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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25 22:53:30
Name 호라타래
Subject [일반]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가사 공간 내부의 협상
* 이달 초 올라왔던 '군디츠마라'님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저출산·고령화 해법 될까?'(https://pgr21.co.kr/pb/pb.php?id=freedom&no=66827)라는 글과, 댓글들을 보고 이야기를 가져와 봅니다.
* Yeoh, B. S. a., & Huang, S. (2010). Transnational Domestic Workers and the Negotiation of Mobility and Work Practices in Singapore’s Home‐Spaces. Mobilities, 5(2), 219–236. http://doi.org/10.1080/17450101003665036  라는 논문의 소개입니다.
* 원문은 (http://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7450101003665036)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 해석이 어려운 용어는 영어을 그대로 적습니다.
* 기본적으로는 각각의 장을 읽고서 간단하게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가능하면 원문을 확인주세요! 원문에는 다양한 논의들이 압축적이고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제가 쉽게 설명할 능력이 안 되어서 우겨넣은 것도 많습니다. 요약 / 결론도 일부러 빼놓았어요.
* 번역과 저작권에 관련된 내용을 좀 찾아 보았는데, '자기 언어로 바꾸어 쓰면 어느 정도 괜찮다'는 것 외에는 흐릿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혹시 문제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문화' 관련된 학과에 있다보니 주로 공부하는 영역이 이주인데, 이주 연구의 특성상 여러 국가의 사례를 보게 됩니다. 영어(ㅠㅠㅠㅠㅠ)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꾸역꾸역 다른 나라 이야기들을 보다보면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들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아시아의 용/호랑이로 함께 묶이는 한국과 싱가포르는 국가 규모, 정치체제, 역사적 연원 등등이 매우 달라요. 경제발전에 따른 여성의 사회 참여 증가, 저출산 고령화, 분절화 된 노동시장에서의 인력 부족 등등은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상황이지만, 대응하는 방식 또한 다르지요. 위에 링크한 글/댓글에서도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한국,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아시아 내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이야기는 나왔습니다. 댓글타래의 흐름은 노동 조건 개선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흐름으로 나아갔던 걸로 느껴지는데, 중간중간 다양한 갈래로 이야기 되었던 바를 생각해보면 글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 집, 이동성/불이동성(Migrant Domestic Workers, Home and (im)mobilities)

우리는 가정, 가사 공간을 '사적이고', 닫혀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세계화 시대에서 전지구적인 영향력에서 가정이 벗어나 있지만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가정 내의 조직이나 업무 또한 점점 국제화 되고 있고, 이에 따라 Global Household / Global Householding이라는 용어들이 나타나고 있지요.

[* Global household/holding이라는 것은 한 가구 내의 살림이 특정 국가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지는지, 두 국가 이상의 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바탕으로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하여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그 수입 중 일부를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있지요. Remittances, 꼭 돈만 보내지는 않지만 우리 말로는 송금이라고 번역되는 이 활동은 이미 전세계적인 경제 활동 중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만 잔뜩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부분들도 분명 포함되는 것이에요.]

20여년에 걸친 이러한 변화는 이주자 여성들의 유급가사노동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어요. 가정이라는 공간이 아름답고, 따뜻하고, 성스러운 그런 것들만은 아니며 그 내부에는 갈등, 억압도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억압은 남성/여성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기반한다는(젠더적이라는) 인식은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지만, 더하여 초국적(Transnational)이라는 인식까지도 더해졌지요. 물론 외국인을 가사노동자로 쓰는 것이 현대에 새로 등장한 현상은 아니에요. 다만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누가, 어디서, 얼마나, 어디로 가/오는가라는 지형이 바뀐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지형은 세계화가 만들어냈는데, 이는 전지구적인 도시들(Global cities)간의 위계라 말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같은 도시들은 이 위계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이주민들의 발길도 그 쪽으로 향하지요. 전지구적 도시들은 지리적이고 역사적으로 분리된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됩니다. 허나 그 내부에서 사람들간의 권력은 균등하지 않지요.

