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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12 16:38:17
Name 그러려니
Subject 임요환 그의 또 하나의 시작. 그리고 기다림.



'.. 입대일 확정된 임요환 인터뷰'

소감은...
언제 결정했나...
동료들의 반응은...
.........................


길게 늘어져 있는 기사를 주욱 읽어 나가지만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 전부터 가을에 간다더라, 10월이라더라, 대충의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흘려 들었지만 막상 정확한 날짜가 눈에 보이고 확정된 상황에서의 인터뷰를 보니 머리가 멍한게 기분이 묘하다.

팬들 속도 모르고 인터뷰 내용이 뭐가 이리 담담한 거냐......

...... 이 인터뷰 기사를 읽은지도 벌써 몇일이 지났구나.

.
.
.



또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거다.
하긴 임요환이란 선수의 팬으로서의 가장 큰 미덕은 기다림 아니었던가.
언젠가부터 '왜 저러지'하는 의아함을 생각보다 오래 갖게하는게 자주 반복될 때부터 그의 팬으로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어떨까 경기 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 승리를 바라는 간절함 앞에서 '최초 스타리그 탈락'으로 느꼈던 분노는 오히려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었지.
'기다림'이라는게 얼마나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지. 얼마나 사람을 절박하게 만드는지.
챌린지리그에서의 박서를 응원했던 그때의 내공 덕분으로 웬만한 모습에는 이제 눈도 꿈쩍 않는다.
오늘 당장 모습이 어떨지라도, 그저 믿고 차분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뭐라도 보여주는게 그라는 걸, 임요환이라는 걸, 그때 정말 마음으로 느꼈으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앉았으니 그저 진출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했던 그 대회에서 힘겹게나마 준우승이란 성적을 내 줬고,
아예 피씨방리그까지 떨어져 이거 군대가기 전까지 예선만 하다 가는 것 아닌가 내심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도 참 거짓말 같이 쉽게 다시 본선에 진출했으며,
할 말 없게 만들었던 대 프로토스 전에서도 그럭저럭의 모습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더니, 그 많고 많은 프로토스들 사이에서 살아 남아 또 다시 가장 높은 무대에까지 팬들을 초대했었다.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이든, 나 혼자 마음 속으로 만들어서 그렇든,
이 선수를 기다리고 있자면 늘 언제든 그 기다림의 보상이 있었다.

이번의 기다림은 묘한 흥분마저 일으킨다.
이 선수에게 처음 내가 반했던게 바로 그가 보여준 '변수' 아니었던가.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그야말로 별 변수가 없다. 변수가 없으니 기적도 당연히 없다.
그러나 스타라는 게임세상 안에서 이 임요환이란 친구를 통해 그걸 맛볼 수 있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수 많은 선수들 속에서 수 많은 경기들이 쏟아지고, 그 대단했던 컨트롤과 전략도 이제 그만의 것이 아니며, 황제라는 닉네임이 무색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이는 포스의 선수들이 때마다 출현하니, 그렇게나 열광했던 '임요환의 변수'라는 건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혹 변수로 보이는 것이 나온다 치더라도 이젠 그걸 변수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이러저러한 빌드와 순간의 선택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당연'한 모습일 뿐.

그렇게 게임 하나하나의 작은 그림 안에서는 늘상 그럭저럭이다.
늘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도 이제 그런가 보다 한다.
그렇게 소박함에 가까운 그의 모습이 오히려 고맙고 감동스러울 때도 있지만 때때로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작게만 다가왔던 팬 입장에서의 임요환의 그림이,
이제 좀 크게 느껴진다.
'군대'란 말이다.
몇몇 선수가 군대와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군대란 걸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임요환이 군대에 간다.
어떻게 될지.
훈련이 끝나고 얼마가 지나면일지.
프로리그에서 그를 볼 수 있을지.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일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또 그 다음 이후에는.
7년을 한결같이 지켜봤던 이 선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 뒤로 한살 한살 먹어가는 다른 저 많은 선수들은.
그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
그 많고 많은 날들 중에서 변수라는 것이 얼마나 많이 쏟아질지,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감히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가운데에 이제 임요환이 서게 되는 것이다.
기대가 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잠시 그의 경기를 볼 수 없음에 순간 순간 다운되는 기분은 어찌할 수 없지만, 여태까지의 늘상 그랬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이 눈 앞에 점점 닥쳐 오니 마음 저 깊은 곳의 뭔가가 작게나마 요동치기 시작함을 느낀다.


