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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8/06 19:10:32
Name Right
Subject [일반]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혐오표현이 아니라.
'PC'(Political Correctness)는 소수자를 겨냥한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혹은 사회적 운동이다. (출처 : 나무위키)

PC에서의 핵심은 혐오적인 용어를 수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동양인을 'Yellow'로 부르면 기분이 나쁠 것이고,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용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분이 나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PC의 용어 검열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데에 있다. 모든 표현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장소, 맥락, 시간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예를 들어,'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여성의 성 역할을 수동적으로 고착시키는 성차별적 이야기이다. '장애자'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하여 '장애인'을 쓰고 있다. 사실상 우리가 쓰는 모든 표현과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이건 1:1의 관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과 관계를 맺으며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는 부분을 알 수 있고, 써야 될 표현과 아닌 표현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이나 뉴스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에는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수 많은 독자들이 PC의 기준으로 검열을 하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글이 없다.

PC는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약자가 받는 상처에 민감하다. '당신이 권력자로서 배려심이 없이 내뱉는 말'은 약자에게 상처를 준다고 한다. 그들을 예민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강자의 약자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탄압, 그리고 2차 가해가 된다. 사회는 상처입은 사람들을 돌보고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약자를 돕고,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 미덕임을 배워왔다. 하지만 세상은 '강자와 약자', '혐오와 비혐오 표현'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볼만큼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 개인을 강자 혹은 약자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 개인은 수 많은 major와 minor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 살고, 청각 장애인이며, 직업은 판사이고, 흑인이라면 이 사람은 강자인가, 약자인가?) 하지만 지금의 PC는 소수자들이 몇몇 표현에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임을 가정한다. 실제로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른데도 말이다. 소수의 다양성을 존중하기위해 개인을 '다양한' 그룹안에 매몰시킨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C와 같이 '특정 그룹'(성별, 성소수자, 인종 등)을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검열이 아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히 PC한 용어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용어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이 들어가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이 생길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반응의 원인을 그 용어 탓으로 돌린다. 내가 기분 나쁘고, 우울하고, 불행한 것은 내가 들은 그 용어 때문이므로, 그 말을 한 상대방을 비난한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이다. 내가 그 용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 연습을 하면, 더 이상 용어 자체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대신에, 자신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혐오표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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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6 19:23
수정 아이콘
누군가에게 여성해방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민주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불평등의 문제이고요.
사람의 감수성은 유세도 권세도 아닙니다. 다만 각 사람의 개성이자 특질이지요. 사람은 시력에 맞춰서 안경과 렌즈를 끼는 것이니까요.
서로 보지 못하는 티가 있으면, '여보세요! 거기 바지 밑단에 흰 가루가 묻었네요.'라고 말해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말이죠. 언제부턴가 도덕적 허가 (Moral Licensing)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도덕적 비트코인처럼 말이에요.
'나는 이런 소수의 관점까지 배려하는데, 너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러지 못하냐? 집안교육이 문제냐, 마음의 여유가 문제냐?'라는 유세가 말입니다.
사실 어디에도 정답은 없지요. 우리가 뭐 학회에다가 글을 쓸 것도 아니고, 이 맥락, 이 사건, 저 글에서는 바뀔 단어의 재배열에 불과하지요.
아즈텍 사람들이야 인신공양을 신나게 하다가 스페인 군인들의 총알에 죽었지만, 누가 수인 동성애 그림을 그린다고 신의 총알이 날아올까요.
그래서 상당히 냉소적인 입장을 많이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또 신기하네요. 단어와 기호 세계에 목숨걸고 갇혀사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에, 방 밖으로 나올 용기를 말하는 글이라니요. 좋네요.
크르르르
18/08/06 19:2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C와 같이 '특정 그룹'(성별, 성소수자, 인종 등)을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검열이 아니다."의 근거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히 PC한 용어는 없기 때문"이며 "모든 용어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이라는 결론은 약간은 빈약해보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히 PC한 용어는 없"다 하여도 대상을 지칭함에 있어서 비교적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덜 불편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혹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아주 불편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일종의 사회적인 약속이라는 통설에 비추어 보자면 "사실 모든 용어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와 같은 문장 또한 이해는 가나,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종북"이나 "빨갱이"를 사전적인 정의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사전의 뜻으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심지어 사전 상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존재하지만!) 그와 같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통용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는 말에 크게 동의합니다. 다만 그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나라는 개인만을 통해서 비롯됨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그리고 내가 빚어내는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때서야 비로소 개인은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막연히 생각건대 윤리는 사람에게 남게 될 마지막 특성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윤리를 검열의 잣대가 아닌 관계의 토대로 빚어낼 때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름발이이리
18/08/06 19:37
수정 아이콘
+1
무난무난
18/08/06 19:53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계층방정
18/08/06 20:23
수정 아이콘
1. 장작위키에 나오는 말인데, '벙어리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바꾸자는 것은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일지라도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손가락이 유착된 사람에게는 황당한 일입니다. 북아메리카의 아즈텍인, 마야인, 쇼쇼니인 등을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것도 그들 내부에서는 찬반이 갈리는 일입니다. 완벽한 PC한 용어는 없다는 말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2. 조선에서, 도축업자를 사람들이 멸시하므로 조정은 그들을 평민(백정)으로 편입하고자 해 그들을 '신백정'이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평민들은 스스로 백정이라고 하지 않고 신백정들만을 백정이라고 해, 도축업자는 이름만 백정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멸시당했습니다. 모든 용어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지요. 소경도 벙어리도 원래는 비하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쓰는 사람이 비하하니까 비하 용어가 된 것이지요. 쓰는 사람은 눈에 장애가 있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는 사람을 여전히 비하하고 싶어하는데 말만 소경 대신 시각장애인으로, 벙어리 대신 언어장애인으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기만일 따름입니다.
절름발이이리
18/08/06 21:27
수정 아이콘
원 덧글은 "완벽한 pc용어는 없다"를 가볍게 넘기자는 얘기가 아니라, 모 아니면 도 식으로 갈 일이 아니란 얘기죠. 가볍게 넘긴적이 없는데 가볍게 넘길 수 없다고 말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비하할 의도가 있는데 비하용어를 안 사용하는게 기만이더라도, 그게 문명인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비하할 의도가 넘쳐서 비하적 의미가 없는 용어가 비하용어화 되는 현상은 유감스러운 일인데, 어차피 그럴거라고 비하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건 비도덕한 태도입니다.
계층방정
18/08/13 08:24
수정 아이콘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1은 PC운동에 부정적인 견해가 떠올라서 쓴 건데 제가 견강부회했습니다.

