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4/04 18:40:41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소중한 조연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다”
문득 어디서인가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나 영화의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개 이렇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극적인 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펼친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이 진정한 위기에 처했을때는, 수많은 조연들이 그의 길을 열어주고 함께 싸워준다. 그 조연들은 마치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처럼 주인공의 삶을 빛내준다. 주인공처럼 유능하고 뛰어나진 않지만, 그 상황 그 순간에서 만큼은 주인공의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마치 주인공이 미리 알고 사전 예약했다는 듯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필요했던 부분들을 채워주고 싸움을 승리로 역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삶과 영화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시점을 누구에 맞추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지만, 그와 동시의 누군가의 소중한 조연이 될수도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인공의 자리를 추구한다. 이 자체는 분명 틀린 행동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인공이 될 권리가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꺾어갈 권리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간혹 그 도를 넘어, 타인의 삶의 주인공 자리까지 넘보려고 한다. 내가 타인을 위해 하는 일은 타인을 위한게 아니라 내 자신을 빛내기 위함이 되어가고, 그들의 방식으로 성공하도록 두지 않고 어느새 모든걸 나의 방식으로 바꿔가려고 한다. 마치 내 방식이 옳았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타인의 삶을 담보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역경에서의 고민은 일반화할수 없는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살면서 가장 억울함을 느낄때는, 어이없이 혼날때도 아니고, 오해를 받을때도 아닌, 사람들의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다. 멋대로 무언가에 개입하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일말 책임은 지지 않고 조용히 발빼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거봐, 내 말대로 안하니까 그렇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핑계 대지말고 내 말대로 해보라니까.”
“그러게 네 방식으로는 안된다고 했잖아.”
“이건 다 너 잘되라고 해주는 말이야.”
“아니야, 네가 못한건 분명 내가 말한것중에 네가 놓친게 있을꺼야...]


... 결국 실행자인 네가 수행능력이 딸리니 이게 실패하는건 다 네 탓이네.”


애초에, 타인의 상황을 나의 판단으로 일반화해서 고치려고 하는 행위가, 수많은 주인공들을 자신들의 삶에서까지 조연으로 살도록 강제한다. 위에 적은 말들도 결코 조연이 주인공에게 했다고 할만한 말들이 아니다. 그저 남이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살도록 만드는 무책임하며 욕심만 가득한 말이다. 주인공이 가장 필요한 것을 서포트하기 보다는, 필요없는 것들까지 쥐어주고 감당키 어려운 책임으로 무장시킨뒤 모든 공로는 나에게 맞춰가는 이기적인 주인공 마인드. 우리들이 가장 싫어하지만, 간혹 우리 자신들이 쉽게 실수하기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언젠가 남들이 나를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그들의 삶속에서 자신이라는 사람을 주인공 삼기 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놓쳐버린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그들을 빛내줄 조연이지, 그들의 빛을 가리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서, 난 서서히 말을 아끼게 되었다. 고치고 싶고 바꾸고 싶은건 여러가지지만, 내가 책임지고 할것이 아니라면 말을 아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할 일들은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고, 타인이 주인공이 될 일이라면 타인을 앞세워 빛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연으로써 주인공을 가장 빛내주는 것은 생각을 바꿔주는 것도, 방식을 바로잡아 주는것도 아닌, 시간을 두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고민을 해결해주는게 아니라 그 고민의 무게를 함께 지어 주는 것이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때 약속처럼 나타나는 조연들은,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분명히 주인공의 고민에 동참했고, 주인공이 자신을 필요로 할 위치를 미리 고려해서 기다려 주고 있던게 아니였을까. 그런 배려와 기다림을 내 자신에게 가르치고 싶고, 그런 기다림을 불사할 소중한 조연 또한 만날수 있었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좋은 조연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연필깎이
16/04/04 18:59
수정 아이콘
좋네요.
[fOr]-FuRy
16/04/04 19:37
수정 아이콘
깊이 공감합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Eternity
16/04/04 19:44
수정 아이콘
[ 조연으로써 주인공을 가장 빛내주는 것은 생각을 바꿔주는 것도, 방식을 바로잡아 주는것도 아닌, 시간을 두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고민을 해결해주는게 아니라 그 고민의 무게를 함께 지어 주는 것이다.]

