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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8/27 12:11:21
Name 민머리요정
Subject [일반] [야구] 에이스는 죽지 않는다. 불사조 박철순
안녕하세요. 민머리요정입니다.
강동우 선수 글 이후에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휴, 하나하나 적던 글이 어느새
추게에 11개나 올라가는 기적이 되었네요.
좋게 평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이번 글부터는 지금의 프로야구가 있게 된 원동력이자,
오늘날 야구선수들이 늘 가슴에 품어야 할 영웅들.
프로야구 초기의 영웅들을 위주로 글을 쓸 생각입니다.

그 첫번째로, 프로야구 원년의 상징이자, 원조 에이스.
불사조 박철순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던 박철순 선수는,
기구한 스토리를 가진 몇 안되는 야구선수 중 하나입니다.

부산고에 진학했지만, 2학년 때 대전 대성고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대성고에 전학을 가서, 후보투수로 출전한 대전고와의 경기에서,
심판이 대전고에 유리한 볼카운트 판정을 한다는 이유로, 대성고 선수들이 심판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후, 대성고는 야구판에서 인식이 안좋아졌고, 학교 내부에서는 야구부 해체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물론, 박철순 선수는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야구를 하기 위해서, 다시한번 전학을 선택하는데,
이후 서울 배명고로 전학을 하여, 그곳에서 졸업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세대에 진학을 하지만, 대학 초반 자신이 할수없는 역할이 없게 되니,
자퇴원을 내고서, 공군 야구단에 입단. 그곳에서 이종도와 남우식을 만나게 됩니다.
선임 이종도와 후임 남우식. 당대 최고의 타자, 투수를 만나서 다시 한번 야구를 깨우치고,
군 말년, 백호기 결승에서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 그리고 연세대 에이스 최동원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연세대 자퇴원을 냈던 것이 철회되고, 복학.
1979년 한미 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면서,
미국 프로야구 관계의 눈에 띄게 되었고, 밀워키 산하의 싱글A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한국인으로는 68년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리그에 진출했던 이원국 이후 2번째)

밀워키 산하 싱글A 스탁턴 포츠 소속으로, 80년 싱글A에서 5승 2패(ERA 2.31), 호성적을 올렸고,
81년 7월 더블A로 승격을 받게 됩니다. 이 당시의 성적은 6승7패.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의 성적은 12승10패 (ERA 2,32) 다승 3위, 탈삼진 1위(138개) 최소 사사구(28개)로,
밀워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의 우수투수로 선정됩니다.
이런 활약 속에, 82년도 월봉은 2,500 달러로 오르고 트리플A로 승격도 약속을 받게 되죠.



이렇게 좋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후, 미국행을 접은 박철순은 국내에서 뛰기로 결심했고, 김우열에 이어 2번째로 KBO에 취업신청서를 제출합니다.

박철순 선수는 배명고 출신이기 때문에, 연고지가 서울입니다.
원년 드래프트 당시, 서울지역 프로야구 입단 희망 선수들은 자의로 팀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충청지역이 본거지가 된 OB 베어스는 선수 취약지역을 내세워,
서울이 본거지인 MBC 청룡과 1대2의 비율로 드래프트를 요구.
박철순 선수는 MBC 청룡으로 가길 원했지만,
1순위를 가진 MBC 청룡이 김재박을 선택하게 되면서, OB는 박철순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경력을 높이 사서, 특급조건으로 계약을 하지만,
밀워키에서 계약 위반이라며 브레이크를 걸었고, 국내에서 합의를 볼수가 없게 되자,
OB 베어스 박용민 초대 단장이 미국으로 건너가, 밀워키 구단주와 만나,
이적 동의서와 함께, 트레이드 머니 3만 달러로 합의를 보게 되면서 이 해프닝은 마무리가 됩니다.

이런 해프닝 끝에, 정식 선수로 등록이 되지 못했던 박철순 선수는
개막 이틀전인, 1982년 3월 25일에 정식으로  KBO에 등록이 되었고, 전설이 시작됩니다.



기본적으로 던질 수 있는 빠른 공에, 미국에서 습득한 여러가지 변화구.
특히 팜볼로 알려진 박철순 만의 결정구. 한국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합니다.

