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5/21 13:18:34
Name 이카루스테란
Subject [잡담]테트리스
이런 글을 쓸 때는 경어체로는 잘 안써지더군요. 넓은 마음으로 양해바랍니다^^

--------------------------------------------------------------------------------

내 동생은 곧잘 한게임 테트리스를 즐긴다. 워낙 잡기에 능한 동생인데다가 테트리스에 투자한 시간도 엄청 많아서 지금은 초인인가 뭔가 하는 등급이다.

나도 옛날에 "한" 테트리스 했지만 손을 놓은지 오래되서 요즘은 그냥 블럭쌓기도 힘들다.

그래서 난 언제나 동생이 테트리스 하는 것을 뒤에서 구경할 뿐이다. 가끔 방해공작도 펼쳐주면서 말이다.

테트리스를 하다보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빈칸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실수로 블럭을 잘못 놓는 경우도 있겠고 맞지 않는 블럭이 내려와서 어쩔 수 없이 빈칸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일단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블럭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분이 찜찜해도 위에 칸을 다 제거하고 그 자리를 매우기 전까진 그 상태 그대로 있을 뿐이다.

블럭이 내려오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그런 빈칸은 늘어만 가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테트리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GMAE OVER라는 글자를 보게 된다.

요즘 내 삶은 보면 마치 내 삶이 테트리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블럭을 잘 쌓아가는게 인간의 삶이라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빈칸들도 있기 마련이다.

정신없이 떨어지는 블럭들. 갈수록 속도는 빨라지고 빈블럭은 늘어만 간다. 뭔가 제대로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는 삶. 밑에 뚫린 구멍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 찜찜함.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회한.

이미 빈칸이 생겨버린 뒤에 후회해봤자 되돌리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성인들은 후회없는 인생을 살라고 한다. 하지만 늘어가는 구멍들을 보면서 후회가 드는건 어쩔 수 없다.

그래. 이미 지나간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내가 가장 슬픈건 지금도 계속해서 빈칸이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작심삼일의 연속. '오늘부터는 열심히 해야지'의 반복. 하루가 끝날 때에 드는 허무함.

내가 커다란 망치가 있다면, 그런 아이템이 있다면 한번에 블럭들을 깨버리고,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게임에는 그것이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는 그런건 없다. 아......답답해.  

그래도 테트리스를 하다보면 가끔 그 많던 빈자리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처음 시작하던 그 때로 돌아갈 때가 있다. 정말 드문, 정말 드문, 경우지만 모든 블럭을 다 없앨때도 있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어려울 뿐이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앞날이 없다면 단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많은 빈칸들을 보면서 체념하면 결국 GAME OVER를 앞당길 뿐이다. 한번에 다 깨버릴 수는 없어도 한줄  없애 나갈 수는 있다.

조금씩 노력해 간다면 언젠가는 바꿀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 그리고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삶을 살아가는게 아닐런지......

정말 스스로에게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hannibal
03/05/21 14:35
수정 아이콘
적절한 비유의 좋은 글이네요...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관점에서 구멍을 무조건적으로 잊고 블럭을 쌓아가다보면 현재의 어려운 구멍을 조금후의 과거로 생각하고 다시쌓아 가다보면 어느새 게임은 끝나고 다시 하나하나 구멍을 메꾸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구멍에 집착하면 게임이 안풀려 다시 게임오버.......잊을건 잊고 할건 해야한다는 인생의 어려운 진리........ 그냥 인생의 속도를 자신에 맞게 만들면 안될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못하면 1단계에서 실력을 쌓아가고 조금더 잘하면 2단계로 도전하고....... 어쩌면 자신이 가지는 능력보다 더욱더 큰 삶에 대한 욕심이 수많은 구멍을 지금 현재에도 만들어 가는건 아닐지.....그냥 주저리 주저리.....
물빛노을
03/05/21 21:00
수정 아이콘
오늘 성균관대에 AMD팀이 왔는데, 스타 이외에는 어떤 게임을 좋아하냐는 말에 조정현 선수가 "저는 테트리스를 좋아합니다"라고 하더군요+_+ 좌중에 폭소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474 방송사에서 팀밀리 경기를 보여주면 어떨까요? [15] Canna1337 03/05/21 1337
9473 이재훈이라는 선수. [15] Toss화팅2184 03/05/21 2184
9472 외계인들이 쳐들어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게 된다면? [14] SummiT[RevivaL]1348 03/05/21 1348
9471 음......이거 사실이 아니겠죠... [17] 기다림...그리1298 03/05/21 1298
9469 [펌] 비전상실증후군.. 우리는 개구리처럼 삶아지고 있는가 [3] Hewddink1124 03/05/21 1124
9468 더이상의 초극한 컨트롤은 없는것인가? [15] 곽세영1406 03/05/21 1406
9466 광주방송 올스타전 준결승 경기 결과 [24] 사랑의사막1773 03/05/21 1773
9465 [제안] MBC게임 스타리그의 리그 진행에 대한 제안 [9] 실버랜서1218 03/05/21 1218
9464 [대회 아이디어]팀 토너먼트. [3] Dabeeforever1354 03/05/21 1354
9460 조금은 다른 이야기... [2] 프렐루드1154 03/05/21 1154
9459 [잡담]테트리스 [2] 이카루스테란1179 03/05/21 1179
9458 무한의 우주, 무한의 마음 [3] 만달라1174 03/05/21 1174
9457 [잠시쉬워가는] 자축. [5] 스코1038 03/05/21 1038
9455 PGR의 부활을 축하하며... [12] 정일훈1317 03/05/21 1317
9454 임요환 대 이윤열 3차전... [12] [귀여운청년]2162 03/05/20 2162
9453 워크3중계에 있어서 시청자로서의 약간의 불만 [9] lapu2k1090 03/05/20 1090
9452 [잡담] 인사가 늦었습니다. kid.. [7] kid1131 03/05/20 1131
9451 프로토써(Protosser.com) 임시 사이트 오픈 [6] 그지프로토스1437 03/05/20 1437
9450 [잡담]최고수준 [7] 카발리에로1345 03/05/20 1345
9447 테란과 임요환 [5] StimPack1712 03/05/20 1712
9444 에버컵 IS vs KOR 팀플에서... [4] 세츠나1416 03/05/20 1416
9442 가입인사 & 잡담.... [2] neogeese1176 03/05/20 1176
9441 게임계의 빠수니 혹은 빠도리-! [26] 넋업샨2208 03/05/19 220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