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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3 13:57
우리의 차례가 불교 풍속에서 온 건지, 아니면 주자가례(송나라 시절 주희가 지은 가례법 책)의 세시풍속 제사에서 온 건지 애매하네요;;
그런데 사실 성리학 자체가 유학자들의 불교 연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뭐.
20/11/23 17:12
"차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이전 고려 때에 차를 제사상에 올리던 것의 흔적이다. 이름대로 원래는 차를 올렸지만 조선시대에 불교색을 빼면서 술을 올리는 것으로 바꾸었다."
제사의 기원은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에 있다. 자연재해, 질병, 맹수들의 공격 같은 인간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이나 땅, 강이나 바다, 오래된 나무, 높은 산, 조상 등에 절차를 갖추어 빌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신성에 대하여 지내는 종교 의식은 '제사(祭祀)'로 통칭할 수 있다. 이는 조로아스터교와 아브라함 계통 종교 같이 인류사 초기에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제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섞여 형성되었다. 고대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왕 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든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록을 보면 상족의 조상은 직계인 근조선공과 직계가 아닌 원조선공으로 나뉘는데, 상나라에서 제사는 직계 선조인 근조선공에게만 지냈다. 조갑은 왕의 어령에 반발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자신의 조상을 숭배하면 농사가 잘 되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재앙을 막아준다"는 등 만사가 다 잘 돌아간다고 퍼뜨렸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조상 섬기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제사의 시초다. 삼국시대 이전: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 하늘 숭배 사상이 유행하는 원시적인 종교 형태를 띠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 고조선, 부여, 고구려, 삼한(마한, 진한, 변한)에선 동맹, 수신, 영고 등 우리 고유의 산과 강, 신과 하늘에게 지내는 의식 비슷한 제사가 진행됨. 이후 왕조의 형태가 잡히면서 주로 황실에서 시조에 대한 제사가 진행됨. 이때 고구려에서 시조의 조각상을 세우고 그를 숭배하는 제사는 고려에도 이어진다. 삼국시대 중후반 ~ 남북국시대: 불교와 도교의 수입이 이루어지면서 절이 세워지고 불교식 제사가 자주 진행됨. 팔관회나 연등회 같은 행사가 황실 위주로 이루어짐. 신라에선 도교식 제사인 초제[가 행해져 조선 중기까지 이어진다. 이후 유교의 수입도 이어져 신라에선 종묘와 사직단이 설치되어 황실에서 유교식 제사가 이루어진다. 고려시대: 삼국의 제사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성종대에 종묘와 환구단, 사직단 등을 설치해 황실에서 제사를 시행, 민중들은 팔관회, 연등회 등에 참가했다. 고려 말: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문의 무덤(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졌으나 별로 보급되진 않음. 절에 제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초기: 불교의례의 전통이 남아 주자가례와 같은 유교의례는 사회전반에 보급되지 않음. 경국대전에서는 사대부만 4대, 6품 이상 관료는 3대, 7품 이하 관료는 2대, 서민은 부모만 제사 지내도록 했다. 16세기 중반: 성리학이 심화되어 양반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되고 주자가례에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행하여 지고 있다. 20세기 이후 개신교의 유입으로 인해 개신교 신자들은 제사를 거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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