이제야 그렇게나 담담했던 임요환의 인터뷰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아니 벌써 몇달전부터 입대를 결정 지어 놓고도 별 눈치 못채게 한결같은 모습이었던게 오히려 그럴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가 있는 동료들의 소식이 그를 거침없게 만들었을테고, 그 동료들과 함께 그의 표현 그대로 '길 닦으러' 가는 것이다.
뒤 이을 동료들의 길을, 후배들의 길을, 그리고 그 자신의 길을.
승부사 임요환의 심장 역시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
.
.



기다리는 거다.
늘 그랬던 대로 '믿는다' 한마디와 함께, 차분히 기다리고 지켜보는 거다.
늘 그랬던 대로 임요환은 팬들의 믿음을 업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거고, 그렇게 나아가는 임요환을 업고 다시 힘을 얻을 팬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변수 안에서 그는 또 다시 기적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가 내뱉은 '기적은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는 그 한마디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일 것이다.
팬 입장에서는 늘 안스러워 보이기만 한 사람이기에, 30대 프로게이머에의 꿈을 어떻게 이루는지 조용히 지켜보겠다 몇자 끄적거린 것 마저도 결국에는 강조이고 부담 한번 더 주는 것 같아 종국에는 미안하단 생각을 이끌어 냈지만,
이번엔 미안한 마음 없이 기다림에 더해 꼭 격려란 걸 하고 싶다.
길 한 번 잘 닦아 보라고.
지켜보고 있겠다고.
멋진 선수들 멋진 경기들 하나 하나 눈에 담아내며 기다리고 있을테니, 너도 꼭 좋은 모습으로 동참하라고.

.
.
.



언제가 될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한 기다림.
그러나 애간장을 태우지도 절박해 하지도 않으련다.
그와 팬들의 그 바람을 향한 많고 많은 날들 중의 하루 하루일 뿐이기에,
늘 그랬듯
그 자리에 열심히 있으면 되는 거다.
나는 팬의 자리에.
그리고 임요환은 임요환의 자리에.


화이팅이다 임요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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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nysun
06/09/12 16:44
수정 아이콘
눈물이 ㅜㅠ 난 남잔데 임요환이 좋소..
이도훈
06/09/12 16:47
수정 아이콘
감동이네요ㅠㅠ......이런 글......여기 있으면 안됩니다. 추게로!
06/09/12 16:51
수정 아이콘
기다리는거 자신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추억으로 버티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그저 이 판에서 신명나게 놀다보면
우리 모두 그가 있는 또다른 시작점에 놓일 수 있을껍니다...

