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6/01/07 18:46:30
Name OrBef
Subject 이공계의 길을 가려는 후배님들에게..1(이려나..??)
안녕하세요.

십수년 전에 이공계의 길을 택했고, 학부, 국내대학 석사과정, 대기업 연구원, 벤처 창업을 거쳐서 지금은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따라서 이공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밟아보는 코스 중 제법 많은 부분을 경험해본 평범한 30대의 남자입니다.

이전부터 이런 글을 한번쯤 써보고 싶었는데, 두어달쯤 전에 피지알에 글을 썼다가 날려먹은 아픈 기억 이후로는 다시 쓸 엄두가 안나더군요. 이번에는 짧게 여러편에 나눠서 써보려고 합니다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글쎄요.. 제법 오랜 시간을 이 분야에 몸담고 있다보니, '이런 부분만큼은 누가 미리 얘기를 좀 해줬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하는 경험들이 자꾸 쌓이더군요. 그래서 제 뒤에 오는 분들은 저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바로바로 좋은 길로만 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분야 선택은 어렸을 때의 꿈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질과 취향에 마춰야 한다'라는 점입니다. 뭐 그리 당연한 얘기를 하느냐라고 하실 수 있지만, 얘기를 들어보시면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중학생때 칼 세이건(영화 컨택트의 저자로 유명하죠)씨가 쓴 '코스모스'라는 천문학 교양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얘기였죠. 단숨에 끝까지 읽은 저는, 제 친한 동네 동생녀석한테도 책을 권해줬었고, 그놈 역시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실제로 천문학과에 진학을 했고, 저는 별을 보는것 보다는 별에 가고싶다는 생각에 기계공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결과는? 그 동생은 천문학을 접은 뒤 사시 준비를 하게 되었고, 저는 공학 공부가 너무 괴로운 나머지 졸업을 연기하고 폐인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이부분은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마음을 잡고 지금은 울부짖는 심정으로 그냥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후배님들도 꿈은 시작은 저랬을 겁니다. 나중에 고3 입시에 닥쳐서 분야를 선택할 때는 '이정도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A학교의 a학과, B학교의 b학과 등등등'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시겠죠. 좋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꿈' 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일 것이고,
'성적'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능력일 것입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아까 말씀드리려고 했던 '소질'과 '취향'입니다.

말하자면.. 대마왕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고, 그것을 무찌르기 위해 5명의 결사대를 조직한다고 칩시다. 전사/마법사/도둑/용사/사제 이렇게 5명이 모여서 여행을 떠나는데, 당신은 어떤 역할로 거기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설령 마법사로서의 소질이 어마어마한 당신이더라도 전공선택을 전사로 택한다면 평생 자신의 소질을 발견할 기회도 놓치고 전체 결사대에도 해만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겠죠.

마찬가지로, 이공계에서 '연구'에 기여하는 능력은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상상력
분석능력
추진력

또한 이공계에서 본인이 '연구활동'을 즐기기 위한 취향에도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수리/논리 영역에서의 이론적 활동에 대한 취향
실험적 검증 활동에 대한 취향
연구 활동 기획에 대한 취향

능력이라는 부분은.. 본인이 얼마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요소일 것이고, 취향이라는 부분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저런 부분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빠져서는 절대로 좋은 전공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꿈이라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근데, 사실 그게 전공선택과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가면 알게됩니다.

제 얘기를 해볼까요? 전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만.. 제가 지난 7년정도동안 연구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극소 거울들을 100만개 조합해서 TV화면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 기술', '압전 진동체를 이용한 셀폰 주파수 필터', '축전형 가속도계를 이용한 캠코더 떨림방지 기술', '송유관의 진동을 흡수해서 이상 진단에 사용하는 자가발전기' 입니다. 상당히 서로 연관이 없어보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공계 연구인력이 시간에 따라 가지게 되는 것은 '여러가지 연구를 행하는 특정 능력'이지 '특정 연구를 행하는 여러가지 능력'이 아닙니다. 대마왕을 잡기위해선 여러가지의 능력이 필요하고, 당신은 그 중 하나를 가지게 되는거죠.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물이 너무 아름다우세요? 제가 있는 학교에서 저희과에서 행하는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만도 몇십억 단위가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물리학이요? AFM 은 물리학과보다도 기계공학과에서 더 많이 하죠.