2. 비하용어를 쓰고 말고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쓰는 사람에게 비하의 의도가 있느냐 마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비하 용어를 쓰지 말자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사람을 비하하지 맙시다를 관철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비하 용어에 쟁점을 맞추느라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까요? 비하 의식이 없어지면 비하 용어도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보죠. '루터파'라는 말은 본디 종교개혁 과정에서 구교 진영이 루터의 가르침에 동조하는 신교 진영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루터를 모시는 우상숭배자들이라고 까려고 쓴 말로, 어원적으로도 비하 의도가 다분합니다. 그러나 루터파로 불리는 이들이 스스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자들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루터파를 자처했고, 이후 지금의 루터파는 천주교 원리주의자들 외에는 비하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 됐습니다.
그러면 비하 용어로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남자'를 '냄져', '자궁'을 '포궁'으로 하자는 등, 비하 의식이 없다고 여겨지는 말에 비하 의식이 있다고 억지로 갖다붙이기 시작하는 건 뭐로 막을 수 있을까요?
절름발이이리
18/08/13 09:39
수정 아이콘
타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비하용어를 안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하용어를 쓰지 말자는 말은 비하 용어에만 쟁점을 맞추는 게 아닙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비하 용어를 쓰지 말자는 말이, 비하적 의도에 문제가 있으며 그것을 내비치지 말자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비하 의식을 가지고 따지면 더 애매할텐데, 그럼 뭘 어쩌자는 건가요? 찬송가라도 부르면 될까요?
18/08/06 23:29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들에게 덜 불편한 용어를 사용하려는 의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특정 용어에 대한 불편함의 정도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불편함이 용어 자체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용어가 사용된 시기, 맥락, 화자, 청자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뉘앙스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용어가 누가봐도 명백하게 '쓰지 말아야 할 용어'가 될 자격이 있을까요?

용어 자체에 대한 검열이 아니라 그 용어를 사용되는 맥락, 개인의 윤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크르르르
18/08/07 09:48
수정 아이콘
용어 자체에 대한 검열이 아닌 맥락과 개인의 윤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다만 그 "맥락"과 "윤리"는 오롯이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개인들 간의 관계, 사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누가 봐도 명백하게 "쓰지 말아야 할 용어"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답하는 대신,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것이 나은" 용어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져 왔고,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전혀 새로운 논의가 아닙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피지알에서 용인되는 단어와 용인되지 않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겠지요. 그러한 약속, 사회적 합의는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며, 이미 이루어져 있는 범위의 확장 혹은 축소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지금 Right님이 갖고 계신 문제 의식은 말의 쓰임에 대해 의미 있는 지적이고 생각할만한 여지를 충분히 담고 있으나, 그 말을 풀어나감에 있어서 지나치게 단편화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픽디자인
18/08/06 19:30
수정 아이콘
인터넷속 세상은 너무나 단순해보이는데 나가보면 그렇지 않죠

글 잘 봤어요
cienbuss
18/08/06 21:16
수정 아이콘
우리에게 필요한건 탈권위를 주장하며 능력은 없는데 허술한 명분만으로 새로운 권위가 되려 기를 쓰는 것들을 조롱하고 끌어내리는 게 아닐까 싶네요. 나라도 참아야지 하면서 저들보다 강자도 아닌데 강자인 것처럼 굴기보다 황금율에 근거해 스트레스 받은만큼 저들이 강단에서 조롱당하고 책이 안 팔려서 끙끙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기에 탑승해서 다른 약자들을 때리며 살아갈 활력을 얻는 약자들도 요즘은 불쌍하기 보다 하루라도 빨리 본인의 삶이 공허했음을 깨닫고 이불속에서 절망했음 좋겠습니다.
프로그레시브
18/08/10 09:15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흔히들 얘기하는 씹선비질에 대한 좋은 일침이 되겠네요
형식에 얽매이기만 하고 본질을 놓치는 모습들에게 도움이 될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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