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0/25 10:03:38
Name 식별
Subject [일반]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청어잡이4.jpe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청어가 회유 경로를 바꾸자, 네덜란드가 새로운 청어 상업망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본래 북유럽의 스코네 해안에서는 연안에서 끓어 넘치는 청어를 퍼올려서 곧바로 인근의 항구에서 가공을 하는 간단한 과정을 거쳤다. 반면 환경이 따라주지 않은 네덜란드인은 더 어려운 방식을 울며 겨자먹기로 채택해야했다. 청어가 앞 바다에 알아서 오길 기다리지 않고, 직접 먼 바다의 청어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던 것이다. 



 이것은 기실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었으나, 회유 경로가 바뀐 지금은 기회가 되었다. 자연은 무시무시한 변덕을 부려 (스코네 어시장과 뤼베크 자유시의 번영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인간들은 그 변덕 이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준비는 환경의 유불리마저 뒤집을 수 있다. 마치 서쪽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지리 상의 발견을 주도 한 뒤 자신들의 환경을 '신대륙에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로 바꾸어 놓았듯.



Een_haringbuis_Een_schip,_mogelijk_een_haringbuis,_RP-P-2014-30.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2011_01_03_Mus._Hus_Heringsbuise_DSCI0074_k.jfif.ren.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15세기에 새로 도입된 뷔스(buss)라는 원양 어선은 대선단을 이루어 장관을 펼쳤다. 이 배들은 길이 약 20m에 배수량은 거의 100톤에 달하지만 무엇보다 민첩하고 안정성이 높았다. 





Konvoi_Haringvloot.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해군의 호위를 받는 선단


 뷔스 선단은 무려 400~500척 규모로 어장에 향했는데, 타 국가(특히 영국)의 어선 나포를 방지하기 위해 해군 선박의 호위를 대동하였다.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국운을 건 위대한 어업(Great Fishery)이었다. 


 뷔스 선단은 이동하는 청어들을 따라 스코틀랜드 북부의 셰틀랜드 제도에서 시작하여, 영국 동해안에 위치한 도거 뱅크와 도버 해협을 거쳐 아일랜드 인근 해역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움직이며 조업을 했다. 그렇게 잡은 청어는 곧바로 갑판 위에서 내장이 제거되어 보존성을 높였다. 



청어잡이1.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청어잡이2.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청어잡이3.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청어의 바닷길을 따라 형성된 어시장 근처 모래벌판 각지에는 임시 움막이 세워져,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이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해서 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숙달된 작업자들은 무려 1분에 청어 40마리의 내장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도 평생 불구가 될 수 있었다. 


 점차 네덜란드의 여러 어촌들이 서로 연합하여 대어장에서의 어획, 보존, 그리고 유통 일체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십수명 가량이 승선할 수 있는 뷔스는 17세기초에 이르면 무려 800여 척이었고, 청어잡이에 종사하는 어부의 수만 하더라도 1만에 육박했다. 한 해에 3만여 통이 넘는 청어가 쏟아져나왔다. 


 네덜란드의 청어 어획은 국책사업이니만큼 체계적이고 철저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정부와 어업협회는 청어잡이에 대한 세세한 규칙을 하나하나 지정하여 품질을 보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통에 청어를 몇 마리 담는지는 물론이고, 그 통을 어떤 크기의 널빤지를 몇 개 사용하는지, 그물눈의 크기는 어느정도여야하는지 모든 것이 규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네덜란드는 청어 뼈 위에 건설되었지만, 청어 어업은 네덜란드에 의해 주조되었다.



사전회사.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사전회사1.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네덜란드인은 청어 무역으로 얻은 이익을 다른 영역인 대서양의 노예 무역, 동방의 향신료 무역, 그리고 금융업에 재투자하였다. 스페인으로부터의 속박을 끊고 독립하는 과정(80년 전쟁)에서 네덜란드인은 갖가지 사전회사(社前會社, Voorcompagnie)들을 설립하여 이익될만한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들쑤시게 되었다. 어떤 사전회사는 포르투갈의 후추 무역 독점을 파괴하는 데 전념했는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네 배로 돌려주었다. 





