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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05 00:04:04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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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스포) 배트맨 V 슈퍼맨 보고 왔습니다.


- 어떤 영화에 대한 평이 급물살처럼 바뀌는 경우가 있다. 호든 불호든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쏠렸다가 나중에 그 반대여론으로 급선회를 하며 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움직임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세상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리는 영화들이 널리고 널렸다. <007 스펙터>를 보자. 007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와, 팬심을 바탕으로 한 관용에 따라 영화에 박힌 별의 갯수가 널뛰기를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참 애매하다. (내 경우 007 시리즈를 다 본 다음에도 <스펙터>를 좋아할 것 같진 않다) <스펙터>는 감독의 능력 부족이나, 돈욕심만 부리는 블록버스터를 노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영화가 100에 90을 만족시키는 보편적 공산품만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60, 50으로 그 기준을 낮추며 나머지 40과 50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스펙터>는 감독과 제작사가 자신들의 야심을 투영한 계획적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에 방탄조끼를 입히는 사람들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세상에는 <대부>같은 작품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블로펠드를 경호하는 팬들이라고 그렇게 유별날 것 까지야.

- 이렇게 각 평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먼저 나온 의견이 과대평가 아니면 과소평가로 치부되는 현상이 문제다.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가 9점짜리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최소한 7점 아래로 별점을 깎일 영화도 아니다. 한국에서 이상할 정도로 열풍을 타더니 1000만까지 찍어버린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를 두고 갑자기 반발 여론이 터져나왔다. 가장 흔하게 발견하는 게 쿠아론의 <그래비티>와 비교하면서 <인터스텔라>를 우주 신파로 취급하는 여론이다. 이런 비교가 온당한지는 차치하자. 그 다음부터는 <인터스텔라>가 부성애 신파몰이로 흥행한 졸작이라는 의견이 주류가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다음에는 양 측의 여론이 서로의 점수를 가지고 협상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이 영화 짱이다! 로 시작해 이게 뭐가 짱이야 쓰레기지! 라고 하더니 짱은 아니지만 쓰레기까지는 아닌 걸로....라며 자신의 감상이 아닌, 다수 여론에 맞춰 그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시간 순서를 따라 제일 마지막의 의견이 정답이 되고, 그 전의 감상들은 과도기에 끼인 팬심 아니면 안티로 취급받는 게 과연 올바른 현상일까.

- <배트맨 V 슈퍼맨>의 평가에서도 그런 여론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많이 까였는데, 그렇게까지 까일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중론처럼 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도 과연 선후관계를 따지고, 여론의 추이를 고려하며, 중도를 지향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예스24에서 동생의 아이디까지 동원하며 할인쿠폰 2장을 다운받았지만 시사회 이후 이 영화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재미도 없고, 만듦새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의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장점을 찾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한번 보고 재미있는 영화를 다시 챙겨보기도 벅차다) 그리고 이 영화를 까는 사람들은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무슨 아트영화에 미쳐있거나 히어로물을 경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영화 자체가 짜증날 정도로 재미가 없던 것 뿐이다. 거기에 대고 무슨 기대치가 높았느니, 사람들이 까니까 깐다니, 히어로물에 높은 기준치를 적용하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건 별로 달갑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전작 <맨 오브 스틸>은 극장에서 두번이나 봤으며, 히어로물을 사랑하고,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시사회로 미리 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마찬가지로 영화 자체를 느꼈던 게 다다. 여론의 꼭두각시나 선입견의 노예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재미가 없어서 짜증이 났을 뿐이다.

- 서론이 무지하게 길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이 영화를 이야기해야겠다. 단점들을 열거할테니 미리 장점을 좀 이야기하자면, <배트맨 V 슈퍼맨>이 슈퍼맨이라는 존재에 접근하는 시각은 꽤 흥미롭다. 본디 슈퍼맨은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로서, 초월적인 권능을 뽐내며 사상 최대의 차력쇼를 하는 게 이 캐릭터의 본질이다. <맨 오브 스틸>은 그런 점에서 어정쩡한 반인반신의 딜레마를 잘 건드렸던 작품이었다. 낯뜨거울 정도로 예수를 형상화하는 게 좀 걸리지만 이 캐릭터가 가진 근본적 고민을 종교적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맨 오브 스틸>은 리부트로서 합격점을 받을 만 했다. <배트맨 V 슈퍼맨>은 클락 켄트가 슈퍼맨이 되기 전, 되고 난 이후의 문제를 사회로 확장시켰다. 심지어 인간도 아닌 존재의 선의만을 무조건 믿고 있을 것인가. <아이언맨 2>의 주제와 살짝 겹치기도 하지만, 존재의 출발점과 각 히어로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확신에서 힘과 신뢰라는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꽤 다르다. <배트맨 V 슈퍼맨>의 슈퍼맨은 더 진지하고, 종교적이다. 인간은 현현한 신적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슈퍼맨이 선한 것과, 슈퍼맨이 가진 힘은 별 상관이 없다. 이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도입해 볼 수 있는 고민거리다. 핵이나 원자력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 영화가 던지는 질문 자체는 좋았지만 그 질문지를 제출하는 사람들은 썩 와닿지가 않는다. 슈퍼맨의 존재를 의심하는 두 명의 캐릭터는 브루스 웨인과 렉스 루터다. 이 둘은 각기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슈퍼맨이란 존재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목적은 같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신과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이 둘이 왜 슈퍼맨에게 그렇게까지 집착하는지는 모호하다. 물론 영화에서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는 한다. 브루스 웨인은 건물이 무너지고 회사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렉스 루터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맞고 자랐으며 그 때 가진 신에 대한 저주를 슈퍼맨에게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힘이 없는 인간으로서 신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과 이들의 대사들로 그 감정이 납득되지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아무리 떠들어댄들 그것이 한 인간의 선택을 이해하게끔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슈퍼맨을 미워하는 이들의 감정에서 "왜"가 보다 뚜렷해져야 이들이 그렇게 자기 여생을 걸고 난리를 피우는지가 이해가 갈텐데, 영화는 "이러니까 그러겠지" 라며 정황 증거만을 보여준다. 갈등은 시간에 따라 천천히 축적되어야 하는데도, 영화는 이 둘의 갈등을 한 장면, 대사 몇마디로 폭발시켜버리는 것이다.

- 브루스 웨인의 경우, 플래쉬백에 분량이 제법 많이 활용되었다. 무슨 과거를 겪었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를 낱낱이 드러내려고 영화가 애를 쓴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는 사실들을 연계하는 영화의 시작부터가 우악스럽다. 브루스 웨인이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것과, 나이를 먹은 후 외계인들의 싸움에 휘말려 직장의 동료를 잃은 감정을 동치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다른 배트맨 영화는 "아버지"를 잃은 것에 중점을 둔다. 선의와 재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깨닫게 하는 브루스 웨인의 트리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자관계의 상실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는 중후반의 서사 진행을 위한 작위적 설정으로만 보인다) 마사 웨인은 누군가의 명백한 악의와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 아래의 희생자다. 웨인 파이낸스 빌딩이 무너지면서 죽은 잭, 다리를 잃은 월리스, 엄마를 잃은 꼬마 아이는 천재지변의 희생자다. 전자에서 희생을 일으킨 현실은 법이라는 윤리적 체계의 문제고 후자의 경우 순전히 물리적인 부작용의 위험이다. (전자의 경우만 놓고 봐도 브루스 웨인은 정신적으로 엄청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정의를 갈망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변명과 복수심의 합리화를 꾀하는 측면이 훨씬 더 커보인다) 그런데 이 두 경우를 모두 "피해자"라는 입장 하나에 대입시켜 영화는 슈퍼맨에 대한 적의로 끌고 간다. 배트맨이 분노하는 건 사법 시스템의 실패고, 이를 메꾸려고 본인이 자경단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배트맨은 질이 다른 부조리에 같은 분노를 하고 있다. 이미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다른 쪽으로 돌려서 자경단원을 하고 있다는 게 배트맨의 정체성인데도 말이다. 슈퍼맨이 있는 세계에 배트맨도 있었다면, 아마 배트맨은 분명히 화를 냈을 거야 - 라는 가정법 자체를 절대 전제로 출발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그렇게 설득되지가 않는다는 말이다.

