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사태를 보면서, 고교시절 겪었던 어처구니 없었던 사태가 생각나네요.

벌써 20년도 넘은 옛날일이긴 합니다만,
고3 시절, 내신에 민감하던 기말고사 수학 시험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나름 강남 8학군이었고, 급우들 중에서도 부모님이 꽤 잘나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수학 시험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전체 평균이 40~50점 사이에서 결정 되었고, 80점대를 받으면 '수'를 받을 수 있던 시절입니다.
뭐... 지금과는 용어가 많이 다를테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재니까요.

그러나, 우리 모든 반의 평균이 그 수준인데, 딱 한 반만 반 평균이 60점대가 나왔습니다.
그럴리가 없지요.

답안지를 대조해 보니, 그 반에 항상 이과 남자 1등을 하던 친구가 있었고,
거의 20명이(당시 한 반은 56명 정도) 거의 그 친구와 같은 답안지를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뭐... 학교에서 밝힌 건 그런거고, 친구들 사이에선 뻔히 알았죠.
전교 1등을 하던 친구가 답안지를 돌렸는데,
그 답안지를 받기로 최초에 모의한 친구들은 부장검사 아들, 대기업 임원 아들, 외국계 기업 사장 아들 세 명이 주축이었습니다.

그 중 외국계 기업 사장 아들이 다른 친구에게 답안지를 더 건네 주었고, 그게 더 퍼지면서 반의 1/3이 거의 유사한 답안을 제출한 상황이 된 것이지요.

사건의 진상은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처벌의 방식과 수준이었지요.
원칙대로라면 그 20명을 0점 처리하고, 주모자는 징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모자 중 한 명은 서울대 진학이 거의 확실한 모범생이고, 나머지는 부모님이 한가닥 하면서 학교 육성회인 분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결 되었을까요?

학교는 재시험을 치뤘습니다.
강남 8학군 학교의 자존심으로 언제나 어렵게 내던 수학 시험이었는데,
그 재시험에서는 특정 문제집에서 낸다고 사전 공지하고, 문제집에 있는 문제를 보기 문항 마저 그대로 똑같이 내서
수학 시험을 아주 손쉬운 암기 시험으로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손쉽게 점수를 따서 불만이 없어질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뭐... 다들 대학 잘들 갔습니다.

대학 1학년 때, 그 친구들이 강남역에 있는 나이트를 하루 통채로 빌려서 생일파티 한다는 소리 듣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그 친구들 부류는 아니라 초대 받지는 못했지요.

전교생이 다시 시험을 보는, 왜 시험을 다시 봐야만 하는 지 다 알고있는
그런 상황임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음이..., 그 걸 무기력하게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음이...
새삼 생각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