The_courtyard_of_the_Beurs_in_Amsterdam,_by_Emanuel_de_Witte.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Bartholomeus_van_der_Helst,_Banquet_of_the_Amsterdam_Civic_Guard_in_Celebration_of_the_Peace_of_Münster.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1920px-Een_aantal_Oostindiëvaarders_voor_de_kust_Rijksmuseum_SK-A-3108.jpe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동인도회사 본사.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동인도 회사 본사


 17세기는 이름하야 네덜란드 황금기(Dutch Golden Age)였다. 1602년, 정부 주도하에 여러 사전회사들이 헤쳐모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가 설립되었으며, 그 직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출범하여 전국민의 투자를 촉진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훗날 자체적인 주화를 주조하고, 독자적으로 식민지를 전개하고,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자들을 처형시키는 등 국가에 준하는 권력을 휘두르며 아시아의 해외 무역에서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무릎 꿇릴 터였다. 


 그러나 영국은 자기네들 앞바다에서 부를 싹쓸이 해가는 네덜란드를 가만 보고 있지 않았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항해조례(Navigation Act 1651)를 선포하였다. 항해조례는 콕 짚어 '외국 선박이 절인 생선을 수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위반하면 몰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청어를 빼앗기느니 전쟁을 선택했다. 



Battle_of_Scheveningen_(Slag_bij_Ter_Heijde)(Jan_Abrahamsz._Beerstraten).jpg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끊임없는 영란전쟁, 네덜란드 패권 몰락의 시작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윤석열
24/10/25 10:21
수정 아이콘
애드워드리 셰프가 좋아하겠네요
페스티
24/10/25 10:22
수정 아이콘
시드마이어 콜로니제이션 하면서 네더란드가 그정둔가...? 했었는데 해상강국일 수 밖에 없었군요
답이머얌
24/10/25 10:25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나라 맞추어서 기분이 업!