- 슈퍼맨의 재해를 겪은 후라면 브루스 웨인이 뭐라도 할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볼 때 슈퍼맨급의 이벤트에 브루스 웨인이 먼저 가졌을 법한 감정은 공포가 먼저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적인 힘, 재력, 정보력, 육체적 능력으로 도시의 미치광이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범죄 집단의 위에 있고, 이들을 쫓는 사냥꾼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지구 전체를 깨부수는 슈퍼맨에게도 이런 감정적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게으른 설명이다. "악"이 있으니까 무조건 그것을 미워한다는 설명이 과연 배트맨이란 히어로를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극중 배트맨이 꾸는 꿈(이라고 편집상으로 보일 뿐 평행세계의 다크사이드 이벤트에 관한 전조)에서 이런 공포가 드러나긴 하나 배트맨은 너무나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다. 공포를 무기로, 내면의 불안과 맞서 싸우는 히어로가, 외부의 절대적인 존재를 맞서 싸우는데도 용감무쌍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법이 안되니까 법 바깥에서 별의별 꼼수로 자신만의 정의를 집행하는 (배트맨은 딱히 자신의 행동이 정의라고 믿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도 저도 안되는 상대방을 만났는데 이리도 싸나이다울 수 있다는 (싸나이다워보일려고 하는) 사실이 이상한 것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장면을 보자. 여러가지 작전을 쓰지만 배트맨은 "정면승부"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먹질하고 발길질 하면서, 육체적 격투로 외계인을 제압하려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배트맨이 "승부"를 펼쳐왔던가? 그런 건 그냥 제압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왜 렉스 루터에게서 정보를 빼내올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 이런 식의 막가파 작전을 쓰는가. 이렇게 영화는 "폼생폼사"로 나가면서 기껏 쌓아놓은 캐릭터의 정체성과 영화의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 깔아뭉개버리는 것이다.

- 배트맨과 슈퍼맨이 맞붙는데 그런 싸움 정도는 좀 해줘야 볼 맛이 나지 않겠냐 - 라는 변명을 참작하고 넘어가자. 모든 개연성을 다 따지면 히어로 장르가 안될 테니까. 그러나 배트맨은 여전히 너그럽게 봐줄 수가 없다. 이 히어로가 슈퍼맨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힘"의 크기가 무지막지하고, 그것 때문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외계인이 아무리 착하다 한들, 하루에 정말 성실하게 날아다니면서 500명씩 구한다한들, 60억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벤트가 생기면 이거 막을려고 힘쓰다가 한 100만명은 가볍게 죽을 정도로 부작용이 크다는 논리다. 궁극적인 선의와, 그 성공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수적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이 마침내 적의를 품게 된다면? 여기서 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니까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그런데, 배트맨이 과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입장인가?

-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펼치는 행태는 사이즈만 다를 뿐 슈퍼맨과 그 행태는 똑같다. 법이 있다. 경찰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해낸다. 그런데 다른 누가 배트맨을 막을 수 있는가? 만약 배트맨이 타락해서 그 신출귀몰한 능력을 범죄에 이용한다면? 애초에 선악의 경계가 흐릿하지만 힘만이 우선하는 존재가 바로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다. 두 히어로가 각자의 사회에서 처한 처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밤의 이미지를 업고 공포라는 감정을 무기로 쓰는 배트맨이야말로 사람들이 악으로 오해하기 쉬운 처지에 놓여있다. 그리고 실제로 쫓긴다. 이 근본적인 딜레마를 지고 다니는 히어로가 오로지 "힘" 하나로 다른 기준을 배제하고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은 독재적으로만 보인다. 쉽게 말해 내로남불의 오류다. 통제불능의 존재가, 다른 통제불능의 존재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 자신은 스스로의 증인이 되어줄 수 있으니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묘사하는 배트맨을 보면 그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휘발되어버린다. 배트맨은 자신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데 있어 망설이지 않는다. 악당이 총을 쏘면 그 총을 뺏어서 쏴죽이는 장면이 몇번이나 나온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효율의 논리인데,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악당의 행태가 아닌가. 이는 영화 속 슈퍼맨의 행위와 더욱 대비된다. 슈퍼맨이 이 영화 속에서 하는 거라고는 인명구조가 전부다. 그런데 이 신적인 존재를 죽이기 위해 배트맨은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죽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악이 있고, 그 악에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슈퍼맨뿐이라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마땅히 참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배트맨은 부정할 수 없다. 슈퍼맨이라는 악 =  위험을 처단하기 위해 배트맨이 다른 건물을 부수고, 악당들을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적을 처리하는 데 있어 반죽음, 혹은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저승사자가 다른 이를 심판할 자격이 있을까. 크립토나이트를 얻을려고 민간인 사상자와 별 기물파손을 다 일으키는 배트맨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클락 켄트의 입장에 더 감화된다. 이런 식의 정의를 추구하는 당신을 과연 내가 내버려둬야 하냐고. 배트맨의 절박함은 배트맨만 안다. 화면 바깥의 사람들은 플래쉬백이 아무리 쏟아져도 이를 믿지 못한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대량살상을 막기 위해, 소량살상을 끊임없이 저지르는 가면 쓴 독재자를 목격하기 때문이다.

- 이 영화의 로이스 레인은 엄청나게 기능적으로 쓰이고 있다. 인질로서의 역할은 그렇다해도, 이 캐릭터의 해설자 노릇은 너무 친절해서 거치적거린다. 이 캐릭터가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오로지 "관객"을 위한 방백이다. 클락 켄트도, 브루스 웨인도, 장군이나 편집장을 비롯한 다른 누구도 렉스 루터의 음모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진상은 감춰지든 들춰지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자기 혼자 눈치채고, 자기 혼자 따지지만 사건의 당사자들은 그냥 알아서 오해를 푼다. (나는 오히려 괜히 자기 제품을 써서 흑막을 들키는 렉스 루터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이것까지 일부러 보여주려 한 거라면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소모적인 일이다)

- 이 영화의 슈퍼맨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고뇌와 질문은 배트맨과 렉스 루터가 다 하고 있다. 슈퍼맨은 로이스와 애정씬을 연출하거나 차력을 하면 된다. <300>에서 레오니다스 왕의 포지션을 그대로 따온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예수에 대한 은유도 거의 없다.

