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12/25 17:00:55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소소한 꿈 (부제: 입대합니다)
BqgpzWW.jpg

나에게는 소소한 꿈이 있다. 바로 10년짜리 여권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데, 몇년 전 발리 여행을 계획했던 때의 벌어진 사건들 때문이다.

어찌보면 참 바보같지만,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 그 때였다. 발리로 향하는 왕복 항공권을 끊고서, 난 휴가의 꿈을 부풀리며 짐을 싸들고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항공사 카운터에서, 난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에서 3주쯤 모자라다는 이유로 발권을 거부당했다. 이 여권 상태로 여행지에 도착하면 여행비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을 직면했는데, 앞으로는 여권이 1년 주기마다 갱신이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당시 싱가폴에서 체류하고 있었는데, 군 미필이라는 신분 때문에 매년 귀국해서 1년 길이의 해외체류 연장을 받고, 그 길이만큼의 여권을 발급받고 다시 출국해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유효기간 6개월 미만의 여권은 실효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결과적으로 난 해외체류를 위해서 6개월마다 한번씩 여권을 바꿔야만 하는 신분이 되었다. 일찍 귀국하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난 그 뒤 약 3년쯤의 체류를 위해 한 5번쯤 여권을 갱신했다.

그 뒤로 난 소소한 꿈이 생겼다.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린 항공권이란 커다란 수업료를 지불하고 가지게 된 작은 꿈이였는데, 바로 언젠가는 유효기간 10년짜리 여권을 만들겠노라는 꿈이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아무나 다 이룰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난 정말 간절히 이걸 내 20대때 마지막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군복무를 마칠 필요가 있었다. 고작 10년짜리 여권 하나가 뭐라고 난 그 목표 하나를 20대 내내 간직하며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복무를 마치고 나오면 난 30살 때부터 비로소 10년짜리 여권을 가지게 된다. 20대의 마지막 목표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20대동안의 고생하며 투자했던 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30대의 기분좋은 출발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돌아보면 20대때 하고싶었던 것도 참 많았다. 여유만 된다면 조금 더 높은 학위도 도전해보고 싶었고, 조금 오랜 기간 떠나는 여행도 가보고 싶었고,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억울하게도 살짝 여유를 가지고 이것저것 할만해지니 군입대라는 현실 앞에 날개가 꺾여 버렸고, 20대의 끝은 이 모든 아쉬움을 삭히며 조금은 씁쓸하게 막을 내릴 것 같다. 계속 안개속만 걷다가 이제 조금 뭐가 할만해지니, 이젠 잠깐 멈추고 그 보상은 2년 뒤로 미루라는 상황이 참 야속하기도 하다. 마치 10년동안 열심히 적금을 부었는데, 출금하려고 하니 2년 후에야 출금이 가능하다고 통보받은 기분이랄까.

어쨌든 그 소소한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이제 코앞이다. 그 누구보다도 멋지게 살아낼 30대를 위해, 20대의 마지막이 조금 씁쓸할지라도 반드시 최선을 다해 그 마지막을 감사로 보내고자 한다. 상황을 탓해봐야 나아지는게 없다면, 이 관문 너머에 있는 소소한 꿈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자 한다. 그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 목표를 간직하고 나아간다면, 분명 그 과정도 그리 헛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마음을 지키는 것, 믿음을 지키는 것 뿐이다.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조금은 막막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이룰수 있는 소소한 꿈 하나 붙들며 가다 보면, 그 과정속에서 노력들이 조금 더 큰 꿈의 결실 또한 허락하지 않을까?

부디, 이 글을 30대가 되어 돌아볼 때, 흐뭇한 미소와 감사한 마음으로 30대를 출발하기를.

-

12월 26일부로 군 입대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다고 생각을 바꾸니 기분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습니다.

