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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04 16:35:38
Name herzog
Subject [일반] <1987> - 아쉬움이 남는 앙상블 영화
- 눈팅만 하다가 쓰는 첫 글입니다. 피지알 글쓰기 버튼 역시 무겁네요.
- 페이지에 <1987>관련 글이 많아서 올리기 그렇지만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계신분들 있는 것 같아 리뷰 올려봅니다. 편의상 경어체 생략하겠습니다.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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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은 세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8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영화에서 묘사된 사건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함께 영화를 감상한 어머니는 <1987>의 의미를 영화 그 자체보다 과거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데서 찾는 것 같았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 지난 날을 회상하며 어머니는 그저 슬프다고 했다. 최루탄의 냄새, 불시검문, 땡전뉴스,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억하는 세대는 30년 전의 재현을 보면서 멜랑콜리에 휩싸였을 것이다. 스크린에 투영되는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과 분리시킬 수 없는 이들은 영화 속 재현을 보면서 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이미지에 과거의 표상이 포개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반면 80년대를 체험하지 못한, 과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에게 <1987>을 보는 것은 조금 다른 체험이 될 수밖에 없다. 87년이 지난 뒤 태어났고, 활자와 매체를 통해 80년대의 트라우마를 간접 지식으로 습득한 개인으로서 작품을 감상하는 내 심정은 무덤덤함과 지루함이 반씩 섞여 있었다. 근현대사의 사건을 떠올릴 때 끓어오르는 감정과 별개로, 애호가의 입장에서 <1987>은 다소 아쉬운 앙상블 영화(복수의 플롯이 서로 엮이며 진행되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 1월부터 6월 10일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까지, 6개월 남짓한 시간을 여러 계층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영화이다. 감독은 안기부장과 공안, 검사와 기자, 유족과 교도소 공무원, 민주 운동가와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된 다수 이야기를 서로 교차해 뒤섞으며 1987년 당시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매 이야기 단위는 당시 시대의 변화를 주도한 주체들의 모습과 이들을 억압하는 세력을 조명한다. 눌러 앉으려는 기득권에 의해 진실이 탄압되는 시대에서, 민주화의 쟁취는 어느 한 개인의 힘이 아닌 각계각층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웅은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에 용기를 냈던 민중 모두이다. 계몽된 민중의 시대 정신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총체성은 <1987>의 정체성인 동시에 단점이 된다.

다수의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 영화, 중심 플롯 없이 서브 플롯만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갖는 어려움은 영화의 흥미를 종반까지 지속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게다가 감독이 시대를 재현하려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할 때, 이 목표는 긴장감의 유지라는 측면과 양립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앙상블 영화의 고전인 <그랜드 호텔>(1932),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의 자매들>, 로버트 알트만의 <내쉬빌>과 <숏 컷> 등의 작품에서, 수많은 등장인물과 언뜻 복잡해 보이는 전개에도 관객의 관심이 흩어지지 않았던 것은 개별적 흐름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 속 번갈아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다른 진행을 지연시키면서도 다음 전개를 궁금하게 했다. 연출은 간결한 필치로 이야기의 요점만 제시하는 동시에, 인물의 내면 심리가 점차 고조되어가는 과정을 마법처럼 카메라 속에 담아냈다. 이를 통해 관객의 호기심은 내러티브의 발전에 밀착될 수 있었다. 이야기 단위에서 극적 동기는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그것은 로맨스나 불륜이 될 수도, 개인 간의 심리적 유대, 갈등이나 범죄와 같은 사건이 될 수도 있다.