- 렉스 루터는 같은 질문을 다르게 하는 캐릭터다. 신을 쓰러트려야 한다 - 라는 렉스 루터의 지상과제는 배트맨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 동기는 배트맨보다 훨씬 작고, 훨씬 거대하다. 먼저 렉스 루터는 순전히 개인적인 원망에서 슈퍼맨을 쫓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처맞았고, 그 때 그렇게 신한테 빌었지만 신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 유년 시절 가난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이가, 다 자란 후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직원을 노려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선물 못 받았는데, 이제 나는 남들에게 선물 사줄 수 있는데, 그때 나는 왜 못받았던 거야? 갑자기 등장한 슈퍼맨 때문에 신에 대한 과거의 원망이 새삼 튀어나온 것이다. 두번째로, 렉스 루터는 슈퍼맨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고 돈을 많이 번들, 슈퍼맨처럼 힘세고 튼튼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슈퍼맨에 대한 질투를 폭발시키며 사건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렉스 루터의 욕망은 쪼잔하고 그래서 인간적이다. 동시에, 뒤의 질문을 "인간 대표"로 치환하면 배트맨의 질문보다 훨씬 더 거대해진다. 배트맨에게 슈퍼맨을 제압하는 것은 과정이다. 배트맨에게 있어 최후의 목표는 사회의 안전과 인류의 존속이다. 이것은 누구나 바라고 상정하는 자연의 지속상태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이해했다면, 배트맨은 슈퍼맨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렉스 루터의 목적은 배트맨처럼 그 다음이 없다.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쓰러트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렉스 루터는 신화 시대에나 가능하고, 거의 언제나 인간이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도모한다. 사회의 개념을 뛰어넘어, 순수하게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물론 이를 미시냐 거시냐로 따지는 것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  이 캐릭터의 묘사는 명백한 실패작이다. 렉스 루터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점은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너무 닮았다" 는 점이다. 렉스 루터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건 이에 대한 변호는 불가능하다. 렉스 루터가 하는 짓을 보자. 파티장에서 떠벌대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폭발 테러를 일으킨다, 히어로의 소중한 사람을 납치한 뒤 선택을 강요한다, 히어로의 애인을 고층 빌딩에서 떨어트린다, 적을 선언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정의를 공유하던 두 히어로를 서로 싸우게 만든다, 팬과 안티의 속성 둘 모두를 가지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데 중점을 둔다. 아예 대놓고 영화 속의 렉스 루터가 "고담 시의 광대 하나를 좀 흉내내 봤지~" 라는 대사가 있었으면 더 낳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옥상에서 절망에 무릎꿇은 슈퍼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건 카메라 영상 속에서 브라이언이라는 인질의 얼굴을 쉬쉬쉬 하며 쓰다듬거나, 파티에서 레이첼의 얼굴을 만져대는 조커의 제스쳐와 판박이 수준이다. 이런 데도 이 캐릭터를 온전히 독립적인 캐릭터로 봐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 렉스 루터를 이루는 감정들은 하나같이 고조되어 있다. 나는 이 정도로 미쳤답니다!! 라면서 광기를 밖으로 드러내려고 애를 쓰거나, 울분과 교활함 같은 극단의 감정적 제스쳐들만을 계속 보인다. 렉스 루터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히스테리 증상을 기워만든 꼴라쥬에 가깝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도 시종일관 힘이 들어가있어서 안쓰러울 정도다. 이 배우의 모든 연기를 본 상태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제시 아이젠버그가 이렇게 하이텐션 일관도로 가는 건 처음 본다. 이 배우의 시그니쳐 캐릭터는 특유의 말빨로 시퀀스를 장악해버리기 때문에 누군가 이걸 어떻게 조절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중화시켜 줄 다른 캐릭터를 옆에 붙여놓거나 (소셜 네트워크) 속도로는 이길 수 없는 능구렁이를 옆에 붙여놓거나 (나우 유 씨 미) 아니면 캐릭터 자체의 힘을 떨어트려서 수다 자체가 약빨이 안듣게끔 (좀비랜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영화 자체의 균형이 순식간에 이 대사 머신건에게 쏠려버린다. (그나마 말을 적게 한 <더블: 달콤한 악몽> 에서도 1인 2역으로 어지간한 대사량은 소화했으니) <배트맨 V 슈퍼맨>은 제시에게 계속해서 원맨쇼의 멍석을 깔아주는데, 안 그래도 강한 카리스마의 캐릭터에, 강한 연기만을 주문하고 있으니 캐릭터가 광기로 자신을 포장하며 뻣뻣해지기까지 한다. 제시가 연기하던 캐릭터들은 속사포 대사와 히스테리컬한 표피 뒤의 "인간성"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데 스나이더는 이 배우에게 그 히스테리 자체를 한 캐릭터의 근본으로 삼고 연기를 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제시의 렉스 루터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캐릭터의 설정도, 연기도 다 익숙한 것들로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 캐릭터로 들어가보자. 배트맨의 질문보다는 렉스 루터의 질문이 더 멋지고, 당연해 보인다. 어쩌면, 밀튼의 사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을 소환하고,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앞서 말한 스나이더식 대놓고 폼재기로 그 무게를 다 깎아먹더니 심지어는 질문 자체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기구한 유년시절을 떠들고 신과 인간, 선과 힘 같은 추상적 명사들을 마구 섞으며 거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결론은 너네 엄마를 납치했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라며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최종병기 둠스데이를 만들고 있다. 렉스 루터의 질문이 질문 자체로만 남았다면 생각할 여지가 많았겠으나, 협박 다음 배트맨과 싸우라는 주문과 합치는 순간 괴상해진다. 질문을 하는 태도와, 질문의 내용, 질문을 기다리면서 하는 행동들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사실 이런 웅대한 의문을 품고 있어!! 라면서도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악당이지....라며 캐릭터의 무게가 널뛰기를 하는데, 여기서 렉스 루터의 욕망이 애매해진다. 이 캐릭터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것인가?

- 슈퍼맨은 힘을 가진 존재이고, 렉스 루터는 힘이 없다. 그래서 렉스 루터는 슈퍼맨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이미 도서관 씬에서 인간과 힘이 어쩌고 저쩌고 떠들면서 영화는 캐릭터의 근원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캐릭터는 열등감을 떨치려 할 것이다. 열등감을 떨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상대방과 동등한 수준으로 자신을 끌어올리거나, 특정 조건에서 상대방을 능가하거나,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지워서 열등감의 원천을 없애버리거나.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갈등을 명확하게 해준다. 그런데 렉스 루터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이 뒤죽박죽이다. 너는 힘이 세지만 나는 (인간의) 지혜가 있고, 네 힘은 내 지혜에 안돼, 라는 거라면 렉스 루터가 크립토 나이트를 발견해 뭘 해볼려고 했던 건 그의 사상과 부합하는 수단이다. 슈퍼맨의 엄마를 납치한 것도 좀스럽긴 하지만 교활한 지혜로 힘을 누르려는 방법론에 들어맞는다. 여기서 이 캐릭터의 근원이 다시 궁금해진다. 인간의 지혜를 그렇게 자신하는 캐릭터가, 이제 와서 왜 슈퍼맨에게 열등감을 품는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에게 열등감을 품는다는 캐릭터의 설정이 뒤엉켜버리는 것이다. 설령 납치극으로 슈퍼맨을 어찌한다 한들, 자신이 힘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그 열등감은 풀리지 않을텐데도 말이다.

