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8/02 10:53:38
Name 크르르르
Subject [일반] 잡생각 - Elavate.
드레이크의 이번 신보를 듣다가 든 잡념을 pgr에도 올려봅니다. 평어체 양해 부탁 드립니다. 괜찮다면 종종 올리겠습니다.



"I'm in better weight, thinking how'd I make-"

지금 사는 빌라에는 엘레베이터가 있다. 혼자 산 뒤로 엘레베이터가 있는 방에 사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번 살던 옥탑방도 4층, 지금 사는 빌라에서도 4층에 사는데 엘레베이터로 오르는 감각은 4개월 사는 내내 지금까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엘레베이터에 타면 붕 뜨는 느낌으로 올랐다가 그 기분을 내려 놓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붕 뜨지 못하던 시절, 옥탑방으로 오르는 계단은 유달리 높았다. 3층까지의 계단은 평범했는데, 옥탑을 가르는 계단은 유달리 더 좁고 가파르게 깎여 있었다. 그 높은 계단을 오를 때 다리에 힘은 3층까지 오르던 것보다 더 들고, 숨도 가파르게 깎일 즈음 비로소 내 사는 집에 조금 더 가까이 왔음이 느껴졌다. 몸에 새겨진 그 체험은 나 사는 곳을 계단까지로 확장 시켰다. 다리가 뻐근해질 때 나는 내 방의 침대를 느끼고, 화장실을 느낄 수 있었고, 내 방에 누워 계단의 가파름을 가끔 생각했다. 가끔 방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도 계단에 대해 먼저 주의를 주곤 했다. 계단 조심해라, 높다, 가파르다..

이제 붕 뜨는 엘레베이터를 가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 하나 있다. 엘리베이터에는 다른 사람이 타지 않는다. 4개월 동안 다른 사람과 엘레베이터를 탄 적은 단 한 번이고. 오직 나 혼자 이용하는 것 같다 빌라에 살고 있을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어색한 일이다. 빌라 1층 전체가 주차장으로 트여 있는데, 그 주차장에서는 그렇게 자주 보는 사람들을 엘레베이터 안에서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내가 엘레베이터에 먼저 타면 다른 사람은 그 옆의 계단을 이용하고, 나도 다른 사람이 엘레베이터에 탄다 싶으면 계단으로 다닌다.

빌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소위 '풀옵션'원룸들의 모양은 삐뚤빼뚤하지 않고 반듯하다. '풀-옵션'은 다르고 싶어도 다르기가 어렵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엘레베이터가 건물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비슷비슷한 공간을 허망하게 공유하는 중에 정말로 함꼐 쓰는 하나의 공간을 동시에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득 문득 엘레베이터에 함께 타는 것을 피하는 사람을 볼 때, 혹은 내가 피할 때 생각해본다. 높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아 조심할 것도 꺼릴 것은 사람 뿐이라 그럴까.

elevate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올리다, 승진시키다, 높이다, 좋게 하다 등이다. 중에는 오르는 내용만 있지 내려가는 내용은 없다. 이제 내가 사는 곳은 방으로 한정되었고 엘레베이터는 영 바깥에 있다. 가끔 사람을 마주치길 피하려 잊었던 계단을 밟을 때에만 문득 문득 지난 옥탑방의 침대가 떠오른다. 그럼 붕 뜨지 못한 마음으로 내 방에 누워서 그때를 뻑뻑하게 기억한다.

흠. 뭐, 이는 다 내 오해고 내가 험궂게 생겨서 사람들이 그저 내 얼굴을 이유로 엘레베이터에 함께 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8/02 16:43
수정 아이콘
잘 읽고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020 [일반]  [뉴스 모음] No.192.5.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22] The xian9764 18/08/27 9764 33
78019 [일반] 한때 전유럽을 발아래에 두던 나폴레옹의 말년 [26] 신불해12049 18/08/27 12049 31
78018 [일반] 야구에서 일희일비하지마라 [65] truebeatsfear10436 18/08/26 10436 3
78017 [일반] 그것은 알기 싫다 경제위기설의 구성요소들 [71] 히야시15350 18/08/26 15350 5
78016 [일반] 태풍 솔릭이 몰고 온 기압배치의 파괴 [24] 아유9919 18/08/26 9919 2
78015 [일반] "최저임금 부담" 식당에서 해고된 50대 여성 자살 기사 삭제 파문 [54] 말다했죠15742 18/08/26 15742 22
78014 [일반] 입에 뭐가 났다. [6] 헥스밤7809 18/08/26 7809 20
78013 [일반] 삽자루가 이야기하는 진짜 댓글 알바들 [88] 삭제됨19318 18/08/26 19318 25
78012 [일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결과 [278] SkinnerRules20865 18/08/25 20865 12
78010 [일반] 트럼프 지시로 폼페이오 방북 취소.. [40] 삭제됨14017 18/08/25 14017 3
78009 [일반] 꿈을 이루고 싶은 절박함, 이를 위한 노력 feat. 프듀48 [15] 뒹구르르6993 18/08/25 6993 5
78008 [일반] 고급 시계의 세계,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취미란 [30] 삭제됨11046 18/08/25 11046 9
78007 [일반] 꼰대질의 패턴 - 가불기 [36] The xian9778 18/08/24 9778 10
78006 [일반] 생산가능인구의 변동과 취업자 수 [31] LunaseA9894 18/08/24 9894 8
78005 [일반] 지루하고도 비루했던, 26년의 기다림이 끝났습니다. [55] RedSkai13285 18/08/24 13285 111
78003 [일반] 다스뵈이다 29회 삼성, 삽자루 그리고 표창원 [22] 히야시14019 18/08/24 14019 18
78001 [일반] 동일본대지진 쓰나미를 피한 일본 후다이 촌 이야기 [20] 9948 18/08/24 9948 5
78000 [일반] 강남 숙명여고 전교1등 쌍둥이 사건의 결론이 얼추 나왔네요 [113] truebeatsfear18801 18/08/24 18801 15
77999 [일반] 봉화 총기 사건 현장에 있었던 직원들에 대한 심리 치료 무대책. 현장 청소까지 시켜 [44] swear7751 18/08/24 7751 10
77997 [일반] 건국대 최배근 교수가 얘기하는 경제기사들의 문제점 [179] Jun91115730 18/08/24 15730 31
77996 [일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약품 사용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 [7] 사업드래군5079 18/08/24 5079 1
77995 [일반] 살면서 겪었던 무서웠던 경험들 [26] swear7124 18/08/24 7124 5
77993 [일반] 국정농단 2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37] 후추통9342 18/08/24 9342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