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11/14 12:49:35
Name sylent
Subject OSL 미리보기 - 황제, 뚫어야 산다
OSL 미리보기 - EVER 스타리그 결승전


스승과 제자의 아이러니한 관계

최고의 경기를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선수들을 보면,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들이 흘린 땀의 결실을 너무 손쉽게 따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영웅' 박정석 선수와의 끝간데 없는 혈투 끝에 결승에 선착한 '괴물' 최연성 선수이기에, '폭풍' 홍진호 선수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따내고 결승에 합류한 '황제' 임요환 선수이기에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짐은 물론이다.

주최측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팬들은 [EVER 스타리그]에서 쓰이는 네 가지 맵의 궁합에 대해 이미 사형 선고를 내린 상태이고, 덕분에 다시 한 번 동일 종족전을 감상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되었다. 하지만, 섣불리 실망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자. 이번 결승은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자 '창과 방패'의 대결이며 '제갈공명의 재치와 여포의 힘'이 정면으로 맞붙는 흥미로운 승부이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은 더욱 날카롭게

많은 게임 팬들이 "황제의 시대는 갔다"고 이야기했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마땅한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임요환 선수는 저그 플레이어들의 비약적인 컨트롤 향상에 한 번, 테란 플레이어들과 프로토스 플레이어들의 물량 공세에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물량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때어내기 위해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을 테지만,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임요환 선수가 슬럼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시간은 변함 없이 흘렀고, 그는 길을 잘못 든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더 강해지는 방법을 택했다.

임요환 선수의 브랜드는 '날카로움'이다. 그것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 탱크와 레이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병력이, 정확한 위치로 이동하는 것, 임요환 선수가 오랜 기간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런 날카로운 운영이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펼쳐진 '임진록'에서 그런 날카로움의 극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째서 임요환 선수가 '천재' 이윤열 선수 혹은 '괴물' 최연성 선수에 필적하는 물량을 생산해내야 하는가? 임요환 선수에게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의 병력이 요구될 뿐이다.

백번이나 바위를 쪼아도 그 큰 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한번째 내리쳤을 때 그 바위는 쩍 갈라진다. 백한번째 망치질이 그 일을 해낸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있었던 백 번의 내리침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괴물' 최연성 선수가 유래 없이 거대하고 단단한 바위임에는 틀림없지만, 임요환 선수의 눈이라면 어딘가 숨겨진 미세한 갈라짐을 놓치지 않고 백한번의 내리침을 해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이구동성으로 '물량'을 부르짖고 있지만, 괘념치 말자. 유능한 선수는 여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론이 자신을 따르게 한다. 임요환 선수는 충분히 '유능한 선수'가 아니던가.


여포는 더욱 단단하게

'천재' 이윤열 선수 이후 이토록 컨트롤과 물량과 타이밍의 삼각형이 잘 조화를 이룬 테란 플레이어가 존재했던가. 송이송이 내리는가 싶지만 간밤에 온 세상을 덮는 함박눈처럼, 최연성 선수의 병력들은 어느새 맵을 뒤덮고 있다. 전형적인 듯 하면서도 남달라 보이고, 친숙한 듯 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괴물' 최연성 선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최연성 선수를 신비스러운 제4의 종족으로 여기게 하는지도 모른다.

테테전에서 보여주는 '괴물'의 무시무시함에 압도당한 대부분의 팬들은 최연성 선수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모두의 의견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무도 머리를 쓰지 않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의 끈을 놓고 있는 동안 임요환 선수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경기를 잠식해 올 것이 뻔하다.

스스로 스승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지만, 스승보다 뛰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야망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무대, 온게임넷에서 치르는 첫 번째 결승전이기에 새 공책을 펴고 첫 글자를 쓰는 그 긴장과 몰입, 그 백지의 긴장감을 어디까지 끌고 가느냐 하는 지속성에 승리의 여부가 있을 것이다.

임요환 선수가 최연성 선수를 힘으로 상대할 리 만무하다. 누구보다도 최연성 선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임요환 선수가 아니던가. 분명히 치밀하게 계획된 무엇인가를 준비해 올 것이다. 임요환 선수가 어떤 사인을 보내던 묵묵히 참아내자. 그렇게 단단하게 지키고 모은 병력으로 맵을 뒤집어버리자. 주사위를 가장 잘 던지는 방법은 그것을 아주 던져 없애버리는 것이다.


황제, 뚫어야 산다

지략과 무력의 한 판 승부는 이미 시작되었다. 성공(Success)이 노력(Work)보다 앞서는 경우는 영어 단어를 찾을 때뿐이다. 상대는 스타 리그 역사상 가장 단단한 플레이어로 꼽히는 최연성 선수. 황제에게 남은 것은 "뚫어야 산다"는 집념, 그리고 집념을 이루기 위한 노력뿐이다.