MBC 청룡을 상대로 프로데뷔 첫 승을 기록했고,
이후, 4월 10일 해태전을 시작으로, 9월 18일 롯데전까지, 2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단일시즌 22연승이라는 기록은, 현재까지 한 시즌으로는 세계 최고 기록에 해당하며, (올시즌 NPB 다나카 선수가 이 기록에 도전합니다.)
MLB의 기록도, 1888년 팀 키벨이라는 선수가 세운 19연승이 최고기록이라고 합니다. (100년도 훨씬 넘은 기록...)
일본에서도 연승 기록은, 올시즌 다나카 이전까지, 1957녀 이나오의 20연승이 최고기록입니다.

이후에, 박철순 선수는 이런 인터뷰를 남깁니다.

"올해는 나에게 행운을 안겨줬다. 타자들이 약해 덕을 본 반면 우수한 투수들이 없어 독주할 수 있었다.
내년엔 10승을 올릴 수 있을까? 미지수다.
그러나 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로 입단이 보류됐던 우수 선수들이 합류한 83 시즌을 마친 뒤 내려야 할 것이다"

말이 씨가 되듯이, 이듬해였던 83년은 시즌 내내 부상과 싸워야했습니다.
이 부상의 발단이 된 경기가 82년 후반기 우승의 길목에 놓였던 삼성과의 경기에서 일어납니다.

경기초반, 번트수비를 하던 중, 허리에 부상을 당하게 된 것이죠.
이 경기에서 OB는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고, 후반기 우승도 삼성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이 부상은 시즌 내내 무리한 박철순에게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죠.
100경기로 치뤄지는 시즌에 36경기 등판. 224.2이닝을 던졌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11.2이닝 투구.
이렇게 던지고도 탈이 안난다면 이상했을 상황.

이후 밝혀진 것이지만, 이 허리부상을 계기로, 허리 디스크로 판명받게 됩니다.



OB베어스는 전반기 우승팀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1,2차전에서 박철순의 모습은 볼수 없었습니다.
시즌 중에 입은 허리 부상으로 등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당시 최강팀으로 평가되었던 삼성이 한국시리즈의 상대가 되었습니다.

1차전에서 접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고, 2차전에서 삼성이 9-0으로 완승을 거두게 됩니다.
1무 1패로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려, 박철순이 나서게 됩니다.
3, 4차전에 구원등판하여 팀의 승리를 지켰고, 5차전에서 황태환과 선우대영이 승리를 따내면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남은 승수는 단 1승.

김영덕 감독은 승부수를 꺼내들어야 했는데, 카드는 단 1장. 박철순이었습니다.

이미 3차전부터, 허리에 국부주사를 맞고서 공을 던졌던 박철순은,
6차전 등판에서도 주사를 맞고 마운드에 오르게 됩니다.

"그 당시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허리의 아픔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 우승을 해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주사를 맞고 던졌다"

박철순이 마운드에 있으면, 잘 못치던 타자들도 잘치기 시작했고,
못잡을 것 같은 타구도 잡아냈던 야수들. 박철순의 존재는 그 자체로 엄청난 존재감이었죠.
6차전에서 9회초 김유동의 만루홈런으로 역전을 하게 된 OB는,
선발로 등판한 박철순이 완투를 하며 승리를 지켰고,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경기가 끝난 이후, 박철순은 서울대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당시 병명은 요부추간판 헤르니아(척추의 제4 요추와 제5 요추 사이에 끼어 있는 물렁뼈가 삐져 나온 상태)였다고 합니다.