-  다소 상상력을 발휘해,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부와 지혜로 그걸 어찌저찌 억눌러왔다가 슈퍼맨의 출현에 자극받아서 이 피곤하고 무익한 일을 계획했다고 하자. 그래서 렉스 루터는 그 힘을 짓누르고 자신의 지혜, 인간의 지혜를 증명하려는 욕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여기서 둠스데이를 만드는 렉스 루터의 욕망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 인간의 지혜로 신의 힘과 싸울려고 하면서, 정작 그 승부수로는 슈퍼맨의 동족인 조드 장군의 시체를 빌리고, 크립톤의 과학 지식을 빌려서, 슈퍼맨을 이길려고 하는가. 이미 그 전까지 인간의 지혜로, 인간 세계의 법칙을 슈퍼맨에게 들이밀면서, 여론전을 벌리고, 자식으로서의 정을 이용해서, 슈퍼맨을 인간세계에서 퇴출시키려고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의회 폭발씬에서 렉스 루터 안의 테러범과 선동꾼 기질이 조화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여론전을 할려면 여론전만 할 것이지, 이미 여론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흘러가는데 굳이 폭발을 일으켜 초를 치는가? 정치꾼의 재질은 없는 모양이다) 렉스 루터에게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 기질에다가 매드 사이언티스트 속성까지 섞여있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한 쪽에서는 인간의 지혜로 신을 이길려고 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신의 힘으로 신을 이길려고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건 캐릭터의 입체성 같은 게 아니라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 설정 저 설정을 한 캐릭터 안에 마구 섞은 결과다. 어떤 주제의식을 슬쩍 얹어놓기만 했지, 자기 질문을 자기가 번복하는 잡탕찌개로 캐릭터가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 이 캐릭터를 위해 또 한번 자기 변론을 펼쳐보자. 배트맨은 슈퍼맨을 못이길 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가 진짜 판을 벌리기 위해 둠스데이를 만들었다고. 렉스 루터는 힘 자체를 갖는 것에는 큰 욕심이 없으며, 어떻게 얻었고 어디서 온 지식이건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지혜가 최우선이라고 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캐릭터가 둠스데이를 만들고 다루는 방식에서 일관성이 어긋난다. 렉스 루터는 무슨 일이든 딱딱 떨어지는 걸 좋아한다. 옷입는 모양새도 그렇고, 두 히어로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조드의 시체를 얻어내는 방식을 보면 비즈니스 마인드로 철저히 무장한 귀족이다. 다른 말로, 뭐든지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슈퍼맨이라는 신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병기를 만들어낸단 말인가? 슈퍼맨을 무릎꿇린 것처럼, 지혜로 힘을 굴복시키고 이를 조종해야 렉스 루터의 승리와 지혜의 월등함이 증명되는것이다. 그런데 둠스데이를 만들고 나면 렉스 루터가 가진 광기의 방향이 그 전까지와는 급격히 달라진다. 무슨 비밀병기를 알아낸 것처럼 굴고 있지만 사실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자폭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배트맨과 슈퍼맨 사이를 조종하고, 의회와 여론을 주무르는 "지략가"의 카리스마가 다 증발해버린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설정이 필요 이상으로 도드라지면서 지혜를 무기로 사용하는 인간의 매력이 지혜의 노예, 힘을 당해낼 수 없어 절망하는 범인으로 추락해버린다. 누군가의 존재를 죽여야 하는 생존 게임에서, 너를 죽이고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 는 승자의 포지션을 자랑하다가 너만 죽으면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 - 는 패자의 울분으로 치환되면서 캐릭터가 붕괴되고 만다. (오늘 스나이더는 편집된 장면을 공개했는데, 이렇게 구차하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 렉스 루터가 둠스데이를 만드는 과정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렉스 루터는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직접 피를 뿌리는데, 이 창조의 과정은 신을 능가하는 결과물을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이 보인다. 렉스 루터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그 결과물을 순수한 지식의 증명으로 보지 않는다. 유사 혈연관계를 만들고 아버지로서, 자신의 유전자가 신을 능가하는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 캐릭터의 열등감이 존재를 없애버리는 파괴욕이 아니라, 오히려 힘 자체에 대한 선망에 가깝다. 힘이 없는 존재가, 힘이 있는 피의 후계자를 만들어 자신 역시 그 힘을 가진 존재와 연결된 자로서 계급상승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캐릭터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이기고 싶은 것인가? 슈퍼맨을 없애버리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슈퍼맨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인가? 상대방을 자신보다 격하시키겠다는 것인가, 상대방을 능가하겠다는 것인가? 모사꾼으로서의 렉스 루터가 여기서는 갑자기 올림픽 코치처럼 등장하고 있다. 그의 욕망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 완벽한 선이 완벽한 힘과 양립할 수 있는가? 힘과 선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필요조건인가? 렉스 루터의 이 질문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렉스 루터는 이 질문의 무게를 다 감당하지 못한다. 갑자기 튀어나와 개인의 아픈 과거만 널어놓을 뿐,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 사이의 상징적 관계는 인위적으로 급조된다. <다크 나이트>를 보자. 조커가 배트맨과 대화하는 심문실 장면은 배트맨이 어떤 딜레마를 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줬었다. "너나 나나 똑같은 미치광이야" 라며 질문을 던지는 조커는 배트맨의 동류로서 질문자의 자격을 확보한다. 조커의 테러는 배트맨의 한계를 까발리고 그를 타락시켜 자기와 똑같은 부류로 만드려는, 위선의 고발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이 질문을 무시할 수 없고 결국 조커의 뜻대로 놀아나는 비극을 겪는다. 그러나 슈퍼맨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렉스 루터는 선과 힘의 관계에서 슈퍼맨과 이런 관계가 없다. 힘의 유무에서 이들은 대칭점에 놓여있지만, 선악의 갈림길에서는 아무 상징도 갖지 못한다. 조커와 배트맨이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자들"이라고 거울로서의 서로를 비추는 데 반해 렉스 루터는 "악"으로서 대척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장황한 질문 끝에 이어지는 인질극이 결국은 루저 한명의 개인적인 스토킹밖에 되지 않는다. 배트맨을 죽여서 선의 타락과 실패를 증명하려고 했다면, 뭐하러 굳이 그 상대를 배트맨으로 고르는가. 선을 추구할 수 없기에 무력해지는 힘의 딜레마를 훨씬 더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널려있는데.네 어머니를 납치한 납치범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라거나 나를 죽이면 네 어머니를 풀어주겠다, 라거나.

- 렉스 루터가 슈퍼맨에게 배트맨과 싸울 것을 요구하는 장면은 이제까지의 모든 질문을 스나이더식 힘싸움으로 함몰시킨다. 부실하게나마 쌓아올린 주제의식이 여기서 액션을 위한 도구가 되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대체 배트맨이 슈퍼맨과 싸우는 게 선과 힘, 인간 대 신의 싸움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 질문에서 렉스 루터와 배트맨은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 시나리오 상으로 그 질문을 각자 나눠가졌을 뿐, 이야기 속에서 렉스 루터가 배트맨을 지명할 그 어떤 동기도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두 히어로의 액션 대격돌이라는 이야기의 목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히려 렉스 루터의 흑막이 드러나면서 두 히어로의 주체적인 선택과 고민들이 단숨에 유치한 재벌2세의 장기말로 실추한다. 그리고 렉스 루터는 스나이더의 야심을 자기 입으로 다 고백한다. "역사상 최고의 글래디에이터 대결이다!" 사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 뿐이다. 아무 인과도 없는 두 히어로의 충돌을 이렇게 캐릭터가 자기 입으로 떠들면서 용접시킨다. 생각해보자. 악당이 등장해서, 주인공에게 "사실 이런 짓을 내가 했어, 그래서 넌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이랑 싸워서 이겨야 돼." 라고 떠벌리는 것을. 이 조악한 이야기 전개는 절망적이다. 악당의 고해성사가 아니면 캐릭터들의 갈등을 터트리지도 못하는 게 바로 잭 스나이더라는 감독이다.

- 렉스 루터가 슈퍼맨에게 2시간의 타임 리미트를 주는 데서 감독의 이해력 부족이 드러난다. 이 사람은 자기가 그 전편에서 지구 밖을 날고 열차를 던져대는 슈퍼 히어로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 같다. 2시간은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나 촉박할 시간이다. 슈퍼맨이 전철 타고 갈 것도 아니고 알파고랑 바둑승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2시간이 대체 무슨 긴장거리 씩이나 된단 말인가? 다른 액션 영화들에서 타임 리미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떠올려보자. 초조한 얼굴로, 차를 미친 듯이 몰고 가거나, 뜀박질을 하거나 하면서 "이동"과 "소요 시간"으로 위기감을 묘사한다. 뭘 해야 하는데, 그 미션의 장소까지 가는 게 대단히 긴장되는 순간이고 거기서 주인공은 중압감을 다스리며 관객들에게 이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슈퍼맨은, 그런 이동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캐릭터다. 메트로폴리스에서 뭘 하고 있다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친구가 비명을 지르면 눈깜빡할 새에 날아와서 다 쓸어버릴 수 있다. 이런 캐릭터에게 대체 무슨 2시간씩이나 주는가? 게다가 자기 애인의 비명소리는 잘만 캐치하면서 자기 엄마가 납치되는 건 전혀 눈치 못채는 이 선택적 둔감함도 납득하기 어려운 묘사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슈퍼맨이라면 1시간 반동안은 어머니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클락 켄트는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

- 영화를 얼마나 급하게 진행시켰는지 절묘한 우연이 계속 생긴다. 배트맨은 분명 렉스 루터의 음모를 전혀 모른 채 자신의 증오로 슈퍼맨을 사냥하려고 했을 텐데, 하필이면 슈퍼맨과의 배틀을 딱 그 시간에 맞춰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슈퍼맨은 인질극에 놀아나는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둘이 몸싸움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시작된 싸움에서 배트맨은 지구 최고의 만용을 뽐낸다. 돈도 많고 충분히 이기적인 영웅이, 그 많은 수단을 다 냅두고 우주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격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나이더의 힘자랑을 위해, 음침할 정도로 신중한 히어로가 진짜 글래디에이터처럼 돌변해버린다.