이 문장을 곱씹게 되네요. 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내용이랄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타슈터
16/04/04 20:00
수정 아이콘
저야말로 늘 좋은 글들 써주셔서 많은 참고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16/04/04 20:3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의도하지 않게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어 등이 서늘해 졌네요..
16/04/04 20:37
수정 아이콘
사람마다 입장이 다 다르고 나한테 당연한 것이라도 그 사람한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걸 항상 머리속으로는 알고있어도 실제 적용하는게 참 힘든것 같습니다.
(듣는 입장에서) 내가 겪었던 고통이나 고민을 싸그리 무시한 채 결과론적으로 왜 ~~하지 않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의식하지 않으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주연-조연의 비유가 참 와닿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타슈터
16/04/04 21:33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저는 글쓰기 전에 항상 제 자신을 먼저 돌아봅니다. 나는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쓴 글들에 대해 책임을 질수 있을지를요.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 보면 어느새 제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글을 계속 쓰게되는 가장 큰 이유고요. 흐흐
ohmylove
16/04/04 20:57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부모는
아이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길을 보여주기만 하고 거기서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스타슈터
16/04/04 21:35
수정 아이콘
비슷한 고민으로 고뇌하다 나온 글입니다. 흐흐

길을 여러개 제시하는게 제가 추구하는 방식인데,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해서 그냥 하나만 알려줄까 하다가 갈등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적어본 글입니다. 물론 제 결론은 말씀해주신 대로고요. :)
16/04/04 22:01
수정 아이콘
근데 이게, 어린 아이는 여러 길을 보고 싶어하질 않기도 합니다. 일단 하나의 롤 모델을 정해서 막 달려나간 후,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는 그런 식이죠. 이런 경우에는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더군요.
스타슈터
16/04/04 22:08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자신에게 하나 바라는게 있다면 최소한 저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아이들을 제한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16/04/04 22:09
수정 아이콘
예 그건 저도 100% 공감합니다.
ohmylove
16/04/04 22:22
수정 아이콘
네. 환경을 만들어주고 피드백도 해줘야겠죠.
16/04/04 21:42
수정 아이콘
정말 곱씹어볼 부분이 많네요..잘 보고 갑니다
16/04/05 04:57
수정 아이콘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군요. 전 반대로 생각히는 편이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일것이라는 것만큼 큰 착각은 없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내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은 가정에서는 부모님, 결혼하면 아내와 자식들을 위한 결정일 것이고 직장에서는 회사 또는 상사 등의 누군가를 위한 결정일 것인데 그때마다 내가 내가 주연이 아니라는 것을 아쉬워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차라리 생각해보면 내가 할 수 있는건 내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뿐 그렇다고 이 세상이 내 세상인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의 세상에서 내가 살고 싶지는 않기에 나란 사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조연이며 사실은 조연으로 나오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뭐 이런 인식이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와 빈드시 상충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스스로를 놓아버린 사람 입장에선 가까운 사람이 그러지 못하여 고생하고 있을 때에 충고를 하게 되더군요. 절대로 내가 주연이고자 간섭하는 게 아니고 왜 너는 너가 주연이고자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냐는 식으로 말이죠.
ohmylove
16/04/05 08:11
수정 아이콘
아, 이 댓글을 보니 막혔던 제 사고가 뚫리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ohmylove
16/04/05 08:16
수정 아이콘
근데 제가 귀가 얇아서 그런지, 본 글과 이 댓글 모두 일리가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스타슈터
16/04/05 09:29
수정 아이콘
저도 이 댓글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유는 밑에 대댓글을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아요!
스타슈터
16/04/05 09:26
수정 아이콘
캇카님의 말씀도 맥락은 다르지만 사실 제가 고민했던 바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주연병" 에 걸린 사람들, 혹은 나도모르게 걸려버릴 내 자신을 위해 쓰게된 글이니까요.

