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10/28 22:05:59
Name 강력세제 희드라
Subject [일반] 9박 11일 폴란드 여행기 Day 2-1. (data 주의, scroll 주의) (수정됨)
15시간 비행의 여독에다가 첫날 30,000보 걸음의 피곤이 더해져 아침 늦게까지 완전히 푹 곯아떨어질 줄 알았지만, 그놈의 시차 덕분에 해도 뜨기 전 새벽부터 눈에 번쩍 뜨졌습니다.

그단스크가 아무래도 고위도 지역(북위 54.4도)이다보니 한여름에는 밤이 정말 짧았습니다. (일몰 21시 ~ 일출 4시) 아래 사진은 새벽 5시 쯤 찍은 것이지만, 새벽 4시 10분 무렵부터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더군요.

AVvXsEhL5cJb-gv69Iqw_zSB9Rlp6fXETCo9809WjAdchMGuFiMnwK1BXnPCjh-sV-KFtxL-zjC8dJZqrWy9xH6CrryZ8X_s0bn7qpdJPPJqbGsTce1fEz-TwOoVrUrkf8OmDZ7q6nkevDe1iUhokE-h08r0mkkclcXQ1dtqne5Ep_mUgJL-PY1Wsr1VZgVtkkaq=w640-h360
호텔 객실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일출.

개인적으로 그단스크라는 이 도시의 이름이 다시금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던 계기는 8년전 Oats Studios라는 곳에서 만들었던 2분 남짓한 짤막한 에니메이션 클립을 통해서였습니다



Oats Studios - "Gdansk"
https://youtu.be/AQRf15K2TRs?si=Oo0XsLtKsv5KlaWV



원래 이 일대에는 토착종교를 믿는 슬라브계열의 프루스인(Prussian)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부터 이교도에 대한 잔학한 응징으로 악명이 높았던 튜튼기사단이 12세기 전반에 이 지역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프루스인들은 몸서리쳐지는 악몽 속으로 내던져지기 시작했습니다. 광기와도 같았던 튜튼기사단의 종교적 열정은 이교도를 향한 잔학무도한 폭력으로 발현되었고,  이들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내몰린 프루스인들의 심정은 영상 속에서 비현실적인 거인과 맞딱드린 저 가련한 농부의 무력함과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프루스인들은 차례로 멸절되어갔고, 그나마 운좋게 생존할 수 있었던 소수도 오래지 않아 부근 폴란드인들과 점차 동화되어가면서 프루스인들의 명맥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프루스인들에 대한 정복작업이 점차 마무리되어가던 13세기 후반 튜튼기사단은 노가트(Nogat)강변에 강력한 철옹성을 쌓아올리고 이를 자신들의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붉은 벽돌로 단단하게 축조된 이 거대한 성채에다 '성모 마리아의 성'라는 의미의 독일어인 마리엔부르크(Marienburg)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늘 오전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그  말보르크성(Zamek w Malborku)입니다.

호텔에서 서둘러 조식을 해결하고 그단스크 브제슈치(Gdansk Wrzeszcz)역에서 7시 45분에 출발하는 이 나라 최고급 고속열차인 EIP에 탑승했습니다.  바로 아랫 등급 열차인 IC에 비해 3배 가까이 비싼 운임이었지만,(그래도 폴란드 대중교통요금이 저렴한 편이어서 2등석 1인 13,000원 정도였네요.), 9시 첫 입장시간에 여유롭게 맞추려다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단스크 브제슈치 역에서 말보르크 역까지의 거리는 58킬로미터 정도. 30분 후인 8시 15분에 말보르크 역에 도착했습니다.(명색이 고속철임에도 불구하고 평균시속이 겨우 100킬로미터를 넘는 수준이라니...  아마도 이 구간의 선형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인듯) 그단스크 브제슈치역에서 말보르크역까지 EIP 일반석 요금은 조기예매 할인을 받아서 1인 34.65즈워티 (대략 12,970원).