- 슈퍼맨과 배트맨의 결투씬은 메인 이벤트에 걸맞는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애초에 불가능한 이 둘의 싸움을 대등하게 만들기 위해, 스나이더는 슈퍼맨을 하향평준화 시켰기 때문이다. 일단 싸움에 임하는 슈퍼맨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당장 어머니를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안그래도 마음에 안드는 자경단원이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런데도 슈퍼맨은 배트맨의 갑옷이 부숴지지 않는 선 안에서 힘을 써가며 상대한다. (<맨 오브 스틸>에선 어머니를 위협한 조드에게 흥분해 냅다 주먹질부터 했었다. 심지어 어머니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슈퍼맨은 크립토나이트 총알을 맞고, 위기에 빠졌으면서도 전력을 다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배트맨의 간계가 먹혀들면서 슈퍼맨의 육체적 능력까지 약화된다. 가장 화끈하게 펼쳐져야 할 액션 시퀀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괜히 봐주다가 심신 모두가 그로기 상태여서 빌빌대는 초인과, 그 틈을 타서 두들기는 악바리 둘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무승부로 끝난다.

- 이 영화의 최악의 부분, 마사!!의 절규씬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이걸 배트맨이 외계인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슈퍼맨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런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게 배트맨이 던졌던 질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배트맨은 지금 원전, 핵폭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슈퍼맨의 엄마 이름이 마사건 마오건 그건 배트맨의 의심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여태 배트맨이 범죄자들을 때려잡고 고문을 하면서 이들의 어머니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건 아닐 것이다. 안전에 위험이 되는 자들의 인간성 여부는 이미 논외의 조건이다. 슈퍼맨은 여전히 위험한 존재고, 그 힘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화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스꽝스러워지지고 만다. 슈퍼맨은 그 위력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니까 그 자의 선의가 어떻고 인간성이 어떻건 그 위력을 억제하기 위해 죽여야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의 어머니와 동명 이인의 어머니가 있다, 그러니 슈퍼맨을 놔두자. 힘에 대한 질문이, 인간성에 대한 답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정작 그 힘에 대한 답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고, 이후로도 나오지 않는다.

- 액션에서 배트맨은 계속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슈퍼맨의 액션에 비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블의 어벤져스처럼 각자의 액션을 차별화해서 다른 재미를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나이다움으로 밀어붙인다. 후반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스나이더는 이상한 방식으로 초반의 액션을 다운그레이드 해놓았다. 사막 씬에서 배트맨이 싸우는 모습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오마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총은 안 쏘고 알 수 없는 자력에 끌려들어가 배트맨의 뭉툭한 주먹질에 넉다운되는 모양만 연출한다. 슈퍼맨을 팰 때 그나마 좀 재미를 보나 싶던 배트맨의 액션은 이 후 급격히 지루해진다. 제 아무리 용을 써도 슈퍼맨의 속도와 힘에는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트맨의 액션은 과격해지지만 오히려 불필요한 잔인함만 늘어난다. 슈퍼맨과 다르게 사람들을 쥐어패고 죽일 수록, 히어로로서의 정체성만 미심쩍어진다. 슈퍼맨만 없었다면 업그레이라도고 볼 수도 있을 배트맨의 액션이 이 영화 안에서는 슈퍼맨의 액션에 깔리지 않으려는 고군분투로만 보이는 것이다.

-  마사를 구출하고 나면 둠스데이가 깨어나면서 이 영화의 본론이 시작된다. 둠스데이란 캐릭터는 스나이더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 감독은 힘자랑과 폼잡기로 영화 대부분을 소비해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상 최악의 적, 슈퍼맨을 죽인 최초의 빌런을 등장시키는데 이 캐릭터에게서 느껴지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숨 쉬는 찰흙덩어리가 하나 나와서 철거삼매경을 보여준다. 캐릭터로서의 모든 설득력을 무시하고 오로지 싸이렌 소리만 크게 울리는 호들갑의 연속이다. 둠스데이가 뭐고, 이 캐릭터의 액션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할지 파악한 시간도 주지 않은채 꽹과리만 울려대기 때문에 이 억지스러운 위기감에 전혀 동조할 수가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둠스데이란 캐릭터는 별로 멋지거나 위압감도 없다. <인크레더블의 헐크> 속 어보미네이션처럼 그냥 힘싸움 과시용 못생긴 마네킹으로서의 기능만이 너무 뚜렷이 보여서 모든 김이 다 빠져버린다. 그래, 이제 저 덩어리를 어떻게든 죽이고 히어로들은 오손도손 뭉치겠구나. 심지어 창조주로서 한껏 폼을 잡던 렉스 루터도 이 이벤트에서 완벽하게 소외되어버린다.

- 둠스데이는 스나이더의 리듬감각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배트맨과 싸울 때는 헥헥대는 슈퍼맨을 보여주고, 둠스데이와 싸울 때는 힘에 부치는 슈퍼맨을 보여준다.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히어로다움을 보여주는 대신 부족하거나 과한 상대로 내내 맥없는 슈퍼맨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 한순간도 <맨 오브 스틸>의 호쾌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액션의 흐름이 단조롭다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슈퍼맨이 슈퍼맨인 이유는 그 무슨 공격에도 끄떡없고, 불가능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적의 캐릭터를 자기 스스로 무너트리면서 스나이더는 응원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작에서 간신히 힘을 깨우치고 싸움에 적응한 히어로를, 바로 그 다음편에서 약점 노출시키고 최악의 적에게 패대기 치면서 동정을 호소하는 걸 보면 이는 히어로 캐릭터의 착취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나는 같은 이유로 아이언맨의 정체성인 슈트가 너무 쉽게 박살나는 <아이언맨 3>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작품은 슈트와 슈트를 입는 사람을 구분시키는 게 주제였으니 이해할 수는 있었다)

-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인 원더우먼이 코스튬을 장착하고 등장한다. 이 장면은 멋지다. 그러나 이는 영화의 연출보다는 정키XL의 사운드트랙 Is she with you의 덕이 훨씬 크다. (개인적으로 어딘가 스탠리 큐브릭 스러운 05 번 트랙 Must there be a Superman? 이 인상깊다) 위기에 빠진 히어로를 구하며 나타나는 장면 자체는 클리셰 수준으로 전형적이다. 그 동안 계속 신경질적이고 음울하기만 하던, 그게 아니면 <맨 오브 스틸>의 사운드트랙 재활용이던 음악 천지에서 갑자기 다른 템포의 음악이 깔아지기 때문에 그나마 좀 환기가 되는 수준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건 원더우먼이라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영화가 얼마나 못만들어졌는지 곱씹게 된다. 냉정히 말해 원더우먼은 별로 하는 게 없다. 히어로로서 액션씬을 보이는 장면은 두 히어로에 비해 훨씬 짧다. 두 메인 히어로를 제끼고 조연수준의 히어로가 이 영화를 살렸다는 건 두 주역이 그만큼 죽을 쒔다는 뜻이다. 이 캐릭터는 이야기속에서 아무 역할도 안한다. 오로지 플롯의 진행을 위해, 그리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떡밥을 스스로 풀면서 저스티스 리그를 홍보하고 있을 뿐이다. 힘과 선에 관해 원더우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아니면 이 캐릭터가 둠스데이와 싸워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히어로니까" 라는 대답 말고는 이 이야기속에서 존재할 구실이 없다.

