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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9/22 06:29:44
Name 강철의누이들
Subject 김진호. 이 땅에 강림한 양궁의 여신
최근에 올림픽이 열리면 다른 종목은 몰라도  여자 양궁은 맡겨놓은 금메달을 찾아
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자  양궁이 70년대 한 여고생의
활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특히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하늘에서 양궁의 여신이  강림한 듯 세계를 제패했던  이 사람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김진호.

1961년 태어난 김진호는 중학생 때 처음으로 양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양
궁이 처음으로 전래된 게  1960년 양궁 대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게 71년이
니, 김진호가 양궁의 길에 들어선 때의 한국 양궁이란 말 그대로 불모지였습니다.

1977년. 전국체전 공동 1위에 오릅니다. 양궁을 시작한  지 만 2년 정도가 될 무렵
입니다.

1978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여고생 김진호는  양궁에서 금메달 다섯 개를 차지하
며 전국을 열광으로 몰아넣습니다.
당시 양궁 룰은 4일 동안 288발을 쏜 후  각 거리별 득점 메달과 종합 순위에 따른
메달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이 금메달들을 휩쓸며 아시아를 제패합니다.

1979년. 제30회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 국내대회를 시작한지 10년도 안 된 나라
에서 온 김진호, 30미터를  제외한 거리별 메달을  전부 휩쓸고 개인 종합에서까지
우승하여 5관왕을 차지, 한국은 물론 세계 양궁계에 커다란 충격을 선사합니다. 더
놀라운 건 당시 그녀가  세운 신기록들이었습니다.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하도 이전 기록과 차이가 나서 당시 그 충격이 심했다고 합니다. 농구 쪽으로 비유
하면 평균득점 20점대가 득점왕 하는 곳에 갑자기 평균 득점 40점대가 등장한 모습
이랄까요.

양궁이란 종목은 서양의 활에서 유래했고 장비 역시 서양 쪽에서 발달했습니다. 중
세 시대의 무기에서 시초가 된 수백 년의 전통을 이제 제대로 양궁을 시작한 지 10
년도 안 된 나라의 여고생이 박살을 내버렸으니 그 충격이 어떠했을지는 상상도 안
갑니다.  

1980년. 올림픽이 열리기만 하면 김진호의  금메달은 전당포에서 물건 찾아오는 거
나 같다고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미국을 위
시한 서방 국가들은 아프간 전쟁에 대한 항의 표시로 보이콧하기로 했고 눈앞의 올
림픽은 김진호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타의에 의해 순간 사라진 목표에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올림픽만 보고 달린 여
고생에게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고 합니다.  이제 김진호는 끝났다고 사람들이 말했
다고 합니다.

1983년. 김진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진호는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5관왕에 오르
며 또 한번 세계 양궁계를 충격에 빠트립니다.

83년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LA올림픽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급거 양궁 규칙이 대폭
변경됩니다. 기존 거리별 메달과 종합 메달까지 있던 방식에서 거리별 메달을 폐지
하고 종합 합계에만 메달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양궁에 걸린 메달을 엄청나
게 줄여버린 이 방식이 누구를 경계해서인지는 누가 봐도 뻔했습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주요 이사국인 세계 양궁 협회는 이런 룰 개정에 돌입하고 승인합니다.  

1084년 LA올림픽. 누구나 여자 양궁 금메달은 김진호라 생각했지만, 금메달을 차지
한 이는  서향순이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김진호는  화살이 표적을 아예 벗어나다
시피 하는 실수를 본선에서 저지르고 그럼에도 동메달을 차지하는 괴력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올림픽 금메달은 멀리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진호는 중학교 이래로 메고
있던 활을 벗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긴 했지만 저 역시 김진호가 지존의 모습을 보인 79년의 모습은 알지
못합니다. 83년의 모습과 84년의 안타까움을 본  정도이고, 위에 적은 것들은 이전
에 후추란 스포츠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나 기타 것들을 기억에 떠올려 쓴 겁니다.  

