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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09 18:20:41
Name 고구마장수
Subject [일반] (추가) 약간 각색된 어느 회사 이야기 (수정됨)
모기업의 연구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업계 2위이지만 1위와 격차가 제법 많이 있는 상황이었고, 전체 인원의 60% 이상이 연구부서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자기 맡은 분야만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인력의 20%정도 차지하는 영업부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외향적인 분들도 많았고 요청사항도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일입니다. 당시 같은 부서의 선배가 꽤 좋은 실적을 냈습니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꽤 개선되었기에 경쟁사 제품과도 성능측면에서만 본다면 뒤지지 않는 제품이었습니다. 내부 테스트도 잘 끝났고, 실제 고객반응도 좋았습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이번에 실적 좋으면 다들 성과급 받아보겠네"라는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그 선배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제품의 단점을 감추지 말고, 오히려 꺼내서 개선하자. 우리가 감추더라도 고객이 먼저 알게 마련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가 영업부서의 조직장으로 발령났다는 공지가 났습니다. 여느 연구원들과는 다르게 외향적이기도 하고 고객사 PT도 자주 하던 사람이고 연구팀을 잘 이끌던 중간관리자여서 평가는 좋았지만, 영업부서로의 발령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영업조직의 내부 카르텔과 지나친 군대식 문화때문에 위에서 꽂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안팎에는 "그 회사내 특정 영업인력을 통하면 똑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더 높은 할인을 받을 수 있더라"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선배가 실시한 첫번째 행동은 1) 영업내규를 새롭게 만들고, 규정외 할인율은 영업부서장외에 재무부서장의 결재를 받게끔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 다음으로 분기별로 골프접대를 위시한 각종 행사비용에 대해, 실제  참석한 고객이 실제 그 고객의 해당 분기 매출, 다음 분기 매출로 이어지는지 보고, 실제 효과가 없는 행사는 대폭 삭감 했습니다. 조직 이동한 다음 술자리를 한번 가졌는데 이 2가지는 내용은 지금도 제법 기억이 또렷이 나네요.

매출은 반년정도 주춤했다가 분기마다 조금씩 꾸준히 올랐고, 반대로 가끔 지나치는 선배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두워졌습니다. 그때 한번 물어볼 걸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영업조직의 반발이 계속해서 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특히 아래 실무진보다 기존 영업중간 리더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일부러 매출을 미룬다던지, 회의때 지시한 내용을 고의로 누락한다던지, 재무쪽 전무님, 인사쪽 상무님과 따로 술자리를 자주 가진다던지 여러 소식이 들렸습니다. 몇주전 선배의 퇴사소식을 들었습니다. 실적은 계속해서 좋았으나, 그 실적은 그 선배가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뿐, 실제로는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었을 거라는 내부의 평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뀐 영업 조직장은 기존에 있던 고참 차장이었는데, 위의 1와 2)를 지난주에 폐지했습니다.

과연 그 선배는 지금쯤 어떤 생각이었을까 궁금합니다.
괜히 벌집을 건드리지 말고 모른체 다닐껄 그랬나 아니면 후회없다고 뒤 안돌아보고 떠났을까


===============================================
(이하 추가합니다)