<1987>에서 문제는 다채롭게 등장하는 서사의 여러 부분들이 효과를 산출하지 못하고 휘발되는 것이다. 전반부 박처장과 최검사의 대립 관계는 미꾸라지와 살모사의 투쟁을 보는 것처럼 생기를 띤다. 하지만 이 주요 대립이 사라진 후 영화에서 서스펜스는 찾기 힘들다. 박종철 시신의 부검 여부를 놓고 그들이 다툰 이후 영화는 기념비적인 6월 민주화 항쟁까지 있었던 사건들의 열거일 뿐이다. 이야기 단위에서 인물 간 갈등의 심화와 관계의 발전은 성글다. 드라마를 갖추려고 하는 관계는 금새 허물어진다. 시선을 끌만한 요인이 부재한다. 조반장(박휘순)과 박처장 사이의 의리와 배신, 한병용과 연희의 다툼, 연희와 이한열의 로맨스, 공안에 붙잡힌 병용의 고문은 단발성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깊이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근래 한국 영화답지 않게 등장하는 모든 주-조연 배우의 연기력이 이질감이 없음에도(특히 <강철비>와 비교해볼 때, 조연들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영화를 통해 새로 알게 되거나 재인식하게 된 배우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부유하는 다수의 플롯 위에서, 영화는 배우의 전시에 불과해진다. 실재 사건 흐름과 진행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려 했던 감독의 의도는 극적 긴장의 구축을 방해한다.

감독은 중반 이후부터 부재하는 드라마를 클리셰로 메운다. 작품 속 심드렁했던 순간은 창조적 연출을 통해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터치하기보다 영화적 관습의 반복을 통해 반응을 유도할 때이다. 감독은 상업 영화의 메뉴얼에 바탕해, 연출 효과를 배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가 유족을 취재하기 위해 좇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카메라가 살얼음 위에 흩뿌려진 유골을 손에 쥐고 슬피우는 유가족을 비출 때, 이 오열하는 신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구슬픈 멜로디가 신경을 자극할 때, 이 장면은 박종철에 대한 애도, 유가족에 대한 동정이라기보다, 관객의 감상을 자극하기 위해 유가족의 모습을 극적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밖에 달리 보이지 않는다. 또한 김정남을 추격하는 공안의 액션은 일말의 긴장감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이한열 캐릭터에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 삽입된 연희와의 로맨스는 무엇보다 촌스럽다. 매직아워 무렵 벤치에 둘이 앉아있는 상투적인 표현 외에 영화는 둘의 감정이 발전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한열의 부고 소식을 접한 연희가 광장 위로 달려나갈 때, 연희의 심정을 이토록 자극한 게 무엇이었는지 낯설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극은 인물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바탕 위에서 성립한다. 동질감은 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다수 캐릭터의 추상적인 묘사는 카타르시스의 기반이 될 수 없다. <1987>에서 장준환 감독은 분명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민중 승리의 쾌감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문제에서 서사시의 얼개는 무척이나 빈약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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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사랑
18/01/04 16:41
수정 아이콘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보여지는 문제점을 잘 짚어주셨네요. 동감합니다.
마르키아르
18/01/04 16: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는

영화제에서 수상할정도로 작품성을 더 높게 평가 받고, 영화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되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공감해주고 , 알아주고 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실화가 배경이니 어쩔수 없는 전개들이 있을테고..

몇가지 캐스팅과, 작품의 전개는 대중성을 잡는 감독의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 특히 강동원역....... )

그렇게 만들지 않고, 말씀하신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관객이 지금의 반의 반도 안들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 아니.. 금전적인 문제로 제작조차 불가능해서, 원래 계획인 다큐멘타리 형식으로나마 제작되었을 같네요. )
18/01/04 16:54
수정 아이콘
연희와 이한열의 동질감은 첫눈에 반했다는 그런걸 제외하더라도, 민주화 항쟁 영상을 보면서 차마 목도하지 못하고 영상을 보는 것 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마는 감성으로 표현한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순둥이
18/01/04 17:47
수정 아이콘
둘의 로멘스에 대해서 글쓴이가 한 말이 동의가 안되는게 돌이 무슨 로멘스가 있었나요?
도들도들
18/01/04 17:06
수정 아이콘
1987은 좋은 영화이지만, 본문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중심축이고,
최검사 - 동아일보 기자 - 한병용+이부영 순으로 주요 역할이 넘어가는 구조인데요.
최검사에서 동아일보 기자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역할이 넘어가는데(최검사가 정보를 흘려주죠),
동아일보 기자에서 교도소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이야기의 단절이 발생하면서 긴장감이 휘발됩니다.
동아일보 기자는 맥락없이 사라지고, 교도소 씬은 늘어지면서 급격히 진부해져요.