AVvXsEi2fWnwK5bTpcgljoC2HXe1fRwmRoEYALj7i816zNwDEIsDtIR3ol0lMSg25LAroycCEggaogwp7cxRw4TMjStb5CikhGILlKPh5BXRoVJZwal9-lDF-7Wd16ipgEWpNS3W81KtzggWFeQEmjgQ79eur1PCWdAP7IsaWpMR0Iw9vhraPL0N3CUEnLIqztre=w640-h360
말보르크 역사.

고풍스런 역사건물 밖으로 나오면 가로등 기둥에 매달려있는 작은 청동상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20250725_082619.jpg
중세 기사 복장을 하고 있는 이 녀석은 마리아넥(Marianek)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도시의 마스코트인데, 도시의 몇몇 곳에서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녀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말보르크 자체는 인구 4만이 살짝 안 되는 정말 작은 도시입니다.

역에서 말보르크성 앞의 안내센터까지는 길을 헤메지 않고 곧장 걸어갈 경우 15분 정도면 넉넉히 도착할 만한 거리입니다.(대략 1.2km 정도)

성채 방향으로 쭉 걷다보면 분수가 설치된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이 광장을 호령하고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이 바로 1466년 말보르크성에서 튜튼기사단을 완전히 몰아내었던 폴란드국왕 카지미에시 4세(Kazimierz IV)입니다. 카지미에시 4세의 지휘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말보르크성의 높다란 붉은 중앙탑이 멀찌감치 모습을 드러냅니다.

AVvXsEjHcWT3qe7jS60X6ovl7fxsajqy3k6KuTq_ssClX2uwb7qcq9diHxnoYjWBAPTrfskbqyRarSN5G0UGw2GfAnKnvzWVg6rFW3GOAVNxF_lXsISb8a2sdbleedxEdpv9vEAD0YtLf_pywgwciZX8ouDlm_PtwVY_tzsHHKnHoXFHcEcKkgKFhcpaoJ86Tsth=w640-h360
저 멀리 말보르크성을 향해 공격명령을 내리는 카지미에시 4세의 기마상.

광장을 지나 안내센터로 바로 이어지는 길로 곧장 걸어가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소소한 몇몇 볼거리들을 찾아보고 싶어서 다소 돌아가는 우회로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AVvXsEj5wZkhUwcUTu3VY7UbGDPS_LUYJLciNJljwItNbKycrijXSB31SVBkM49p8geBTffFg7hKKr84QwxbfMR2w2vUsQchm33GEFN9XNmkBdL1qtFAjp8HpWGS-24KkIiQTjT265AJATka4Gqz67ejGqkjUCQPmkcL5kTEkDnWIWhDH0utZFOVmz2KD74fhvMu=w640-h360
길모퉁이를 살짝 돌면 등장하는 말보르크 사인.(사인 앞에서 마리아넥이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네요.)

AVvXsEgWgVhRKYJh10AzLbQ02xCKmnBy9LzTr0UQ0kqK_qedyMwJKk069LKtMjy3bYjgxKWxcrC7v-dWjcA_MrkqHOzWMBZxkicQTVpt4TsBV1YMYR5cgLDhsfJRA9joKnVU9VvkWRLqaancGb1lJti7X79l0xAEXOPti-mafjQJJ1MvPRaT4VYx57ZORMUFlz66=w640-h360
여기서 한 백여미터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Bastion이라는 세련된 분위기의 레스토랑 건물 앞에 설치된 1:30 축척의 정교하고도 거대한 말보르크성의 미니어쳐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AVvXsEjIBXojKN03Bo7IEvAdeUGZHK-pYc57Vq_zq7TDdGkNxxe6N9Fd5PZVpLQceu1sJm7dY8i2jFhHTXL7sLLJ2NXL5Za3aBsWiP8wMbkkZoP_xEp5y9WzRHOksgFiDAO1FVFzrfCWdSYMj0KYbe8Hm6zC00P0RyfzjoezyPxPWxNEOBbeJwyiCiOgSSMmyQjW=w640-h360
말보르크성 안내센터 앞에 도착하니 또다른 마리아넥이  두팔을 벌리고 환영을 해줍니다.