구조화된 기득권에 대해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각색한 내용인지라 자세히 기술할 수는 없어서 몇몇 분들이 1,2)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결과가 궁금하신 분들이 계셔서 간단히 덧붙입니다. (B2B 비즈니스입니다)
기존 영업부서장은 굳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지는 않으면서 인바운드 위주로 영업을 하면서, 매출이 큰 소수의 고객에 자신의 이름으로 가이드를 훨씬 초과하는 할인율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기존 인력이 퇴사하면 좋은 거래처는 자신을 따르는 후배들에게만 배분했고, 각종 외부 행사에는 자신의 지인 혹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고객들만 수년간 반복적으로 초청했습니다. 선배는 명분이 분명하지 않은 행사비를 줄이고, 신규 고객 유치 행사를 시작하고 고객들 대상으로 교육과 정기적인 홍보를 실시했습니다. 거래처도 다변화해서 고객수는 꽤 많이 늘어나 소수의 고객의 예산에 좌지우지되지 않게끔 활성고객수가 많아졌습니다. 영업조직의 경우 젊은 친구들이 활기를 띄게 되었고, 영업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의 수혜도 훨씬 공정하게 집행되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영업, 연구, 기획등의 소재는 논의를 위한 예시입니다.
조직내 불합리한 관행이 있고, 해당 권력을 사유화하는 집단이 있고, 이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때(그것이 검찰이든 언론이든 정치권력이든 재벌이든 사학재단이든 아니면 작은 가정내 가부장적인 폭력이든) 개인에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그 개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능력도 도덕성도 자질도 원만한 인간관계도 중요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손해를 감수할만큼 해당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 역시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일개 소시민인 저로서는 권력의 카르텔인 옆부서 핵심라인인 부장, 과장, 심지어 후배 대리 조차도 무섭습니다. 하물며 조선일보, 검찰, 사학재단은 말할 나위도 없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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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9 18:34
수정 아이콘
독이 든 성배죠...
방향성
19/09/09 18:39
수정 아이콘
1이나 2가 꼭 좋은건 아닙니다. 1은 재량권을 극히 축소한거고 2는 잠재적 고객에 대해서 접촉할 꺼리를 줄인거죠
셧업말포이
19/09/09 19: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1,2는 딱 봐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네요. 실무를 경험해보지 못한 공무원적인 일처리라고나 할까.
저런 과정들은 프로세스를 회사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실무와 실제 매출에는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재고파악을 빡세게 한다고 하면
매출에 집중할 에너지가 부족해진다고나 할까요.
19/09/09 19:52
수정 아이콘
보통 직장인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업무에서 본인의 합리적인 원칙을 내세우는 거죠. 불법이 아니라면 영업이 먼저고 그 다음이 원칙입니다.
19/09/09 20:10
수정 아이콘
저도 보면 영업이 갑이 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못 팔면 꽝이잖아요..
19/09/09 20: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 2가 뭔지가 실제로는 중요하긴 하겠다만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자 한게 그건 아닐텐데..흐흐

확립된 시스템에 도전하는 자는 대개 본인이 깨져나가죠.
하다못해 딸랑 회사 하나에서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개혁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전문성과 더불어 의지와 희생정신이지요.
스트라스부르
19/09/09 20:29
수정 아이콘
결국 그래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싱(Balancing)이죠.

현황이 어떠하며
회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회사로부터 기대받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한 다음에 그에 맞춰 행동해야죠.

본문만 놓고 보면
그 선배는 회사로부터 꽤나 기대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실적 내기 힘든 연구부서에서 실적을 내고 그 뒤에 영업부서 조직장으로 승진했다는 걸 보면
이리저리 돌려서 경험을 쌓게끔 해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영업조직의 내부 카르텔과 지나친 군대식 문화때문에 위에서 꽂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라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컨데
아마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는 그런 것들을 완화시키는 것이었겠죠.

다만, 그런 기대가 있다고 한들 조직의 화합이라거나 실적이라는 측면은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조직이나 실적이 개판되건 나발이건 뭔가 원하는 걸 이루겠다는 생각이면
대주주 핏줄이나 가신단이 가지, 실력 좋은 실무진 집어넣지는 않았을거거든요.

