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돌고래는 포유류지만, 중세시대에는 물고기 취급이었기에 사순절 시기에도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다. 돌고래(porpoise)는 돼지(porcus)와 물고기(piscus)가 합쳐진 고대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아예 바다돼지(mere-swine)나 바다멧돼지(seahog)로 불리기도 했다.
연회나 식사 때, 돌고래 고기는 데친 뒤에 얇게 편을 썰어 나왔으며, 때로는 국물요리에 돌고래 피가 들어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돌고래들이 해변에서 좌초된 채로 발견되었기에 극히 드문 일이었겠지만, 만약 신선한 돌고래가 잡힌다면, 돼지고기처럼 불에 구워서 먹기도 했다.
영국에서의 돌고래 사냥과 섭취는 본래 이방인들, 즉 바이킹이 들여온 풍습이었다. 10세기에 라틴어 교재로 쓰였던 앨프릭의 담화(Ælfric's Colloquy)에서는 바다에서 무엇을 잡냐는 질문에 청어herring, 연어salmon, 돌고래dolphins, 철갑상어sturgeon, 굴oysters, 게crabs 등을 잡는다는 답변이 쓰여있다. 그러나 노르만 정복 이후에도 돌고래를 즐겨먹었던 프랑스인들의 식습관이 이식되어, 영국에서 돌고래 고기는 식재료로서 중세 내내 여전히 각광받았다.
왜가리(Grey heron)
최근에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왜가리는, 백조와 함께 아주 귀한 고기로 여겨졌다. 15세기에, 사냥된 왜가리는 돼지 비계와 생강을 곁들여 먹었고, 16세기에 이르면 식초나 겨자를 추가적으로 뿌려 해체해 먹었다.
어떤 왜가리들은 새낏적에 둥지에서 훔쳐져 길러졌는데, 이런 왜가리들은 못먹는 짐승의 내장이나 도축된 떠돌이개의 고기 등을 먹으며 자랐다. 이렇게 길러진 왜가리들은, 17세기에 이르러서는 더 고급진 요리에 활용됐다. 뼈를 발라내고 고기를 다진 뒤 동물의 지방과 섞어내고 그걸 다시 각종 향신료로 양념한 뒤 삶거나 오븐에 굽는 미트볼 같은 음식이었다.
빵댕이모과
오늘날에는 양모과(medlar)로 알려져있는 오픈아스(openarse)는 말 그대로 '발랑까진 엉덩이'라는 뜻의 열매다.
사과, 배, 그리고 모과와 같은 장미과에 속하는 이 열매는 소아시아가 원산지로서,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중세시대 서유럽 과수원들 곳곳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열매에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 못지않게 상스러운 '개의 엉덩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학명에 독일(Mespilus germanica)이 붙는다는 점 또한 무시하면 안된다.)
이 열매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언급되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남녀의 성관계를 은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제 지금 그는 양모과 나무 아래에 앉아,
그의 연인이 그런 종류의 과일이 되길 바라노라
하녀들이 몰래 웃으며 양모과라 부르는
오 로미오, 그녀가 그러기를, 그녀가 그러기를
발랑까진 엉덩이(양모과)와 너, 넣어주는 배(pop’rin pear)여!
양모과는 겨울에도 먹을 수 있고, 보관성과 보존성이 모두 우수했기에 아주 오랫동안 유용하게 활용된 열매였다. 그러나 수확한 직후에는 아주 끔직하게 시고 떫으며 딱딱해서 블레팅(bletting)이라고 불리는 의도적인 과숙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렇게 썩히는 과정을 거치면 녹말이 과당으로 전환되어 달달해지고 신 맛과 떫은 맛이 극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양모과는 마치 우리가 홍시를 먹듯이 손으로 집어 쭉 빨아먹는 식으로 섭취되는 게 기본적이었다. 식후 와인과 곁들여 먹으면 각종 소화불량에도 도움이 되었는데, 최근의 의학적 연구 결과 또한 당대인들의 그러한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외에도 달걀 노란자와 섞어 걸쭉하게 끓이는 타르트나 잼으로도 활용되었다.
수탉맥주
중세인들은 술을 담글 때 살아있는 동물을 통째로 집어넣기도 했다. 심지어는 사람의 잘린 머리를 넣었다는 괴담도 있다. 확실히 살아있는 수탉을 넣은 맥주(cock-beer)나 갓 도살한 양의 피와 섞은 사과주(cider)는 중세기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으니, 사람이라고 못 넣었을까도 싶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먹는 담금주는 적어도, 어느정도 도수가 있는 상태에서 죽은 동물들의 진액을 침출시키는 경우다. 그러나 중세인들의 이 생물발효주는 아예 발효과정에서부터 살아있거나 갓 죽은 동물들을 집어넣기에 훨씬 그로테스크하다. 확실히 맛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중세인들부터가 이런 생물발효주의 맛이 끔찍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인간의 시체가 부패할 때에도 미량의 알콜이 발생한다.) 발효시키는 동물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흡수하기 위한, 주술적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수탉맥주는 점차 조리법이 재해석되어 그나마 먹을만한 것으로 변해갔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이상 수탉을 살아있는 채로, 그리고 생으로 넣지 않게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삼계탕이나 통닭과 비슷하게, (내장이 제거된 뒤) 어느정도 조리된 닭이 맥주에 활용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탉맥주는 무수히 많은 애호가들을 낳을 정도였다. 어쩌면 칵테일(cocktail)이라는 단어가 수탉으로 빚은 에일(cock-ale)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탯줄파이
농가의 짐승들이 새끼를 낳을 때엔, 새끼 이외에도 여러 부산물들이 딸려나온다. 그 중의 하나가 짐승의 탯줄이다. 중세인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탯줄을 굳이 버리지 않았다. 깨끗하게 씻어 소금물에 절인 뒤, 잘게 잘라서 양파와 함께 삶고는, 파이 속에 넣어 먹었던 것이다. 이 탯줄 요리는 마치 편육처럼 젤리같은 식감을 가지고 있어, 차갑게 먹는 방식도 유행했다.
집참새(Passer domesticus)
우리 집 앞에서 쉽게 볼수 있는 참새(Passer montanus)와 같은 과에 속하는 친척, 집참새(Passer domesticus)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귀여운 참새들이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종종, 이 귀여운 참새들을 귀리 덫으로 사냥해 잡아먹었다. 반죽을 만들어 그 속에 참새고기를 넣는, 일종의 참새만두를 만들어 먹기도 했고, 양념을 발라 꼬치에 꿴 뒤 통으로 구워먹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