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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4 18:26
일본만큼 그래도 유지잘하고 있는 동네도 드물죠. 독일이나 한국은 진짜 '사라짐', '복구되지 않음', '자료가 부족하여'라는 대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섬나라는 그래도 났죠.
21/01/04 18:28
그러네요 2차대전 정도를 제외하고 본토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고 어느 나라나 어느 종교처럼 지들이 때려부수는 것도 아니고..
21/01/04 18:37
우리는 저마저 못하는게 뭐 남아있어야 복구를 하던지 말던지 하는지라...
저시절에 설계도 같은게 있던 시절도 아니고(아 그래서 특이한게 수원화성이죠 설계도가 남아 있다보니 완전 없어지다 시피했는데도 복구가능) 그렇다고 전란이 없어서 누가 부수는것도 아니고...
21/01/04 18:40
사실 한국은 유적지가 남아있기가 힘들죠. 일제시대 -> 분단 -> 6.25 까지. 문화대혁명마냥 자기 문화를 자기손으로 불태운거만 없을뿐이지 지난 백년간의 역사는 거의 헬이라..
21/01/04 18:42
뭐 그전에도 몽골하고 임진왜란때도 상당히 날려먹었고. 고려말에도 좀 없어진게 많죠.
그때 날아갔다고 알려진것도 상당합니다.
21/01/05 00:46
임진왜란 당시 절들의 소실이 그렇게 대규모가 아니었을텐데요. 탱화도 그렇고 마냥 일제탓이 만능은 아닙니다. 그냥 조선시대 내내 전반적으로 절들이 어려웠습니다. 애초에 3천개 사찰을 200여개로 줄이라는 명을 내린게 태종입니다.(실제로 다 없앤것은 아니지만 소실되는 경우가 문제였습니다.)
고려제일 흥왕사는 고려가 망하면서 같이 망했고 흥천사는 태조가 지은 절인데도 소실되자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세조가 고려 고찰 원각사를 재건하였는데 연산군때 폐사 되었습니다. 그 외의 여러 왕실사찰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습니다. 그리고 절은 시간이 지나면 거의 대부분 소실의 과정을 겪습니다.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소실-재건은 필수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꽤 많은 승려들이 공신이 되었고 그 덕에라도 몇몇 절들이 재창건-유지된 걸 겁니다. 불국사는 그나마 그 정통성에다 가토 기요마사가 태웠다라는 점 때문에 특수하게 얘기되지 그게 전체 불사들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21/01/04 20:19
솔직히 한국 문화재 파괴는 문혁이랑 비교도 안되게 처참하죠.. 건축물 같은건 뭐 진짜 남은게 거의 없어요. 유물 같은 것도 뭐 이런게 실물이 안 남아 있네 싶은게 은근히 많고요.
21/01/04 18:42
그래서 가장 안타까운게 서고....
조선시대 대전란들 속에서 딱 하나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게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자칫했으면 조선왕조실록도 환상이 될 뻔 했겠죠.
21/01/04 19:10
이미 고려실록도 고려 국초에 거란의 침략 등으로 꽤 많이 날려먹은 상태였습니다. 고려사랑 고려사절요 공통으로 혜종부터 목종 시기 기록이 부족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 이후에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 실록을 36권으로 다시 편찬했는데 이건 조선 태종 이방원 개인의 실록보다 양이 못합니다.
21/01/04 18:47
히메지 성을 갔어야... 이곳은 전란을 피해서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죠.
오사카 성은 실망이었지만 히메지 성은 참 좋았습니다. 한 번 더 가 보고 싶네요.
21/01/04 19:07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한국엔 몽골 침략 이전에 건축된 건축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남은 것 중에선 그나마 오래된게 고려 말...
21/01/04 19:20
불타더라도 중간에 복구를 한다는게 당시에 경제력이나 여력이 얼마이상 되었다는 얘기이긴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황룡사 9층탑 불타버리고 복구 못했다는 얘기는 그 때 몽골한테 털리고 나서 그걸 복원할 기술력도 경제력도 안남아 있었다는 얘기거든요.
21/01/04 20:10
그리고 리더쉽의 문제도 있겠죠.
지방분권적이고 각지역 영주의 힘이 나름 지켜지던 일본과 달리 황룡사 불탔을때의 고려입장에서 경주는 한낱 지방도시 얼마전에 반란까지 일어난 지역 이런 상황이었거든요.... 기술력 경제력도 문제지만 의지도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21/01/04 20:10
황룡사 복구 안된데는 몽골 침략 이후 경주란 도시의 위상이나 경제력이 쇠락했다고 보는게 맞죠.. 그 뒤로도 개성 쪽에는 황룡사 뺨치는 거찰이 세워졌거든요. 목탑도 6~70m 짜리 세워졌고요.
21/01/04 19:52
일본도 유신하고 근대화 한다고 불교 유적 때려 부신 적 있지만 잠깐이고 우리처럼 조선왕조 내내 두들긴건 아니라... 목조 건축 화재에 약한건 한중일 마찬가지 지만 그 외 전란 외침등에서 일본이 비교적 보존이 잘 될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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