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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31 23:05:23
Name 무가당
Subject [일반] 서지현 검사의 수기를 보고.... (수정됨)
본인이 당한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용기 있는 폭로로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 형식으로 적어두었습니다. 읽어보면 조직 내에서 만연한 성차별과, 서열을 중시하는 전근대적인 모습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몇 개의 글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며칠전 청 간부가 “여성들이 검사로서 인정받으려면 술자리에서 친목차원에서 있었던 일에 예민을 떨어서는 안된다. 그런 걸로 예민을 떨어대니 검사로서 인정을 못 받는 것이다”라고 대놓고 연설하는 것을 직접 듣지 않았던가.]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추었으니 완전 악연 중에 악연이다. 너 같이 생긴 애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내가 너 검사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겠다.’라며 독설을 퍼부어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 참 너는 아직 검사도 아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으로 시작하려는 사회 생활,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모든 게 어색해 그저 조용히 옅은 웃음만 지으며 앉아있던 여자는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부장이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불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밥을 먹기 전에는 신속하게 숟가락 젓가락과 티슈를 세팅하고, 모든 컵에 물을 따라 서열 순대로 상관과 선배 앞에 대령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행여나 비워진 접시나 물컵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다가 사라진 음식을 주문해내고 물을 따라야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이 여자가 말석이라서 해야 하는 것인지 여성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길을 걸을 때도 산을 오를 때도 단 반걸음이라도 윗사람보다 앞서지 않도록 수시로 애써 속도를 조정하며 서열 순대로 걸어가는 모습들이 영 어색해서였다.]

[‘올해부턴 여검사가 백명이 넘었다니...우리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라며 여자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차대는 상관과 선배들의 걱정 어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던 터였다.]

[‘박지현! 나는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는 여기 있는 애들 50프로야!. 그러니까 나한테 인정을 받으려면 너는 여기 있는 애들보다 2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해!!!’]

[부장과 주말이면 ‘좋은 곳’을 다녀온 남자 선배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여자의 사무실에 모여앉아 ‘부장은 왜 그 여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쓰고 있었냐’는 등의 이야기를 해대며 낄낄거렸다.]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모텔로 떠메고 가 강간을 한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나이트를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부장이나,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 식으로 강간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도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여자의 저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덩어리가 자꾸만 꿀렁꿀렁 목 밖으로 넘어오려 해 꾸욱 꾸욱 깊은 침도 삼켜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문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0046.html 이 링크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글의 '회사'는 '검찰청'입니다. 저런 양아치 같은 언행을 한 사람들은 '검사'입니다. 또한 피해자도 검사입니다. 한국에서 검사라면 소시민은 쳐다보기도 힘든 권력자입니다. 이런 사람도 조직의 내부에서는 시커먼 덩어리를 꾸욱 눌러 삼켜야 하는 약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고, 성차별에 대한 분노보다도 더 근복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성차별과,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 서열주의 문화가 사실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조직원이 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하고, 좋은 곳에서 여자들과 지저분하게 놀 줄 알아야 하고, 서열을 철저히 지켜야 하며, 악과 깡이 있어야 하고, 며칠 밤을 새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들은 완전히 남자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듭니다. 여자는 이 운동장에서 놀 수가 없고, 당연히 배척당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서지현 검사가 정말 업무능력이 없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번씩은 우수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 조직의 조직문화가 매우 비합리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업무능력보다, 조직원으로써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조직문화에 동화되고, 윗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한국에 이런 직장이 한둘이겠습니까? 조직문화가 비윤리적인 것 까지는 어느 정도 비켜가는 직장도 있겠지만, 비합리적 / 서열주의까지 포함되면 거의 99%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1%는 친구들끼리 창업한 스타트 업이나 1인 자영업자 정도일까요?

요즘 같은 취업난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사원들 중 1년 내 퇴사하는 비율이 27%나 된다고 합니다. 3년 퇴사율을 보면 62.2%까지 높아집니다. 퇴사자들은 퇴사 원인을 직장 문화 / 연봉 / 업무량이라고 합니다.

