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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17:47
제가 알기론 청도 꽤 도박수로 와서 남한산성에서 좀만 더 버티는데 성공했으면 역공이 날카롭게 가능이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보네유
20/07/08 18:07
맞습니다. 다만 그냥 무모하게 도박 한게 아니라 준비는 최대한 한거죠. 1진만 20만을 보낸 일본과 달리 청은 수가 적어서 왕을 못잡으면 지역 지배하기가 어려워서 장기전도 힘들었죠.
20/07/08 18:14
역사는 결국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봐야 하는데 적어도 '경제가 안 좋다 조선이라도 쳐야 우리가 산다'는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본진이 비워지다시피 할 정도로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건 청의 도박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명이 못 나올 거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요. 산해관은 잘 지켰지만(저 당시 산해관은 못 뚫었지만 몽고쪽 만리장성 루트는 뚫려서 북경 주변을 약탈했다고 합니다.) 야전 나오면 명이 계속 졌으니. 실제로 빈집 털러 왔다가 조선이 항복하자 돌아갔다는 기록을 보면 애초에 명도 이참에 청에게 큰 타격을 주자는 생각도 힘도 없던걸지도
20/07/08 19:10
저 당시가 인상식(사람이 서로 먹는다)의 혼란기라 식량부족은 상수였고 여기에 홍타이지에게 투항한 몽골 제부족의 보상+소빙기로 농경 면적 감소+잡아온 한인들로 만주 내 인구가 증가해서 식량소비가 아슬아슬했던걸로 압니다 도박수라고 볼 수도 있겠죠
다만 병자호란 직전 6월에 청나라가 화북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전으로 후방 정리까지 끝내서 명이 바로 움직이지 못하리라는걸 알고 있었고 조선에 대해서는 정묘호란, 대릉하성 전투의 교훈으로 직도를 통해 적의 군주를 수도에서 내몰고 외지의 성에 2달정도 고립시켜 아사시키는 전략을 수립, 실제로 성공해서 이 시점부터는 강화도가 오래 버틴다고 해도 조선의 승리가 요원한 상태였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은 베팅을 만들어놓고 홍타이지가 잘 걸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07/08 17:59
저때 조선은 참... 재조지은 운운하려면 저때 지연전술을 똑바로 하기라도 하던가 하지 그것도 못하고... 당대에 식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청나라가 한타 억지로 여는거 말고는 뒤가 없음을 알았는데, 그에 대한 조선의 대응, 그리고 쳐맞는 과정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김상헌 같은 꼰대가 큰소리나 칠 줄 알았을 뿐이죠.
20/07/08 18:09
김상헌의 강직한 성품은 높이 사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한게 흠이죠. 최명길 같은 정치적 식견이 높고 융통성이 넓은 신하들이 여럿 더 있었다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쉽네요.
20/07/08 18:20
강직하면서 현실감각이 부족한거면
군대나 회사에서 고집쌔고 멍청한 상사라는 이야기인데 제 경험에는 집단에 가장 피해를 끼치는 인물이라고 봅니다.
20/07/08 18:24
적어도 목숨을 아까워하고 청에게 빌붙은 김자점처럼 간신배는 아니었으니까요. 명신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봅니다.
20/07/08 19:17
요즘으로 따지면 명나라가 미국이고 청나라가 중국이라고 치환해보시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실듯 합니다 미국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폭동에 직면해 있고 중국이 더 부강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죠 인조 정권은 결과적으로 최악을 선택하긴 했습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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