프로야구 원년의 MVP이자, 원년의 우승을 이끌었던 팀의 에이스, 그리고 영웅.
하지만 그해 당한 부상은 그를 고통받게 했고, 83년 0승, 84년 1승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오랜 기간 부상에 대한 약물 치료와 재활, 이후 원년의 포스는 다시한번 보여줄 수 없었지만,
그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도전을 보고, 팬들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이후, 부상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시점에서,
팀은 긴 시간 재활치료와 부상회복으로 어려워진 그의 사정을 보고서,
구단에서 그에게 CF 촬영을 주선하게 되는데,
CF 촬영하는 도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최악의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허리, 발목, 허리, 발목.... 계속되는 부상 속에서도, 다시한번 던지겠다는 집념하나로,
다시 마운드에 섰고, 90년대에는 꾸준히 7-9승을 거두는 등, 팀 내에서 든든한 허리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95년 자신에게 다시한번 찾아온 또 한번의 한국시리즈.
에이스라는 위치는 아니지만, 후배들과 함께 이뤄낸 또 한번의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우승을 결정지은 OB 베어스.

권명철이 손동일을 땅볼로 마지막 카운트를 잡는 그 순간,
OB 선수들은 김인식 감독을 헹가레 친 이후, 박철순을 무동을 태우고, 야구장을 돌기 시작합니다.

원년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에이스.
이후, 길고 긴 부상의 터널 속을 지나서 한단계 내려온 위치에서,
후배들과 함께 다시 오를 수 있었던 한국시리즈 무대.
드라마 같은 승부 끝에 거둔 한국시리즈 우승.

그가 마운드에 올랐고 오르지 않았고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불사조 박철순. 그가 이 순간에 함께 그라운드에 있다는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던 것이죠.

우승의 순간 그가 흘렸던 뜨거운 눈물, 그리고 무동을 타고 돌던 그 모습은,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96년을 끝으로, 박철순 선수는 공을 내려놓게 됩니다.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죠..
그리고 97년 4월 29일, 트윈스와의 평일 홈경기가 12년만에 매진이 되는 진풍경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불사조 박철순이 마운드를 떠나가는 날,
기록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박철순이라는 특별한 선수가 떠나가는 날이었기에....

"그날 원래 은퇴경기를 하기로 했어. 그래서 내가 선발투수로 등판해서 딱 1이닝을 던지고 내려와서 은퇴식을 하기로 했는데...
그 때 상대팀 타자들이 와서 그러더라고. 그냥 가운데로 던지시면 알아서 스윙 세 개 하고 물러가겠다고.
은퇴경기 마지막 등판에서 딱 연속으로 삼진 세 개를 잡고 내려가는 거지.
그런데, 그거 못하겠더라고. 내가 어떻게 지키고 버텨온 마운드인데, 거기서 장난질 치는 것 같고.
그래서 도저히 등판할 수가 없다고, 그냥 은퇴식만 하게 해달라고 했어."

선수 박철순은 마운드에 입을 맞추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등번호였던 21번은 영구결번으로 결정이 났는데,
프로야구 원년부터 21번을 달고 뛰었던 박철순 선수였기 때문에,
베어스에서 21번을 달고 뛰었던 선수는 단 1명. 박철순 선수가 유일합니다.



훗날 시구 박철순, 시포 김경문, 시타 김우열이라는 이 라인업이 경기에 완성되었을 때,
팬들은 어떤 심정으로 지켜봤을까요?
그리움? 아쉬움? 아련함?
그렇습니다. 팬들이 느끼는 이러한 여러가지 감정들.
이것 또한 선수 박철순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것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이겠죠.



불사조, 영원한 에이스, 신화, 전설
어떤 단어를 붙여봐도, 박철순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떠오르는 그것.
그것이 불사조 박철순이 우리에게 남겨준 추억이자, 기억이 아닐까요?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의지.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로부터,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팀의 에이스. 정신적 지주.

불사조 박철순, 그 별명과 이름처럼,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 제가 틀린 부분이 있거나, 오류가 있는 부분은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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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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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가루인형형
13/08/27 12:17
수정 아이콘
그냥 마이너리거 출신이 아니라 상당히 뛰어난 마이너리거였군요.
부평의K
13/08/27 12:20
수정 아이콘
다른건 몰라도 95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를 기억합니다.

