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알파고에 관한 글들을 검색해보니 알파고는 단순한 brute-force 머신(brute force란 모든 가능한 경우를 다 따져보는 것을 말합니다.)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진부한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을 사용해서 실망스럽다, 물량빨이라 이세돌에게 공평하지 못하다, 인간의 사고방식이라 할 수 없는 단순한 계산기에 불과하다 등등의 주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100% 정확한 말도, 틀린 말도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중에서 가장 제 관심을 끈 것은 알파고가 수행한 것이 인간의 사고가 아닌 단순한 계산활동에 불과하다는 말이었기에 이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알파고는 사고(思考)하는가? 라는 질문을 생각하기에 앞서, ‘사고’ 또는 ‘생각’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키 백과의 정의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생각은 결론을 얻으려는 관념의 과정이다.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정신 활동을 말한다. 사상(思想), 사유(思惟)라고도 한다. 지각이나 기억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어떻게 이해하고 또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헤아리는 활동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언어에 의해서 행해진다고 하지만, 도형적(圖形的)으로 헤아리는 경우와 같이 언어에 의하지 않는 생각도 살펴볼 수 있다. 또 귀납적 사고, 연역적 사고와 같이 추론의 종류에 의해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바둑을 둘 때 사람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저는 바둑 둘 줄은 모릅니다만, 장기나 오목을 둘 때를 생각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매 턴마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느 위치에 돌을 두어야 할 지 고민할 것입니다. 이 때 착수점에 대한 후보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정석이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순, 혹은 정말 직관적인 번뜩임이나 감에 의해 선택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개의 착수점이 괜찮아 보이면 그 착수점들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 및 그 후의 상황도 시뮬레이션해 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창호씨는 100수 앞까지 수읽기 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이 일련의 작용을 사고의 정의에 입각해서 보면, 게임 플레이어는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목표)”, “항상 다른 바둑판의 상황에서(지각이나 기억의 활동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 “어디에 돌을 둘지 결정(어떻게 이해하고 또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헤아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에 대한 정의를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거의 모든 바둑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에 대해서 ‘사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알파고가 다른 바둑 인공지능과 다른 점은 ‘직관’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인공신경망을 사용하여 착수점에 대한 후보를 선택한다는 점이, 알파고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알고리즘을 사용하지 않느냐고요? 지난 글에서 설명 드렸듯이,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인공신경망에 의해서 선택된 착수점 후보에 대해서 진행됩니다. 알파고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없이, 인공신경망의 직관적인 선택만으로도 Elo rating 1500대를 보여줍니다.(논문에 보면 Elo rating 1500은 아마추어 수준의 바둑으로 나와있네요) 즉 알파고가 보였던 창의적인 수들은 직관에 의해 나온 착수점 후보에서 수읽기 계산에 의해 선택된 곳들이고,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에 의한 수읽기가 전혀 없이도 알파고는 꽤 강하다는 말입니다.
인공신경망은 그냥 입출력과 계수들로 이루어진 계산기일 뿐, 사람의 직관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사람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를 보여줍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어느 정도는 믿음의 영역입니다만, 저는 인간의 사고작용도 인공신경망과 마찬가지로 신경 세포간의 연결구조 및 연결강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복잡해 보이는 인간의 사고도 세포 수준에서는 인공신경망의 각 노드 계산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신경망이 원래부터 생명체의 신경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닮은 구조가 나올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이런 생각을 극단적으로 전개시킨 글이 인지과학자인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와 다니엘 데닛의 책에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뇌와 나눈 대화”입니다. 사이언스 북스에서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책의 한 챕터로 번역되어 나와있으며 저작권 문제로 영어 원문 링크를 드리겠습니다.
http://themindi.blogspot.kr/2007/02/chapter-26-conversation-with-einsteins.html
해석하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대강의 내용을 설명하면, 아인슈타인의 뇌의 모든 시냅스 연결 구조 및 연결 강도(인공신경망으로 치면 각 노드 연결 구조와 계수값들)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치면(물론 이 책은 엄청난 페이지 수를 자랑하겠습니다만), 이 책이 있으면 아인슈타인과 대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사고실험에 관한 약간은 철학적인 내용입니다.
단지 얼토당토않은 가정에 근거한 사고실험에 불과하지 않느냐고요? 그렇다면 이미 이 게시판에서도 한번 크게 이슈가 되었던 아래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pgr21.co.kr/pb/pb.php?id=freedom&no=57174&divpage=13&ss=on&sc=on&keyword=%EC%9D%B8%EA%B3%B5%EC%83%9D%EB%AA%85%EC%B2%B4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드리면, 신경구조 및 연결강도가 모두 밝혀진 간단한 생명체(예쁜 꼬마 선충)의 신경구조를 컴퓨터에서 그대로 재현했더니 실제 생명체와 비슷하게 움직이더라는 내용입니다. 단순한 생명체 수준에서는 이미 이것이 가능하고, 앞으로 더 복잡한 생명체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IBM PC에 비유를 하자면, 인간이 만든 인공 생명체는 IBM 본사에서 BIOS 칩 설계 데이터를 훔쳐와서 똑같이 만든 칩이라 볼 수 있고, 알파고는 PC BIOS 칩의 입출력 정보를 분석해서 똑 같은 입출력이 나오도록 리버스 엔지니어링 한 칩과도 같아 보입니다. (후자는 실제로 컴팩에서 한 일이죠.) 저는 인간이 만든 인공 생명체와 알파고의 활약을 보면서 서로 반대쪽에서 시작된 길이 중간에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 아직 이어졌다고 보는 것은 섣부른 이야기겠죠. 인간의 사고방식과 신경 구조를 본따서 훈련시킨 알파고가 인간보다 창의적인 바둑을 보이고, 단순한 생명체의 신경 구조를 똑같이 복사해서 만든 인공 생명체는 그 생명체와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인간의 두뇌를 닮도록 훈련시킨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과, 인간의 두뇌 상태를 그대로 복사한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먼저 나올까요? 이 두 개의 길은 언젠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알파고 류의 인공지능이 당장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생각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알파고는 기존에 이미 수 십년 전부터 존재하던 알고리즘(몬테카를로 트리 탐색)과 구조(인공신경망)을 영리하게 활용하여 한가지 일(바둑)을 충실하게 하도록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도 더 창의적인 직관력 - 이세돌씨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 정도 - 을 보여 주었으며, 적어도 한가지 분야에서는 인간과 대등하게 사고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향후에 나올 인공지능들은 한 가지 뿐이 아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창발적’으로 무언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있겠죠.
그래서 알파고가 대체 사고를 하는거냐고 물어보신다면, 제가 좋아하는 생물 책의 한 챕터의 내용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프랭크 H. 헤프너가 지은 “판스워드 교수의 생물학 강의”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책이니 생물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 판스워드 교수는 학부 신입생들에게 생물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물어봅니다. 학생들이 생물의 정의를 말할 때마다, 판스워드 교수는 반례를 들며 그 정의가 틀렸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생물은 번식합니다”고 하면, 교수는 “그럼 우리 할머니는 이제 생물이 아니네?”라고 하는 식이죠. 이 문답이 끝날 때 즈음 교수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무엇이 생물인지 아닌지는 이분법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고,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단계에 있는 것들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만, 이미 인간의 뇌에 대해서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오신 분들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딴지 걸 부분이 많은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알파고에 대해서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다음 글(?)에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