우리 나라가 활쏘기의 전통을 가졌다 하나 그래도 양궁과 전통활의 방식은 많은 차
이가 있습니다. 마라도나 펠레 조던 본즈, 이들은 그들이 한 스포츠의 전통이 가득
한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김진호가 양궁을 잡았을 때 이 땅의 양궁은 사막
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녀는 사막에 물을  끌어들이는 것도 모자라 그곳에 수확의
황금 물결을 퍼트리고 수대를 이어 내려오는  옥토를 가꾸었으니 이런 업적을 이른
운동 선수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한  사람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가 작당해 룰
을 바꾸었고 한 사람의 힘이 양궁을 세계를 제패하는 한국의 스포츠로 자리잡게 했
습니다.

아래애 조던과 견줄 수 있는 인물이란 글과 댓글들을 보다가 이 글을 적습니다. 한
국에서 위대한 스포츠인을 뽑는다면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사람을, 요즘 잘 써먹는
말인 이른파 포스로 친다면 세계 스포츠에 퍼트린 포스로는 이보다 더한 사람이 별
로 없을 사람을, 양궁이란 스포츠  안에선 조던과 체임벌린과 베이비루스와 본즈를
합한 만큼의 능력을 보인 사람을 언급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아쉬움도 살짝 담습
니다. 양궁이란 종목이 효자종목이란 명목의  인기 없기 그지없으면서 전당포 취급
받는 종목이고 이 게시판에 오는 분들이 아무래도 80년대생들이 많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지만, 이 글을 보신 분들이라면  김진호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다는 것 정
도만은 기억해 주셨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여담. 그랜드피타방식으로도 실패한 세계양궁협회는  이후 아예 한국 선수들끼리라
도 최대한 붙어서 떨어지게 히려고 토너먼트  형식의 올림픽 라운드 방식을 도입합
니다.

여담2. 핸드볼 하키 양궁 여자농구  쇼트트랙... 척박한 대지에 과분하리만치 아름
다운 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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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2 07:21
수정 아이콘
강철의 누이들, 저도 좋아하는 소설인데요~ 훗;;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제이스트
05/09/22 07:27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그런 분들도 계셨군요..
정말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란..
여자예비역
05/09/22 08:51
수정 아이콘
아.. 김진호씨가 그런 업적을..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현재 올림픽위원회에서 양궁을 정식종목에서 제외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시는 분이 계신지..
김진호씨 이후로 여자 개인이나 단체에서 금메달을 양보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개인전 금,은동이 모두 우리나라 차지였던 적이 많아서 점점 인기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양궁 좋아하는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선수를 이기기만해도 잔칫집분위기가 된다더군요...;;
종주국인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쉽쓸까봐 4체급 출전으로 룰을 정한 태권도도 4개 다 따오진 못하는데.. 양궁 정말 대단하네요...^^
여자예비역
05/09/22 08:52
수정 아이콘
↑↑↑↑ 태권도를 비하하는 발언은 아닙니다.. 태권도도 대단한데.. 양궁이 조금 더 대단해 보인다.. 요런 요지로 이해해주심 고맙겠죠..^^
아침해
05/09/22 12:17
수정 아이콘
김진호선수는 국내의 연금의 한계가 100만원일때 가장 먼저 100만원을 달성했죠..
그때는 메달연금이 100만원을 누가 달성하나 하며 만든 금액이었는데 그 금액을 82년 아시안게임때 달성해서 그 이후에 일시불로 메달포상금을 주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참 예전에 좋아하던 여자선수중에 한명이었는데..
쏙11111
05/09/22 12:20
수정 아이콘
sg워너비의 김진호씨도 좋아하는데..-_-1084년 LA올림픽..쿨럭
겨울나기
05/09/22 13:02
수정 아이콘
양궁이 토너먼트제 됐을 시점에 고등학교 지리선생님의 한마디.

"그럼 백미터도 토너먼트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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