연봉과 업무량은 회사로서도 조절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이놈의 집단주의적 / 서열주의적 문화는 왜 아직도 굳건할까요? 이것 때문에 발생하는 비효율이 한두건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아서 죽겠다고 하소연하면서 말이죠.

실제로 저의 주변을 봐도, 원하던 기업에 입사했음에도 직장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심지어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도 점심 식사 메뉴까지 부장의 기호에 맞게 통일해야 하고,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교육을 신입사원 OT에서 대놓고 말하고, 심지어는 OT를 해병대 캠프 비슷하게 진행하는 회사도 있죠. 명분은 소속감을 기른다는 것인데, 사실은 집단을 위해 개인을 억누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개념이 희박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방을 쓰고, 대학에서는 특정 과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수제가 아닌 나이제를 쓰고 있죠.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선배가 있다면 다음날 나쁜 소문이 쫙 퍼집니다. 물론 강권하는 선배 자체도 거의 없지만요. 그나마 남자는 군생활 경험이라도 있는데 비해 여자는 정말 생소한 문화에 부닥칩니다. 게다가 대부분 남성 중심적인 문화죠. 이것 때문에 촉발되는 성차별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나무위키의 직장생활 문서를 보면 군생활의 최대 장점을 조직생활 적합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하더군요. 동감합니다.)

아무튼, 이런 전체주의적 / 서열주의적 직장 문화가 옅어지면 직장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젠더 문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검찰이 배타적이고 서열주의적인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양아치스러운 비 합리적 문화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또 속이 상하네요. 그런걸 시정하는데 일조해야 할 정부기관의 내부 분위기가 저따위라니....

오늘 서지현 검사는 본인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유와 앞으로 변하는 모습에 집중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직장문화 더 나아가서는 사회문화를 바꾸자는 말이겠죠. 바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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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31 23:06
수정 아이콘
첫플에 죄송한데 서지현입니당
무가당
18/01/31 23: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18/01/31 23:08
수정 아이콘
음... 이름이.....
18/01/31 23:47
수정 아이콘
컵에 물따르는것도 여자만 하는건가요? 남녀 할것없이 어린사람들이 하는건줄 알았는데 검사쪽 문화가 좀더 빡샌건지
18/02/01 00:05
수정 아이콘
저건 아마 입장상 서술을 그렇게 한 것일 뿐 실제로는 그냥 막내가 하는 일일겁니다. 서술된 문제들 중 일부는 맞는 얘기이거나 지나치게 예민한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요는 그게 아니긴 하죠. 저렇게 권력과 가까운 조직이 폐쇄적이기 까지 하니 우리 주변보다 훨씬 마초적이었을 겁니다. 이번 일이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서지현 검사 측이 힘을 많이 받았으면 하네요.
차라리꽉눌러붙을
18/02/01 02: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다른 이야기지만, 저도 남자지만 많이 해봤는데 그냥 자기 물은 자기가 좀 따랐으면ㅠㅠ
나이가 먼 8,90도 아니고......
18/02/01 09:3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저 글에도 있잖아요 말석이라 그런건지 여자라서 그런건지 혼란스럽다고요. 저런식의 위계 따지는 억압적인 직장문화가 여자들에게 더 억압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일수도 있고요.
빛당태
18/02/01 00:00
수정 아이콘
저 나이대 꼰대들이 사회에서 은퇴하는 시기가 오면 저런 사내에서의 적반하장식의 성폭력+추행은 많이 줄어들 겁니다
강미나
18/02/01 00:36
수정 아이콘
저 나이대 꼰대들도 젊었을 때는 우리 위 꼰대들만 사라지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했겠죠.
18/02/01 00:38
수정 아이콘
그래도 군대문화나 청소년때 운동부 체벌 문화가 저시대랑 20~30대 세대랑 많이 달라진걸 보면 저 시대가 사라지면 좀 더 줄어들거같긴합니다
빛당태
18/02/01 07:19
수정 아이콘
그거하곤 다릅니다. 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성관념 인식자체부터가 많이 달라요.
라라라~
18/02/01 02:52
수정 아이콘
힘과 권력이 사람을 꼰대로 만듭니다. 저 시스템과 조직문화가 그대로라면 자라나는 세대 역시 계속 오염될수 밖에 없어요
김철(33세,무적)
18/02/01 09:05
수정 아이콘
네. 없어지진 않겠지만 저도 많이 줄어들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회사에서의 경험을 봤을 때 40대 중반 정도를 기준으로 갈리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위로는 지저분한 회식을 좋아하는(또는 회사 분위기 상 좋아하게된)사람들이 많았고
그 아래로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네요. 술도 먹고 싶으면 먹어라. 안 마시면 안 권한다. 이런 분위기...
18/02/01 09:33
수정 아이콘
문화가 바껴야지 그게 안바뀌면 지금 젊은 사람들 그자리가면 그대로 꼰대짓합니다.
빛당태
18/02/01 09:56
수정 아이콘
아직 부족하지만 사회분위기도 그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죠. 분위기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개개인 인식 자체도 꽤나 바뀌었다 봅니다.경제 부흥기인 80~90년대에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의 현 장년층들이 자신들이 신입일 때랑 분위기 자체가 완전 다르다고 항상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기업은 아직 부족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공기업 같은 경우는 근절되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18/02/01 12:36
수정 아이콘
착각이 대단한데요. 전 까막득한 후배들이 꼰대짓 하는거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빛당태
18/02/01 15:40
수정 아이콘
개인적 사례 말고 사회 변화에 따른 계층의 입장+큰 틀에서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꼰대라는 객체가 중심이 아니라 성관념에 따른 세대간의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잘못 이해하셨네요
Let there be true
18/02/01 02:0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여자가 왜 술을 그렇게 따라, 스타킹 색깔이 그게 뭐니, 그런 치마 안어울리는 거 알아? 여잔데 말투 좀 바꾸지 그래, 여성스럽게 걸어야지...' 등등 자주 듣는 말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폭력적으로 느껴지죠. '여성'이기 이전에 개성을 가진 한 인격체이자 사람인데요.

