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어제 일찍 잠을 자서 그런지 자정에 일어나게 되었다.
여자 친구 퇴근 시각에 맞추어 일어나진 덕분에 통화까지 할 수 있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일기를 쓰고 MP3와 휴대전화를 충전시켰다.
어렸을 때는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쓸쓸해 보이고 안쓰럽고 외로웠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엔 철없이 마냥 좋아해 한 것 같다.
자유였으니까.
내 방에는 혼자 지냈던 흔적들이 있다.
벽지 위에 연필로 그린 동그라미.
방에서 공놀이했던 기억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어렸을 적 중학교 3학년까지 키가 152cm에 불과했다.
거의 1번을 뺏기지 않았고 조회시간에는 무조건 첫 번째 줄에 있었다.
키가 작아서 버스비도 초등학생 요금으로 낸 적도 있고, 더 어릴 적에는 무임승차도 간혹 했었다.
이런 기억들이 고스란히 내방 책상 위에 담겨 있다.
사진, 혼잣말이 담긴 노트, 무엇하나 버릴 수 없는 추억들이 있다.
새벽 3시가 돼서 아이폰으로 버스 편과 열차 편을 알아보면서 전주 가는 법을 알아냈다.
경비아저씨도 잠을 편히 주무셔야 해서 집 열쇠를 맡기고 나가려면 5시에 나가야 한다.
밥을 먹고 가면 광주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못 탈것 같아 송정리역으로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10년 동안 자주 갔던 기사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18살에 처음 갔을 땐 무서운 곳인 줄 알고 문밖에서 서성거렸던 나에게 아주머니께서 괜찮다는 말과 함께 손잡아 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기사식당은 다른 곳보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곳이며, 밥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인심 좋은 곳이기도 하다.
새벽에 이렇게 든든히 먹을 수 있는 곳은 기사식당밖에 없다.
절대 무서운 곳이 아니다.
밥을 먹고 160번 버스를 탔다.
새벽에 움직이는 사람은 부지런한 것 같다.
우리가 흔히 게임을 하면서 날을 새는, 다음 날 아침까지 술을 먹는 그런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벽시장은 보통 부지런한 분들이 많다.
남들보다 잠을 적게 자고 일어나 일터로 향하시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을 볼 수 있다.
새벽 시간이라 빠르게 송정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궁화호 환승 승차권을 끊고 많이 변한 송정리역 주변을 본다.
새로 생긴 전철역도 구경하고 아이폰으로 전주 한옥마을을 알아보며, 아직은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을 보냈다.
환승 승차권은 좀 더 싸게 번거로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이다.
나이 때문에 ‘내일로’라는 승차권은 발급하지 못하지만 환승 승차권으로도 만족한다.
친절한 매표소 직원 덕분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기차를 타기 전 과일 주스가 먹고 싶어 3,000원이나 주고 산 키위주스는 진짜 맛이 없었다.
차라리 시원하기라도 했으면 우걱우걱 먹었을 텐데 이건 정말 너무 했다.
기차역 안의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모자를 눌러쓴 남자친구와 거리를 두고 보고 있는 여자의 눈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대한의 남아라면 군대쯤은 다녀와 줘야지.
나 역시 병장 만기제대의 예비군이다.
군 생활하고 얼마 되지 않아 100일 휴가를 나간 적이 있다.
서울에 있는 여자 친구를 보러 KTX를 타고 갔었는데…….
일병 달고 얼마 후 차였다.
기차를 보니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냥 궁금할 뿐이다.
굳이 안 봐도 된다.
잘 지내지?
잘 지내라.
진짜 아무런 감정 없다.
지금 여자 친구가 이 글 읽으면 난 죽은 목숨이겠지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2007년 4월 중순 100일 휴가 이후 열차는 처음이다.
기차를 타려면 입장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에 열차 타는 곳으로 들어갔다.
“할머님 어디 가세요?”
“서울이요.”
“같은 열차네요. 제가 들어 드릴게요.”
“아따 고마운그.”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가시는 할머님을 돕는 것은 젊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열차 타는 곳에 먼저 와 의자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와 한바탕 하신다.
“무거워 죽것는디 혼자 가믄 어쩌요.”
“빨랑좀 오재 그게 뭐가 무거워.”
“아따 참말로.”
분명히 싸우는 장면인데도 보기 좋은 것 같다.
마침내 기다리던 무궁화호가 오고 배낭을 메고 열차에 올랐다.
뜻밖에 사람이 꽤 많다.
출근열차인가?
창문 쪽 자리에 앉고 어머니 책장에서 가져온 책을 꺼냈다.
평소에 독서라고는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내가 여행의 동반자로 책을 챙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잠깐 멈춤’
왠지 지금 내 상황과 비슷한 제목이라 끌렸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뭔가 와 닿는다.
책의 18페이지에 이런 멘트가 있다.
‘꿈을 말하라, 그리고 기록하라‘
내가 하고있는 건데?
이건 뭐 운명인가?
연출된 상황이 아니다.
연극이나 영화를 찍으려고 각본을 쓰는 것도 아니다.
소름이 끼친다.
“꿈을 가진 사람은 멈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백수인 나를 위로 해주는 말귀들이 많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나는 것 같다.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단 한 권의 책이지만 고마웠다.
항상 내 편이 되어 응원해 주는 분들을 알고는 있는데 표현을 못 하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 내 꿈은 없었다.
물론 말로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소방관이 되고 싶어요.’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뭐든 되겠다는 생각으로 말한 것 같다.
좋은 말로 하면 현실보다는 이상을 더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꿈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후로 직장인이 내 꿈이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삼시세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것이다.
소박 할 수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간절한 지금 내 꿈은 저게 맞다.
그 꿈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다.
어머니와 여자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자라나 더 큰 꿈을 이루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럴수록 앞으로 내달리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잠깐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꿈이 자라날 자리도 생겨납니다.
잠깐 멈춘 사람만이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있습니다.
ㅡ '잠깐멈춤' <머리말> 중에서
책 한 권으로 생각의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
환승 열차를 타기 위해 익산역에 내렸다.
익산역에서 여수역으로 가는 기차는 많아 보였다.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분명히 내 자리는 창가 자리인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앉아 있다.
“창가 앉으려고?”
“네?”
“내가 앉을게.”
“네”
‘그거 제자리인데요.‘ 하려다 그냥 앉았다.
아주머니는 주무신다.
창밖의 풍경을 찍고 싶었는데 잠자는데 방해가 될까 봐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 전라도에서 20년 동안 살았는데 전주는 처음이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출발하기 전 검색했던 전주 한옥마을을 가기 위해 고객안내소에 들렸다.
친절한 상담과 함께 전주 여행 지도를 무료로 얻을 수 있었다.
덤으로 버스안내메모지까지 받을 수 있었다.
안내소의 직원 덕분에 어렵지 않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전주의 날씨는 무척이나 무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