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과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실험기구가 진공 유리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진공 유리관을 통해 X선과 전자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진공관, 백열전구가 탄생하죠. 그리고 오늘의 주제 중 하나인 CRT 모니터도 진공 유리관에서 시작됩니다.
- 생각해 보면 참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접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책상에 설치되어있었던 CRT 모니터, 어느 순간 얇아진 모니터는 LCD,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손담비의 AMOLED, 아이패드로 접한 MicroLED 등등. 되돌아보니 이렇게 발전이 빨랐나 싶기도 하고, 우리 곁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무지했다고 생각도 듭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이 글은 한국기계산업진흥회에서 발행하는 KOAMI Insight 매거진에 기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목차 -
Fig.1 최초의 디스플레이, 닙코 디스크
Fig.2 음극선의 발견과 브라운관의 탄생
Fig.3 전자식 TV
Fig.4 파나소닉의 잘못된 선택, PDP
Fig.5 LCD의 발전사
Fig.6 CRT의 마지막 반격
Fig.7 오늘날 대세 OLED
Fig.1 최초의 디스플레이, 닙코 디스크
전자의 시대 이전에 기계의 시대가 있었듯이 디스플레이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오늘날 디스플레이 이전에는 기계식 디스플레이인 닙코 디스크가 있었죠. 1884년 파울 고틀리프 닙코Paul Gottlieb Nipkow 가 발명한 닙코 디스크는 나선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금속 디스크가 회전하며 작동하는데요. 송신기의 닙코 디스크가 스캔한 대상의 위치별 밝기가 램프에 전달되고, 수신기의 닙코 디스크에서 이 밝기를 재현하여 영상이 표시되는 원리였습니다.
이 닙코 디스크가 상업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 가 닙코 디스크를 이용한 TV를 개발합니다. 1929년 영국의 BBC에서 기계식 TV를 위한 시험 방송을 시작하기도 했죠.
Fig.2 음극선의 발견과 브라운관의 탄생
닙코 디스크가 발명되는 시기 브라운관도 탄생합니다. 1859년 줄리어스 플뤼커Julius Plücker 와 그의 제자 요한 빌헬름 히토르프Johann Wilhelm Hittorf 은 진공관에 전극을 넣어 전류를 흘려보내는 실험 도중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는 광선을 발견합니다. 이 흐름이 음극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음극선’이라 불렀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음극선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요. 이로부터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게 됩니다. 전자의 존재를 밝히는 계기가 되었고, X선과 진공관도 음극선관에서 유래하죠. 그리고 1897년 페르디난트 브라운Ferdinand Braun 은 브라운관을 발명합니다.
브라운관은 음극선, 즉 전자의 흐름을 제어해 화면의 원하는 위치에 도달시켜 빛이 나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 장치가 발전되어 CRT 모니터가 되는 것이죠.
Fig.3 전자식 TV
브라운 관을 디스플레이에 사용할 생각을 한 것은 캠벨 스윈턴A. A. Campbell Swinton 이었습니다. 기계식 TV는 회전하는 디스크를 이용해 보여지는 장치였기 때문에 소음이 심하고 영상의 품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스윈턴은 닙코 디스크 대신 수신기와 송신기에 CRT 기술이 적용된 전자식 TV가 더 성능이 뛰어날 것이라며 1908년 네이처 지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합니다.
이러한 스윈턴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1927년 필로 판즈워스Philo Farnsworth 가 CRT 방식의 전자식 텔레비전을 발명합니다. 판즈워스는 기계식 TV에서 닙코 디스크가 하는 역할을 영상 분석기라는 기기로 대체했는데요. 영상 분석기에서 피사체의 상은 렌즈를 통해 광감응 판 위에 집광됩니다. 이때 피사체의 위치별 광량에 따라 방출된 광전자가 전기적 상을 만듭니다. 이 전기적 상을 전자기적으로 유도해 방향을 조정한 후 고정되어 있는 작은 구멍으로 통과시키면 뒤쪽의 양극으로 광전자가 입사해 영상 신호로 바꾸게 되는 것이죠.
1928년 공개된 판즈워스의 TV는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곧바로 상용화가 됩니다. 이후 CRT는 여러 기술적 발전을 거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점차 흔히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됩니다.
Fig.4 파나소닉의 잘못된 선택, PDP
오랜 기간 대세를 이어온 CRT의 문제는 부피가 크고 넓은 화면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자총을 쏴야하는 CRT의 구조적인 문제였죠. 따라서 많은 기업들이 CRT를 대체해 넓고 얇은 화면을 만들 수 있는 디스플레이 개발에 힘을 쏟습니다.