영란전쟁시 네덜란드가 이겼더라면 세계사 자체가 엄청나게 바뀌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대영제국은 탄생하지 않았을테니까요.
24/10/25 10:35
수정 아이콘
3차까진 네덜란드가 이기고 실속은 다 챙겼는데 4차에선 이미 프랑스-스페인에 육지의 본진이 탈탈 털리고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서 막타를 맞은...
HA클러스터
24/10/25 11:02
수정 아이콘
4차영란전쟁 시기에는 이미 너무 국력차가 벌어져서 IF가 성립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4차때는 영국해군이 전세계 최강이었고, 네덜란드는 프랑스에도 못미치는 2류이하로 전락했기에 가령 기적적인 한타대승을 해서 네덜란드 함대가 이겼다고 해도 영국은 계속해서 그보다 더 강한 함대를 계속 보낼 수 있었고 육상에서도 자기들보다 더 강한 프랑스를 어찌 해볼 수가 없었죠.
그냥 국력이 쇠해서 진거라 어떻게 짱구를 굴려도 세계사가 바뀔 각이 안보이네요.
24/10/25 10:28
수정 아이콘
청어 이야기만큼이나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네요
샤한샤
24/10/25 10:31
수정 아이콘
물코기 이야기 재미있더라구요
바이킹들이 캐나다 발견한거부터 시작해서..
https://youtu.be/kLJRHAp4yck?si=Q6owF6I8Dx6Ae6eu
관심있는 분들은 이 영상도 한번 보세요 zz
24/10/25 10:31
수정 아이콘
암스테르담이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죠.
트롬프: 메잌 홀란드 그레잇 어겐!!
영란전쟁 기대됩니다! 얼른 다음편을!!!
라방백
24/10/25 10:42
수정 아이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도 수백년간 지속하면서 동남아시아를 거의 다 먹은 거의 시대의 패자 느낌이던데요. 명목상 회사 해산 이후에는 본토랑 관계없이 제국주의 열강처럼 활동하기도 했던데... 그동네가 세계 역사에서 주류로 올라온적이 없어서 그런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더라구요.
TWICE NC
24/10/25 10:52
수정 아이콘
튤립에 손을 대는데
힘내요
24/10/25 11:05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
설탕가루인형
24/10/25 11:05
수정 아이콘
너무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24/10/25 11:19
수정 아이콘
벌거벗은 세계사를 봐서 제목보고 맞췄어요 크크
절충절충
24/10/25 11:22
수정 아이콘
너무 재미있는 글이네요
VictoryFood
24/10/25 11:31
수정 아이콘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배가 생각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배와 항해의 특징은 혼자서 못하고 큰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배가 침몰하면 한번에 쫄딱 망할 위험이 있다는 거죠.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주식이나 보험등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동양은 공도정책 등으로 항해를 제한하고 서양은 대항해시대 등으로 항해를 장려한게 근대 이후 동서양이 차이가 나게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안군시대
+ 24/10/25 13:17
수정 아이콘
근래의 자유무역, 세계화까지 연결되는 엄청나게 큰 역할인듯 하네요. 거기 맞물려서 은행, 보험, 주식 등등도 다 연결되고요.
지금도 해운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세계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걸 봐선, 말씀대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큰 축인 듯 합니다.
에이치블루
24/10/25 12:00
수정 아이콘
선생님 또 끊으셨어요 이렇게 재밌는걸.... 다음편요 선생님 급합니다,..
그럴수도있어
24/10/25 12:08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쟀밌어요!
나무위키
+ 24/10/25 12:31
수정 아이콘
절단마공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빨리 다음편좀ㅠ
탄산수중독
+ 24/10/25 12:54
수정 아이콘
너무 흥미진진 .... 다음편 기원합니다
안군시대
+ 24/10/25 13:18
수정 아이콘
아니 선생님 또 절단신공을... 어디다가 입금을 해야 이후분을 볼 수 있습니까? 크크
아케르나르
+ 24/10/25 13:26
수정 아이콘
대향해시대 온라인 마렵네요... 흐흐.
메가트롤
+ 24/10/25 13: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71924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39712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61694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35341 3
102526 [일반] 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23] 식별3749 24/10/25 3749 14
102525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4. 나그네 려(旅)에서 파생된 한자들 계층방정824 24/10/25 824 2
102524 [일반] 그냥 꽃사진/꽃사진/더 많은 꽃사진 - 안성팜랜드/나리농원 후기(스압, 데이터 주의) [1] nearby1175 24/10/25 1175 1
102523 [일반] 뉴욕타임스 9. 3. 일자 기사 번역(자유무역이 미국 노동자와 정치에 미친 영향) [11] 오후2시2728 24/10/24 2728 4
102522 [일반] 주가로 보는 삼성전자의 최근 상황 [45] 뜨거운눈물7398 24/10/24 7398 5
102521 [정치] 국정감사 중 G식백과 김성회 발언 전문 [28] larrabee6203 24/10/24 6203 0
102520 [일반] 광군제를 기다리는 겜돌이 아조씨 알리 후기 [27] Kusi4384 24/10/24 4384 3
102519 [일반] 파워 P+오타쿠의 일본 오사카 여행기-2 (스압) [9] 시랑케도2115 24/10/24 2115 10
102518 [일반] 청어는 어떻게 북유럽의 밥도둑이 되었나 [52] 식별6618 24/10/24 6618 52
102517 [정치] 국힘 "나무위키, 남미처럼 통제해야" 전체 차단 주장까지 나왔다 [87] 전기쥐9406 24/10/24 9406 0
102516 [일반] (스압)와인을 잘 모르는 분을 위한 코스트코 와인 추천(2) [31] Etna4341 24/10/24 4341 29
102515 [일반] 관심 전혀 없는 상태여도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생각나는 좋은 음악들 [6] 시나브로4000 24/10/23 4000 0
102514 [일반] IMF의 2024 GDP 예상치가 공개되었습니다. [41] 어강됴리5866 24/10/23 5866 5
102513 [일반] <베놈: 라스트 댄스> - 딱 예상만큼, 하던만큼.(노스포) [14] aDayInTheLife2596 24/10/23 2596 0
102512 [일반] 요기요 상품권의 피해자가 될 줄 몰랐네요(티몬사태관련) [8] 지나가는사람5675 24/10/23 5675 2
102511 [일반] 천재와 소음 [5] 번개맞은씨앗2771 24/10/23 2771 7
102510 [일반] 중세 러시아에는 영국인들의 식민지가 있었다? [37] 식별4853 24/10/23 4853 20
102509 [일반] 에어팟4 구매 (feat TQQQ 각인) [26] 오징어개임5003 24/10/23 5003 0
102508 [일반] PGR21 자유게시판은 침체되고 있는가? [169] 덴드로븀10110 24/10/23 10110 3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