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12/07 00:22:47
Name Fig.1
Subject [일반] 아, 일기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
*완전히 정리된 글이 아닙니다. 미리 양해구합니다.

일기를 쓰면 좋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보니 많은 글에서 비슷한 근거를 대며 일기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를 몇 가지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 자신을 알 수 있다.
-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 정신건강에 좋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다 맞는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기 쓰기의 핵심은 다릅니다. 
우선 일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감정을 위한 일기와 생각을 위한 일기입니다.



1.감정을 위한 일기
① 감사일기

감정을 위한 일기에는 ①감사 일기②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감사일기는 감사한 일에 대해서 적는 것입니다.

2017년 발표된 논문 <Feeling Thanks and Saying Thanks: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Examining If and How Socially Oriented Gratitude Journals Work>에 의하면 3주간 감사일기를 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 감소를 경험했다고 하죠.

제가 생각하는 감사일기가 작동하는 이유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는 삶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한 삶은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감사한 일을 찾기 위해서는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은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 관계 맺은 사람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② 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

두 번째 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는 말 그대로 나쁜 감정을 일기에 쏟아내는 방식의 일기를 말합니다. 감정을 나만의 공간에다 쏟아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Disclosure of traumas and psychosomatic processes>라는 논문에 의하면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난 후 그것을 비밀로 간직한 사람들과 심리적 외상에 대한 내용을 글로 작성한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비밀로 간직한 사람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고 합니다. <Effects of Expressive Writing on Standardized Graduate Entrance Exam Performance and Physical Health Functioning>이라는 논문에는 곧 치르게 될 시험에 대한 감정을 글로 쓴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기분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학업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죠.

이처럼 감정을 글로 쓰는 것이 유익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첫째는 우리가 부정적이거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쓰고 쓰면서 경험에 대한 반응이 작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감정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부정적인 감정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넓은 인생의 맥락에서 보게 되면서 치유되는 것이라는 의견이죠. 그러니까 인생 전체에서 보면 그 감정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 경험이 어쩌면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납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효과가 있다는 말이죠.



2.인사이트를 위한 일기

여기까지 들으면 뭐 다른 곳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말할 부분이 핵심입니다. 
바로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앞선 두 가지 일기를 저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인사이트에 대해서는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간략하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는 인사이트가 지식과 경험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에서만 도출한 인사이트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반면 지식만 있는 인사이트는 전달력이 없죠.

그래서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쓰기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일기를 쓰면서 내 지식과, 남의 인사이트 등을 조합해보거나,
책을 읽어 얻은 새로운 지식과 인사이트를 일기를 쓰면서 내 경험과 조합해보는 것이죠.
쓴다는 행위를 하는 순간에는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차단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는 정보와 지식을 조합하게 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일기 쓰기의 기능에 대한 다른 주장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사실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와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은 내 가치관을 명확하게 들어내는 것이니까죠.

-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일기 쓰기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부산물로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마저도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의식하며 일기를 쓰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의도적인’ 반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 일기를 쓰는 이유는 크게 감정적 안정감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다. 
- 그 중에서도 핵심은 지식과 정보를 조합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다.
- 그외는 일기 쓰기의 부가적인 기능이다. (ex. 글쓰기 능력)


-
제가 생각하는 ‘왜 일기를 써야 하는 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아직 명확하게 정리된 글은 아니다 보니까 부족한 면이 많이 보이네요.
여러분은 왜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일기 쓰는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분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메탈젤리
22/12/07 05:46
수정 아이콘
저도 개인블로그에 일상, 생각, 감상 이라는 세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일기를 작성하고 있는데 본문에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라는 부분이 참 공감가네요
22/12/08 20:18
수정 아이콘
생각과 감상의 차이가 인사이트와 감정인 걸까요?
메탈젤리
22/12/09 13:14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22/12/07 06:03
수정 아이콘
저도 인사이트 때문에 일기를 써야 되나 고민 하고 있었는데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22/12/08 20: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일기 쓰기 자체는 추천합니다흐흐
패스파인더
22/12/07 09:39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22/12/08 20: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2/12/07 09: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예전에 몸담았던 조직은
평소 18시 퇴근 전 17:50분쯤 하루 정리하는 미팅을 진행했는데요,
각자의 자리에서 의자만 뒤로 돌리면
가운데 원형 테이블 두고 마주보는 구도에서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업무라기보다는 잡담 같은 분위기로요.