CRT를 대체할 디스플레이 중에서 가장 먼저 상업적으로 주목 받은 디스플레이는 PDPPlasma Display Panel 입니다. PDP는 기체 방전 시에 생기는 플라즈마로부터 나오는 빛을 이용하는 디스플레이를 말하는데요. PDP는 1936년 컬먼 티허니Kálmán Tihanyi 가 플라즈마를 이용한 평면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논문으로 발표하며 처음 등장합니다. 이후 1964년이 되어서야 도널드 비처Donald L. Bitzer 와 진 슬로토우H. Gene Slottow 가 제작한 PDP가 PLATO 컴퓨터에 사용되었죠.
초기 PDP는 이미지를 새로 고치는 데 메모리나 회로가 필요 없기 때문에 CRT보다 견고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CRT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반도체 메모리의 가격이 플라즈마보다 저렴해지면서 수요가 급감했죠.
그럼에도 PDP는 평판 디스플레이임에도 CRT에 버금가는 뛰어난 밝기와 빠른 응답속도, 광시야각, 대형화면 제작의 유리한 장점있어 고화질 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80년대일본을 중심으로 한 여러 업체가 PDP 개발에 뛰어듭니다. 1992년 후지쯔Fujitsu에서 최초로 풀컬러 21인치 PDP TV 양산한 것을 시작으로 PDP는 점차 시장을 점유해 나갔습니다. 2000년대 초 40인치 이상 TV는 대부분 PDP을 사용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파나소닉에서 PDP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2100억엔의 투자액을 들여 PDP 공장을 세웁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이미 LCD가 PDP 점유율을 넘어섰고, 시장은 완전히 LCD의 손을 들어줍니다. 파나소닉은 1조 5천억엔이 넘는 손해를 보고 2014년 PDP 사업에서 철수합니다.
Fig.5 LCD의 발전사
CRT와 PDP를 뒤이어 대세가 된 디스플레이는 LCD입니다. LCD는 CRT에 비해 비싼 가격, PDP에 비해 느린 속도로 인해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이 발전하며 가격이 저렴해지고 성능이 좋아지며 주류가 되었죠.
① 액정의 발견
LCDLiquid Crystals Display 는 액정Liquid Crystal 디스플레이를 말하며, 액정은 고체의 성질을 띠는 액체라는 의미입니다. 액정은 1888년 생물학자 프리드리히 라이니처Friedrich Reinitzer 에 의해 발견되었는데요. 식물의 콜레스테롤을 연구하던 라이니처는 콜레스테롤과 연관된 유기물질이 녹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145.5℃에서 탁했던 액체가 178.5℃에서는 맑은 액체로 변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오토 레만Otto Lehmann 이 이 액체가 고체결정처럼 빛을 편광시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액정이라고 명명했죠.
② LCD의 시작
액정이 디스플레이로 사용되게 된 것은 1962년 RCA의 리처드 윌리암스Richard Williams 가 얇게 바른 액정에 전기를 흐르게 하면 분자 구조가 움직여 광학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발견을 하면서부터입니다. 1964년에는 또 다른 RCA 연구원이었던 조지 하일마이어George Heilmeier 가 액정에 높은 전기장을 가하면 빛이 강하게 산란되는 동적 산란 모드(DSM)을 기반으로 하는 최초의 액정 디스플레이를 발명합니다.
③ 상온에서 작동하는 LCD
DSM이 발견될 당시 사용된 액정 물질은 117℃에서 134℃ 사이의 온도에서 액정 상태가 되었습니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액정 물질로 찾은 것이 시프 염기Schiff base 였는데요. 시프 염기는 쉽게 가수분해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1971년 옵텔Optel 과 마이크로마Microma 에서 출시한 DSM 방식 디지털시계 역시 시프 염기의 가수분해 문제로 금방 작동을 멈췄죠.
시프 염기의 가수분해 문제 뿐만 아니라 DSM 자체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DSM은 명암비가 낮고 컬러 영상을 표시할 수 없었습니다. 1970년 볼프강 헬프리히Wolfgang Helfrich 가 전기장을 가해 액정의 배열을 재정렬함으로써 빛의 양을 제어하는 방식을 개발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를 트위스티드 네마틱(TN) 모드라고 하죠.
