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곡성을 보고 왔습니다. 스포를 전제로 이미 관람하신 분들과 이야길 나누고 싶어 게시물을 작성 중이었는데, 아래 유스티스님께서 노스포 게시물을 올려주셨네요. 여기선 스포일러에 피해볼 분들 걱정 없이, 영화를 보고 온 이들끼리 맘 편히 영화 이야길 나눌 수 있으면 합니다.


아마 보고 오신 분들이라면 모두 동의하시겠지만, 에너지가 엄청난 영화입니다. 무섭다기보단 기괴하고, 리얼하면서도 오컬트적입니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이제는 사어가 되어버린 '엽기'라는 단어가 [곡성]을 수식하기에 적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연기와 연출에선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나마 의아한 것이라면 극이 클라이막스에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음에도 뜬금없는 개그를 시도한다는 것 정도겠네요. '앰창' 이라던가, 후반부 좀비씬(!)의 연출은 자못 코믹스럽죠. 실제 그렇게 잔인한 장면임에도 극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이게 뭐냐면서요. 나홍진 감독은 [곡성]의 장르를 코미디라고 주장했답니다. 실제 초, 중반부의 개그씬은 극의 무게추를 덜어주는 것 같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죠. 그러나 후반부의 개그 욕심은 굳이 필요했나 싶어요. 좀 벙찌더군요.

그보다 정말 의문이 드는 부분은 시나리오겠죠. 그에 관한 이야길 나눠봅시다.

기억을 더듬어 극의 순서대로 의문이 드는 부분을 짚어볼까요?

1-1. 곽도원은 동료 경찰과 경찰서에서 일본인에 대한 소문을 나누고 있습니다. 정전이 일어나고 비 오는 창밖에서 나체의 기괴한 여자를 봅니다. 동시에 꿈에서 깨죠.

1-2. 처음 곽도원이 천우희를 만나는 씬입니다. 1 에서 보았던 여자가 목을 맸던 자리에서 천우희가 돌을 던지죠. 천우희와 대화를 나누고 화재 현장으로 함께 들어갑니다. 뒷마당에서 동물 사체를 뜯어 먹는 일본인을 보며 기겁을 하고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죠.

이 두 일은 곽도원 캐릭터가 실제 겪은 일입니다. 동료 경찰과 1 번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길 나누며 그 여자가 자살한 여자였다고 확인하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확실합니다. 천우희 또한 동료 경찰이 함께 보았죠. 그러나 동시에, 두 사건은 꿈입니다. 단순히 전날 겪었던 일을 악몽으로 되새김질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2-1. 처음 일본인을 찾아갔을 때, 동료 경찰은 방 안에서 희생자들의 사진과 물품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황정민과 굿을 벌이기 전, 둘이 찾아갔을 때 이 물품들은 모두 사라져있죠. 이 사진과 물품들은 후에 황정민의 차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이 한패라는 결정적 증거가 되겠죠.

2-2. 황정민은 살을 날린다며 굿판을 벌입니다. 여기서 경고가 있죠. 부정 타면 역으로 살을 맞을 수 있다고. 어쨌든 굿을 벌이고 대못을 찍을 때마다 곽도원의 딸과 일본인은 함께 괴로워합니다. 굿이 실제로 '악령'을 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러나 보다 못한 곽도원이 판을 깨고, 결과적으로 역으로 살을 맞는 꼴이 됩니다.

2-3. 그런데, 곽도원의 일가를 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황정민이 거기 가서 굿을 벌일 필요가 어디 있나요? 어차피 내버려 두면 죽는 거잖아요? 게다가 황정민의 굿은 아무리 봐도 악령을 향한 것이 맞아 보입니다. 역으로 살을 맞아 황정민마저 악령에 쓰였다고 하기엔, 2번의 물품들이 걸려서 말이 안 되죠.

2-4. 황정민의 집에 두 여자가 찾아오고, 황정민은 점을 다시 치며 오묘한 웃음을 짓고 '미끼를 삼켜 버렸구나' 같은 말을 남깁니다. 그리고 곽도원의 집을 다시 향하다, 천우희에게 가로막혀 도망치죠. 그렇게 서울을 향하다 다시 곽도원의 집으로 돌아서며 천우희가 진짜 귀신이고 일본인은 무당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두 여자는 누구며 미끼를 삼켜 버렸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처음 곽도원의 집에 갔던 이유는 무얼까요? 단순히 [사진을 찍으러] 갔다기엔 그는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곽도원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대며 만나자고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그때까지 황정민은 천우희의 존재를 몰랐었으니 일이 어그러질 것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3. 중간에 우물에 빠져 죽은 이들이 나옵니다. 굿을 벌인 것 같은 흔적이 있죠. 이들은 누구일까요? 술집 마담 누님의 목에 있던 뻘건 피부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녀도 감염(?) 또는 저주를 받은 것일지, 아니면 단순한 맥거핀일지...

4-1. 황정민의 굿판, 또는 천우희에게 일본인이 타격을 입은 후, 날이 밝자 일본인은 허겁지겁 트럭 안의 좀비 아저씨(...)를 찾아갑니다. 좀비 아저씨가 사라진 모습을 보곤 당황하는 기색이죠. 왜일까요?

4-2. 황정민 일행이 좀비에게 당하고 있을 때, 역시나 일본인은 당황한 기색입니다. 괴로워하며 도망가죠. 그러나 막판에 그는 죽여도 죽지 않는 절대악으로 밝혀집니다. 그가 인간 나부랭이를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가 무얼까요? 이전 두 번의 방문에선 개를 찍어 죽여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는데요. 천우희가 있어서? 그러나 천우희는 후에 절벽 밑에서나 조우하게 되고, 일본인은 도리어 천우희의 뒤를 쫒아갑니다. 왜?

5-1. 천우희는 악령(?)이 곽도원의 딸 효진을 노리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을 말합니다. 내 딸이 아파서 그랬다는 곽도원의 말에서 미루어 볼 때, 이 살인은 일본인을 죽이고 유기했음을 말하죠. 그러나 일본인은 사람이 아니며 곽도원이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시체를 유기한 건 이미 효진이 악령에 들린 후의 이야깁니다. 이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곽도원은 처음 일본인의 집에 찾아갔을 때 효진의 실내화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효진이 타켓이었다는 것이죠.

5-2. 천우희는 귀신을 낚으려 금줄을 쳐놨다고 말합니다. 귀신은 효진이겠죠. 그러나 정작 금줄은 효진이 아닌 곽도원이 집에 들어갈 때 타들어갑니다. 게다가, 곽도원이 천우희와 이야길 나누고 있을 때 이미 효진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찌른 것으로 보입니다.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참았다고 해도 이미 가족들은 몰살당한 후 아닐까요


대충 떠오르는 시나리오의 의문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영화가 너무 진을 빼놓는지라 제가 정확히 내용을 되살린 것인지 모르겠네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 달갑게 받겠습니다. 함께 이야길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