응원하는 팀은 아니었어도, 선수를 응원했던건 그때가 처음이었던거 같은데... 박철순 선수의 집념이랄까 투혼은
지금와서도 좀 소름끼치는 면이 있죠.
13/08/27 12:21
수정 아이콘
대단한 선수였지요. 은퇴식에 저 마운드에 키스하는 장면은 정말 멋진거 같습니다. 근데 박철순선수가 메이저리그 출신인건 처음 알았군요. 좋은정보 알아갑니다.
13/08/27 12:31
수정 아이콘
음 태클일수도 있지만 최동원에게 한 짓때문에 정말 싫어하는 선수중에 한명
민머리요정
13/08/27 13:11
수정 아이콘
그 시절에 집단으로 기합받고 구타당하고 그런게, 거의 당연시 되던 시기라서....
저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더라구요? ...
박철순, 최동원 - 두분 모두 한 성격씩 하는 분들이니....
13/08/27 16:15
수정 아이콘
군사정권 시절에 탄압받던게 거의 당연시되던 시절이라서 그당시 억울하게 변을 당하신 분들도 크게 와닿지 않으시겠습니다 크크크크
방과후티타임
13/08/27 12:34
수정 아이콘
제가 잘 모르던 과거 프로야구 역사를 재미있게 써주셔서 항상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민머리요정
13/08/27 13:11
수정 아이콘
네, 감사합니다. :) 제 글에는 늘 티타임님 댓글이 있는거 같애요~
13/08/27 12:34
수정 아이콘
두산팬으로써 95년 우승은... 무얼 가지고 설명할수 없는 감동이지요... 94년 항명사태이후로.... 그리고 우승이후 세레모니... 그날 잠실에 있던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소나비가
13/08/27 12:41
수정 아이콘
저도 95년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5.5경기 차인가에서 극적인 0.5경기 역전 우승.
OB, LG, 롯데가 서로 가위바위보 하듯이 물고 물리는 상황이라 1위가 절대 유리한 상황..
정말 가위 바위 보 하듯이 롯데가 LG 이기고 OB가 롯데 이기고 우승..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롯데와의 KS 7경기 모두가 막판까지 승부를 알수 없는 접전이었다는 것이죠.
그나마 젤 싱거웠다고 할수 있는게 경기가 마지막 7차전인 2점차 승부....
시나브로
13/08/27 12:35
수정 아이콘
예전에 우연히 다큐멘터리 보고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고 엄청 감탄했죠.

박철순 플레이 본 세대는 아니지만 제 인생 멘탈, 의지, 근성갑 중에 한 명입니다.

다큐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자기가 이 악물고 재활할 때 가족, 팀 동료들, 주위 사람들 모두 다 힘이 됐지만