앞서서 지구화라는 조건 아래에서 이동성이 증가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방해물이 증가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자본은 사실상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사람은 다르지요. 각 국가는 인간의 이동을 제약하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그 지위는 한시적이고, '외국인'으로서 한정짓고자 하지요.

연구자들은 가사 노동의 가치와 본질을 '여성의 일'로 한정짓는 것을(그리고 그 착취적인 차원에 한정하는 것도) 넘어서고자 합니다. Global household 내에서의 가사 업무를 구성하는 사회적이고 공간적인 행위들, 그리고 같은 성별이지만 인종, 계급, 국적 등의 복합체가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지요.

권력의 공간성(The Spatiality of Power)    

연구자들은 가정 내에서의 장소의 정치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권력의 장 내에서 복종/저항의 전략에 초점을 둡니다. 그러면서 어빙 고프만의 '이면 영역 통제'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끌어옵니다. 개인들은 그들을 둘러싸는 억압적인 요구로부터 자신들을 떨어트리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이는 '노동 통제'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전면이 아닌 이면 영역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규율적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요. 여기서 하나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일터에서 요구받는 행동들은 시/공간적인 요구로 가득차 있다는 점입니다. 아침 9시에는 출근을 해야 하고, 점심은 1시까지 먹어야 하고 등등의 내용들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요소로 우리를 통제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실제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거기에 대해 우리가 내면화 한 가상적인 감시자도 존재하지요. 존중, 예의바름 또한 중요한 부분인데, 고용인-피고용인 관계에서 극단적인 경우 이러한 행동적인 요소들 또한 분 단위로 통제되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연관하여 공간적인 존중(spatial deference)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인 여성은 자신의 이상적인 공간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회적 정체성은 여주인, 아내, 엄마, 그리고 가구 관리자등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가사 노동자가 집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 그의 현존/부재 - 통제하는 것이나, 사회적이고 공간적인 분리를 유지하는 것은 가사 노동자를 공손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요. 동시에 통제를 굴절시키는 방식 또한 공간적인 침입의 형태를 취합니다. 본문의 내용으로 넘어간다면 그 구체적인 사례가 나오는데, 연구자들은 그 전에 싱가포르의 맥락을 소개합니다.

세계화되는 도시 내에서의 초국적 이주 노동자(Transnational Domestic Workers in a Globalising City)

싱가포르는 노동력이 부족한 도시입니다. 도시 국가라는 특성상 인력을 끌어올 배후지대가 없지요. 덕분에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외국인의 경제활동 참여도가 높습니다. 1978년, 재생산 영역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정부에서는 태국, 스리랑카, 필리핀 출신 가사 노동자들의 제한적인 고용을 허용합니다. 2009년 싱가포르의 초국적 가사 노동자 숫자는 18만명에 육박하지요. 대부분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초국적 가사 노동자의 숫자를 통제하여 과잉 의존을 막고, 외국인 가사 노동자의 수가 많아져서 생길 수 있는 경제/사회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합니다. '하녀 부담금(maid levy)'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5000 싱가포르 달러를 매달 제출해야 하고, 1년에 2번 의무적으로 의료 검사를 해야 합니다(여기에는 임신, HIV, 성병 검사 등이 포함되지요) R-Pass 노동자로서 초국적 가사 노동자는 부양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싱가포르 시민과 결혼할 수도,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의 숫자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 가사 노동자 '하녀'로서 배재되는 지위를 만들어내고, 싱가포르 사회로 통합되는 것을 막지요.

[* 임신 검사는 내국인과의 결혼을 막기 위한 한 방편으로 임신이 확인된 여성은 본국으로 송환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싱가포르의 출입국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가사 공간의 공간화된 정치(The Spatialised Politics of Home-Space)

Constable(1997, pp. 11-12)는 고용인-피고용인 관계는 거대한 지배 체제 내에 함축되어 있고, 고용/모집 기관 같은 다양한 훈육 주체나, 정부도 설명에서 빠질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employer-employee relationship is implicated within wider system of domination and that a ‘variety of disciplining agents’ such as employment and recruit- ment agencies, and governments should be taken into account apart from the main female protagonists themselves). 하지만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저자들은 분석적인 렌즈를 고용인-피고용인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에 국한시키고, 이 점을 통해 집안에서의 공간 정치, 그리고 '거주지의 작은 전술들'(Little tactics of the habitat)을 밝히겠다고 적습니다.

