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6/11/03 19:38:53
Name 퉤퉤우엑우엑
Subject [E-야기] 꿈, 항상 잠들며 언제나 깨어있는 ─ 강민
이 이야기는 픽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


그 곳은, 여느 때와 같은 교실의 모습이었다. 날라가 연 문은 교실의 뒷문인 것 같았고, 아이들은 소곤소곤 떠들고 있었다. 아직 어떤 선생님이 와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 바로 옆사람과만 조용히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날라는 이 모습이 여름방학기간 동안의, 즉 오늘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은 아마 미래. 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설명 안되는 현상이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이런 장면을 보아 왔기 때문에, 이젠 느낌으로 '그것' 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날라의 느낌에, 이번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라는 천천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날라가 '이 장면' 을 볼 때──'미래' 라고 생각되는 이 장면을 볼 때, 자신의 행동이 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는 적은 없었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날라의 반투명한 몸이 닿으면 그대로 통과 됐다. 날라는 설마 이 방을 교실로 꾸민 것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빈 의자를 만져 보았다. 그대로 통과. 의자를 만졌다는 감촉은 없고, 팔을 움직였다는 느낌만이 전해진다. 날라는 그것으로 이것은 확실히 자신만이 보는 '그것' 이라고 생각했다.

의자를 바라보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교실 안을 다시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첫 역사 수업 때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세 사람이었다.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정신을 차린 듯한) 우브, 오른쪽에 앉은 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왜인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날라는 가서 위로를 해주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겼지만, 순간 앞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기에 그 쪽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에 책을 들고, 이번에도 역시 청바지에 파랑색 계통의 반팔티 하나만을 입은 청년. 여전히 학생들이 조금은 적응되지 않은 얼굴로 책을 펴고 있는 걸 봐서, 그건 역사 수업이 분명했다.

"책은 없어도 됩니다."
각 학년마다 다른 책에, 다른 쪽수를 펴 놓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제이콥이 말했다. 학생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 전설 이야기를 계속 할테니까요. 말하지 않았나요?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날라는 뒤에서 보고 있었기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로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모두가 책을 어느 정도 정리한 듯 하자, 제이콥이 말을 꺼냈다.
"이번엔 빠르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잠들기 전에 말이죠."
그 말에, 교실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꿈틀했다.



어두운 밤 하늘 위로 축포가 터진다.
그 아래에, 수많은 관중들은 승자를 위한 환호성을 지르거나, 패자를 위한 아쉬움을 내뱉는다.
그 환호성은 끊이지 않고, 커다란 목소리로 승자의 이름이 불려진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승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무대로 나타나자, 조금 잠잠해지던 환호성의 소리가 다시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른 한 사람이 또 다시 나타나자, 더 큰 환호성이 들렸다. 누가 승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이어 몇 사람이 더 올라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손에는 투명한 하얀 빛깔의 트로피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트로피는 승자의 손으로 건네졌다. 승자는 그 트로피를 받고서는, 양손으로 그것을 받쳐 들었다.
승자는 자신에게 들려 있는 트로피를 안경 너머로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들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 트로피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차가운 것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아니면 마치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이.
그리고는, 서서히 눈을 떴다.
눈을 뜨고는, 고개를 들고 마치 이제서야 그 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주변을 보았다. 여전히 계속 되는 환호성을 듣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를 보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트로피를 높이 들어 보였다. 커다란 함성이 들린다.
동시에, 잇몸을 드러내고 씩 웃는다. 아까까지의 표정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잠에서 깨어있었다.



인정하지 않았다.
머신이라는 천재를 이겼을 때도, 우연이라고.
그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 했을 때도, 우연이라고.
황제에게 승리해도, 우연이라고.
누군가에게 승리할 때마다, 그건 우연이라고 여겨졌다.

그것은 즉, 그가 승리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정해진 대로'. 그렇게 승리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였고, 실력으로의 승리였다.
그 외의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우연'. 긍정적으로 적어도 '도박'.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기지 않는 것은, 승리로 일컬어지지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승리는 '전략' 으로 불렸다. 그가 승리하는 것은 전략에 의한, 전술에 의한 승리로 압축 됐다.
그에 따라서, 그는 전략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두 명의 커다란 테란에게 승리했어도, 그에게 붙은 이름은 전략가라는 껍데기 뿐.
모두의 생각에서, 그는 안정적인 모습을 펼치지 못했고, 그가 하는 경기는 모든 것이 우연과 우연이 연속이며, 도박의 성공이었다.

한낱 전략가.

혹자들은 말했다. 그가 승리하는 것은 바로 그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수많은 연습과 노력의 결과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우연으로 일축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 조차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의 시선에, 그의 경기는 항상 조금의 운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단순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꿈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전략가가 아닌,
꿈을 꾸는 자(夢想家)라는 것을.



그들에게 강민이라는 존재를 입증하는 기간은 길었다.
그들에게 몽상가라는 존재를 입증하는 기간은, 길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사고방식이자 가치관을 고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자존심을 고치게 한다는 것은.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그것은 종결 된다.
환각으로.
그리고, 강민으로.

환각(Hallucination)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지했거나, 혹은 인지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대개의 경우 개인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모두가 보이지 않고 느끼지도 않지만 한 개인만이 느끼는 환시, 환청, 환미, 환취, 환촉. 그것을 통틀어서 환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만이 환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했다고 믿는 것이 환각이라면, 강민이라는 환각은 정의에 들어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만이 환각이 아닌 것의 이유는, 그가 개인에게가 아닌 모두에게 환각 아닌 환각을 보여주었기 때문───
──그리고, 그가 보여준 것이 환각이 아닌 이유는, 분명히 실제로 존재하던───
──어떤 꿈이었기, 때문에.