그 미팅의 내용 중 하나가 감사함 말하기였어요.
오늘 배운 것 / 실천한 것 / 그리고 감사한 것 짧게 돌아가며 이야기했는데
아주 아주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일기라는 개인적인 시간 보내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얘기였지만^^;
아무튼 감사일기는 팀 단위에서도 마음에 드는 활동이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 잘 하는 11가지 방법>
중 4번.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가 생각나네요 :)
22/12/08 20:19
수정 아이콘
좋은 직장에 계셨었네요:) 조직 문화가 좋은 회사들이 진짜 부럽더라고요
총사령관
22/12/07 09:50
수정 아이콘
저도 일기를 사용하는데 예전에는 누가 볼까 은유적으로 제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근데 다시 읽어보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때가 있어 이제는 직관적으로 쏟아내기로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22/12/08 20:20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읽어보면 중2 때 썼나 싶을 정도였죠 흐흐
인생을살아주세요
22/12/07 10:01
수정 아이콘
이등병때 생각나네요. 자대배치받고 한 선임의 갈굼이 너무 힘들어서 일기장에 감정을 쏟아낸 적이 한번 있는데..... 어느날 낮에 작업 다녀온 사이에 제 관물대 속 일기장을 꺼내서 읽었더라고요(그 선임은 말년병장이라 작업 열외..). 그 선임 제대할 때까지 더더욱 갈굼 당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22/12/08 20:21
수정 아이콘
아... 너무 최악의 경험이신데요ㅠㅠ
아이슬란드직관러
22/12/07 10:56
수정 아이콘
예전에 피지알에서 크리스마스 다가오는 시즌 즈음(지금이네?) 감사일기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2주 동안 스무명 정도 되는 분들과 함께 단톡방에서 진행했는데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몇 번 진행하면서도 감사일기가 습관화는 잘 되지 않아서 매번 놓쳤다가 모 앱을 사용해서 4년 넘게 감사습관을 잘 들여가고 있어요.
1. 만원을 건다
2. 하루 3개 이상 감사할 것을 쓴다
3. 이틀 이상 빼먹으면 만원은 나머지 참가자가 나눠갖는다
굉장히 간단한 룰이고 상금이라고 해봐야 십원이십원 수준인데도 꾸준히 하니까 이제 감사할 것 10개도 못 채우는 날은 뭔가 잘못 산 것 같고 그렇습니다@.@

두번째 일기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모닝 페이지'가 그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끄적이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던데 잘 하는 분들은 정말 잘 하는데 저는 잘 못해서... 이브닝 페이지라도 써야 하나 싶네요.