기본 원칙 그리고 시-공간 지도화(Ground Rule and Time-Space mapping)

초국적 이주노동자에게 부여되는 가사 노동의 성격은 대단히 흐릿합니다. 1) 정부는 초국적 가사노동자를 노동법 적용 대상에서 거부합니다. 이들은 '진짜' 노동자도 아니며, 이들이 하는 일은 '진짜' 일로도 여겨지지 않지요. 싱가포르 정부에서는 자유방임 기조를 유지하고, 따라서 중개 기관이나 고용주가 선정하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2) 가사 노동은 그 성격상 '집'과 '일터'가 중첩되어 있어 공간 분리가 힘듭니다. 3) 마지막으로 Global household 내에서는, '인종', 문화, 계급, 국적 각각이 노동이나, 노동 관계가 인지되고, 가치 부여되고, 행위되는 데에 배태되어 있는 의무나 기대를 굴절시키는 렌즈로 작용합니다.

고용주들은 그 모호함을 통제하고 다루기 위해, 형태는 다를지라도 일이 돌아가게 하는 규율적인 틀(the disciplinary frame)을 지시합니다. 어떤 일은 언제 해야 하고, 어떤 일은 무엇 다음에 해야 하는 등등의 것이죠.

규율적인 틀은 대개 한 주 주기를 따르는 매일매일의 일정표로 되어 있고, 때로는 시간 단위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은 도착하자마자 공들인 설명을 받고, 이는 규준화 된 기대를 인지시키고,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기도 하지요. 그 주된 의도는 특정한 일이 특정한 장소-시간의 질서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업무는 구체화된 장소-시간 내에서 완료되어야지요. 이는 감독하는 시선 없이도 감시를 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합니다. 모호한 일들은 측정가능하게 조직되고 분할되며, '수행가능한' 작업들은 가정 내 다양한 공간과 장소에 표시되고 다른 시점에 평가 받지요.

동시에 고용인의 기대는 종종 시간표를 넘어섭니다. '열심히 일하는', '순종적인' 등등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지요. 시간표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에요. 한 편으로는 '주도적인 것(initiative)'이 공손이라는 규칙 내에 남아있으면서 작업 효율을 높인다면 좋지만, 반면에 '주도적인 것'이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요.

시간표라는 방식만 홀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처음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이 도착했을 때, 고용인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이들을 직접 감독하고 훈련시킵니다.

휴가를 내거나 가사 노동 전문가(대개 엄마나 시어머니)를 불러 초기에 '하녀를 길들이는' 것은 특정한 노동 스타일을 주입시키고, 시간표에서는 구체화하기 힘든 특정한 기준들을 설정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위생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는 건 복잡한 시간표를 짜서는 달성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만약 초국적 가사 노동자의 주된 업무가 아이 돌봄이라면 이러한 면은 더 중요합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그들이 도덕과 감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일을 협상한다는 것이지요. 시간표를 짠다는 건 부적절한 통제 방법입니다. 믿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언제나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양육 업무는 불가분성을 지니고, 따라서 엄격하게 시간표를 짜는 건 힘듭니다. 그래서 주로 양육을 위해 초국적 가사노동자들을 고용한 사람들은 노동자 '특성'을 관찰하여 평가하는데, 이 평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국민적' 특성이라고 인지되는 것이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경우 가사 일을 하는 데 있어 상당히 자율권이 있기는 하지만, 고용인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쓰여지지 않은 '성격의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접근 금지 장소 그리고 공간적 공손(No-go Sites and Spatial Deference) 

가사 공간은 쓰여지지 않은 기본 규칙들이 두텁게 기입되어 있는데, 이 규칙들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정 내에서, 그리고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공손한 행동을 구성하는 규약에 따라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의 움직임이나 근접성을 통제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논문 내에 인용되어 있는 인터뷰 사례에서는 그 풍부한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상관없지만, 침실 문을 닫으면 그 때부터는 하녀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신호라든지, 하녀용 화장실을 따로 구비해 놓고 거기에서만 쓰게 한다든지, 자신이 특정한 하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의 자리를 알기 때문'이라던지 하는 내용이지요.

