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9/22 13:53:35 |
Name |
공룡 |
Subject |
내 리플을 보면서 분석한 진정한 하수의 모습. |
예전 피지알 게시판에 자행되었던(-_-) 제 경기에 대한 매트랩님의 리뷰가 가슴에 와 닿아(사실 뼈에 사무쳐서) 정말 오랜만에 제가 경기한 리플을 살펴보았습니다. 제 딴에는 꽤 잘 했다고 생각하는 플레이에 대해 정말 오랜만에 직접 칼을 대보기로 한 것이지요. 결과는...... 역시나 전 하수더군요.-_-;
놀라운 것은 매트랩님의 하수에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제가 평소 생각하는 하수가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pgr 하수랭킹 공식 2위 이거 쉽게 따지는 거 아닙니다-_-)
먼저 제 여러 리플들을 통한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1. 초반진행 : 이건 정말 프로들 못지 않습니다. 미네랄에 일꾼들도 제법 잘 보내고(예전에는 일렬로 그냥 한 미네랄 찍고 신경 껐더랬습니다.) 빌드타임에 맞게 파일론도 짓고 정찰도 잘 찍어줍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웬만한 준프로 뺨치고 어르는 수준이며, 사실 요즘 대부분의 유저들은 여기까지는 다 하는 수준이라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2. 정찰미스 : 로템...... 1대1의 대부분을 하는 맵입니다. 정말 많은 게임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끔씩 정찰미스를 합니다. 저 어제도 두 번 그랬습니다.(어제 총 세 게임 했습니다.-_-) 프로브가 정찰을 제대로 못해서 간 곳 또 가는 건 양호합니다. 보면 12시 나무들 우거진 갈림길 구석에 박혀있곤 합니다. 나무에 가리면 이놈이 어디 갔나 작은 맵 살펴봐야 합니다.-_-; 그렇게 하다보면 테란의 경우는 입구 막혀있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들어가서 봐봐야 뭐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정찰 못하면 정말 손해보는 기분입니다.
3. 정찰 성공시 : 어디서 보긴 봤다고 건물 짓거나 건물 소환하는 일꾼들 방해공작을 벌입니다. 물론 그리 신통치는 않습니다. 요즘 건물 짓는 테란의 scv 잡기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얼마 못 가서 일꾼들에 쫓겨 이리저리 도망다니곤 합니다. 그러다 일꾼이 잡히게 되고...... 허탈한 마음에 문뜩 제 본진을 보면 아무것도 지어진 것이 없습니다. 미네랄 600에서 800 쌓여있습니다. 달랑 게이트 하나 있는 거 질럿 한기도 뽑지 않았습니다. 당황합니다. 한꺼번에 건물 올리고 멀티도 합니다. 노게이트 더블넥이나 진배 없습니다. 어쩌면 정찰이 안 되는 것이 제게는 이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_-;
4. 테란상대 원게잇, 저그 상대 투게잇 : 항상 그렇게 합니다. 정해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냐구요? 일반 게임 중계에서 플토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니까 그냥 따라합니다. 사실 테란 상대로도 투게잇 짓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그 상대로 원게잇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 컨트롤 못합니다. 질럿 동수(가림토 선수 아닙니다) 싸움에서 이긴 적도 거의 없고, 며칠 전에는 Z 님과의 저그전에서 입구에 멀쩡한 질럿 대여섯 기 있었음에도 홀드 잘못해서 입구 뚫려 망한 적도 있습니다.-_-; 그저 초반 든든히 시작해야 합니다. 컨트롤 못하면 양으로 밀어 붙어야죠.^^
5. 투게잇의 비밀 : 초반 투게잇으로 시작하는 저이지만 그것이 중반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멀티가 세 개까지 늘어나도 여전히 게이트는 둘입니다. 특히나 형세가 불리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정신 없어서 짓지 못합니다. 게이트나 포지의 업그레이드는 확실한 승기를 잡아 여유가 있을 때나 해주는 겁니다. 따라서 보통은 노업그레이드 2게이트로 끝난 게임들이 상당합니다. 그나마 가끔 게이트가 쉬고 있을 때도 많습니다. 되지도 않는 컨트롤 해준다고 잠시 한눈 팔다 보면 게이트 혼자 잘 놀고 있습니다. 돈 남을 때는 그냥 서너 개씩 예약해놓을 때도 있지요. 물론 노력을 한 덕에 요즘은 많이 나아져서 3게이트 돌릴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돈은 남습니다. 멀티에 막 투자해도 남습니다. 초반 800.... 중반 이후 4,5천..... 팀플에서 멀티도 안 하는데 돈 남는 플레이하는 사람도 저 뿐일 겁니다. 전 부자플토입니다 -_-;
6. 컨트롤, 멀티, 병력, 돈 : 초반 병력 컨트롤을 해주면 돈이 남아돕니다. 남는 돈을 쓰려고 멀티를 하고 건물을 지으면 중앙에서 놀고 있던 제 병력이 어느새 사라져 있습니다. 막상 정신 없이 건물 짓고 나면 돈이 없어서 병력을 못뽑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다 겨우 구색이 맞춰졌다 싶은데 왜인지 병력이 안나옵니다. 그제서야 정신 없이 들려오는 소리와 메시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파일론이 부족하답니다. 파일론 한꺼번에 서너 개 주욱 짓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일의 반복입니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프로게이머들이 존경스러워집니다.
