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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23 13:02:28
Name 인민 프로듀서
Subject [일반] 디지털 시대의 추억. (수정됨)
'추억'이라는 라벨링을 붙이기에는 아직 색이 바래지 않은, 20여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이미 CDP와 MD의 시대는 저물고, mp3 플레이어가 한창 유행하던 그 시절. 마냥 공부하면서 문제 풀기는 심심해서 옆자리 친구의 아이팟 나노를 빌렸다. 여고생답게 아주 일반적인 대중성 높은 플레이리스트. 나의 음악취향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그래도 귀가 심심한것보다는 나으니까 랜덤재생으로 노래를 듣던 중. 평소라면 내가 일부러 들을 일이 전혀 없는 김동률의 '출발' 이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오 이 노래 좋은데? 괜찮네? 그 이후로도 여전히 김동률은 안 듣지만, '출발' 만큼은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살아남아있다.

문득 그 시절에 음악을 어떻게 즐겼는지 생각난다. 좋은 음악을 같이 듣고 싶어도 '공유'할 방법이 없어서, 이어폰 한쪽씩 나눠들을 수 밖에 없었고. 나만의 컴필레이션 CD를 주제별로 만들고, 프린터기로 직접 앨범재킷까지 만들어서 공CD에 구워서 선물하고(이 경험은 다들 있으리라. 자신의 선곡능력에 대한 묘한 자부심과 함께). 선물로 줄 컴필레이션 CD를 만들때면, 그야말로 일류 프로듀서로 빙의하여 전체적인 테마, 트랙 수, 트랙 배치, 어떤 곡을 넣을지 선물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심사숙고. 그리고 잘 구워내서, 한번 들어보면서 CD 튄 부분 없는지 점검까지.
이 맘때쯤 추운 겨울날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게, 'Lennon Legend' 앨범을 통째로 구워서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 마음 써서 준비했던 선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영락없는 저작권침해 범죄였구나. 그 친구는 앨범을 듣고, 'Power to the People'이라는 곡이 제일 좋다고 했다. 후에 그 친구가 새빨개지는데는, 존 레논을 소개해준 나의 영향력이 분명히 있었으리라.

요즘에는 CD를 굽는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하고, mp3 파일을 보내주는 것도 틀딱 소리 듣기 십상.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고, 좋은 음악을 추천해주고 싶으면 유툽 링크만 공유한다. 스마트폰으로 음악감상하는 요즈음, 음악 좀 듣겠다고 mp3를 빌리던 것처럼 스마트폰을 빌리는건 생각하기 어렵지. 이어폰을 나눠들을 일도 없다. 요즘 이어폰 하나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래도, 과연 친구가 유툽 링크로 김동률의 '출발'을 들려줬다면 나는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선물받을 그녀를 생각하며 직접 한땀한땀 가내 수공업으로 빽판을 만들던 정성이, 카카오톡 유툽 링크를 보낼 때는 생길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이어폰을 바로 옆에서 나눠듣던 그녀의 체온과 숨결은 또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

편리함이라는 건, 불편한 정성과 추억의 상실과 함께 오나보다.




모두에게 사랑가득한 해피 크리스마스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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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아
22/12/23 13: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문세 아저씨 얼굴이 흑백으로 덩그러니 찍혀있는 씨디가 있었어요.
어린마음에 미친듯이 들었고 테이프로 녹음을 시도해보았죠.

녹음은 되었는데 그 특유의 뭐라고 해야하나....음정이 반키정도 올라간 그런 느낌(옛날 녹음기 써보신 분들은 아실지...도?)이 되어서 실패했죠.

가끔 생각나서 찾아봐도 정규앨범이 아닌지 도통 정체를 모르겠군요;
미고띠
22/12/23 14:15
수정 아이콘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문세 앨범 커버 대부분이 얼굴 흑백 덩그러니네요 크크크
어린 마음이라고 하셔서 93년에 나온 오래된 사진처럼 앨범으로 찍어봅니다.

아니면 흑백은 아니지만.... 세피아톤으로 찍힌 이문세 4집...
무한도전의삶
22/12/23 13:14
수정 아이콘
혹시 이글 예전에 다른 곳에 올리지 않으셨나요? 다른 유니버스의 기억인가, 기시감이 많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인민 프로듀서
22/12/23 15:44
수정 아이콘
아뇨 처음 쓴 글입니다. 내용이 평범해서 그런가봐요 흐흐
aDayInTheLife
22/12/23 13:18
수정 아이콘
아마 요즘 세대 중에서는 그나마 mp3.. 추억의 아이팟 클래식을 꽤 오래 썼던 입장에서 mp3 끝무렵의 제가 생각 나는 글이네요. 주로 저는 주변 친구들에게 츄라이 츄라이를 했던 사람이라 크크크
마술사
22/12/23 14:44
수정 아이콘
옛날사람들은, 직접 피아노 연주자 불러서 들었던 감동을 얘기하면서, CD 구워서 편하게 들었다면 이렇게 감동받지 못했을거라고 했을것같습니다
Grateful Days~
22/12/23 15:19
수정 아이콘
더블데크 처음나왔을때가 가장 크게 바뀐게 느껴졌네요. 라디오 녹음에만 쓰던 테이프를 복사가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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