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2011년 4월 25일에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홈페이지 및 디스이즈게임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디스이즈게임에 단독 게재되는 칼럼은 PGR 연재 대상이 아닙니다.)
이제 출범한 지 8개월 남짓 되었지만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얽혀 있습니다. 관점도 입장도 생각도 제각각 입니다. 희망적인 의견도 있는가 하면 관망하는 이들도 있고, 비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환호와 칭찬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심하게는 배척, 적대하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선들을 적절히 취사선택하며 자신만의 주관을 지키는 이들도 있습니다.
굳이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금언 때문이 아니라도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여러 생각들 중에 듣기 좋은 생각보다는 비판적 생각, 무관심의 원인이 된 생각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지요. 지금껏 8개월여를 달려 온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와 관련된 비판 혹은 무관심의 이유에 해당하는 목소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오픈 시즌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종족간 밸런스가 불안정하다.
- 인기 있는 프로게이머들이 부진해 잘 시청하지 않게 된다.
- 시청의 불편함(채널 보급률이 낮고 인터넷 시청은 불편하다)
-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유닛과 화면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 전투가 정형화되어 있고 순식간에 승부가 갈리는 문제
- <스타크래프트 2>를 즐기지 않으므로 관심이 떨어진다.
- 리그 진행이 단조롭고 관심 가질 만한 스토리가 없다.
8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커뮤니티를 비롯해 여론조사, 언론 등의 여러 곳에서 나온 '생각'의 일부분입니다. 때문에 다양한 입장에 따라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생각도 있고, 그저 개인적으로만 보이는 생각도 있습니다. 각각의 생각 중 전부 혹은 일부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모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칼럼의 덧글을 통해 주관의 차이로 평행선을 달리는 말싸움이나 지엽적인 부분만을 문제 삼는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에 쏟아진 이런 비판적인 생각들에 대해 어느 한 쪽에 대한 공감이나 동의, 타당성 등을 말해서 논쟁을 부추기기보다는 이런 생각들 중에 앞으로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가 '안고 갈 것'이 있고 '떨쳐 낼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목도 그런 취지로 지은 것입니다. 혹시 제목만 읽고 "좋은 생각은 듣고 나쁜 생각은 배척하겠다는 이야기 아니냐"라고 생각하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릅니다. 좋은 말도 그대로 듣고 언짢은 말도 그대로 듣는 이가 거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모두 수용해야 하는 생각들입니다.
'안고 갈 것'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단시간에 해결하기 곤란한 부분이며, '떨쳐 낼 것'은 고칠 점은 고치고, 고친 것은 적극적으로 알려 빠르게 해소할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시작하겠습니다.
안고 갈 것: 종족간 밸런스
보통 특정 유닛을 삭제, 생성하거나 상향 혹은 하향하는 것으로 밸런스를 잡을 수 있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밸런스 문제는 게임에 있어 가장 복잡한 문제이며,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흔히들 <스타크래프트>가 완벽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브루드 워가 나오기 전까지 밸런스가 잡혔다고 보기 어려운 게임이었고 브루드 워의 출시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패치와 업데이트를 통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최소 4~5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보면 현재 <스타크래프트 2>의 밸런스는 다소 문제는 있을망정 <스타크래프트>의 초창기에 비교하면 빠르게 안정되는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2>는 이제 시작되는 게임이므로 밸런스 문제는 e스포츠의 흥행은 물론 게임의 흥행과도 직결되어 있어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e스포츠만 생각할 경우 일반 게이머들의 편의와 의견을 간과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고, 그렇다고 일반 게이머들의 의견만 수렴하면 e스포츠와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될 수가 있지요.
블리자드에서 최근 ‘4차관’ 남발 현상에 대한 언급이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블리자드와 그래텍 등의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주체들은 밸런스 문제에 대해서는 만에 하나 게임 밸런스가 완전히 완성되었더라도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영원히 안고 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게임사인 블리자드에서는 눈에 보이는 밸런스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하나씩 고쳐나가되 게이머들의 요구를 항상 앞서 나가야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주최측에서는 래더맵에 얽매이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늘 변화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경기 환경을 공급해야겠지요.
무엇보다 밸런스 문제가 부각되는 이유 중에는 출시 이후 이른 시기에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리그가 출범하였고, 그에 따라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해 다소 완성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기에 e스포츠 팬들에게 밸런스 면에서 좋지 않은 선입관을 심어 준 이유도 있음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의 e스포츠 팬들이 항상 기대하는 것은 '완성된 품질의 게임으로 벌이는 완성된 e스포츠'입니다. 1990년대 말이라면 '다소 부족한 게임의 다소 부족한 e스포츠'라도 용인되는 시기였지만, 이제는 그런 e스포츠를 팬들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안고 갈 것: 인기 프로게이머들의 성적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스타크래프트 2>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게이머들 중에는 <스타크래프트>에서 선수 생활을 한 프로게이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유명 프로게이머가 진출하게 되면 흥행에 대해 긍정적 목소리가, 탈락하면 흥행에 대해 부정적 목소리가 나옵니다. 반면 같은 <스타크래프트> 출신임에도 덜 이름이 알려진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그다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승자보다 준우승자 혹은 8강 경기가 더 주목 받는 일도 생기며, 대체로 이런 흐름은 일반 팬들보다는 언론에서 더 많이 두드러집니다.
물론 저는 과거로부터 쌓아 온 인기에 따라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어드밴티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 어드밴티지는 그 선수들이 프로로써 쌓아 온 가치이며 종목을 초월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e스포츠에서는 인기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공정함'입니다. 높은 실력을 보여 준 선수가 높은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 스포츠의 공정함입니다. 가령 e스포츠에서 '죽음의 조'가 만들어졌을 때 '유명 선수들이 한 곳에 모였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절반 정도만 맞는 것입니다. 리그의 공정한 기준에 의한 변수가 '죽음의 조'를 만든 것이기에 그 ‘죽음의 조’는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높은 실력을 보여 준 선수가 높은 가치를 획득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인기 프로게이머들의 성적 문제는 전적으로 공정한 룰 안에서의 실력 문제이므로 인위적으로 조종할 수 없고, 조종해서도 안 되며 안고 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더불어 유명 선수들에게만 이슈가 집중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의 등급(?)에 따라 <스타크래프트 2>에서의 인지도 및 평가가 달라지는 풍조가 고착화될 수 있는 점도 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스타크래프트>출신 선수의 업적을 강조할 요량이라면 이전의 업적을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종목에 맞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함에도 일부 유명 선수에만 주목하는 편한 생각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2>는 엄연히 다른 게임이고 다른 e스포츠 종목입니다.
제가 예전 칼럼에도 언급한 것처럼 스포츠에서 '레전드'와 '실력자'는 반드시 일치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최근에 이윤열 선수가 장민철 선수를 두고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내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말처럼 종목 변경 이후에도 큰 사랑을 받는 인기 프로게이머들은 팬들의 성원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더불어 대회를 주관하는 이들이나 언론에서는 '레전드'들을 존중하고 주목하되, 그들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대회의 실력자들을 최고로 대우해 주는 공정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안고 갈 것, 떨쳐 낼 것(하)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