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라북도 김제에 경찰 공무원 하시던 제 할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때 돌아가셨습니다.

2.  "당시 9세셨던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인민군이 그 지역에 자기들에게 협력하는 빨갱이들과 합세해서
     제 할아버지를 비롯한 그 마을 남자들을 산너머에 있는 옆동네 마을회관에 모이라고 해놓고는 집단 학살했답니다.

3.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시신이 너무 처참해서 할머니가 겨우 수습했으며,
     제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자녀(위로 형과 누나, 아래로 여동생 둘)들에게 안 보여주고 혼자 장례치루셨답니다.
     할머니께서 옷을 보고 겨우 확인하셨을 정도로 할아버지 시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답니다.

4.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전쟁이 끝나고
     당시 학살에 협력했던(집에 와서 할아버지를 직접 잡아갔던) 빨갱이 한 명을 제 할머니께서 우연히 옆 마을에서 보시고 와서는
     "너희 아버지 죽인 그 놈 오늘 봤다. 그 놈 본래 부모 없이 이집저집 전전긍긍 하던 놈인데,
      너무 가여워서 우린 밥도 먹여주며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 놈이 그렇게 배신하고는 지금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라고 하시며, 펑펑 우셨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말 아무 의심 없이 평생을 들어왔고 믿어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1. 당시 집단 학살에 협력했던 그 사람(할머니가 목격한)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인민군에 협조 잘 한 빨갱이였다면 전쟁 끝나고 무사치 못할 거 같은데 말이죠.

2. 그렇다면, 혹시 나에게 저 이야기를 늘 해주시던 아버지가 알고 계셨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 할아버지가 오히려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신 것은 아닐까?
   당시 보도연맹 학살을 비롯해서 우익에 의한 집단 학살도 많았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1번의 의문, 즉 그 A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는 게 이상하진 않죠.

3. 그런데, 만약 우익에 의한 집단 학살이면 왜 저희 집에서 저희 할아버지만 끌고 갔을까요?

4. 게다가 저희 할아버진 경찰공무원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빨갱이로 몰릴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요.
   정말 그렇다면 저희 아버지가 말씀해주신대로 할아버지는 북한군과 그 빨갱이에 의해서 돌아가신 것일까요?

5. 저의 이 모든 의문은...
  "할머니가 목격했 듯이 전쟁 후에도 잘 살고 있던 그 사람"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제가 커가면서 "보도연맹 사건"이라는 우리 역사의 또다른 비극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욱 증폭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