- 히어로 셋이 뭉치면 뜬금없는 유머가 터지고 이 셋이 아무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팀을 이룬다. 이런 게 스나이더 식 팀을 꾸리는 스토리다. <진격의 거인>의 대사를 인용해보자. "공동의 적이 나타나면 인류가 힘을 합칠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안에서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어" 둠스데이란 힘이 센 적이 나타나면, 싸우는 목적도 정의에 대한 믿음도 다 다른 히어로들이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자기들끼리 뭉치겠다는 게 저스티스 리그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블의 <어벤져스>에 이 영화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어벤져스>가 훌륭했던 건 다른 세계와 신념의 히어로들을 뭉치는 과정을 성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로키가 나타나고 쉴드가 흔들린다. 각자가 책임감은 느끼지만 연대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 티격태격해가며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세운다. 히어로들이 팀을 꾸리는 이 과정 자체가 <어벤져스>의 놀라운 점이다. 그런데 <배트맨 V 슈퍼맨>의 히어로 연합은 졸속 그 자체다. 다른 악당에게 휘둘려 싸우더니, 갑자기 화해하고 갑자기 힘을 합친다. 특히 이 셋이 둠스데이를 앞두고 폼을 재는 장면은 비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슬로우모션으로 폼을 잡는 것도 웃기지만 그 와중에 총을 든 배트맨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구경만 한다.

- 둠스데이와 2.1:1의 싸움을 하는 과정의 액션은 삼키기 버거울 정도다. 강강강을 초지일관하는 액션의 규모 자체도 그렇거니와 그 와중에 에너지 파장을 계속 뿜어대는 둠스데이 때문에 눈이 피로해진다. 이 싸움의 열쇠는 크립토나이트고 슈퍼맨의 희생은 짜맞춰진 결론이다. 오로지 희생이라는 키워드와, 슈퍼맨의 부재를 만들기 위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슈퍼맨이 죽는 장면의 감동은 전혀 없다. 스나이더 식 비장미다. 그 상황에서 뭐가 그리 급하길래 원더우먼이 크립토나이트 창을 쓰지 않았던 것인가. 마지막 장면, 관뚜껑이 떨리는 장면은 너무 노골적인 암시라서 슈퍼맨의 죽음이 갖는 의미가 털어져버린다. 이미 저스티스 리그를 제작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댄 주제에 그 장면이 무슨 기대 씩이나 주겠는가. 저스티스 리그가 시작되고 슬로우모션으로 무덤을 파헤치고 뛰쳐나올 슈퍼맨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괴로워진다.(제발 위기에 처한 로이스 레인을 구하기 위해 부활하지만은 않기를!)

- 영화를 보고나면 배트맨과 렉스 루터의 질문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힘이 선이 될 수 있는가, 힘을 선이라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주 강력한 적이 나오니까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일단 같은 편을 먹자, 엄마 이름이 똑같고 어쨋든 자기 목숨 바쳐서 나쁜 놈을 쓰러트리니 믿어줘야 한다, 라는 결론밖에 남지 않는다. 영화는 끝나는 와중에도 렉스 루터 비기닝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다크사이드의 졸개로 전락한 빡빡이밖에 없다. 렉스 루터는 끝날 때까지 자신의 광기를 홍보한다. 그리고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태도를 180도 뒤집으며 국장을 치뤄준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고 있다. 제일 깔끔한 방법은 배트맨을 후반부에 출연시키며 렉스 루터 대 슈퍼맨의 컨셉으로 힘과 선에 관한 주제를 풀어내는 것이고, 그도 안되면 렉스 루터는 뺀 채로 배트맨 대 슈퍼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워너는 브라이언 크랜스톤을 렉스 루터로 기용했어야 했다)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의 힌트는 정성스레 아이콘까지 따로 만든 폴더를 일일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영화 속 힌트로 보여주는 게 훨씬 나았다. 이래저래 이 영화는 기획의 산물이다. 어떻게든 마블을 따라가려는 비즈니스만이 있을 뿐, 이야기 자체의 생명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배트맨 V 슈퍼맨>은 관객이 알아서 메꿔야 하는 여백과, 그렇게도 메꾸지 못하는 허공 사이로 미트볼들이 공없이 미식축구를 하는 영화다. 그럴싸한 주제의식은 슬로우모션과 화약고 아래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Dawn of Hollywood, 마이클 베이에 버금가는 대재앙의 시작이다.

@ 이용철 평론가는 산하고인에 별 한개를 줘놓고서 이 영화에는 무려 별 세개 반을 줬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히어로 영화를 무시하는 처사다. 이 정도만 나와도 훌륭하다는 기준이 아니라면, 이 별점 투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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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키타
16/04/05 00:15
수정 아이콘
그래도 배트맨의 액션신이 그나마 볼만 했다고 평해봅니다.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생각날 정도로 중량감은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바카스
16/04/05 00:19
수정 아이콘
다크나이트 라이즈..?
흐르는 물
16/04/05 00:25
수정 아이콘
다크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 그만두고 쩔어살던 브루스가 노년에 복귀하는 내용의 그래픽 노블이죠
범죄자들 대하는 거나 무게감 있는 액션이나 이번 영화랑 많이 닮아 있어요
바카스
16/04/05 00:28
수정 아이콘
아 만화인가보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심더.
GreyKnight
16/04/05 00:43
수정 아이콘
코믹스 원작에 그걸 기반으로한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이번 배트맨 대 슈퍼맨의 배트맨 아머 슈트가 이 디자인을 참고 했어요.
Jace Beleren
16/04/05 00:1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서두에 쓰신 [어떤 영화에 대한 평이 급물살처럼 바뀌는 경우가 있다. 호든 불호든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쏠렸다가 나중에 그 반대여론으로 급선회를 하며 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공감을 많이 했는데, 이는 비단 영화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고, 문화 전반적으로 소비계층에서 저런 식의 여론 변환의 최근 들어서 굉장히 잦죠. 예시부터 내용까지 공감을 많이 했네요.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PGR에 올라온 이런 저런 시각들을 다 재밌게 읽고 있는데,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보고 근본적으로 내가 수용 가능한 소위 말하는 '리얼리스틱 슈퍼히어로물'의 한계 는 슈퍼맨보다는 아래쪽에 있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슈퍼맨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진지한 소재를 찍으려는 발상 자체가 그냥 우습게만 느껴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지한 소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로지 코즈믹 호러 무비를 찍을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크립톤 행성에서 온 자기가 선하다고 온몸과 행동으로 주장하는 외계인의 힘은 한 생명체의 고뇌, 많아야 둘~셋 정도의 생명체의 내적 고뇌를 다루는 소재로 쓰기엔 너무나도 강력하고 파멸적입니다. NG로 밖에 안 보여요. 크크

그래서 그냥 심드렁하게 봤습니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이 나름 진지노선을 탔는데도 재밌었던 이유는 그들의 초인적 힘이 명백히 실존적으로 와닿는 선에 있었기 때문이고, 그 선을 아득히 초월한 슈퍼맨을 애써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플롯속에 가둬 이를 악 물고 다룰 수 있게 만드는것은 제가 볼때는 골스가 80승을 찍는다고 3점 슛 라인을 뒤로 미는것만큼이나 괴팍하고 이상해보여서요.