물론 그럼에도, 1987은 전체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안군-
18/01/04 17:2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박처장 역을 맡은 김윤석이죠. 비중 면에서나 분량 면에서나... 첫 장면이 박처장이 임진각에서 참배하는 장면이라는 것이 그걸 증명하죠. 다만 주인공이 악역이고 결국은 패배한다는 내러티브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에게 더 눈길이 가서 영화가 난잡(?)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박처장을 중심에 놓고 영화를 본다면 꽤 짜임새 있는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과, 그걸 방해하는 주변인물들간의 치열한 갈등의 구도를 꽤 잘 그렸다고 봅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 아니잖아요. 박처장 입장에서 보면 비극이고요.
흑설탕
18/01/04 23:0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영화의 주인공이 박처장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비중이나 분량에서 압도적이긴 하지만 그건 사건배후의 중심인물이라서 그렇게 나왔다고 봅니다. 초반장면을 그 근거로 이야기 해주셨는데 나름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특이한 구성의 영화를 제외하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거의 대부분 끝장면이었습니다. 2시간여의 러닝타임끝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바가 농축되는 그 시간대에서야 관객에게 전달할 주장이 오롯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1987에서는 마지막의 광장씬이 그러한 장면이었죠. 어두운 곳에서 작은 저항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저항을 외면해 왔던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온 그 장면에서 박처장의 지분이 없습니다. 영화가 구조적으로 박처장이 주인공인 비극이라면, 그 광장씬 이후로도 한 번 정도는 더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StarDiaWow
18/01/04 17:3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영화에 조예가 깊으신 분 같은데 앞으로도 영화 관련 많은 글 부탁 드립니다.

다만 연희와 이한열의 관계를 로맨스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한열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학생운동에 나서고 연희는 영상으로 보는 광주의 아픔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이한열과 연희 모두 공권력의 횡포로 맨발이 되고 서로에게 신발을 사줍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이한열과 연희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동지 관계
또는 더 나아가 이한열과 연희를 동일시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두 열사의 죽음에 아파하며 거리로 나온 (연희로 대표되는) 시민 모두가 이한열이었다라는 의미를 주기 위해서요.

해석이 좀 과하기는 하지만 둘의 관계를 로맨스로만 보기는 아쉬운 점이 있어 댓글 남겨봅니다.
순둥이
18/01/04 17:48
수정 아이콘
동감요 로멘스로 보는건 말이 안되는거 같음

연희가 광장으로 달려나갈때의 감정을 자극한게 무얼지 모르면 안될것 같은데 말이죠
18/01/04 19:19
수정 아이콘
네 감사합니다. 저는 연출의 정황을 보고 로맨스로 생각했지만,
둘의 관계가 로맨스가 아닌 다른 종류의 관계더라도,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매끄럽게 연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8/01/04 18: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물론 님의 지적이 일리가 없는건 아니지만, 글 전체적으로 너무 확신에 차 단정적으로 썼네요. 살얼음 위에 흩뿌려진 유골 씬도 유치한 신파에 머무르지 않고 잘 연출된 장면이라는 평이 많고, 김정남 추격 씬이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으면 무슨 영화가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지 의문이네요.