세번째가 가장 놓치고 있는 부분인데요. 블로그에 글 쓰며 생각 정리하곤 했는데 요즘은 뭔 말을 못 하는 세상이다 보니 정리 자체를 잘 안 하게 되는 핑계가 생기더라구요. 어쩐지 인사이트가 모자라더라ㅠㅠ 다시 써봐야겠습니다.
세이밥누님
22/12/07 11:57
수정 아이콘
오... 어플 추천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도 일기 좀 써보려는데 당최 괜찮은 앱이 안보이네요 흑흑
아이슬란드직관러
22/12/07 12:38
수정 아이콘
저는 챌린저스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더 좋은 앱도 있겠지만 익숙해서 계속 쓰게되네요..
세이밥누님
22/12/07 19:17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해요 흐흐
무한도전의삶
22/12/07 11:03
수정 아이콘
예전에 읽은 책의 통계로는 일기를 쓰며 검토하고 글쓰기의 씨앗을 발견하고 퇴고를 반복하면 실제로 글쓰기가 늘지만, 기록 후 되돌아보지 않으면 오히려 글쓰기 실력이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22/12/08 20:22
수정 아이콘
퇴화..까지 하나요? 퇴고를 습관화 해야겠다 덜덜
둘리배
22/12/07 11:10
수정 아이콘
저는 누가 볼까봐 감정적인 서술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일기도 잘 안쓰게 되고
22/12/08 20:23
수정 아이콘
제가 참고논문을 가져온 곳이 <표현적 글쓰기> 라는 책인데, 그곳에서 남들에게 공개하는 순간 감정 일기의 효과는 오히려 안하는 것보다 나빠진다는 연구도 소개되었습니다. 누가 보지 않을 곳에 적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코인언제올라요?
22/12/07 11:16
수정 아이콘
저도 누가 볼까봐 일기에도 제 감정을 제대로 못 쏟아내겠습니다.
-안군-
22/12/07 11:36
수정 아이콘
한창 어려웠던 시기에 감정일기를 쓴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나중에 우연히 짐정리하다 발견해서 읽어보니... 어우야..
22/12/08 20:23
수정 아이콘
감정의 쓰레기통..
판을흔들어라
22/12/07 23:33
수정 아이콘
저는 거진 6,7년째 일기를 써오고 있는데 지금의 일기 쓰는 주요 이유는 '기록'입니다. 제가 나중에 보기 위한 것도 있고, 지구가 멸망하거나 몇 백년 뒤에 현재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라면서요. 사실 일기라고 해도 일어나서 밥먹고 TV보는 사소한 것까지 적는 것도 있고, 굵직한 일을 적는 것도 있고 아마 사람들마다 다를거 같습니다. 웬만하면 그날에 바로 쓰려고 하는게 다음날 감정이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그 감정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22/12/08 20:25
수정 아이콘
오 신선한 관점이네요! 뭔가 SF적인 느낌입니다.
사실 저도 일기를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를 때 그냥 일과를 기록한 적이 있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한달정도 하고 접었었죠.
그래도 재미(?)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348 [일반]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성경적인가. [140] Taima16370 22/12/07 16370 15
97347 [정치] 독일서 쿠데타를 모의한 극우 및 전직 군 인사 집단 체포 [33] 아롱이다롱이16889 22/12/07 16889 0
97346 [일반] 자녀 대학 전공을 어떻게 선택하게 해야할까요? [116] 퀘이샤16448 22/12/07 16448 9
97345 [일반] 현금사용 선택권이 필요해진 시대 [101] 及時雨14390 22/12/07 14390 18
97344 [일반] 귀족의 품격 [51] lexicon15243 22/12/07 15243 22
97343 [일반] 글쓰기 버튼을 가볍게 [63] 아프로디지아10864 22/12/07 10864 44
97342 [정치] 유승민 경멸하지만 대선 최종경선 때 유승민 찍은 이유 [100] darkhero21255 22/12/07 21255 0
97341 [일반] 아, 일기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 [26] Fig.110579 22/12/07 10579 21
97340 [일반] 책상 위에 미니 꽃밭과 딸기밭 만들기 [16] 가라한9291 22/12/06 9291 12
97339 [일반] 커뮤니티 분석 글들의 한계 [68] kien.16999 22/12/06 16999 24
97338 [일반] 고품격 배우들의 느와르 수리남 감상문 [14] 원장10108 22/12/06 10108 1
97337 [정치] 한덕수 김앤장 전관예우가 문제 되는 이유 [58] darkhero18212 22/12/06 18212 0
97336 [정치] 한국에 와서 고생이 많은 마이클샌델 [76] darkhero17946 22/12/06 17946 0
97335 [정치] 윤 대통령, 청와대 영빈관,상춘재 재활용 [86] 크레토스16349 22/12/06 16349 0
97334 [일반] 출산율 제고를 위한 공동직장어린이집 확충 [58] 퀘이샤13118 22/12/06 13118 38
97333 [일반] 노동권이 한국사회를 말아먹는 메커니즘(feat 출산율) [148] darkhero18659 22/12/06 18659 36
97332 [정치] 국정원 ‘신원조사’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개정 [117] SkyClouD15174 22/12/06 15174 0
97331 [일반] 지코의 새삥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2] 포졸작곡가8242 22/12/06 8242 6
97330 [일반] 아라가키 유이와 이시하라 사토미 [34] Valorant14112 22/12/06 14112 2
97329 [일반] '테라·루나 사태' 신현성 전 차이대표 영장 기각 [46] 타츠야17574 22/12/05 17574 0
97328 [일반] 건설현장에서의 노조 문제 [208] 퀘이샤23882 22/12/05 23882 75
97327 [일반] 아수스, 그래픽카드별 파워서플라이 용량 안내 [36] SAS Tony Parker 12287 22/12/05 12287 1
97326 [일반] 영천에 스타벅스가 들어옵니다(그외 3군데 추가) [80] SAS Tony Parker 15650 22/12/05 15650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