[- 슈퍼맨과 배트맨의 결투씬은 메인 이벤트에 걸맞는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애초에 불가능한 이 둘의 싸움을 대등하게 만들기 위해, 스나이더는 슈퍼맨을 하향평준화 시켰기 때문이다. 일단 싸움에 임하는 슈퍼맨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당장 어머니를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안그래도 마음에 안드는 자경단원이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런데도 슈퍼맨은 배트맨의 갑옷이 부숴지지 않는 선 안에서 힘을 써가며 상대한다. (<맨 오브 스틸>에선 어머니를 위협한 조드에게 흥분해 냅다 주먹질부터 했었다. 심지어 어머니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슈퍼맨은 크립토나이트 총알을 맞고, 위기에 빠졌으면서도 전력을 다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배트맨의 간계가 먹혀들면서 슈퍼맨의 육체적 능력까지 약화된다. 가장 화끈하게 펼쳐져야 할 액션 시퀀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괜히 봐주다가 심신 모두가 그로기 상태여서 빌빌대는 초인과, 그 틈을 타서 두들기는 악바리 둘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무승부로 끝난다. ]

저는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립을 대안으로 삼았을 경우 지적하신 부분에는 그 어떤 합리적인 대안도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니까요. 개미와 인간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을 쓰기 위해선 개미를 적어도 강아지 만하게 만들던가 인간을 베짱이 만하게 만들던가는 해야할테니까요.

그래서 제 결론은 이 영화는 애초에 나름 진지한 영화로는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오답만 있는 문제를 골랐다고 생각하고, 그 중에 그럴싸한 오답을 하나 골라서 보여줬지만 여전히 오답이었을뿐이고, 그나마도 그렇게 세련된 답안도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크크.
16/04/05 00:43
수정 아이콘
영화관련 종사자 이신가요?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렉스 루터는 정말 어설픈 조커 짭퉁 같았네요.
잘읽고 가요~
서건창
16/04/05 00:48
수정 아이콘
공감 가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탱구와댄스
16/04/05 01:50
수정 아이콘
전 생각보다 볼만했습니다. 보기전에 봤던 평가가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없는 우주쓰레기라는 정도의 평가라서 디워 정도 영화를 생각하고 가서 봤더니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아마 [어떤 영화에 대한 평이 급물살처럼 바뀌는 경우가 있다. 호든 불호든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쏠렸다가 나중에 그 반대여론으로 급선회를 하며 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전에 평가가 너무 과할 정도로 박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별 5개 만점에 한 2~2.5개 정도는 줘도 된다고 보는데 그 전의 평가는 별 반개짜리 영화라는 말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전 무엇보다 배트맨이 너무 쉽게 인간을 죽이는 것에서 거부감이 확 들더군요. 가장 눈에 띄게 캐릭터성을 깨부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람들 위로 따발총을 갈겨대는 배트맨이라니....제가 아는 배트맨은 절대 그렇지 않는데 말이죠 ㅠㅠ
16/04/05 01:51
수정 아이콘
전반적으로 공감하며, [다른 배트맨 영화는 "아버지"를 잃은 것에 중점을 둔다. 선의와 재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깨닫게 하는 브루스 웨인의 트리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자관계의 상실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는 중후반의 서사 진행을 위한 작위적 설정으로만 보인다.]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네요. 영화를 보고나서 '그런데 마초의 절정인 배트맨의 상실은 엄마보다 아빠 아닌가?'라는 생각을 저도 했었거든요.
16/04/05 01:53
수정 아이콘
전 사실 완전 만족하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좀 많이 본 분들' (비꼬는 것 아닙니다) 한테는 여러모로 미흡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앤디 휫필드의 가브리엘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본 사람인데, 스토리라인이 정말 진부 그 자체였던 지라, 그런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한테는 정말 끔찍한 영화였다고 하더라구요.

마찬가지로, 저는 사람 죽이는 배트맨 진짜 마음에 들었고, 광전사 삘 나는 원더우먼 완전 간지 폭풍이었고, 찌질한 수퍼맨 완전 참신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을 보고 DC 팬 분들이나 영화 매니아분들이 설정 붕괴와 개연성 상실로 본다고 해서 그게 무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네요.

다만, '마사~!!!' 씬에 대해서는 변명을 좀 하고 싶네요. 전 배트맨이 수퍼맨을 보는 시각이, 마치 인간이 위험한 동물이나 예측 불가능한 박테리아, 혹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운석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해당 타겟이 인류에게 미칠 이해득실을 따져서 평가 점수가 마이너스면 없애버려야 하는 그런 개념이었다는 거죠. 그러다가 배트맨이 엄마 살리려는 수퍼맨을 보고, 이 놈이 The Other 가 아닌, 우리와 같은 놈이구나. 같은 인간이구나. 그렇다면 설령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같이 품고 가야겠네 라고 마음을 먹는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뭐랄까, 곰 사냥꾼이 정작 총 쏘려는 순간에 곰이 자기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걸 보고 차마 총을 못 쏘는 그런 장면이랄까요? 그래서 크게 무리수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네요.
탱구와댄스
16/04/05 01:57
수정 아이콘
사람 죽이는 배트맨에서 배트맨 팬들이 설정 붕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게 배트맨의 모토 자체가 불살이기 때문에 그렇긴 합니다. 이건 진짜 불문율이라서 애니, 만화, 영화, 아캄 시리즈 같은 게임에서도 배트맨이 사람을 직접 죽이는듯한 장면은 나오질 않는데 이번 영화는 너무 심하긴 했습니다. 사람들 위로 따발총 쏴대는건 진짜 좀.......;;;;;이게 어느 정도냐면 배트맨 팬들이 보이게는 포켓몬을 사랑하지 않는 지우 정도로 캐릭터성을 훼손하는 거라서요.
16/04/05 02:00
수정 아이콘
예 그건 저도 이해합니다. 근데 저는 뭐랄까 마음이 아직 어린지, 배트맨 만화나 옛날 영화들 보면서 '그걸 왜 안 죽여? 아 그 양반 답답하네.' 라고 느낀 적이 많아서 그런지, 설정 붕괴인 것을 알면서도 너무 반갑더라구요.
16/04/05 02:13
수정 아이콘
뭐 영화가 그런 해석을 원하는거 같긴 한데... 겉으로나마 인류의 대의를 표방하던 배트맨이 사사로운 이유로 휙 전환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이랄까요. 그 흐름을 쫓아가던 입장에선 배신감마저 느껴지는거죠. 배트맨의 악몽 시퀀스 등을 봐도 배트맨은 분명 슈퍼맨의 불안전하고 통제 불가능한 '인간성'또한 경계하고 있었거든요. 그녀를 잃었다는둥 감정적으로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은게 슈퍼맨이니...
그런데 엄마 이름이 같다는게 트리거가 되어 동질감을 이유로 그 대의를 포기한다는건 도무지 납득할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이럴려면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된 이유가 감정적이고 모순이 가득하다는 점을 제대로 조명하던가 했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기획상 그런 내용을 넣기에는 역부족이었고요. 배트맨은 이미 영화로 충분히 많이 만들었고, 알 사람들은 다 알테니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자연스레 납득할거야- 같은 식으로 저질러버렸다는 느낌이기도 하네요...
16/04/05 02:14
수정 아이콘
으음 계층 구조가...??

여기에 다시 복붙하자면,

예 뭐 어떻게 보면 전 배트맨 캐릭터에 대한 도덕적 기대치가 (실제로 저런 자경단이 존재한다면 만화적 배트맨보다는 덱스터에 가까울 거라고 보는 지라) 워낙에 높지가 않아서........ 심각한 성격의 아이언맨 정도를 기대하면서 봤습니다. 즉, 애초부터 배트맨은 '내 마음에 들면 그걸로 된 거임' 정도의 판단을 해도 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면서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배트맨은 만화에서도 사람을 죽이지'만' 않을 뿐, '차라리 죽여줘' 소리가 나올 만큼 패는 지라....)

