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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2/17 15:09:18
Name 진리탐구자
Subject 사랑해야 할까요...
갑자기 센치해져서 되는대로 글을 휘갈겼습니다. 글을 써놓고 보면서 글을 쓸 때의 저의 심정과 모습이 타자화 됩니다. 신기한 현상이네요.
글을 쓴 이후에는 그것이 더 이상 '나'가 아니라 또다른 '남'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마치 부모가 독립하는 자녀를 보는 듯한 심정이랄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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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이었어. 변화를 추구하므로, 개선을 원하므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눈 것이었으며, 인과 관계를 반대로 설정한 것이었어. 즉, 사람을 사랑하므로, 부조리에 저항하고 변화하고 개선을 원해야 하는 것이어야 했어. 그리고 사랑, 다시 말해 타인을 나의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변화를 추구하는 원인이어야 했어. 인간에게 있어서는 목적이 행동의 원인이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 대관절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할 때 훨씬 행복감을 느껴. 그게 부질없는 것이라고? 세상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지?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만족감을 많이 가져다 주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아닌가?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관계를 충실함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사랑해야 한다고? 물론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상대방을 자신처럼 여기고 서로가 서로를 자아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는, 경계를 해체하는 변증법적인 이해와 사랑, 합일의 관계'라는 거창한 관계를 맺지 않고도 사람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한 마디로 이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관계와 구체적인 관계 양태를 혼동한거야.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절대 다수 - 100%에 거의 수렴하리라 보는데 - 는 관계를 아예 안 맺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영위하며 살고 있잖아? 가령 술집 주인과 나의 관계처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죽었나? 아, 죽기는 죽었군. 수명이 다해서. 사람을 사랑하면 수명이 늘어나나? 헛웃음만 나오는군.

악에 대한 항거? 애초부터 뭐가 악한 것이지? 세상에 도덕률이란 것이 있어? 절대적인 선이 있을까? 왜 착취가 나쁜데? 왜 살인이 나쁜데? 왜 불평등이 나쁜데? 왜 남성중심주의가 나쁜데? 결국은 임의적이고 가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판가름 한 것 뿐이잖아. 비실증적이고 비과학적인 기준이라는 점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다를 게 없잖아. 혹시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 따위가 도덕률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같잖은 작자를 보거든, 나는 입 닥치고 국가 보안법이나 지키라고 쏘아 붙여 주겠어. 아님 식인종 국가로 가서 사람이나 잡아 먹으며 살거나. 그것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것 아닌가?

감수성도 없냐고? 물론 없진 않아. 감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존재 - 인간이 아니라 - 가 있을까? 근데, 감정이라는 존재 법칙과 사랑이라는 당위 법칙이 어떻게 이어지는 거지? 예를 들어보자. 책은 파랗다. 그러므로 책은 파래야 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마찬 가지야.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말이 안 돼. 자연주의적인 망상일 뿐이야. 차라리 동물처럼 약육강식을 인정하며 사는 게 훨씬 철저하고 충실한 자연주의 아니야? 뭐 그렇다고 인육에 대해 구미가 당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겠어. 뭔가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많이 있어. 그래서 많은 것을 바꾸고 싶긴 해. 하지만, 난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바꾸고 싶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이야. 큭큭. 결국은 개인적인 신념이라는 점에서 종교와 다를 바 없지. 남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남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타인을 인정할 수 없어. 그게 내 한계야.

지금까지는 억지로 사랑이라는 당위로서의 기준을 설정해 놓고 나를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헛도니 노력을 - 실질적으로 노력을 한 것은 없지만 - 했다면, 지금부터는 나에게 충실할 거야. 유치하다고, 독선적이라고, 한심하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어. 개인적인 신념이니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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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17 17:26
수정 아이콘
변명, 궤변... 솔직하기 싫을때 사용하는것들이죠.
다른 누구에게 보다 자신에게 정직해지기가 가장 힘든것같습니다.
내공을 길러야해요.. 레드썬..;
작은행복
06/12/18 01:11
수정 아이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당.~
생각 짧은 저-_- 저만 그래도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네요..
살인, ,착취 ,무법자 등이 허용되지 않는건 단순히 사회적으로 합의된 도덕률(-탐구자님 말씀을 빌자면 -사실은 뚜렷이 지켜야 할 근거가 없는) 때문이 아니라 , 타인의 행복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윗 문단에서 탐구자님이 언급하신 구절
-대관절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할 때 훨씬 행복감을 느껴. 그게 부질없는 것이라고? 세상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지?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만족감을 많이 가져다 주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아닌가?-
이 부분에 답이 나와있는 거같은데요,
탐구자님께서 -위 글에 쓰셨다시피-,삶의 행복을 추구하시는 건 부정할 수 없으시겠죠? 그렇다면 당연히 남의 행복을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 된 것입니다. 도덕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타인의 행복에 대해선 고려 안하신다면 타인 입장에선 님이 바로 타인이될텐대요??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저 같은 경우는 제 행복을 위해서라도
지키고 싶네요. 책읽고 있는데 누군가 칼들고 뛰어들어와서 저를 찔러도 된다면, 그건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_-;;
(올해 수능 친 머리가 텅텅빈 말년 수험생이지만 -_-; 저도 대학가면 꼭 철학 공부 하고싶네요~ 두근두근..)
작은행복
06/12/18 01:1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열심히 읽었습니다.생각도 해보고요 .~ 글 써주신 거
잘 읽었습니다~
진리탐구자
06/12/18 08:44
수정 아이콘
작은행복님//저도 그건 두려워 하긴 하지만,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도 간혹 있겠죠. 타인을 존재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는 세상에 충분히 많으니까요. 애초에 서로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로 도덕률이 설정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행복을 침해하는 행위는 도처에 널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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