2004.8.5

무수한 탄성 소리.
무의식 중의 소리를 지르는 해설진.
그것을 만들어내는 어느 하나의 환각──아니, 꿈.
단 한명의 몽상가가 보여준, 자신의 꿈.

모두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단 두 개의 아비터로는, 저 테란을 뚫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동안 강민이라는 사람의 경기를 무수히 보아 왔음에도, 그 순간에 그를 '전략가' 로서 생각했던 것이겠지.
그의 경기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던 것이라고 여겨졌다.
단지 도박적일 뿐이고, 단지 무모할 뿐이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모두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 지형에서 아비터를 생각한 것은 비단 강민만이 아니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프로토스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강민은 그것의 실패를 맛본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정작, 그 본인은 역으로 자신들을 비웃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아주 짧았던,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그것을 위해 준비했던 그 경기의 나머지 시간, 그 전의 연습, 그 전의 구상.
그 모든 것은 1분 남짓한 시간을 위해서 쏟아 부어졌다. 1분 간의 꿈의 구체화를 위해서.
하지만 그 1분 간의 꿈은, 모두가 더 오랜시간 동안 가져왔던 가치관을 유지시키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를 인정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Stout라는 것으로 길던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깨어있다. 깨어있다고, 모두가 믿고 있다.
그가 다시 잠들면, 언제 각성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잠들면, 다시는 그 꿈을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모두는 그가 깨어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혹자들은 말한다. 그가 잠들면, 더 멋진 꿈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겠냐고. 우린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그들은, 자신들이 몽상가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몽상가 본인은 그들을 다시 한번 비웃으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들은 강민이라는 사람은 이해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라고 하는 꿈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요.」

그가 잠들면, 정말 더 멋진 꿈을 가지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꾸고 있다.
잠들 필요는 없다. 그 자체가 꿈이기에, 잠들게 되면 오히려 꿈을 꾸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깨어 있다. 그리고 항상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잠들더라도 아무 상관 없다.
그가 잠든다면, 우리가 그의 꿈을 꾸며, 언제까지라도 기다리면 될테니까─────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6/11/03 22:41
수정 아이콘
강민 어제 1경기는 정말 전율이었는데...
Peppermint
06/11/04 05:11
수정 아이콘
아..이 멋진 글에 왜 이리 댓글이 없나요ㅠ_ㅠ
너무나 싸이키델릭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입니다. 저린 마음을 치유해주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퉤퉤우엑우엑
06/11/04 06:15
수정 아이콘
rakorn///그러고보니, 이 글을 쓴 타이밍이 마재윤선수와의 4강전과 비슷한 시기군요.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글이 강민선수의 응원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더라도 별 상관은 없으려나요^^;;

Peppermint///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로 찾아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6743 아 네이버 미워할꺼야.. T_T [20] 이승용4363 06/11/03 4363 0
26742 E스포츠 위기의 최대 적은 수비형플레이 [33] 못된놈4352 06/11/03 4352 0
26741 드디어, <이윤열 vs 오영종>의 결승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13] Mars3814 06/11/03 3814 0
26740 오늘만큼은 테란을 응원했습니다. 주인공이 되십시요. [3] 信主NISSI4518 06/11/03 4518 0
26739 쌍신전(雙神戰). 신들의 전장, 신성한 혈향을 풍기는 그곳을 바라보며. [10] Wanderer3844 06/11/03 3844 0
26738 결국 묻힐 것 같은 엠겜의 결승,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60] OPMAN5023 06/11/03 5023 0
26737 김태형해설의 끝없는 캐리어사랑 [26] 김호철5868 06/11/03 5868 0
26736 나다 대 사신 누가 더 유리할까? [45] 이즈미르4299 06/11/03 4299 0
26734 전상욱선수 괜찮습니다..^^ [7] 극렬진3969 06/11/03 3969 0
26732 오늘 신한은행 2차 준결승 오영종 선수대 전상욱 선수 경기 감상... (오영종 선수 편향) [6] 풍운재기4688 06/11/03 4688 0
26731 오영종이 우승할 수 밖에 없는이유. [15] 포로리4513 06/11/03 4513 0
26729 미스테리한 그녀는 스타크 고수 <스물아홉번째 이야기> [10] 창이♡3942 06/11/03 3942 0
26728 오영종 vs 전상욱 in Arcadia II 를 보고.. [38] 초록나무그늘4514 06/11/03 4514 0
26727 오영종 - 과연 골든마우스 킬러가 될 것인가 [24] [군][임]3835 06/11/03 3835 0
26726 전상욱, 고인규 양 t1선수의 느린 진출의 고질적 문제. [38] JHfam4550 06/11/03 4550 0
26725 Again So1 Really? [18] 스타대왕4209 06/11/03 4209 0
26724 전상욱선수...... 오늘 경기는 프링글스 시즌 1 4강이 생각났습니다. [7] SKY924142 06/11/03 4142 0
26723 으음... 역시 오영종 선수가 더 강심장이네요. 축하합니다. [14] 이즈미르4008 06/11/03 4008 0
26722 저그.. 조금더 야비하고 비열해져라..! [3] 라구요3995 06/11/03 3995 0
26721 [E-야기] 꿈, 항상 잠들며 언제나 깨어있는 ─ 강민 [3] 퉤퉤우엑우엑4435 06/11/03 4435 0
26720 [축구] 주말(11/4~6)의 축구경기들 [3] 초스피드리버3825 06/11/03 3825 0
26719 신한은행~ OSL 리그 오영종 vs 전상욱 경기 Live [813] 체념토스9229 06/11/03 9229 0
26718 협회에 대한 아쉬움 [14] juny3349 06/11/03 334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