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11/18 13:26:43
Name
File #1 FB_IMG_1542515092196.jpg (190.7 KB), Download : 58
Subject [일반] 맨체스터에 산다는것 (수정됨)


맨체스터에 산다는 것.


1.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물론 이곳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한번도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20대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중요한 기로에서 나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했고,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와 버렸다- 가 솔직한 심경입니다. 어쩜 살아간다는건 그런 것 일까요.

2. 대학생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특권임에 분명합니다. 우선 혹사당해도 별 불평 않는 젊고 건강한 육체가 있고, 딱히 이렇다 할 엄청난 책임을 짊어질 일도 거의 없습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토론하고 온 세상이 배울 것으로 넘쳐납니다. 주제 넘게 벌려 놓은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적도 있었습니다만, 대게 일상의 고민거리는 오늘 뭐 먹지, 정도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물론 매우 드물지만) 시간을 내어 미술관 까페에 가거나, 공원에 누워 늘어지게 책을 읽고, 비행운을 그리는 비행기를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눈으로 쫓는다던지,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는다던지 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는 합니다. 맞아요. 호시절이네요.

3. 조금 더 어렸을적엔,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 잔소리꾼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20대의 자유라는 백지수표가 덜렁 주어지고 그것이 내 책임이 되었을때, 어쩐지 이 뻔뻔한 녀석은 게으름을 피우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불행하게도 누구 하나 이놈자식! 하며 꿀밤을 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생 비자에 맞춰 만들어진 바클레이 카드의 만료일을 볼때면, 지금 안락한 생활의 계산서를 마주하게 될 날도 과연 머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흘려 보내는 날들에 점점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금까지의 선택은 인생을 방향 짓는다기보단 한 목적지를 향하는 길 위에서의 차선 변경에 불과했다면, 앞으로는 좌회전이냐 우회전이냐 하는 삶의 갈림길을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되겠죠.