그래서 되도록 차별적인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문화들이 바뀌어서 많은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18/02/01 03:04
수정 아이콘
'회사'라는 단어를 쓰다니 놀랍네요. 이 스노우볼이 굴러 검찰개혁까지 간다면 좋겠네요.
bellhorn
18/02/01 08:22
수정 아이콘
그부분은 다 그래요 공무원 사회에서는..
18/02/01 08:56
수정 아이콘
동생이 공무원인데 금마도 그냥 회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공무원 동기는 입사동기라고 하고
18/02/01 09:24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회사말고 다르게 부를만한게 없는듯 하네요 크크
18/02/01 13:27
수정 아이콘
별로 놀라울게 없는게 판사인 제 친구도 지 직장을 회사라고 부릅니다;
Pyorodoba
18/02/01 08:08
수정 아이콘
세대가 바뀌면서 나아지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바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바꿔버리기 때문에..
metaljet
18/02/01 10:38
수정 아이콘
밥먹기 전에 티슈 젓가락 물컵 세팅하기.. 높으신 분들은 손이없나 발이없나 투덜거리면서 열심히 했던 예전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차근차근
18/02/01 10:57
수정 아이콘
자기 등 안마하라고 면상에 소리지르던 상사 생각나네요. 집에서 마누라한테나 그러든지.
HuggingStar
18/02/01 11:15
수정 아이콘
같은 직원은 아니고 업무상 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이랑 회식자리에서 노래방을 갔는데, 아줌마들이랑 블루스 끈적하게 추라고 상사가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것 들었을때 자괴감 쩔더군요. 그래서 좀 싫은 내색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것도 일이야’] 아니 내가 무슨 호빠일 하려고 취업했나... 그런 거지같은 문화가 이것저것 있는 곳이다보니 때려치고 나왔습니다. 나름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곳인데 크크크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나라 회사 문화 자체가 썩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다수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논리 하에 개인이 독박을 쓰지요. 서 검사님 용기있는 발언 응원합니다. 아직 대한민국은 갈 길이 멀다고 느끼네요.
18/02/01 12:26
수정 아이콘
그런 놈들이 검사니 뭐니 하며 득실대고 있어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그렇게 경미한 걸까요? 거기다 술먹었다고 하면 봐주는 것까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럴만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검사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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