저희 과 자랑이 아닙니다. 다른 과에서 기계과보다 훨씬 잘하는 분야는 더더욱 많을겁니다. 제 요점은, 이공계쪽 학문은 점차 그 구별이 애매모호해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난 이 과가 아니면 안돼' 라는 생각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내재한 소질과 취향에 맞는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분이 기존연구를 재확인하는 연구분야를 해선 안되고,
실험에 대한 취향이 풍부한 분이 이론 연구를 해도 안되고,
이론을 좋아하는 먹물쟁이 기질의 분이 기획을 해도 안됩니다.

어쩌다보니 굉장히 부정문으로 가득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마지막 3줄에 대해 좀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오늘은 시간이 안될것 같습니다. 다음기회에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BOUTSTARCRAFT
06/01/07 18:53
수정 아이콘
음 좋은 글 감사합니다...이번에 수능쳤습니다.
이번에 전자공,기계공,생명공 넣었는데 다 붙었으면 좋겠는데..
님의 글을 읽고 기계공 붙고 싶다는 생각이..-,.-;
솔직히 적성이 맞는지 알수가 없네요..후 난감..^^;;
대학가서 알수있을듯..
D.TASADAR
06/01/07 19:1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공계가 아닌 다른 길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저이지만 공감이 가는 좋은 글이네요.
06/01/07 19:17
수정 아이콘
이제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세부적인 전공분야를 선택하는 최초의 기로에 서있는 학생입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드리며 계속해서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06/01/07 19:21
수정 아이콘
최근의 이공계는 정말 학과 구분이 모호해졌죠.
과들 자체의 커리큘럼도 그렇거니와 요즘은 특히나 복수전공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선택하는 과가 예전만큼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기계과와 생명과.. 뭐 이런 정도는 아주 많이 다를 수 있지만요. ^^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합니다. 학교보다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과를 맞춰서 가야 하지 않겠냐.. 이러는데... 사실 아직은 학교 간판이란 게 꽤나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동떨어진 과가 아니라면 일단 학교를 지원해 놓은 후에 과를 선택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덧붙이지만... 이공계.. 위기다 뭐다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공계가 취업이 잘 되는 편 아닌가요? 물론 의사, 변호사 등에 비하면 암울하다고 보는 게 맞긴 합니다만-_-;; 그것도 적성에 맞아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 외의 길을 선택하라면 역시 그나마 이공계가 개중에선 무난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 그리고 글 잘 읽고 갑니다. ^^
CoNd.XellOs
06/01/07 19:54
수정 아이콘
문과이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6/01/07 20:18
수정 아이콘
저한텐 참 좋은 글이네요.
Challenging Qs
06/01/07 20:19
수정 아이콘
자신의 소질과 취향을 알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이웅익
06/01/07 20:32
수정 아이콘
ㅠ.ㅠ 저는 수시 합격해서 마냥 좋아했는데 좋아할게 아니군요...
서울에 있는대학도 아니고 그냥 지방국립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인데요.. 수능보면 이대학도 못갈끼봐 그냥 쓴 대학입니다..
특히나 저는 수학,물리에 정말 약한데요.. 수시 붙고 나서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집에서 놀기만 하고.. 지금부터 공부해도 대학가서 따라갈수 있을까요?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개사료맛있다
06/01/07 20:33
수정 아이콘