4. 아무튼 그렇게 스물다섯번째 생일이 지났습니다. 이런 코흘리개 녀석, 하고 머리를 쓰다듬을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코흘리개의 시간도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갑니다. 슈퍼우먼이었던 어머니의 머리에는 서리가 앉고, 울보 동생은 장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취업과 결혼 소식, 부모님의 부고가 이제는 더 자주 들려옵니다. 그저 몇번의 계절을 흘려 보냈을 뿐인데 천둥벌거숭이 같던 녀석들은 훌쩍 자랐고, 정말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야속하게도 하나 둘 손아귀를 빠져 나갑니다. 맨체스터에서의 생활도 언젠가 인생의 한 챕터로 기억 되겠지요. 과연 인생은 찬란한 것이었다며 미소 지을 날도 오게 될까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쌓아 올릴 밖에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一言 蓋世
18/11/18 13:43
수정 아이콘
외국인 유학생이시군요.
글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그 나라 이미그레이션은 깐깐한가요?
명문대학에 다니신다면 잘 모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비자 연장이나 변경 할 때 많이 괴롭히던가요?
달과별
18/11/18 13:56
수정 아이콘
테레사 메이라고 적대적 환경을 만든답시고 발벗고 나선 사람이 총리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 가면 이민 신분 체크해서 추방시키는 정책은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예전 이민 기록을 소각해놓고 개개인에 이민 기록을 증명 요구해 못하면 추방시키는 일을 저지르고 지탄을 좀 받고 있답니다.
18/11/18 17:51
수정 아이콘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정책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굉장히 보수화 되고있어요. 그 불만이 브렉시트로 폭발한거 같아요. 당분간은 이런 기조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타나라
18/11/18 14:14
수정 아이콘
지나고보면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았던적 없고 후회되지 않은적 없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
최종병기캐리어
18/11/18 14:46
수정 아이콘
인생의 황금기... 마음껏 누리세요. 더이상 오지 않습니다
야나기타 유키
18/11/18 15:28
수정 아이콘
인생에 있어 돌아오지않고 행복한 추억이 될겁니다
최선을 다해 즐기시길
은하관제
18/11/18 15:29
수정 아이콘
지금을 더욱 더 즐기시고. 행복하시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화이팅이에요.
18/11/18 19:4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다들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케이드
18/11/18 15:40
수정 아이콘
맨체스터라고 하시니 축구 생각 밖에;;;
축구도 자주 보세요?
18/11/19 16:43
수정 아이콘
하하 아무래도 그런가봐요
축구 딱히 찾아보지는 않는데 여기선 워낙 일상에 깊이 들어와있네요
장원영내꺼야
18/11/18 17:53
수정 아이콘
맨체스터 하니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만 생각나네욤,인기가 많나욤 그지역에서?
18/11/19 16:44
수정 아이콘
요즘 맨시티가 많이 치고 올라왔는데, 인기로는 여전히 전통의 맨유인것같아요!
Flyboard
18/11/18 18:26
수정 아이콘
맨체스터 시티가 저는 생각이 나네요.. 영국에는 여행만 가봤지 살아본적이 없어서 어떨까 궁금하네요. 미국이랑도 많이 다를까요??
18/11/19 16:47
수정 아이콘
문화도 정서도 크게 볼때 비슷한데 세세하게는 많이 다른거 같아요. 한국-일본 혹은 한국-중국 정도 차이일까요? 영국 살기 좋습니다! 음식이랑 날씨만 빼구요^^
쥬갈치
18/11/18 18:41
수정 아이콘
맨체스터 하니까 맨유랑 맨시티 사이에서 무슨일이 있나 했습니다 크크
하나의꿈
18/11/19 13:05
수정 아이콘
속깊으신 25살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제가 님 나이때 그 시절이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지 충분히 자각했다면 지금 인생이 많이 달랐을텐데. 가족 이루고 먹고는 살지만 20대초반 낭비했던 시절이 지금도 너무 아쉽습니다.
18/11/19 17:05
수정 아이콘
저는 부러워하실만큼 잘 살아오지 못했고 지금도 그래요.. 다만 지금의 저를 있게만든 모든 불완전한 날들에 감사하려고 노력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927 [일반] (펌) 일상생활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들 (캡처 하단에 동영상).jpg [16] B와D사이의C7227 18/11/19 7227 22
78925 [일반] 나루토 리뷰 1 [37] TAEYEON10258 18/11/19 10258 3
78924 [일반] 공정위, '빅데이터 독점' 생기는 M&A 불허한다 [111] 삭제됨13542 18/11/18 13542 5
78923 [일반] 군필자라면 누구나 애증이 담겨있을 육공트럭이 사라진답니다 [39] 홍승식8814 18/11/18 8814 1
78922 [일반] 때늦은 울트라 부스트 4.0 후기 [25] 하심군14495 18/11/18 14495 1
78921 [일반] 치킨먹을까 피자먹을까 [20] style7941 18/11/18 7941 1
78919 [일반]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12] 나이스데이6262 18/11/18 6262 4
78918 [일반] 오늘 보면서 감탄사가 나왔던 기사 [25] 로켓9254 18/11/18 9254 4
78917 [일반] 성우 김일 별세 [52] TWICE쯔위7825 18/11/18 7825 0
78916 [일반] [스포매우많음] 드래곤볼 超: 브로리 기본적인 설정 [25] TAEYEON8009 18/11/18 8009 2
78915 [일반] 범죄와 페미니즘에 관한 나의 생각 [6] 마빠이5701 18/11/18 5701 5
78914 [일반] 저는 피지알에 여혐 분위기가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746] OrBef38462 18/11/18 38462 308
78913 [일반] 애견카페 한 번 가 본 후기 [32] 삭제됨5911 18/11/18 5911 0
78912 [일반] 지금까지 나온 마블 영화들의 평점을 살펴보자 [40] 은하관제8024 18/11/18 8024 1
78911 [일반] 맨체스터에 산다는것 [17] 6993 18/11/18 6993 20
78910 [일반] 우리나라는 자국비하가 심한 나라긴 합니다. [169] 레슬매니아14185 18/11/18 14185 6
78909 [일반] [뉴스 모음] No.212. '혜경궁 김씨' 사건 특집 [31] The xian10823 18/11/18 10823 21
78908 [일반] 울산의 혼밥 식당 [24] 10217470 18/11/18 17470 11
78907 [일반] 중학생 추락사 피의자가 입었던 패딩 피해자것 [49] 미스포츈13029 18/11/18 13029 3
78906 [일반] 늦은 밤의 넋두리(내일 아이유 10주년콘서트 티켓 분실) [42] 밧줄의땅5904 18/11/18 5904 3
78905 [일반] [토요일 밤, 좋은 음악 하나]NAO-Gabriel [2] Roger3442 18/11/17 3442 1
78904 [일반] 초중등 학교 생활이 좋았던 점 [11] 사진첩5802 18/11/17 5802 4
78903 [일반] 혹시 악마의 모티브는 인간이 아닐까 [29] TAEYEON9299 18/11/17 9299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