티의 운영자를 해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이가 먹고, 젊은 혈기로서 어떤 사태에 대응하던 시절이 지나보니 저의 운영방식도 여유가 조금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운영자 개인과는 조금 맞지 않는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이상적일 텐데 이상적인 것이 항상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운영자 개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일견 커뮤니티는 평화적으로 보일 것이나, 사실은 좋은 커뮤니티가 아니라 소위 '특정 의견에 대한 추종자 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해병대 사고가 터졌을 때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 '개인적인 공간이 1평도 채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2년간이나 국가에 자유를 뺏긴 채로 지내야 한다. 사고가 터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글을 보고 굉장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일지도 모를 이 글에서 저는 굉장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더군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얼핏 한 방향으로 무언가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면 사실은 그것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문제를 내포한 채 나아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불만 없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더 이상은 다른 방향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형태의 커뮤니티 운영으로는 현시대의 커뮤니티 운영이 힘들어 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운영의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회원들의 문화가 발전하고 자리잡아야 좋은 커뮤니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화가 있어야 해당 문화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좋은 커뮤니티를 이어나갈 수 있겠지요. 그런면에서 PGR의 문화와 운영방식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문화와 운영방식의 주체이자 구성원인 PGR회원 분들과 운영진 분들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커뮤니티 중에서 PGR을 제일 좋아합니다.

글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과반수가 한쪽 방향으로 달려갈 때 누군가는 나서서 진정시키고, 누군가는 다른 시선을 던지기도 합니다. 때론 제가 과반수의 의견에 해당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음이 좋고, 설사 다른 생각을 서로 나누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놓지 않는 모습이 좋습니다. 다양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성의 있게 써주는 글들이 제 지식을 자극함이 좋고, 최소한의 줄 수 규정이 있어서 제가 글을 클릭함에 있어 허무함을 느끼지 않아 좋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고, 제가 더 이상 게임채널을 예전처럼 열심히 보지 않음에도 PGR을 매일 방문하는 것은 이런 PGR이 좋고, 그 PGR에 계신 여러분들이 좋기 때문입니다. 5년 가까이 PGR에 매일 같이 방문하면서 회원가입도 하지 않다가, 몇 년 전에서야 가입을 한 이유도 이런 PGR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고, 저도 해당 글에 몇 개의 리플을 달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커뮤니티인 PGR의 운영진이기에, 신뢰를 드렸던 만큼이나 당황스러운 기분과 함께 분노가 생기더군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저 역시 PGR에 더 이상 방문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항즐이'님의 늦지 않은 사과의 글을 보고 조금 누그러 들고,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제가 PGR을 잘못 본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적지 않은 회원수의 커뮤니티 운영자를 한적도 있고, 트위터에서 나름 유명했던 적도 있고,  그렇게 온라인 상의 권력이란 것을 저도 몇 번 경험한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트위터도 유령 계정으로 남겨 놓고, 커뮤니티 운영도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습니다. 트위터에서 일반인이 수만명의 팔로우를 보유하면서 가지게 되는 영향력은 가볍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힘을 가볍게 생각할 경우 얼마나 그 책임이 심각할지 알기에, 어떠한 준비나 무게감 없이 유명인이 되거나 권력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더더욱 어떠한 힘을 손에 얻는 것에 대해 가볍지 않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나시는 분도 있고, 남아계실 분도 있고, 그저 주위를 맴돌면서 거리를 두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PGR이 망하기를 바라는 분은 안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발길을 끊겠다 했던 분들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이곳에서 뵙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PGR을 좋아하는 그 이상으로 이곳에 대한 애정이 있으신 분들이 이렇게 많기에 PGR은 제가 계속 좋아하는 커뮤니티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PGR이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 믿는 이유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제가 제일 좋아하며,

아직도 여러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PGR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PGR이 좋습니다.



==================================================================================