가정 내에서 접근 불가능한 장소는 영구적으로 고정되거나, 필수적으로/뚜렷하게 이원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나 상황, 그리고 행위자가 장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공간적인 공손함이란 문자 그대로는 그녀의 자리를 아는 것이고, '언제, 그리고 자신이 언제 필요한지를' 알기 위한 노력입니다. 더하여 가족들이 먼저 가도록 뒤로 물러선다거나 하는 것도 포함되지요. 고용인들은 이러한 공간적인 선호가 여주인과 가사 노동인, 가족 구성원과 외부인 사이의 사회적 경계를 보존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주인, 아내, 어머니라는 고용인의 정체성과 위치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적인 공간'과 순수성은, 심지어 그의 의무가 공유될 때도 유지되지만, 그러면서 지배-피지배 관계는 공간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지요. 

위 사례 중 흥미롭게도 시어머니, 고용인, 하녀 사이에서 서로 간의 관계 때문에 갈등을 빚는 내용이 언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락 말미에서는 이 사례를 들면서 시어머니가 아들/며느리의 집에서 일을 하지만 실질적인 주장은 불가능하기에, 시어머니와 하녀 사이의 관계를 구분하는 공간적인 공손/종속 행위는 더욱 중요해진다고 적고 있습니다.

표면 영역과 이면 영역(Performance Space and Back Region)

'천한' 외국인이 신성한 가정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부득불 특정 공간을 외부인을 수용하기 위해 구획화하고 소외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사생활이나 재산권이라는 개념에 기반하여, 많은 고용인들은 초국적 가사 노동자에게 작은 방을 따로 내어 줍니다. 그러나 따로 '하녀의 방'이 없는 공공 주택 같은 경우에는 작은 침대를 주기도 하며, 때로는 아이의 방을 함께 쓰기도 합니다.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이 분리되어 있을 수 있는 방을 준다는 것은 가사 노동자와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면 영역의 존재는 사적 공간으로서 가정의 신성성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노동 행위를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면 영역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도 명백합니다. 이면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가사 공간의 모든 시간은 표면 영역에 근접할 것입니다. '하녀'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고, 이는 언제든지 고용인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우월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 부여하는 수많은 역할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설령 초국적 이주 노동자가 자신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이면 영역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면 영역은 규율적인 시선(the disciplinary gaze)에서 언제나 차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공간은 언제나 시간적 측면을 지닙니다. 그리고 이면 영역의 기간(the time-span of the back region)은 고용인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의 통제 안에 남아 있거나, 혹은 그에 따라 변화합니다.

고용인들은 초국적 가사노동자의 공손이나 유순함이 단순이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두려워합니다. 때문에 자신들이 집에 없더라도 초국적 가사노동자들의 작업이 '이면 영역의 방식'(예를 들자면 담배를 피거나 맥주를 마신다거나, 자신들의 친구를 초대한다거나 등)으로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이용합니다. '이면 영역의 통제'는 따라서 핸드폰이나, 예상하지 못하는 시각에 돌아온다든가, 휴일에 가족이 하루종일 나가있으면 친구나 중개업체를 불러 지속적으로 감시한다던가 하는 활동을 포함합니다. 심지어 가사 노동자의 진실성이나 '진짜' 성격을 알아내기 위해 잘 설계된 '시험'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수용과 저항(Accommodation and Resistance)