입장권을 온라인으로 예매를 했을지라도 이곳에 들러서 오디오 가이드를 수령해야 제대로 된 관람이 가능합니다. 비록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는 제공되지 않지만 "Slow" English라는 반가운 옵션이 있어서 이를 선택했습니다.  오디오가이드는 관광객의 위치와 연동해서 그 장소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는데,  비록 세세하게 다 알아들을 수는 없을지라도 대략적인 내용 파악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선택했던 티켓은 성채 내외부 대부분을 관람할 수 있는 히스토리컬 루트 티켓(1인 입장료 70즈워티-대략 26,000원). 성채 외관 위주로 관람이 제한되는 캐슬 그라운드 루트 티켓(1인 입장료 35즈워티)이 따로 있지만, 기왕 큰맘먹고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히스토리컬 루트 티켓 구입을 강추합니다. 건축물 자체의 매력도 대단하고, 내부에는 튜튼기사단과 폴란드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 다양한 중근세 무기류와 갑옷들, 이 일대의 특산품인 호박 세공품들, 종교미술품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관한 여러 자료들 등등등 정말 다양한 볼거리가 곳곳에서 펼쳐집니다. 관람 소요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 드넓은 성채 내외부 곳곳을 무지막지하게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편한 신발이 필수입니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 튜튼기사단의 상징과도 같은 이 성채를 게르만민족의 화려한 영광을 대변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프로파간다에 적극 활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 말미에 이곳 인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성채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AVvXsEg_YQ8vXukhjt-vDGgchVg6gNGybD0JJ0osNk2si3n2dUUUyhaZvZSnWjYnmjUoP9YUnQdYCqyrzpjtfc5Km-HHCUQaOM9O_ObQYlgMXXT4FOwko6pyf9VhKQNWMuTx14D7wBIlYWw8QOvCFQAcAXNxGtROs3Sd6Gg0Bm2ZFUdGsjky-QO36q3g3xmKooaf=w640-h341
2차대전 종전 직후 폐허가 되어버린 말보르크성.(출처 Wikipedia)

폴란드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의 유산인 이곳을 그냥 철거해버리자는 주장도 있었다지만, 1466년 함락 이후 폴란드의 역사에서도 상당한 의미(장기간 폴란드국왕의 별궁으로 사용됨)를 차지하는 귀중한 유적으로도 평가되기에 복원이 결정되었습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복원의 성과물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완벽에 가까웠고, 지금도 여전히 복원작업이 조금씩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malbork.jpg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의 위성사진에서 보다시피 성의 북동쪽 최외곽의 일부가 경주의 사천왕사지 마냥 철로에 의해 뎅강 잘려나가버린 상태이기에 이 철로의 위치를 옮기지 않는한 완전한 원형 복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채는 위의 위성사진에 표시해둔 것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마당(A)은 마굿간, 연병장, 하급 병사들의 숙소 등등이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이고, 제대로된 성채 부분은 기사단장 궁전을 중심으로 한 미들캐슬(B)과 성모마리아 성당(Kosciol pw. Najswietszej Marii Panny)을 비롯한 종교시설 위주의 하이캐슬(C)으로 양분됩니다.
앞마당의 경우 티켓을 따로 구입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돌아볼 수 있는 구역이지만 딱히 볼거리는 없는 편입니다.

20250725_090046.jpg
안내센터에서 바라보이는 서쪽 성벽과 중앙타워, 그리고 성모성당의 후면.

20250725_085838.jpg
안내센터에서 미들캐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zespół bramny(억지로 번역하자면 성문복합방어시설)을 거치게 됩니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일종의 옹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구조인듯.

20250725_090525.jpg
zespół bramny와 서쪽 벽 사이의 해자는 초록 초록 잔디밭으로  변신...

20250725_091058.jpg
미들캐슬로 들어가는 말보르크성의 Brama główna(Main Gate). 마리엔부르크라는 옛 이름 그대로 성모자상 부조가 찾는이를 반깁니다. 이 문으로 연결되는 목제 다리 앞에서 검표원들이 스캐너로 티켓을 확인합니다.

20250725_091214.jpg
미들캐슬의 안뜰. 9시 첫번째 타임으로 입장했더니 성채 전체가 상당히 한산해서 아주 여유롭고 쾌적하게 관람이 가능했습니다만은... 참고로 한 입장타임의 정원은 300명입니다만, 각 입장타임 간격이 30분 밖에 차이나지 않아서 한 11시쯤 넘어가니 성 내부가 인파로 바글바글해졌습니다.