근데 결국은 기존 조직구조와 마찰을 빚다가 불협화음을 못 견뎌 나가게 된 모양새가 되어버렸네요.
이건 밸런싱을 못 맞춘거라고 봐야겠죠.
마이스타일
19/09/09 20:31
수정 아이콘
1번과 2번 모두 영업적으로는 안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타깝네요
위에서는 변화를 주려고 앉혔으니 뭔가 바꾸긴 해야겠는데 영업에 대한 실무 경험은 없고 그러다보니 무리수를 던진 것 같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독이 든 성배였네요
StayAway
19/09/09 20:49
수정 아이콘
영업부의 지상과제는
불법이 아닌 이상 모든 수단(편법이나 일부 비도덕을 포함한)을 동원하여 실적 및 매출을 확대시키는건데,
지상 과제를 무시하고 정의구현을 하려니 문제가 생기죠.
카르텔? 조직문화? 영업부에선 원숭이가 사장을 맡아도 매출만 잘 나오면 그만인걸요.
의도는 미루어 짐작가능하지만 이번 건과는 좀 핀트가 어긋난 비유인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9/09/09 20:52
수정 아이콘
영업에서 성장한 사람이 저런걸 추진했으면 그나마 좀 무마가 됐겠지만
낙하산이자나요 속된말로....
반발이 없을래야 없을수가 없죠.
19/09/09 20:56
수정 아이콘
반드시 영업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만들어 쌓아놓기만 해도 팔리는 제품을 가진 회사도 주변에 많이 있죠..
그래서 영업의 난이도가 높지 않은 기업은 관료화되기 쉽다고 봅니다
루카와
19/09/09 21:24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근데 무슨제품일지 궁금해지네요 흐흐
19/09/09 23:06
수정 아이콘
공자님이 그러셨던거 같은데, 악한 이를 개도하고 싶거든 먼저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지기반을 닦아야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9/09/10 01:08
수정 아이콘
몰랐던건 아니지만 하나 되새기고 갑니다

너무 강직하게 했더니 부러지더라구요
능소화
19/09/10 00:10
수정 아이콘
룰 원상복귀 후 실적이 훨씬 나아진건가요? 사내정치의 중요성!
-안군-
19/09/10 02:25
수정 아이콘
본의아니게 회사를 여러번 옮겨본 입장에서, 조직장들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가 되더라고요.
1. 경영을 하는 타입
2. 살림을 하는 타입

1번은 비용을 더 쓰더라도 그보다 이익이 더 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입니다. 과도해보이는 지출일지라도 그것이 영업이나 개발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팍팍 씁니다.

2번은 비용을 어떻게든 줄여서 순이익을 늘리려는 타입이죠. 마치 사장이 아니라 총무부장 같은 느낌입니다. 프린트는 무조건 이면지에, 볼펜이나 메모지 같은것도 다 반출장부에 기록하게 하고... 뭐 이런 스타일이요.

어느쪽이 옳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직원 입장에서는 솔직히 1번이 더 좋긴 합니다. 이상적인 회사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 이끄는 것이겠지만...
잉크부스
19/09/10 03:1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영업팀장의 롤은 영업확장인데 감사팀장처럼 일했네요.
아마도 개발팀에 있을때 영업팀의 기득권을 아니꼽게 보았겠지요.
위로부터 오더 받고 실시한 제도가 아니라면....
내 팀장이 내편이 아닌데.. 결과는 뻔한..

조직의 장악은 해드 부터 줄줄이 날리고 시작하는거지 제도 찔끔찔끔 바꿔서야 장악이 안되죠.
19/09/10 07:24
수정 아이콘
1)은 영업입장에서 보면 술 마실 때마다 씹을 거리였겠네요.
생겼어요
19/09/10 09:55
수정 아이콘
영업하는 입장에서 1)은 소위 말하는 유도리 없는 사람이 부서장이면 진짜 너무 피곤합니다. 거래처에서 물건이 빨리 필요하다고 하는데 기안 승인 다받고 출고하면 무조건 늦어지는건데 거래처 독촉받고 할때마다 영업사원은 스트레스입니다. 급한 건에 한해서 선출고 해주고 후 기안작성이면 모르겠는데 저런식으로 내부규정을 만들어놓은 회사에서 예외를 두고 선출고 해줄일이 없죠.

저희회사 이야기 입니다... 급하다고 빨리 결재라도 요청하면 본인의 권위에 도전하는거라고 생각하는지 더 뺀질대고 결재 안해주더라구요 크크크
i_terran
19/09/10 14:50
수정 아이콘
규정 1이나 2가 중요한게 아니죠. 글을 읽어보면 그걸 하라고 그조직에 우두머리에 갖다 박은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열심히 했더니 결과는 짤림... 사회생활이란게 참 무섭다는 느낌이고, 이번에 임명된 조국법무부장관이 저꼴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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