강동원 김태리 부분은 지적하는 의견이 상당히 보이긴 하지만, 박평식 말대로 항쟁을 이끈 기폭제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역대급 엔딩이라는 평이 많은데, 이를 위해 강동원 김태리 장치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있나 싶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군상을 하나로 엮어내 엔딩에서 폭발시키는 영화인데, 한국영화 중 이 정도 퀄리티는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님은 이 부분에서 최하점을 주시는데,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거니 그럴 수도 있겠죠. 다만 현재 평론가 평이나 다수 대중들의 의견과는 너무 다르고, 저 역시 저 정도 혹평은 전혀 공감이 안됩니다.
18/01/04 18:49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대중 의견과 평론가 평에 제 생각을 맞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애호가로서 정직하게 느낀 바를 정리한거죠. 동의하는 분도 있을 테고, 아닌 분도 있을 테지요. 남을 강요하려고 쓴 글은 아니고요. 다른 분들은 제가 느낀 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반대 의견 물론 존중하고요.

유골 신에서 음악이 매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몰입을 방해했고, 삽입된 멜로디 라인이 특정 반응을 유도하는 관습처럼 보였습니다. 잘된 연출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존중합니다. 추격 시퀀스는 그렇게 좋은 사례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홍진 감독 영화 속 추적신이 최근 한국 영화에서 모범이라고 생각하고, 인물의 절박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 이한열-연희 관계의 감정 발전이 다소 비약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심한 연출이었다면 감정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오멍퉁이
18/01/04 18:19
수정 아이콘
전혀공감이 안되네요. 인물간 관계도그렇고, 애시당초 극의 시대적 배경을 제외한 해석들로 보입니다. 시대적배경을 분리시키고 플룻별 연출과 관계만을 따져야 이런 해석을 할수있을거같은데 소스묻혀준 스테이크 소스긁어내고 먹거나 김치를 물에빨아먹은뒤에 식사랑 간이안맞네같은느낌
흑설탕
18/01/04 18:45
수정 아이콘
(수정됨)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실재 사건 흐름과 진행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려 했던 감독의 의도는 극적 긴장의 구축을 방해한다.]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작업했음에도 극적긴장을 최대한 살려보려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에서 기승승결 같은 모양새가 느껴졌습니다.
극적인 느낌이 먼가 모으고 또 모으고 모였는데, 터지기 직전까지 모였다가 터지는게 아니라,
아직 터질정도까진 아닌데 라는 상황인데 터져버리는 느낌이었죠.
그래도 내용자체에서 느껴지는 그 시대의 절망스런 상황이 압도적이라 그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
다만 이 영화에서 이한열과 연희는 로맨스의 관계라기 보다는
이한열은 그 시대의 사건중 하나를 관통하는 인물일 뿐이고,
연희는 그 시절의 평범한 사람(노조에도 학생운동에도 모두 부정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보는게 맞겠죠.
영화의 엔딩에서 나온 그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로맨스가 부족했다는 비평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로맨스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영화속 주요인물처럼 숨어서 저항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만 했던 평범한 대중이 왜 거리로 뛰쳐나오게 되었는가를 연희로 표현한것으로 봅니다.
다만 그 부분의 그 동지감, 유대감 등등으로 불리울 수 있는 감정과 이후의 행동들로 이어지는 과정이 좀 매끄럽지 않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18/01/04 19:09
수정 아이콘
두 인물이 각각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일개 소시민이더라도, 감독이 해저물녘의 근사한 시간대에 두 인물을 배치하는 것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연희가 사준 신발에 손을 뻗는 모습을 비추는 데서 그들의 관계를 어느정도 로맨스로 엮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도 댓글 마지막 줄과 같습니다. 감정 묘사가 충실하고 매끄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맨스가 아닌 남녀의 정신적인 우정이더라도 영화 속에서 이 관계는 썩 매끄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윌로우
18/01/04 19:52
수정 아이콘
문장은 매끄럽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읽힙니다. 연희가 달려갈때 그 심정은 첫만남 씬 빼고 다 잘라냈어도 설명가능하다고 봐요.
로고프스키