20250725_091609.jpg
오디오 가이드가 지시하는 대로 북쪽 건물과 서쪽 건물 사이의 윗 사진 계단을 올라가 미들캐슬 내부로 들어갑니다.  Restauracja Piwniczka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실제 영업하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왠지 비쌀 것 같아서 패스...

20250725_092110.jpg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은 의무실입니다.

20250725_092553.jpg
중세 시대 사용되었던 포탄.(왠지 레플리카의 느낌이 강하게 들긴 했지만...)

내부는 서쪽 건물을 따라 기사단장 궁전으로 연결됩니다.

20250725_093400.jpg
미들캐슬 내부의 가장 아름다운 공간 중의 하나인 대연회장.(Wielki Refektarz). 오디오가이드에서 제일 왼쪽 벽화의 갈라진 틈에 대해 꽤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던 것 같은데... 리스닝이 잼병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헸네요.

20250725_094032.jpg
기사단장 궁전 복도.

20250725_094218.jpg
그 다음에 등장하는 밝은 채광이 인상적인 공간은 여름 연회장(Refektarza Letni)입니다.

20250725_094514.jpg
바로 이어지는 겨울 연회장.

미들캐슬 동쪽 건물에는 여러 공간에 걸쳐서 중세~근세에 이르는 다양한 무기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튜튼기사단과 폴란드는 물론 이슬람 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기들이 감각적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으며,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꽤나 디테일한 설명이 제공되는 것 같았지만, 하나하나 다 살펴보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서 그냥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대충 둘러봤습니다.
 
20250725_095413.jpg
중세 기사들의 투구와 랜스.

20250725_095731.jpg
다양한 형태의 할버드류 무기들. 오른쪽으로는 피스톨들.

20250725_095920.jpg
폴란드 기병들의 다양한 보호구들.

20250725_100026.jpg
각종 검도류.

20250725_100114.jpg
이슬람 계열의 곡도.

20250725_100315.jpg
일부 스테인드 글라스는 상당히 현대적인 도안으로 복원되었지만, 중세의 성채의 예스런 실내 분위기와 나름의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미들캐슬에서 하이캐슬로 접어드는 통로 입구에는 튜튼 기사단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들을 만들어내었던 기사단장 4명의 등신대 청동상이 도열해 있습니다.

AVvXsEhzxx2NaKXh-Q8pUlZxD1jIiDfpLaaOAXY6r4bmoYjhJpTVyHCzRFfc0dgoHxGduUmiWKiHDWnN6gxda95YkLZ5yqzy0MDXxWQkcU6q5IXoxqWNanaImuGbKO8lrGY5xnRRcoyLXseXQbvs-WUn3aAk7GT4sCDbMx8zpOkfmVIxKFRg3a9PDTa-afDF-4tH=w640-h360
가장 왼쪽 인물은 4대 기사단장 헤르몬 폰 잘차.(Hermann von Salza, 1165년경 ~ 1239년) 십자군전쟁에서 활약했던 튜튼기사단은 아크레 함락이후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철수하게 되는데, 이후 헝가리 등등을 전전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게 됩니다. 오갈데 없는 이들을 거둔 것은 지금의 바르샤바 일대를 다스리던 마조프세(Mazowsze)공국의 콘라드1세(Konrad I: 1187~1247).  그는 1226년 이들을 호출해서 공국 외곽의 골칫거리였던 프루시인에 대한 토벌을 맡깁니다. 바로 당시의 기사단장이 폰 잘차. 즉 이 지역에 튜튼기사단의 첫발을 내디디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AVvXsEiZl3U4iudUlez8o_zd-7_xtw03rcKQzxUdTvpGsStKAHLXyM4ItvcK8YL8RwktgFQ3BEGuhOyXxuGzxK4GC82gX66y2x2G9-5Bd-TsSHDLew6PSsLOeco9Uht5T9XEHyGoS8ZV2icyHd3c9yIFEgblaAWIB6B85aEaif8-e0fNfQlzGb3V23nr8P9EX-QG=w640-h360
왼쪽 두번째는 15대 기사단장 지크프리트 폰 포이히트방겐.(Siegfried von Feuchtwangen, ? ~ 1311) 그는 130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던 기사단의 본부를 바로 이곳 마리엔부르크(말보르크)로 옮겨와서 튜튼기사단국의 본격적인 시작을 확립했던 사실상 국조와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AVvXsEhEyGIN6yCuy9Lcn5UoWbHdMdqBnImzf2E-YucF74GgG2inUWDNX1bTNOt1JhSTPa5FsVw_AQH7ElnjabHaOnEILVbUB7ZPuWxTU7TkIM_xswJGG_hg9CTnKOyy-dxGgryj-ChZ-4yG2Dkts948uumqAvA8dhR-DNT_VVgvJTEHendJvZGOK0HK6-jibWZA=w640-h360
왼쪽 세번째는 22대 기사단장 빈리히 폰 크니프로데.(Winrich von Kniprode, 1310년경 ~ 1382년) 1351년부터 1382년까지 무려 31년에 이르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 튜튼기사단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최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한마디로 튜튼기사단국의 세종대왕과도 같은 존재...