7. 저한테 메시지 보내지 마세요! : 처음 gg yo~ gl. 등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프로브 수가 8기를 넘어가면서부터 제겐 소리도, 메시지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유일하게 들리는 것은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 아무런 정신이 없는데 뭐라고 뭐라고 채팅메시지 보내면 환장합니다. 심지어 이기는 상황에서도 상대가 gg 치고 나가는 것도 못 볼 때도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제가 무슨 말하려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팀플 못합니다.ㅠ.ㅠ 정말 못합니다. 우리편 메시지 다 10어서 맨날 구박 당하곤 했지요. 1대1을 하든, 팀플을 하든 전 항상 혼자 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가끔 원조 오는 우리편에게 강제 어택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8. 항상 달라지는 파일론 위치 : 프로게이머들은 로템의 각 위치별로 건물 짓는 방식이 다 다르고 파일론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지만 전 더욱 신경을 씁니다. 항상 만드는 위치가 다릅니다. 건물 심시티도 한 번도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진 제 리플 중에(사실 리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는 리플은 과감히 저장 안하니까요. 이긴 리플만 저장합니다 -_-;) 빌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모르겠습니다. 리플로 저장 안한 것 중에는 어쩌면 같은 적도 있었을지도... 사실 게임 하는 동안 정신이 없어서 건물을 어디에 어떻게 지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그냥 파일론이 있는 근처에 막 짓습니다.
9. 러시 타이밍 : 결코 잡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 옵저버를 할 때나 리플을 보면서, 혹은 프로게이머 경기를 보면서 밤 놔야 한다 배 놔야 한다 잘난 척 하며 관전을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그런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나가지 못합니다. 충분히 상대를 이길 수 있을 만큼 병력이 모였을 때 나가자고 생각할 때는 테란은 우주방어가 된 상태에서 제 3멀티까지 먹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저그의 경우에는 전 맵에 크립이 깔려 있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해도 그것이 치명적인지를 간파하지 못하고 수세적으로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전패...... 정말 많이 당합니다-_-;
10. 내가 뽑은 유닛과 숨박꼭질 : 가장 적은 유닛을 컨트롤 하는 프로토스임에도 이놈의 유닛들을 제대로 관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셔틀 뽑아서 어디 한번 드랍 갔다가 본진 근처에 놔두면 도저히 찾지를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셔틀 한대 더 뽑는 경우도 있고...... 가끔 경기 끝날 때쯤에 아둔 근처에 모여있는 셔틀 서너 기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_-; 그리고 왜 중요한 순간에는 옵저버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_- 본진에 들어온 벌쳐 잡으려고 옵저버 찾으면 절대 안보입니다. 제게는 정말 희귀한 일인 엘리전의 양상에서 멀쩡한 캐리어 한 대가 살아남아 있는데도 그걸 발견하지 못해 gg를 치려던 때도 있었구요.(그 덩치 큰 캐리어를....-_-)
11. 프로게이머의 빌드를 따라하라 : 엊그제 박정석 선수가 사업 드라군으로 파워 있게 홍진호 선수를 밀어붙이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들은 말인데 저희 동호회 사람이 배넷 들어가서 게임을 해보니 누가 똑같은 빌드를 쓰더랍니다. 아마 많이들 쓸 겁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문제는 중계화면과 선수들이 보는 화면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초반 전투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화면에서는 중반 이후로는 전투장면을 주로 보여주지 건물 짓는 모습이나 유닛 뽑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혼란이 옵니다. 처음에는 그 빌드와 비슷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엔? 멋지게 패스트 다템드랍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아 줄창 다템만 뽑다가 졌습니다. "에이, 이 빌드 별로잖아!" 다시 안씁니다 -_-; 그렇다고 자신의 고유빌드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게임중계가 하수를 잡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의 기발한 빌드 멋있습니까? 그거 하수한테는 독약입니다 -_-;
그래도 하수인 것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지면 좀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기면 더 미안해지기도 하니까요. 하수는 지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하기에 상대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면서도 게임은 게임대로 즐길 수가 있지요. 어쩌면 하수야말로 상대를 배려하고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게이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괴변이라구요? 뭐 어떻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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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그러나 저 어제 3연승 했습니다. 물론 하수랭커들과의 경기였고, 약간은 하수랭킹 2위라는 제 명함에 상대가 방심한 감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제 생애 최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적입니다. 하수 여러분! 힘을 냅시다! -_-;
추석이 다 갔군요. 다들 송편 많이 드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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