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0/17 02:47:37
Name 빵싼종이
Subject [잡담] 아직 가을인가봐요..
어제는 세중 게임 월드에 다녀왔어요.
홍진호선수 VS 이병민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요. 집에는 엠비씨게임 채널이 안 나오거든요.
게임은, 허탈하긴 했지만 즐겁게 봤어요.
이윤열선수 VS 한승엽선수의 경기도 손에 땀을 쥐며 봤구요.

게임이 모두 끝나고, 함께 갔던 지인들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0시쯤 집에 가기 위해 헤어졌어요.

평소처럼 좌석버스를 타고,
내리기 편한 출입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요.
낡은 버스라, 꽤나 흔들렸기 때문에
이러다 멀미가 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사람 많은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기 위해 몰려들었어요.
그 사람들 중에..
뒷쪽에서, 설렁설렁한 표정을 짓고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분을 봤어요.

캐주얼한 차림에, 편한 백팩을 메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조금 짧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올린 느낌의 헤어 스타일에
단정한 눈썹, 쌍꺼풀 없이 가로로 조금 긴 눈, 약간 매부리코, 도톰한 입매..
희지도 검지도 않은 보통의 피부색..

생각해보면, 그닥 눈에 띌 이유가 없는 스타일의 남자분이었는데,
갑자기 눈에 콕 와서 박히더라구요.

이미 좌석 버스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분은 제가 앉아있던 자리보다 조금 앞쪽에 서셨어요.

그 때부터.. 전 창문에 비치는 그 분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어요.
눈에 띌 이유가 없는데 계속 눈에 와 박히는 그 이목구비를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히 훑어봤어요. (앗, 이건 거의 변X 수준이군요)

그리고.. 잠시 후,
'만약 내가 내릴 때까지 저 분이 저 자리에 계시다면,
티비에서 봤던 그 유치한 행동 - 저 여기서 내려요. 를 꼭 한번 해 보고야 말리라!'
라고 다짐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첫눈에 삘이 꽂힌다는 둥의 스토리는 절대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그런거, 절대 가능할리 만무하다고만 생각해왔는데..


뭐, 그래봤자 결국 이야기의 끝은 뻔해요.
제가 내리기 전에 다른쪽에 자리가 생겨서,
그 남자분은 그 쪽에 가서 앉아버리셨고..
전 아쉬움을 달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버스에서 내렸다는 것.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때의 기분을 곱씹고 있다는 것.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이제 가을은 지나고 겨울인가보다,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아직 가을이었나봐요. 지나간게 아니었나봐요.
그리고.. 가을은 남자만 타는게 아니었나봐요..


추신.
pgr에서의 첫 글이네요..(아, 댓글 빼구요)
자게에 몇몇.. '가을'같은 글들이 보여서.. 잡담이지만 용기 내어 올려봤습니다..
부디 민폐는 아니었길... 쿨럭;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3/10/17 03:20
수정 아이콘
그냥 왠지모르게 끌리는 사람이 있는거 같아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스타일도 아닌데 한눈에 괜히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님 글 읽다보니 제가 괜히 두근두근하게 되네요^^
가을 맞네요.. 가을은 남자만 타는게 아닌거 같고요~
03/10/17 05:58
수정 아이콘
첫 눈에 필이 꽂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저는 참...부럽네요...
(그런 경험 조차도...) 역시 찬바람은 저를 너무 힘들게 하는 군요~
아~~~
이카루스테란
03/10/17 08:34
수정 아이콘
아...춥구나..ㅜ.ㅜ
난폭토끼
03/10/17 10:15
수정 아이콘
제가 pgr에서 본 글들줄 가장 마음으로 읽은글이 될것 같네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_ _)

개인적으로 정일훈님, 이재균 감독님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분들의 매력이 있는 그대로 느껴지거든요.

오늘, 빵싼종이님 글은 왠지모를 매력이 느껴집니다...
허브메드
03/10/17 10:23
수정 아이콘
헛..
접니다 (궁극의 노망~~)
그녀는~★
03/10/17 14:44
수정 아이콘
가슴이 따듯해지는 멋진글이네요.
가슴은 따듯한데..왜 몸은 추울까요? ㅠ.ㅠ

아~~~~~박정석 선수의 승리를 기원합니다(아..뜬금없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169 방금 끝난 WCG2003 3,4위전 소식과 잡담 [8] palmer4045 03/10/17 4045
14168 온게임넷 자막에 조금만 더 신경써줬으면.. [11] 리버 IQ업그레2406 03/10/17 2406
14167 정말 멋진 오늘 경기..!! [4] Temuchin1947 03/10/17 1947
14166 움...궁금합니다.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지... [21] 미네랄은행2692 03/10/17 2692
14165 무섭군요 진짜 저주가 두팀다 통해버렸네요. [22] 찬양자3358 03/10/17 3358
14164 [잡담]피말리는 승부, 피말리는 금요일 [32] 아카징키2527 03/10/17 2527
14163 간만에 해본 게임 레드얼럿2... [5] djgiga1474 03/10/17 1474
14162 이병민선수 힘내시길 바래요. [5] kobi2898 03/10/17 2898
14159 어머니를 죽인 학생의 동생이 쓴 글입니다...진짜? [1] 마린스3604 03/10/17 3604
14158 맞춤법 검사 그리고 간단한 인사 [1] 1346 03/10/17 1346
14157 야밤에 문득 떠오른 패러독스에관한 잡생각-_-a [2] 온리진1682 03/10/17 1682
14156 [잡담] 아직 가을인가봐요.. [6] 빵싼종이1443 03/10/17 1443
14155 wcg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5] Ace of Base3217 03/10/17 3217
14154 "부담스러워...." [8] 사무치는슬픔2188 03/10/17 2188
14153 간만에 쓸데없는 실험을 해봤습니다. [5] 먹자먹자~1989 03/10/17 1989
14152 아.....WCG [9] stay2905 03/10/17 2905
14151 외로움은..... [7] 세린1427 03/10/17 1427
14150 좋은사람... [19] 박아제™2406 03/10/16 2406
14149 내일 있을 양대토스영웅간의 격돌 [15] 초보랜덤2808 03/10/16 2808
14148 이제부터 이윤열 선수는 내 동생 [7] Ace of Base3229 03/10/16 3229
14147 한만디로 최고의 테테전이였습니다. [17] kobi4139 03/10/16 4139
14146 오늘 MSL의 한승엽 선수... [16] eyedye4u3597 03/10/16 3597
14144 MSL 문자중계 합시다~ [182] ken2933 03/10/16 293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