AVvXsEiPv9qbWf3x_7IDwm_yOsZjdWW1EbXI6KFWe-uMAvPAJtbhENkUSpsFggf5iCY1-vvWaYzNV-2Hs5LZ4VVy4JX9TQJ9aj4uBnOZ9zVJzplkF_rBeTEJhFpRugJshbMcZYITpg_VfagclAnMnG3ObqPaGK_sSrSe-c7NCyh1k0CvpRQc-bUE8s_ouROGG_VO=w640-h360
가장 오른쪽은 37대이자 마지막 기사단장인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안스바흐.(Albrecht von Hohenzollern-Ansbach, 1490~1568) 사실 그는 말보르크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튜튼기사단이 마리엔부르크(말보르크)에서 쫓겨났던 1466년보다 후대인 1511년에 기사단장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튜튼기사단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낸 인물이기에 당당히 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가 기사단장에 취임했던 무렵 튜튼기사단국은 폴란드 평원이나 발트해 연안에 대한 영향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쇠락 일로를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기위해 알브레흐트가 내린 결론은 튜튼기사단국의 국체를 세속국가 프로이센공국으로 완전히 환골탈태시키는 것이었죠. 그리고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프로이센공국을 독일어권 최초의 신교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쇠약해진 자신들의 체급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폴란드국왕을 섬기는 봉신국을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반세기 후 프로이센공국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동군연합으로 결합하면서 프로이센왕국으로 진화하였고, 결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손잡고 세차례에 걸쳐 폴란드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이 나라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20250725_101244.jpg
미들캐슬에서 하이캐슬로 연결되는 목제 다리. 다리를 지나 바로 하이캐슬 안뜰로 들어가도 되지만, 오디오가이드는 밑으로 내려가서 이른바 '장미의 길'을 통해 하이캐슬 외곽을 한 바퀴 들러보게 인도하더군요. 시간이 부족한 분들은 이를 무시하고 바로 하이캐슬 안뜰로 들어가시길...

20250725_102052.jpg
"장미의 길" 이름으로 봐서는 5월 쯤 장미가 피는 모양지만, 이미 때를 지나서 그냥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길 곳곳에 기사들의 묘비들이나 여러 석물들이 놓여 있지만.... 그냥 대충 훑어보고 패스....

20250725_101748.jpg
외곽에서 올려다본 하이캐슬의 남쪽 벽.

20250725_102551.jpg
하이캐슬의 안뜰. 오른쪽의 정자 같은 건물 안에는 이 성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있습니다.

20250725_105642.jpg
우물 두레박을 끌어올리는 목제 기계장치.

20250725_102958.jpg
중세 조리실과 식품창고를 재현해놓은 공간. 이외에도 방앗간, 대장간 등등의 공간들의 재현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250725_103202.jpg
하이캐슬 내부의 수도원 대회의실.

