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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24 20:45:34
Name TheGirl
Subject [일반] 육아일기 (수정됨)
아들놈이 14개월차 되었고 이제는 잘 걷는 수준을 넘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하루종일을 움직입니다. 금세 지치고 들어눕게되는 나의 몸둥아리와는 상반된 녀석을 보며 하는짓이 꼭 지 아비 어릴적같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세월이 흘렀고 나이가 들었음을 체감합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나의 어릴 적 사진과 아들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어쩜 이리 똑같냐고 신기해합니다. 나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아버지가 보이기도, 장인어른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첩을 들춰보면 나를 돌보고 사랑스러워 하는, 나의 기억속 그녀보다는 훨씬 젊었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2년 전쯤부터는 우리집에서 지내셨는데 치매가 걸리셔서 기능을 많이 상실하셨고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냄새가 났고 종종 집안에 대변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할머니와는 들며 나며 인사정도를 건내고 스쳐지났던 것 같습니다.

몇일전 나보다 먼저 깬 아들 녀석이 아직 잠에 반쯤 취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고개를 들어 녀석을 봤을 때 문득 기력이 쇠한채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보이더군요. 아마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할머니를 외면했던 그때가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배게에 묻고 말았습니다.

나의 얼굴에는 나를 사랑해준 여러사람의 모습이 서려있을 것이기에 아직은 꽤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이 생 동안에 부끄럽지 않게 지내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흙이 되고 나를 닯은 아들녀석과 그 아들의 아들, 딸들이 자신의 얼굴에 일부나마 새겨져 있을 나를 웃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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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아유
18/01/24 20:56
수정 아이콘
와~글 잘쓰시네요.추천합니다~~
지바고
18/01/24 20:56
수정 아이콘
저와 느끼는 것들이 비슷하시네요...
놀고 또 놀아도 지치지 않는 26개월쯤되는 아들하나와 곧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이뻐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아들들이 보고 있는데 잘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자식들은 인생의 선생님이 되는것 같은 요즘입니다
18/01/25 02:59
수정 아이콘
아니 댓글이 거의 없길래 이런 훈훈한 글을 못 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보시도록 댓글을 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1/25 04:08
수정 아이콘
저희집 둘째는 할머니를 거의 못보고 자랐는데... 하는짓, 웃는 방식이나 장난치는게 정말 똑같은거 보고 유전자의 무서움을 봤습니다. 보고 배우는게 아니라 태어 나더군요... 와이프는 가끔 자기애 같지 않다고 합니다.
18/01/26 02:05
수정 아이콘
아이한테서 가끔 부모님이 보이는 경우가 있죠..
근데 단점도 보이잖아요? 그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다시 태어나도 못고치는거구나.
18/01/26 12:39
수정 아이콘
같은 침대에 누워 쳐다봤을 때 예쁜 건 아내만이 아니란 걸 알게해준 아들녀석.
5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들때문에 어젯밤도 뽀뽀를 몇번이나 했는지...
가끔 자는 귀에다 사랑한다 말하면 베시시 웃어주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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