우리 모두 주인공이 될 권리는 있지만, 이 세계라는 큰 무대로 초점을 맞추면 우리 모두 주인공이 될수 있는건 아니죠. 조연 혹은 엑스트라도 소화하기 힘든게 현실이니까요. 다만 하나 글을 적으며 바라던게 있다면 그 자신의 주연 욕심을 남의 삶에만큼은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던 바이고요. 주연을 하며 생기는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거지 타인이 져주는게 아니니까요.

아무튼 저도 쓰면서 지적해주신 이 면을 어떻게 풀어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끝내 적지 못했는데, 이런 좋은 댓글으로 남겨주신것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467 [일반] [해외축구] 첼시, 콩테 감독 선임 발표...3년 계약(오피셜) [17] OHyes5942 16/04/04 5942 2
64466 [일반] 시작부터 삐그덕거리기시작하는 IOI (아이오아이) [55] naruto0519265 16/04/04 9265 1
64465 [일반] [4.4]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오승환 1이닝 2K 0실점 MLB 데뷔전) [2] 김치찌개3811 16/04/04 3811 0
64464 [일반] 청순소녀 라이벌 '여자친구'VS'러블리즈' [142] wlsak9519 16/04/04 9519 0
64463 [일반]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소중한 조연 [19] 스타슈터4740 16/04/04 4740 15
64462 [일반] '골육종 투병' 쇼트트랙 노진규, 끝내 하늘나라로 [16] 피아니시모5118 16/04/04 5118 0
64461 [일반] [의학] 호흡의 축복과 저주. [11] 토니토니쵸파7232 16/04/04 7232 19
64460 [일반] 인류역사상 최고의 [초천재] 존 폰 노이만 [66] Rated14888 16/04/04 14888 3
64459 [일반] 서울 사람의 대구 라이온즈파크 관람기 [12] 어리버리6504 16/04/04 6504 5
64458 [일반] [프로듀스101] PICK ME 무대 정리 [11] Leeka6307 16/04/04 6307 0
64457 [일반] 인공신경망과 알파고 - 알파고는 사고(思考)하는가? [10] 65C028623 16/04/04 8623 19
64456 [일반] 자유경제원 이승만 시 공모전 세로드립 [141] kurt15488 16/04/04 15488 30
64455 [일반] [야구] 윤성환과 안지만의 복귀는 대구에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33] 키스도사10028 16/04/04 10028 8
64454 [일반] CNBlue/SG워너비/버나드박x혜림/문정재x김일지/10cm/옴므/소년공화국/마마무의 MV 공개. [4] 효연덕후세우실3541 16/04/04 3541 1
64453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35 (6. 세 개의 발) [20] 글곰5739 16/04/04 5739 50
64451 [일반] [스압] 알기 쉽게 설명해본 헬조선 전주곡 - 국제 유가 하락 [45] 뀨뀨12823 16/04/04 12823 97
64450 [일반] [IOI] 개인팬덤으로 시작하는 IOI의 미래?? [37] wlsak7589 16/04/04 7589 1
64449 [일반] [IOI] 시한부그룹이란게 참 안타깝네요 [39] naruto0518387 16/04/04 8387 0
64448 [일반] 벌써부터 뭔가 불안한 IOI [84] ZZeta11995 16/04/03 11995 2
64447 [일반] 집정리와 함께 시작된 4월 [4] Mighty Friend4273 16/04/03 4273 1
64446 [일반] [WWE] 스팅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26] 피아니시모5777 16/04/03 5777 2
64445 [일반] [4.3]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이대호 2타점 2루타,1타점 적시타) [12] 김치찌개4573 16/04/03 4573 0
64444 [일반] [야구] 2016프로야구 개막3연전 감상(부제: 생각보다) [35] 이홍기7038 16/04/03 7038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