20250725_103413.jpg
미들캐슬의 중심이 기사단장 궁전이라면, 하이캐슬의 중심은 바로 이곳 성모마리아 예배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50725_103355.jpg
샹들리에 아래에서 앱스(apse 후진) 쪽으로 찍어보았습니다. 전쟁통에 무너지다가 남은 벽돌 부분과 후대에 개보수된 흰 콘크리트(?) 벽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20250725_103917.jpg
하이캐슬의 수도원 연회장.(Refektarz Konwentu)

20250725_104055.jpg
2층 복도에서 올려다본 중앙타워. 꼭대기에 올라가면 전망이 끝내준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이때 이미 발바닥에 불나고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는 상태여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포기...

시간에 쫓기다보니 일부 구역에는 들어가보기조차 못했고, 또 그나마 돌아본 것들도 대충 훑어보고 만 정도라고 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아내가 거의 탈진 직전 상태였고, 또  오후 일정이 걱정되어서 더 이상 말보르크성 탐험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성밖으로 철수...

20250725_111527.jpg
출구 화살표를 따라가다보니 미들캐슬과 하이캐슬을 연결하는 목제다리 아래쪽으로 지나가게 되더군요.

20250725_111626.jpg
동쪽 바깥뜰 너머로 보이는 쌍둥이 교량탑(Baszty Mostowe). 이름으로 봐서는 과거 이쪽으로 Nogat 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여있었나 봅니다. 과거 말보르크성은 Nogat 강을 통한 하상교역의 중심지로도 톡톡히 한몫을 하며 튜튼기사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문이 부두와 성채를 연결하는 통로였다고 합니다.

20250725_111901.jpg
출구로 향하는 바깥뜰에서 바라본 기사단장 궁전의 서쪽 파샤드.

20250725_112041.jpg
기사단장 궁전과 강변 인접의 서쪽 벽 사이에 자리잡은 거대한 나무 두 그루.

20250725_112109.jpg
이쪽 출구가 안내센터의 완전 반대쪽이어서 오디오가이드들 반환하러 다시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는데... 다행이도 이쪽 반대편 출구 쪽에 오디오가이드를 반환하는 주머니가 비치되어 있어서 정말 많은 걸음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20250725_112217.jpg
성채 밖으로 나와 강쪽을 향하면 목제 다리 하나가 놓여있는데, 그 입구에는 마리아넥이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군요.

20250725_112538.jpg
다리를 건너는 도중에 쌍둥이 교량탑 쪽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날이 흐린데도 역광은 역광이더군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말보르크성의 가장 유명한 포토스팟이 나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로르크성 외관의 상당수가 바로 이 다리 너머에서 성채를 바라보고 찍은 구도입니다. 위치를 바꿔가며 셔터를 난사했지만, 역광 때문에 만족스런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습니다.

20250725_112957.jpg
멀찌감치에서 한 컷...

AVvXsEiBJclL-13O6S0sVyGlj4vTQbs4m6dtoYBmhQ-35L1o2hUa5o13SGFVa8hctyJQxnkPcLkX28eLeuiNEB_1SX-gS_WAWw0Q2zK32lfW-5VQ1Yo5FhNznciX89zX1vCYG-fw-XUkyemdVUa0U64WfsaHozoWCEuLSjDx75ab3pLNo26TGw7gEF0PaoXY_l4U=w640-h360
줌으로 조금 땡겨서 한 컷.... (너무 어두워 살짝 명도 조절 했습니다.)

그단스크로 돌아가는 기차는 아침에 도착했던 말보르크 중앙역이 아닌 성채 바로 서쪽의 말보르크 카우도보(Malbork Kałdowo)역에서 떠나는 것으로 예매했습니다. 완행열차만 정차하는 작은 간이역이지만, 운좋게 시간대가 맞아서 말보르크 중앙역으로 멀리 걸어가는 수고를 덜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기에 앞서 역 바로 앞에 있는 식당(Bistro na Fali)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20250725_113927.jpg
Bistro na Fali 식당 정원에 놓인 목각 기사상.

20250725_113957.jpg
식당 야외석에서 강너머로 내다보이는 말보르크성.