아 얘기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네요.. 저도 한때 공대생이었는데..
악하리
06/01/07 20:35
수정 아이콘
자기 적성이 뭔지 고등학교때 아는것도 정말 힘들죠.
06/01/07 21:52
수정 아이콘
제 경험으로는 수학은 모르겠고
물리는 대학 와서 열심히 해도 대학물리 1학년 과정은 잘 따라갑니다. 제 경험입니다. 학교가 다르면 다를지도 ㅡ_ㅡ;
06/01/07 22:38
수정 아이콘
리플들 감사합니다 ^^ 다음 글에서 대부분의 리플에 대한 대답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이웅익님/지금부터 공부해도 대학가서 따라갈수 있을까요?
이건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_^
06/01/07 23:58
수정 아이콘
이웅익님//전혀 관계없읍죠-ㅇ-
지방국립대면 혹시 K대 말하시는게 아닌지..한강이남 최'대'의 학부로서 많이들 들어와서 수능성적이 천차만별인데요..
그 수능성적이 학점에 비례하느냐? 천만의말씀만만의콩떡이죠;
자기 노력하기 달렸습니다^-^ K대오시면 열심히하세요~
이웅익
06/01/08 09:17
수정 아이콘
좋은 답변들 감사합니다^^
그래도 오늘부터 열심히 할거에요^^
OrBef//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고요...
LemonA// K대는 아니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근데 K대가 어디죠?
제이스트
06/01/08 12:4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빨리 2.. 3편이 보고싶네요.
06/01/08 14:41
수정 아이콘
이웅익// 아마 대구 경북대일껍니다
Ryu Han Min
06/01/09 12:42
수정 아이콘
전 후배들에게 재수해서 의대가라고 권해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9874 SKY 플레이오프 - KTF 대 삼성 프리뷰.... [29] 다크고스트3860 06/01/07 3860 0
19873 선천적 의지박약?? [17] 나라당3531 06/01/07 3531 0
19872 이거 또 하네요...Years MVP라... [154] EzMura5242 06/01/07 5242 0
19871 pgr 그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시려는가? [34] 닭템4128 06/01/07 4128 0
19870 이공계의 길을 가려는 후배님들에게..1(이려나..??) [17] OrBef23808 06/01/07 23808 1
19868 고수가 되고 싶습니다. [35] 저그로기3348 06/01/07 3348 0
19867 산재보험 경험담입니다. [5] 김창훈3739 06/01/07 3739 0
19866 제가 올린 글에 대한 반응에 대한 변명 및 pgr에 대해서... [8] 임정현3782 06/01/07 3782 0
19865 6개월 보충역.. 공익근무요원 [28] 윤국장5361 06/01/07 5361 0
19864 온게임넷에 바라는점 (관계자 혹은 친분있으신분은 보셔서 참고하시길.) [42] 나얌~3448 06/01/07 3448 0
19863 커뮤니티 교류전 추가 안내 [21] canoppy4006 06/01/06 4006 0
19862 마재윤 선수가 임요환 선수도 완연히 넘을수 있을까요???(이런 실수를) [152] 임정현7430 06/01/07 7430 0
19860 815가 토스맵이라고!? 오영종선수의 질수밖에 없는 이유 [27] 체념토스5648 06/01/07 5648 0
19859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명경기가 있으십니까? [45] 최강견신 성제3429 06/01/07 3429 0
19858 안기효 선수 vs 최연성 선수의 관전평을 올려 봅니다. [25] 4thrace5312 06/01/07 5312 0
19857 격투기, 제 삶에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9] EndLEss_MAy3746 06/01/07 3746 0
19851 입양아 문제에대해서 생각좀 해봅니다. [4] 히또끼리4578 06/01/07 4578 0
19850 불가항력적인 관객들의 정보제공성 함성에 대한 선수들의 대응방안을 생각해봅니다. [19] 4thrace4032 06/01/06 4032 0
19849 아직 저그맨에게도 기회는 있다~! [15] 삭제됨3429 06/01/06 3429 0
19848 유감입니다. [19] The xian4327 06/01/06 4327 0
19846 [잡담] 해설자들 준비에 대해서 [18] Acacia3471 06/01/06 3471 0
19845 [잡담]4대보험비 나도 혜택볼수 있을까. [12] 더높은이상3396 06/01/06 3396 0
19844 오늘의 관전평. [55] Sulla-Felix5076 06/01/06 507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