다시 글로 인사드릴 때가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디 더욱 성숙하게 돌아와 인사드릴수 있기를 바라며, 당분간은 글을 접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진심으로 다시 찾아뵙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12/25 17:04
수정 아이콘
비슷한 과정을 겪고 내년 2월에 입대를 앞두고 있는 지라 남일 같지가 않네요^^ 부디 건강히 다녀와서 10년 복수 여권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날이 곧 오길 바라겠습니다!!
스타슈터
17/12/25 17:06
수정 아이콘
어이쿠 타코님도 고생하시네요 ㅠㅠ 순조롭게 입대하시고 똑같이 10년 복수여권 받아서 자유롭게 다니시길 바랍니다!
이호철
17/12/25 17:18
수정 아이콘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스타슈터
17/12/25 19:5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7/12/25 17:33
수정 아이콘
건강히 다녀오세요.
스타슈터
17/12/25 19:57
수정 아이콘
건강이 최고죠. 잘 다녀오겠습니다!
17/12/25 17:43
수정 아이콘
저도 일회용 여권 한 3번 만들었다가 2015년에 복무 시작하고서 겨우 5년짜리 복수여권 만들었네요 흐흐..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스타슈터
17/12/25 19:57
수정 아이콘
저도 여권 좀 길게 만들어보자는게 이렇게 큰 꿈이 될줄은 몰랐네요 ㅠㅠ
Janzisuka
17/12/25 17:48
수정 아이콘
건강히 다녀오세요:3
봉사하해주시는 시간만큼 감사하게 보내겠습니다
스타슈터
17/12/25 19:5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7/12/25 18:18
수정 아이콘
충성!!
스타슈터
17/12/25 19:59
수정 아이콘
충성!!
17/12/25 18:29
수정 아이콘
시간 금방갑니다! 몸 건강히 무사히 다녀오시길
스타슈터
17/12/25 20:00
수정 아이콘
지나고 나면 저도 금방 갔다고 생각할것 같습니다.. 흐흐
사악군
17/12/25 18:38
수정 아이콘
해외여행할 때마다 국외여행허가신청+공항에서 국외여행신고해야했던 때를 생각하면..확실히 10년짜리 복수여권 얻을 때 기분이 묘하긴 했지요.
스타슈터
17/12/25 20:00
수정 아이콘
아직 안되어봐서 모르겠지만 받을때 눈물이 핑 돌것 같습니다...ㅠㅠ
Tyler Durden
17/12/25 18:58
수정 아이콘
저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 23일이 전역일이였는데 스타슈터님은 크리스마스 이후에 가시는군요 흐흐
코인에 돈좀 넣고 가세요? 크크크
일단 몸조심이 제일입니다. 잘 다녀오세요~
스타슈터
17/12/25 20:01
수정 아이콘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 기분이 묘하네요. 크리스마스날 삭발해야 하는것도 그렇고...크크
코인에 돈을 넣고 싶지만 넣을 돈이 없습니다? ㅠㅠ
17/12/25 19:01
수정 아이콘
출국 전에 보증인까지 세워두고 꼭 돌아오겠다고 서약서 쓰고 공항에서 신고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10년짜리 복수 여권도 다 됐네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고, 이후에 좋은 결과 쭉 얻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스타슈터
17/12/25 20:02
수정 아이콘
저는 다행히도 해외여행 제도가 바뀌고 나간거라 보증인 세우는 번거로움은 없었네요. 감사합니다!
17/12/25 19:24
수정 아이콘
저도 네다섯장 정도 있는데..정작 병역을 마치고 나니 해외를 못나가고 있네요.
스타슈터
17/12/25 20:04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럴까봐 살짝 걱정이 되긴 하는데, 일단 전역부터 해야겠죠? ㅠㅠ 크크
ublisto님도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기시길 바랍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7/12/25 19:54
수정 아이콘
몸 건강히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울리히케슬러
17/12/25 19:55
수정 아이콘
건강히 잘다녀오세요
아마존장인
17/12/25 23:59
수정 아이콘
건강히 다녀오시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5147 [일반] [리뷰] 신과 함께(2017) - 이러면 안 울 수가 없다 (스포있음) [90] Eternity13581 17/12/26 13581 18
75146 [일반] 탄저백신 논란에 대한 개인적 의견 [83] 여왕의심복14297 17/12/26 14297 87
75145 [일반] 오늘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여러 악재 속에서 과연?) [72] Darwin13263 17/12/26 13263 34
75144 [일반] 저승에서 온 공포의 몽골 대왕...이 아니라 허당(?) 바투 [27] 신불해15832 17/12/26 15832 40
75143 [일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5] 삭제됨5178 17/12/26 5178 6
75141 [일반] 파이어폭스 퀀텀 버전에 대한 불만 [20] 손금불산입10757 17/12/25 10757 1
75140 [일반] 아 기쁩니다! [25] 만우8708 17/12/25 8708 16
75139 [일반] 모두에게 평화가 닿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자유한국당의 망언 비판) [28] FRAN8212 17/12/25 8212 14
75138 [일반] 소소한 꿈 (부제: 입대합니다) [25] 스타슈터5258 17/12/25 5258 11
75137 [일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의학이야기 - 크리스마스 병 [7] 토니토니쵸파7270 17/12/25 7270 15
75136 [일반] [잡설] 과연 답이 있긴 한 걸까? [28] -안군-9027 17/12/25 9027 21
75135 [일반] 정치중독자의 개꿈 [10] 닭장군7814 17/12/25 7814 16
75134 [일반] [스포일러]간단하게 스타워즈 좋았던점 나빴던점 [10] 공격적 수요5593 17/12/25 5593 4
75133 [일반] 2018년 이영도 작가 신작 '오버더초이스' 단신 [12] 여자친구12020 17/12/25 12020 5
75132 [일반] 먹어야 싼다 (언론 비스무리한 이야기) [9] 좋아요8225 17/12/25 8225 21
75131 [일반] 휴..한국에서 살아남기 [43] 난될거다12750 17/12/24 12750 14
75130 [일반] 피로감...(두서없음 죄송...) [28] 박보검❤8889 17/12/24 8889 34
75129 [일반] 내가 올해 만난, 나의 사랑하는 재수생 이야기. 4/4. [8] 작고슬픈나무5970 17/12/24 5970 10
75128 [일반] 스타워즈 단평 (최대한 스포없이 서술) [48] 애패는 엄마7448 17/12/24 7448 11
75126 [일반] 포켓몬스터 극장판 너로 정했다! 감상평(스포주의) [6] 말랑7666 17/12/24 7666 0
75125 [일반]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8 [16] BibGourmand13026 17/12/24 13026 33
75124 [일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방법은 적전분열, 즉 지지층을 균열 내서 지지층끼리 다투게 만들어야 한다" [206] 동굴곰19502 17/12/24 19502 16
75121 [일반] [뉴스 모음] 특집 - 이명박근혜 시절 국정농단 특집 Vol. 2 [26] The xian14361 17/12/23 14361 4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