글 너무 좋네요...추게로를 조용히 외치고 갑니다.
수시아
06/09/12 16:59
수정 아이콘
임요환이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에서 팬들에게 던져주었던 많은 메세지들, 일상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으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크고 작은 테마들은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
스팀팩질럿
06/09/12 17:22
수정 아이콘
나는 팬의 자리에.
그리고 임요환은 임요환의 자리에
--------------------------------------------------
꼭 이런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흑ㅠ_ㅜ흑
나두미키
06/09/12 17:25
수정 아이콘
마지막은 아니겠지만..앞으로 2년간 '공식적인' 모습을 보기 힘들텐데 유종의 미를 멋지게 보여주고 군대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복학생'게이머로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해주기를...
여자예비역
06/09/12 17:45
수정 아이콘
후.. 임요환선수의 열성팬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선수로 미운정 고운정 다들어버려서.. 이렇게나 아쉽네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티나크래커
06/09/12 17:59
수정 아이콘
아직 많이 남았어요,,
남은 경기들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길...
WhistleSky
06/09/12 19:24
수정 아이콘
처음 스타를 알게된지는 8년이 되어가고 스타리그를 시청하게 된지도 4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라고 물어본다면, 전 단연코 So1 4강 임요환vs박지호 전을 꼽을것입니다.
스타리그를 보면서 처음 눈물이 났던적도, 누군가가 마음속 깊이 새겨진 적도 이경기이였기 때문이지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왔던 임요환의 새로운 도전을 조용히 지켜보겠습니다.

멋진글이네요. 추게로~~!
homilpang
06/09/12 20:40
수정 아이콘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이야기만 적어놓으셨네요 ㅜㅜ
임요환선수 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선수이기에 그를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이 섭섭하면서도 설레일 것같습니다.
저도 추게로~를 외칩니다.
Ange Garden
06/09/12 21:27
수정 아이콘
오랫만에 추게로 gogo~
다시이곳에
06/09/12 22:35
수정 아이콘
그가 써 내려갈 또 하나의 역사를 기다립니다. 임요환 선수, 화이팅입니다!
마다마다다네~
06/09/12 23:26
수정 아이콘
힘들것같은데.. 그래도 기다려야겠죠 - !
글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추게로 gogo !
hyuckgun
06/09/12 23:29
수정 아이콘
아..정말 추게로...
06/09/12 23:56
수정 아이콘
저도 팬의 자리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요환선수 화이팅!
사다드
06/09/13 00: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뭔가 어수선했는데, 정리가 되는군요.
저도 그의 도전에 응원을 보냅니다.
임요환 화이팅~!
고만하자
06/09/13 01:31
수정 아이콘
휴우..이 정도의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임요환이란 사람 자체가
이젠 부럽군요. 저 역시 그가 없는 시간들을 어떻게 하며..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맞네요. 기다림.
다른건 몰겠고 기다림 이후엔 항상 보상이 따랐던~~
지난날을 기억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부담감이라도 좋으니, 거기에 대한 응당의 보상(?)을 해주세효..ㅠㅠ
Reaction
06/09/13 04:35
수정 아이콘
.........................................
할말이 없네요... 이렇게 서운해하면서도 기다리겠지만...
박서의 빈자리는 그냥 빈자리일뿐 채워지지 않을 겁니다. 꼭 박서가
당신의 빈자리에 다시 앉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나서... 아직은...
06/09/13 10:59
수정 아이콘
초창기엔 저역시 임요환의 팬이었지만, 지금은 딱히 임요환이라고해서 열렬히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안티는 더더욱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의 스타크판은 임요환이 떠난다해도 무너지지 않을만큼 자리를 잡고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바로 임요환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결승전에서 최연성에게 지고 눈물을 보인 임요환을 보면서, '아 정말 그렇게도 이기고싶었구나, 자신에게 한물갔다는 사람들을 향해 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론 가슴이 짠했습니다.(그런데 그것을 두고 비난하는 이들을 보면서 같은 장면에도 참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구나 새삼 느꼈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딱히 임요환의 우승을 바라는 입장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땐 임요환을 응원했지만, 지금은 그때 응원하지 않았던 홍진호와 같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지만 그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더더욱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임요환에게 응원하는, 혹은 부탁하는 바램은 그가 스스로 말했던 '30대 프로게이머'라는 그 사명감을 이뤄내기를 하는 것입니다.
홍진호전 이후로는 결승전에서 김동수를 응원했고, 박정석을, 그리고 오영종을 응원했지만, 만약 그가 30대 프로게이머로서 또다시 결승전에 오른다면 오래간만에 '임빠'가 되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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