- sylent


@본 게시물은 pgr21.com과 bwtimes.net에 함께 게시됩니다.
@조금 이르지만, 신분의 한계(-_-) 상 결승전 예상을 조금 서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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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14 13:22
수정 아이콘
밑에글과 함께 정말 좋은 글이네요.근데 sylent가 무슨 뜻이죠??
Crazy Viper
04/11/14 13:24
수정 아이콘
남은 군생활도 몸 건강히 잘 하세요..
안녕하세요
04/11/14 13:29
수정 아이콘
sylent님의 글은 정말 멋집니다^^
박다현
04/11/14 13:34
수정 아이콘
정말 sylent님 글은..
04/11/14 13:36
수정 아이콘
sylent님 직업(전공이려나)이 어휘구사력이나 문장력보면 ㅜ_ㅡ감동100%
FreeComet
04/11/14 14:17
수정 아이콘
성공(Success)이 노력(Work)보다 앞서는 경우는 영어 단어를 찾을 때뿐이다...와아..;
04/11/14 14:30
수정 아이콘
The only place that the success comes from the work is the dictionary
정말 좋아하는 말...^^
안전제일
04/11/14 16:00
수정 아이콘
그 신분의 한계가 괜히 원망스럽군요...ㅠ.ㅠ
좋은글 감사합니다!으하하하-
04/11/14 16:31
수정 아이콘
sylent님, 하지만 필력의 한계는 끝이 없군요. 하루빨리 sylent님의 글을 매일같이 보고싶은 소망입니다. 열심히 군생활하세요^^
오크날다
04/11/14 17:30
수정 아이콘
성공(Success)이 노력(Effort)보다 앞서는 경우는 영어 단어를 찾을 때에도 없다 는 어떨까요 ^^;;;
메딕아빠
04/11/14 18: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게임 속에서 어떻게 대하게 될지...~~
박서가 물량으로...치터가 전략으로 승부를 낼려고 하지는 않을지...~~
정말 흥미롭네요...!!

이래저래...말들은 많지만...
후회없는 좋은 승부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두 선수 모두...파이팅~~
04/11/14 18:55
수정 아이콘
저도...그 신분의 한계;;;가 원망스럽습니다. ^^;
좋은 글 감사드려요. 요즘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04/11/14 20:07
수정 아이콘
최연성선수가 아마도 이쪽동네도 접수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의 테테전능력을 봐서는 박서는 암울하지 않을까 합니다...
04/11/14 20:29
수정 아이콘
정말 sylent님의 필력은 대단..
lovehannah
04/11/14 21:10
수정 아이콘
관심만 있으시면, 스타관련 columist로 성공하실겁니다.
04/11/14 21: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04/11/14 21:39
수정 아이콘
테테전 결승이 낫네요...결승에 맵 밸런스 떄문에 졌다
이런게 없으니깐요^^
적 울린 네마리
04/11/14 23:33
수정 아이콘
역시~~ 감탄 & 부러움..
좋은 글 감사합니다.
04/11/14 23:51
수정 아이콘
전 글 잘쓰시는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_ㅜ
영혼의 귀천
04/11/15 02:20
수정 아이콘
-ㅁ-)b
노랑노란누런
04/11/15 18:53
수정 아이콘
정말 주어진 시간에 맵이 정해져 있다면 임요환 선수가 단연 최강인것 같습니다. 최연성 선수 또한 그런것 같구요 물론 기본기도 탄탄하지만요^^ 프리미어리그에서 성적이 그다지 튀지 않는것이 그런 이유 아닐까요?
진짜 천재는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그런면에서 전 스타에 있어서 가장 재능이 있는 선수는 이윤열 선수라고 생각 합니다 . 최연성 선수는 자신의 노력으로 그능력을 개발하여 뛰어 넘은거 같구요. 홍진호 선수의 팬이긴 하지만 임요환 선수의 준비는 정말 살짝 같다만 데도 베일듯한 느낌이었어요. 그에 비해 저그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홍진호 선수는 일합 승부보다는 운영 위주로 준비 하신거 같았는데 팬으로써 너무 아쉽습니다. 임요환 선수 플레이 보고 답이 안나왔습니다 모든맵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약간은 올인성의 플레이 그리고 믿겨지지 않는 에씨비 컨트롤.. 전 임요환 선수가 꼭 우승 했으면 좋겠어요 홍진호 선수를 무참히 짓밟고 올라갔으면 꼭 우승해야죠
저녁하늘의종
04/11/16 18:01
수정 아이콘
정말 멋진글 잘봤습니다-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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