원동력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bellhorn
13/08/27 12:39
수정 아이콘
대단한 선수라 여겼지만..
폭력사태를 알고나선 정말 싫은 선수네요.
경주마의꿈
13/08/27 12:4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야구에 대한 집념 그 하나만으로도 존경받고 존중받을만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GreatObang
13/08/27 13:17
수정 아이콘
베어스 팬으로서 박철순이라는 이름 세글자가 주는 의미는, 단순한 에이스 혹은 레전드 그 이상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장호연였지만, 베어스의 혼은 단연코 박철순이라고 생각합니다.
13/08/27 13:21
수정 아이콘
역사에 만일이란 없다지만 미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혹사 염려는 낮았을테니 본인한테는 더 좋았을 것 같기도 싶고, 어쩌면 한국인 메이저리거도 좀 더 빨리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지금도 한국야구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지만 불같았던 1시즌만으로 그치기에는 좀 아쉬웠다는 생각도 들구요...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13/08/27 14:25
수정 아이콘
당시는 미국도 분업화가 안 되던 시절이라서요... 혹사에서 자유롭진 못했을 겁니다.
13/08/27 14:0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우연찮게 만났지만 참 멋진 분이시더군요.
탈모는 안습 ㅠㅠ
전무후무할 베어스 No1.
13/08/27 16:14
수정 아이콘
최동원 선수에게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인성이 나오죠.. 사과 한마디도 없고.. 그리고 연승기록 하나만 제외하면 초라한 통산 성적일 뿐인데 레전드는 가당찮네요 그냥 베어스 프렌차이즈 정도일 뿐이죠
민머리요정
13/08/27 16:16
수정 아이콘
음 그렇게 생각하면, 최동원 선수 인성도 같이 나오는거 아닐까요?
오죽하면, 최동원 선수를 선배들이 못건드렸을까, 저는 이렇게도 생각이 들긴 합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구타가 그쪽에만 있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이 사건만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죠.
13/08/27 16:20
수정 아이콘
허허 그런 논리라면 왕따당한 사람이 잘못이고 맞은 사람이 잘못이고 갈굼 당한 사람이 다 잘못이겠네요.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최동원 선수가 무엇 때문에 구타를 당했고 그랬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팀의 규율을 어겼거나 개인적인 일로 그랬다 하더라도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쉴드칠 수가 없는 것이죠.. 규율을 어겼다면 정당한 징계가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감정이 상했다면 더더욱 폭력을 행사하는건 쓰레기나 하는 짓이죠.. 그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 또한 운동부 사이에선 구타가 암암리에 존재한다는건 누구나 알지만 마치 박철순을 다 그러는데 재수없게 나만 걸렸네 라는 식으로 쉴드칠 순 없습니다.
민머리요정
13/08/27 16:36
수정 아이콘
참 아쉽죠. 이 일이 프로데뷔 이전에, 최동원 선수 부상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라서,
훨씬 민감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폭력을 쉴드칠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나, 저평가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 댓글에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ㅠㅠ
버디홀리
13/08/27 16:30
수정 아이콘
다른 레전드들과의 통산 기록 면에서 보면 보잘 것 없긴 하지만 OB, 두산 팬에겐 그 누구보다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13/08/27 17:21
수정 아이콘
9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투수 넘버1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던 레전드죠.
13/08/27 18:12
수정 아이콘
박철순씨에 대한 구타사건이 뭔가요?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야구부내에서 집단 체벌이 있었던거 같은데...이것을 얘기하는 건가요?
민머리요정
13/08/27 18:37
수정 아이콘
연대시절 사건 말하는거에요.
박철순 최동원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Je ne sais quoi
13/08/27 21:07
수정 아이콘
고 최동원 선수의 부상을 유발했다고 알려진 대학 시절 구타 사건입니다. 여기에 윤동균 감독 시절의 항명이 덧붙여지면 박철순 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죠. 간단히 말해 '나는 때리지만 내가 맞는 건 싫다'는 이미지가 생기니까요.
13/08/27 22:24
수정 아이콘
제가 제대로 찾은건지 모르겠는데....
특정인이 특정인을 구타했다기 보단....어느 기수가 어느기수를 집단 폭행한거 처럼 묘사되어 있던데...맞나요?
전자라면 특정인의 인성을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후자라면 당시의 관습을 얘기해야 하는거 아닌지 싶어요

그때는 고속버스에서 담배피라고 좌석마다 버젓이 재떨이가 있던....
지금의 시대상황과는 너무도 많이 달랐던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
Smirnoff
13/08/27 22:46
수정 아이콘
시대상을 막론하고 사람 부상당하도록 패고 사과도 없는 놈은 양아치라고 생각합니다
13/08/28 00:08
수정 아이콘
개인 대 개인으로 보면 저도 같은 생각인데....집단 대 집단이라면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기엔 무리같아 보여서 말씀드렸습니다
Smirnoff
13/08/28 09:27
수정 아이콘
그 상황 자체는 당시 상황에 따라 정상참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 최동원 선수는 죽을 때까지 사과 한마디 못 받았죠..사과 안한 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박철순 개인이 별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거나 아니면 자기 알량한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 거죠..
Je ne sais quoi
13/09/01 11:32
수정 아이콘
제가 아는 한(사이트나 관련 서적 몇 권) 최동원 선수를 직접 때린 건 박철순 선수였고, 그로 인해 부상이 생긴 건 확인된 일입니다. 즉 관습이건 뭐건 간에 사실상 폭행으로 부상까지 입힐 정도였죠. 당시의 관습이라도 운동 선수를 부상을 입을 정도로 때리는 건 좋게 볼 수 없죠. 물론 좋게 넘어가자고 해서 덮기야 쉬웠을꺼고 그래서 당시에도 넘어갔을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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