이 식당이 폴란드식 족발인 골론카(Golonka)로 유명하다고 해서 일단 한번 시켜보았고, 그래도 둘이 왔는데 메뉴 하나만 딸랑 시키키 지레 눈치 보여서 폴란드식 내장탕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키(Flaki)를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이집의 하우스맥주 한잔과 아내는 펩시 한병까지.... 식대는 도합 51,400원... 이게 폴란드에서 우리 부부가 먹은 끼니 중에서 제일 비싸게 지불한 식사였습니다.(먹는 거에 지나치게 돈을 아끼다보니...ㅠㅠ) 골론카와 곁드리 감자튀김만으로도 배가 터질 지경... 플라키는 괜히 시킨 듯... 맛도 닝닝한 편이라 썩 입맛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1000019696%20(1).jpg
엄청 먹던 도중에 찍은 사진이라 좀 지저분하네요....

20250725_131846.jpg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말보르크 카우도보 역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플랫폼만 덩그러니 있는 간이역이더군요.

지정좌석도 없는 완행열차를 올라타고 그단스크 중앙역으로 출발.... 역마다 다 정차하다보니 올 때보다 거의 2배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말보르크 카우도보역에서 그단스크 중앙역까지 완행열차 요금은 1인 15즈워티. (대략5,620원)

하루의 절반 일정만 써도 이만큼이네요. 그래서 둘로 나눠서 게시할까 합니다.
다음 편은 이날 오후 그단스크 올드타운 일대를 돌아다닌 이야기입니다. to be continued...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cruithne
25/10/28 22:55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빨리 2편 올려주십쇼 크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7] 오호 20/12/30 316316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70499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77216 4
105306 [일반] 9박 11일 폴란드 여행기 Day 2-1. (data 주의, scroll 주의) [1] 강력세제 희드라541 25/10/28 541 1
105305 [정치] 미국의 대통령에게서 낯익은 향기가 느껴진다... [31] 빼사스6038 25/10/28 6038 0
105304 [일반] 아재가 본 체인소맨과 귀멸의 칼날 (약 스포) [34] theo3208 25/10/28 3208 2
105303 [정치] 나경원 "선거 때마다 중도 타령을 해서 우리가 망한다." [180] 전기쥐10729 25/10/28 10729 0
105302 [일반] 런던베이글뮤지엄 직원 과로사 사건 [174] 롤격발매완료10448 25/10/28 10448 12
105301 [일반] 자고 일어나니 재벌그룹이 해체됨 [32] 신정상화9420 25/10/28 9420 18
105300 [정치] 윤석열 "니가 뭔데! 내가 대통령이야!" [170] 코로나시즌11567 25/10/28 11567 0
105299 [정치] 서울 자치구별 30평대 아파트 수익률(CAGR:2006-2025년) 계산 [94] 바람돌돌이6027 25/10/27 6027 0
105298 [정치] '대북송금' 안부수, 규정 어기고 검찰청서 딸과 면회 [11] 베라히6168 25/10/27 6168 0
105297 [정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93] Neuromancer11593 25/10/27 11593 0
105296 [일반] [주식] 콩고기의 난 [52] 깃털달린뱀7195 25/10/27 7195 5
105295 [일반] 유동성의 파티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83] Hydra이야기8188 25/10/27 8188 3
105293 [정치] 코스피, 장중 4,000선 돌파…역대 처음 [237] 전기쥐11727 25/10/27 11727 0
105292 [정치] 자게 #105255. "돈을 번 아파트, 돈을 못 번 아파트 분석" 글에 대한 비판 [36] 달푸른5934 25/10/27 5934 0
105291 [일반] 9박 11일 폴란드 여행기 Day 1. (data 주의, scroll 주의) [6] 강력세제 희드라2922 25/10/26 2922 11
105290 [일반] 2025년에 가장 많이 들은 일본노래 [6] Pika484868 25/10/26 4868 0
105289 [일반] 램 3~50% 가격 상승에도 추가 상승 전망 [69] SAS Tony Parker 8548 25/10/26 8548 1
105288 [일반] [팝송] 도자 캣 새 앨범 "Vie" [3] 김치찌개4034 25/10/26 4034 2
105287 [정치] 보이지 않는 유권자/정치참여자가 된 그룹들 [51] 유동닉으로7836 25/10/25 7836 0
105286 [일반] 올해 5급 공채시험 수석/최연소 등 면면들 [46] 흰둥8254 25/10/25 8254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