아래 내용은 위에 쓴 글과 흐름이 이어지지 않아서 글을 나누어 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현재 사태에 대해 P님이 큰 반성이나 후회 없이 가볍게 생각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생각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타인에 평가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혼자 살 수 없듯,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무뎌질 수 없습니다. P님의 트위터 글에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신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요소가 있겠지만, P님이 PGR회원들을 바라보는 (몰랐던 그 동안의) 시각에 대한 분노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P님이 그러한 행동을 쉽게 할 수 있었던 부분은 사실 자신에 대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깝게 느끼고 존중했던 분의 행동에 충격 받은 여러분들처럼, 자신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언급하며 분노하고 실망하는 현 상황에 대해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P님이 받을 스트레스가 결과적으로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질지, 자신의 세계를 더 견고하게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운영진 해임이나, 수천플이 넘는 성토에 대해서 만약 이 부분을 무시하고 아예 접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리플들을 읽어보았다면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예상합니다. 아마도 엄청난 자존감의 상실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누구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시겠고, 누구는 더더욱 분노를 표출하고 싶으실 겁니다. 앞에 쓴 글처럼 모두가 한 방향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기에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감정표현은 너무 과격히 하지 않으시도록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금시조131267M'님이 가르쳐주신 것에 따라서 음악을 한번 넣어봤습니다. 감사인사 드립니다.
* 자유게시판에 올려져 있던, 유튜브로 BGM 넣는 방법입니다.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0669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8-08 23:11)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SCVgoodtogosir
11/07/31 03:12
수정 아이콘
통찰력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1/07/31 03:18
수정 아이콘
아.. 좋은 글이네요...
bgm이 그 좋은 느낌을 더 살려주고요.
추천합니다!
테페리안
11/07/31 03:19
수정 아이콘
이 글 위에 디씨에서 하듯 ------------------절취선------------------을 긋고 퍼모씨 관련 글은 무조건 댓글화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퍼모씨 사건 마무리 글로는 제격인 정말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노래도 그렇고 뭔가 차분해지네요. 이 글 위로는 평상시의 자게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Noam Chomsky
11/07/31 03:3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디로
11/07/31 03:38
수정 아이콘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11/07/31 03: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기습의 샤아
11/07/31 03:42
수정 아이콘
저도 PGR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1/07/31 03:43
수정 아이콘
타이푼님 실례가 안된다면 바쁘시겠지만 저도 게시글에 저런 플레이어형 BGm넣는법좀 쪽지로 가르쳐주시면안될까요

음악의 인터넷주소같은건 아는 상태입니다 html인가요 가르쳐주세요 ㅠ
abrasax_:JW
11/07/31 05:04
수정 아이콘
세상에, 이렇게 좋은 글을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Pgr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네요. 사실 무슨 일만 생기면 떠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야속합니다. 성급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m]
11/07/31 08:19
수정 아이콘
저도 피지알 좋아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Grateful Days~
11/07/31 08:36
수정 아이콘
어디에도 이정도로 좋은 사이트는 없습니다.
11/07/31 10:02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고 나서 더 좋아졌습니다. 글속의 낭만시대란 말에 경기후 흥분속에서 이곳에 바로 접속해서 그 흥분과 감동을 같이 나누던 기억이 다시 나네요. 글도 음악도 좋은 기분을 주네요.
一切唯心造
11/07/31 11:00
수정 아이콘
저도 PGR을 제일 좋아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그루터기
11/07/31 17:14
수정 아이콘
뒤늦게 이 글을 읽었지만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저도 여전히 PGR을 가장 좋아합니다.
열심히 보던 스타리그도 눈길을 끊은지 오래고,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 일로 제가 여길 떠나지 않을 거란걸 잘 압니다.
KillerCrossOver
11/08/01 01:09
수정 아이콘
님 글도 이곳에서 오래봤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__)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47 스타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요?? APM이 늘지 않는거겠죠.( 부제 : 하,중수를 위한 글) [56] Rush본좌13542 11/08/17 13542
946 여러분은 데이트 어떻게 하시나요? [40] 삭제됨10270 11/08/17 10270
945 숫자로 보는 10-11 신한은행 프로리그 정리 글 -2 [23] DavidVilla6422 11/08/16 6422
944 숫자로 보는 10-11 신한은행 프로리그 정리 글 -1 [5] DavidVilla6193 11/08/16 6193
943 (08)기동전 [25] 김연우12033 08/03/16 12033
942 (08)이영호의 믿음 [37] sylent11929 08/03/15 11929
941 (08)엄재경의 횡포. [53] sylent20857 08/01/05 20857
940 내맘대로 뽑는 2000~2010 일렉트로니카 음반 top 40.(1부) [13] hm51173406281 11/08/14 6281
939 오늘은 "왼손잡이의 날" [62] 마네10339 11/08/13 10339
938 GSL. Game of the Week. 0808~0814 [18] Lainworks7275 11/08/13 7275
937 [한국 문명 출시 기념] 세종대왕 특별편 (중요부분 정정 봐 주세요) [137] 눈시BB12639 11/08/12 12639
936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 [23] nickyo9099 11/08/11 9099
935 적어도 우리가 STX컵을 폄하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72] 아우구스투스10087 11/08/10 10087
934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스투피드하게 만들었을까 [48] memeticist9575 11/08/09 9575
932 fake 수필 [7] 누구겠소6874 11/08/08 6874
931 되풀이된 악몽. 결여된 의식 [10] The xian8605 11/08/07 8605
930 상해에서 글올립니다. 게임캐스터 전용준입니다. [119] 전용준27126 11/08/06 27126
929 그냥 이것저것 써보는 잡담 [23] opscv7970 11/08/07 7970
928 저는 PGR이 좋습니다. [24] Typhoon6175 11/07/31 6175
927 MBC게임을 살릴 수 있는 더 확실한 대책입니다... [39] 마이다스11211 11/08/03 11211
926 [연애학개론] 마음이 데여도 괜찮다 [36] youngwon9884 11/08/02 9884
925 2001.8.1~2011.8.1 MSL 10주년 역대 우승자, 역대 선수 목록 [37] Alan_Baxter9317 11/08/02 9317
924 지난 5년 택뱅리쌍의 전적(수정본) [37] 칼라일2112133 11/07/31 1213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