18/01/04 20: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신기하네요. 똑같은 장면을 봤는데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다르다니. 경찰들한테 억지로 끌려간 박종철 아버지가 마찬가지로 억지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아들 제대로 된 장례도 못 치르고 쓸쓸하게 뼛가루 뿌리다가 그나마도 강이 얼어붙어 뼛가루가 흘러가지 못하고 얼음 위에 고여서 맴도는 장면, 그리고 그걸 보며 오열하면서도 '아비는 할 말이 없데이' 라며 속마음을 시원하게 꺼낼 수도 없던 그 장면.... 단순히 슬프냐 안 슬프냐를 떠나서 연기자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 강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시대성의 표현, 어거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눈물이 맺히게 하는 연계 등등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났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파이란 최민식 오열씬 이후로 최고로 눈물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방향성
18/01/04 20:32
수정 아이콘
배경을 모르는 해석은 무의미하죠.
18/01/04 22:45
수정 아이콘
유골 뿌리는 장면이나 절에서 추적신 등등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출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부분 때문에 영화가 별로라니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아무리 영화나 문화매체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교류할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라고 해도요 그리고 장준환 감독을 '상업 영화의 메뉴얼에 바탕해, 연출 효과를 배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도로 표현하는건 너무한거 같습니다 지구를 지켜라나 털 같은 작품 한번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8/01/04 22: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장준환 감독의 장/단편은 모두 봤어요. 감독의 데뷔작이 좋았다고 해서 다음 영화가 매번 좋은 건 아닙니다. 데뷔작 찍고 바보되는 감독 많아요. 국내/국외 영화사 통틀어서요.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감상은 교양, 영화 또는 미학에 대한 지식,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요.
Multivitamin
18/01/05 00:22
수정 아이콘
실화가 바탕이며, 실화 자체도 영화같은 사건이었으며, 실화를 재해석 한게 아니라 실화를 최대한 살리자고 한 영화였기에 영화 내적으론 아쉬울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현 상황을 빼놓고 볼 수 없는 영화이기에... 글쓴 분이 말한 단점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생이라 1987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2016년을 겪었기에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바로 나오지 못했었네요.
영원한초보
18/01/07 03:05
수정 아이콘
오늘 상당히 감명깊게 보고 다른 사람 감상 비교해보려고 검색해서 읽던 중
영화 문법적으로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상당히 잘 쓰셨고 내용도 틀린 것이 없고
영화 문법적으로 배울 점도 있어서 추천 드렸습니다.
영화를 극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글은 흠 잡을데가 없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문법에 기초에서 영화를 만드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가는 이유는 극의 완성도가 아니거든요.
영화의 의도는 당시 사건 흐름의 완성도 높은 재구성이 아니라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 정서 전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쓴 분에게 그걸 전달하는 것이 실패했기때문에 이런 글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영화 내적으로 여러 플롯이 얽혀있고 이를 긴밀하게 풀어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납득할 수 없다며 감상에 실패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결되지 않는 플롯은 역사가 대신 연결해 주고 있고 불과 30년전의 일이니까요.
논란이 되고 있는 강동원과 김태리의 관계가 로맨스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아는 오빠라는 것이 중요한 거죠.
이걸 극 중심으로 타이트하게 풀어냈다면 시대에 대한 구조적 이해는 높여줬을 지 모르지만
대중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는 많은 손해를 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맨스 이야기가 나와서 사족을 더 붙이자면 감독은 일부러 로맨스를 완성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이한열 열사를 그냥 연애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그리고 싶었을 테니까요.
i_terran
18/02/16 23:36
수정 아이콘
영화평을 매우 늦게봤는데 정말 공감가고 정확한 영화평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1987년도에 중학생이었는데도, 이 영화 1987에 그다지 몰입도 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영화평과 좀 동떨어진 얘기지만, 박종철은 열사가 아니었고 진짜 운동권의 배신에 의한 교통사고와 같은 죽음이었죠. 하지만 이영화는 박종철을 열사로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숨겨둔 이야기로 인해서 감동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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