초국적 이주노동자들은 억압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은 아니지만, 또한 가사 노동자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동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용주의 기대에 눈먼 채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지요. 전세계적으로 경멸받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일하고자 집을 나선 것에는 각자 소중하게 여기는 목표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고용인의 요구를 수용하고, 자기 자신을 순종적이고 공손한 신체로 지금, 여기에서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지요. 불평등한 조항을 바꾸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 공통적으로 나온 응답은 '자신은 일을 하러 왔고, 견딜 수 있으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사 노동자들이 기꺼이 자신들의 '억압'에 참여하지만, 그들은 또한 권력의 틈새를 찾아내고, 다른 이들의 전략에 반응하면서, 그들 자신만의 대항 전략을 발전시킵니다. 이 대항 전략은 권력의 체계를 경시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약간씩 긁어내기는 합니다.(Which may not undermine the edifice of power but at least chisel away at the margins.) (Constable, 1997, p. 14))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거주지의 전술'(Tactics of habitat)은 사회적으로 보다 강력한 다른 이의 전략과 언제나 평행하거나,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실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됩니다. 언어적으로 표현되든(ex: 그는 뒤늦게 대답했어요) 혹은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던지(ex: 그는 솥과 냄비를 싱크대에 집어던졌어요) 하는 식으로요.

종종, 초국적 가사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행위를 거부하면서 자신에게 부과하려고 하는 역할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신발을 닦으라는 남자 고용인의 말에, '나는 신발 닦이 소년이 아닙니다'라고 거부한 사례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공손하고 열등한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중개업체로 돌아가야 하기도 합니다. 허나 이것은 또한 (자신들이 아니라)고용인에게 '계약을 파기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중개기관이 부여하는 벌금을 없애는 미묘한 정치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굴종적인 가사 노동자의 역할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한 방법은 자신들을 공간적으로 명백히 분리하거나, 이면 영역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초국적인 가사노동자 간 사회적 상호작용의 수준을 제한하려는 고용인의 시도에 맞서, 대다수의 이주자 여성들은 비공식적인 사회 연결망을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원천으로 발전시킵니다. 놀이터나 시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만나서 안면을 튼 사이일지라도, 계속해서 편지나, 메세지, 뒷마당에서 뒷마당으로 전해지는 음식물 등을 통해 연락을 유지합니다. 광범위한 공간적인 친구, '사촌' 그리고 다른 관계들을 전화를 통해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은 집안에 묶여있는 자신들의 공간적인 제약을 거부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핸드폰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도구이며, 핸드폰 사용을 둘러싸고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초국적 가사노동자에게 주어진 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한 경우 도망치는 것도 자포자기식의 한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논문에 인용된 Celia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견딜 수가 없어서 경찰을 부르고, 고용인과의 관계를 영구히 단절했습니다. 극한까지 몰린 이들이 공손한 역할을 거부하고, 공간적인 격자판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택하는
 방식은 때떄로 비극적입니다. 자살을 택하는 이들도 있지요.

도망치는 초국적 가사 노동자의 수는 적으며 - 1996년 통계에 따르자면 월 평균 50명 -, 싱가포르 노동부는 이를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지표로 읽습니다. 허나, 달리 말하자면 초국적 가사 노동자들이 집안에 격리되어 있는 것에 저항하기 힘들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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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던 논문이에요. 같은 젠더임에도 불구하고 인종, 계급 등에서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관계라는 초점도 그렇고, 고프먼의 표현/이면 영역을 이용한 설명도 그렇고요. 물론 권력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가정 내의 고용인-피고용인으로 한정하였기에, 제도적인 차원과의 연계보다는 미시적인 분석에 국한되어 있지만요.
 
과연 첫 소개로 좋은 논문이었나 싶은 고민은 있어요. 제 공부가 아직 부족해서 많이 미흡합니다. 앞으로 기회되면 관련 영역의 이야기들을 좀 더 소개하고 싶어요. 댓글로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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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멘붕이오
16/08/26 00:07
수정 아이콘
링크들이 전부 안열려요ㅠㅠ
호라타래
16/08/26 00:20
수정 아이콘
수정했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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