사실 도덕적으로 너무 고결한 캐릭터는 아트 필름에 나와야지, 21세기 팝콘 무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엑스맨에서 울버린 인기가 높은게 울버린이 X 교수보다 도덕적으로 더 고결해서가 아니니까요.
16/04/05 02:32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그런 캐릭터에 대한 재정립이 영화내에서 충분히 이뤄졌어야 했다는게 실망한 관객들의 중론으로 보입니다. 배트맨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에겐 영화의 내용이 어리둥절할 뿐이고, 높던 사람들에겐 변화가 뜬금없다는거죠. 선악의 구분를 불살이라는 얄팍한 경계로 유지하는 배트맨이 아닌 본작의 배트맨을 납득해버리면 이 두 덩치의 싸움이 블랙코메디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영화의 의도가 그런거 같지도 않고요.
16/04/05 02:35
수정 아이콘
예 그런 실망을 하신 분들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뭐 저도 다음 편에서 배트맨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뭥미? 할 수도 있겠죠.
16/04/05 14:44
수정 아이콘
사실 캐릭터는 꽤나 잘 뽑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캐릭터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서사가..
나의규칙
16/04/05 02:46
수정 아이콘
저는 배트맨이 슈퍼맨을 제거하려고 한 이상, 끝장을 보지 않은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아요.

강대한 파워를 가진 존재를 이해하지 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제거하려고 한다... 뭐 여기까지는 배트맨이 인간이기 때문에 이해가 갑니다.(렉스루터의 기믹을 뺏어 갔는데 렉스루터는 또 존재한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천재지변을 없앨 수 있으면 없애야죠. 지진 안 나는 방법, 허리케인 안 생기는 방법이 있으면 누구나 그 방법 실천하려고 하겠죠. 그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는 별개로.

그런데 그러한 천재지변을 없애기로 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국 그 천재지변이 인간임을 알게 되어서 멈춘다? 여기에서 이해가 안 갑니다. 배트맨 캐릭터 뭐 이런 차원을 떠나서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굉장히 인간적인 천재지변을 어떻게 믿죠? 제 생각에는 오히려 더 무서운 존재로 업그레이드한 것 같은데요. 게다가 배트맨은 슈퍼맨이 가진 "선의"-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못 믿어서 없애기로 한 상태잖아요.

슈퍼맨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캐릭터라서... 예를 들어 산불이 났는데 더 많은 수의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 소수의 인간들을 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준 상태라면 배트맨의 행동들이 더 납득이 갈 겁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가 언젠가 인간을 벌할 것이다.. 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공포고 그러한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그 뒤에 신적인 존재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신적인 존재도 인간적이다.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제거를 멈춘다면 이해가 가죠. 그런데 슈퍼맨을 리부트하면서 이미 충분히 "인간적인" 존재로 만들어두고서는.. 이제야 와서?

슈퍼맨이 가진 선의를 믿는 사람이라면 슈퍼맨을 없앨 이유 따윈 없고, 선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엄마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안 순간에 멈출 이유는 없죠. 배트맨은 그 고담에서 효도하는 범죄자를 보지도 못했단 말인가요. 슈퍼맨이 이때까지 보여준 수많은 사례를 보고도 선의를 믿지 못한 배트맨이 "엄마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슈퍼맨의 선의를 믿는 것이라면 ... 배트맨이 망가지는 거죠 뭐.
타임트래블
16/04/05 03:10
수정 아이콘
배트맨 vs 슈퍼맨의 원작에서 묘사했던 이유라면 그 둘이 싸우는 이유가 오히려 납득이 되었을 겁니다. 배트맨 입장에서 질 게 뻔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또는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얘기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죠.
제임스림
16/04/05 10:23
수정 아이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공감이 갑니다. 영화 몇편에 걸쳐 장황하게 풀었어야 하는 내용을 한 편에 다 몰아넣으려다 보니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소재가 너무 아까울 따름이네요.
발가락엑기스
16/04/05 10:30
수정 아이콘
정말 너무 욕심을 부린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마블의 성공 때문에 조바심을 느꼇던 것인지 에휴
연환전신각
16/04/05 10:37
수정 아이콘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을 그린 만화 원작들에선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이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라기보단 대부분 배트맨이 이김) 이유는 배트맨이 슈퍼맨의 육체적 약점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인 약점도 다 꿰고 있다는 점 때문이죠

심지어 배트맨은 자신과 슈퍼맨이 친구 사이이고 슈퍼맨이 적대적인 사람과 싸울때 조차도 살상을 피하기 위해 힘조절을 한다는 것까지 이용합니다

이런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건 배트맨이 슈퍼맨의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이 수단과 목적이 다르더라도 서로 상대의 완전한 파멸을 위해 싸우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이 일견 멍청해 보이는 식으로 싸움을 걸고 슈퍼맨이 그런 멍청한 도발에 멍청하게 맞서 싸우는 이유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죠

그런 탄탄한 뒷이야기가 받쳐주기 때문에 다크나이트 리턴즈에서의 싸움은 설득력이 있는데 그걸 오마쥬한 배트맨v슈퍼맨에선 이상해 보이는 거고요

저는 애초에 이 작품이 기획단계일 때부터 좀 비관적이었습니다

거대한 두 캐릭터를 한 이야기에서 만나게 하는건 각자의 이야기가 끝내고 그 둘이 어떻게 왜 만나게 되었나에만 한 작품을 할애해도 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배트맨v슈퍼맨은 배트맨이라는 거대한 캐릭터를 리붓하는 동시에 대립까지 시켜야 되니 이걸 동시에 해결하는 묘기는 쉬울리가 없습니다

더불어 영화에서는 리붓과 동시에 대립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배트맨과 슈퍼맨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영화에서의 싸움은 서로가 상대의 생각과 입장과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연출을 쓰는 작품을 오마쥬했으니 뭔가 멍청해보이는게 이상하지 않을겁니다

배트맨이 초인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렇게 강한 위상을 보이는 이유는 배트맨의 지식과 계획성과 심리전 때문인데 그게 실종되어야 가능한 싸움을 만들어 놓았으니 배트맨이 총들고 응원만 하는 결과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죠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계획도 못 세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조차 파악 못하는 배트맨은 배트맨이 아니라 그냥 싸움 잘하는 보통 사람이거든요

기획부터가 어벤져스를 따라 잡기 위해 너무 많은걸 빠르게 해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를 잘 구축하고 거기에 발생되는 갈등을 싸움으로 연출해야 하는데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싸움을 붙이기 위해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든 느낌
하심군
16/04/05 10:42
수정 아이콘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3캐릭터 모두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죠.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트라우마로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묶여버린 클락켄트. 아버지의 복수가 점점 확장되어서 결국 목표없는 복수만을 위해 움직이게 된 브루스 웨인.(사실 그 유명한 장면도 목표가 없이 폭주하던 배트맨이 목표를 갖게 되면서 이성을 찾게 된거라고 봅니다. 어거지 스럽지만...) 우월한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에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우월함을 뛰어넘고자 괴물이 되버린 렉스 루터...

이래저래 곰씹을수록 많은 사색거리를 주기는 하는데 그걸 왜 내가 뇌내속에서 회전시켜가며 곰씹어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80%는 제 뇌내망상이라 다른사람이랑 공유하기도 어렵고요.
16/04/05 11:14
수정 아이콘
새벽에 비몽사몽 읽을땐 잘 몰랐는데, 낮에 읽으니 표현들이 굉장히 재밌네요. [슬로우모션으로 폼을 잡는 것도 웃기지만 그 와중에 총을 든 배트맨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구경만 한다.][영화는 끝나는 와중에도 렉스 루터 비기닝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다크사이드의 졸개로 전락한 빡빡이밖에 없다. 렉스 루터는 끝날 때까지 자신의 광기를 홍보한다.] 으하핳
Neanderthal
16/04/05 11:35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영화 속에서 이런 걸 다 잡아내는 통찰력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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