1973년에는 영국의 RRE와 헐 대학교 팀이 TN 모드를 기반으로 시아노바이페닐 액정을 합성해 시프 염기의 단점을 해결함으로서 LCD의 첫 상업적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같은해 TN 모드와 아조옥시Azoxy 화합물을 사용한 스와세이코SuwaSeiko 는 최초의 상업용 LCD 디지털 시계를 출시했습니다.
④ 삼성과 중국이 만들어낸 LCD 대중화
하지만 TN모드는 주로 시계와 같은 숫자 표시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주사선이 60개가 넘어가면 사용이 어려웠기 때문이죠. 이후 STNSuper Twisted Nematic LCD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 역시 240개의 주사선이 한계였습니다.
이 문제는 1968년 RCA의 버나드 레크너Bernard Lechner 가 각 액정의 화소마다 트랜지스터를 배치하는 TFTThin Film Transistor LCD를 발명해 해결합니다. TFT LCD는 화소가 하나하나 제어될 수 있어 응답속도가 빠르고 명암비도 높아 액정 디스플레이의 품질이 극단적으로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죠. 이후 70년대에는 TFT 물질의 개발이 이루어져 점차 큰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1988년 샤프에서 14인치 풀컬러 LCD를 발표하며 LCD의 상업적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며, 많은 기업이 LCD 개발에 뛰어들죠.
특히 삼성에서는 TFT-LCD에 1994년부터 200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면서 LCD 생산의 선두가 되죠. 2000년대 초에는 중국의 BOE가 SK하이닉스의 LCD 사업부를 인수함으로서 중국이 LCD 제조에 뛰어듭니다.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없고 LCD 가격을 획기적으로 줄입니다. 이로 인해 LCD의 보급이 더욱 빨라졌고, 2007년 LCD는 CRT의 점유율을 넘어서게 됩니다.
Fig.6 CRT의 마지막 반격
LCDliquid crystal display나 PDPplasma display panel와 같은 얇은 디스플레이가 등장하자 시장 점유율이 밀리던 CRT 진영에서는 얇은 CRT 모니터인 FEDField Emission Display 를 개발합니다. FED는 미세 전자총을 화소별로 단 것으로, 두께는 약 1mm에 불과했죠. 하지만 이미 시장을 장악한 LCD가 있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FED는 결국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Fig.7 오늘날 대세 OLED
LCD이후 대세 디스플레이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디스플레이는 OLED입니다. 특히 삼성에서 OLED를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내세우면서 오늘날 TV, 스마트폰 등 다양한 곳에 OLED가 널리 쓰이고 있죠.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를 풀어쓰면 ‘스스로 빛을 내는 반도체 소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OLED 기술은 196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 에오신Eosin 이 형광을 방출하는 것을 발견하고, 안트라센Anthracene 결정에 전압을 가해 발광하는데 성공합니다.
OLED의 상업적 가능성은 1987년 코닥의 당칭완Ching W. Tang과 스티븐 밴슬라이크Steven Van Slyke가 10V 미만에서 녹색 빛을 발광하는 OLED 소자를 발명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OLED는 자체 발광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LCD처럼 백라이트, 액정, 컬러필터 등이 필요하지 않아 LCD보다 더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휘게 만들 수도 있죠.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많은 기업에서 OLED 기술 개발에 뛰어듭니다.
OLED는 구동 방식에 따라 PMOLED와 AMOLED로 구분되는데요. PMOLED는 OLED를 가로세로로 배열한 후 각 행과 열에 전기를 넣어 빛을 내는 간단한 방식으로 1996년 파이오니아에서 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PMOLED는 구조가 간단해 저렴한 장점이 있지만, 고해상도 대형 화면 구현이 힘들었죠.
반면, AMOLED는 각 픽셀에 해당하는 박막 트랜지스터Thin Film Transistor 가 있어 OLED를 각각 제어하는 방식으로 고해상도 대형 화면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삼성에서 최초로 AMOLED 양산에 성공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합니다. 2013년에는 LG에서 최초로 55인치 OLED TV를 출시하면서 대형 OLED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이처럼 OLED 시장은 한국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LCD는 중국이 점유하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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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톺아보기] ① 디스플레이 기술의 기원 Part.2. 삼성뉴스룸.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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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CD철수①] '글로벌 삼성' 토대 만든 LCD, 30년만에 역사 뒤안길로. 디지털데일리. URL :
https://m.ddaily.co.kr/page/view/2022060209322499311- 오윤정. (2023).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현황과 미래전략. KISTEP 수요포럼 포커스 제15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