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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08 16:34:46
Name 이그나티우스
Subject [일반] 이번 대통령 선거, 사필귀정의 선거
        이번 대통령 선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물론 이것은 도덕적 평가는 아니다. 내가 이런 제목을 쓰면 악의 세력인 윤석열 정권이 물러가고 정의의 세력인 이재명 정권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를 정은 도덕적 올바름의 정이 아니라, 뒤틀려 있던 것이 바로 맞추어졌다는 뜻의 ‘정자세’의 정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윤석열 정권을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윤석열 정권의 잘못을 적으라면 이 글보다 훨씬 더 길고 공격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정치사회학적인 관찰이다.

        사실 사회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난 윤석열 정권은 탄생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사악해서 그렇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윤석열 정권의 언밸런스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해 윤석열 정권은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이었다. 그들은 마치 소수의 유목민이 다수의 농경민을 불안정하게 지배하는 유목민 정복왕조처럼 사회 주류세력과 거리가 먼 소수파 집단이 누더기 같은 승자연합을 구성해 겨우 정권을 잡은 형국이었다.

        한국사회의 명실상부한 현역세대, 주류세력은 4, 50대 기성세대이다. 물론 4, 50대 모두가 권력을 갖고 휘두르는 엘리트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의 조직과 집단이 이들 세대에 의해 주도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돈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고, 여론을 환기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4, 5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4, 50대는 성장기 내내 자신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산업화 세대에 대한 불만과 절망감을 쏟아냈다. 자신들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하는 동안 사회 각계각층, 특히 군을 통해 사회를 움직이는 선배 세대에 대한 불만은 수많은 예술작품과 연구를 통해 절절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 선배 세대들은 이제 점점 후기 고령자 세대로 진입하여 현역에서 물러나고 있고, 예전에 그 산업화 세대의 기득권에 화염병을 던지며 맞서던 민주화 운동권 세대와 리버럴한 X세대가 사회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검철이나 신문과 같이 이러한 세대교체에도 불구하고 친 보수적 성향을 띠는 분야들도 존재한다. 또 4-50대 현역세대들 중에서도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 최근에는 그럭저럭 사회에 자리잡은 30대 초반의 청년 남성들이 강경한 보수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청년들은 광장에만 머물고, 세상은 보수성향의 4-50년대생 산업화 세대가 움직이는 시대는 사실상 저물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4, 50대 현역세대의 원픽은 압도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과거 몇차례의 선거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역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는 제아무리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해도 나라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다. 각급 조직의 실력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세력이 공식적 명령계통에만 의지해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제 한국사회는 정부의 직접 명령이 통하지 않는 두터운 시민사회와 민간영역을 가진 나라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한다고 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이제 아니다.

        내가 지난번 총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제 인재풀에 있어서는 진보정당이 보수정당에 결코 못하지 않거나, 오히려 낫다는 것이었다. 예전같으면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는 대개 운동권 시민운동가 출신들이 많았고, 학자나 언론인, 기업인, 장성과 같은 엘리트 인사들은 보수정당에서 공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번 총선에서는 (100%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보수정당에 오히려 우익계열 시민운동가가 확 늘어난 느낌이었고, 기업인이나 학자, 심지어 전직 검찰이나 국제분야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엘리트와 같은 인재들도 대거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았고 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선거가 이럴진대 그 아래 단계의 기관장급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 노조의 간부, 미디어 업계 종사자, 대학교수와 연구원, 기업 경영자 등등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밑에서 그런 집단과 조직을 떠받치는 기간요원이 되는 사람들(군 장교, 법조인, 기업 관리직, 공무원, 교사, 기술자, 소상공인 등등)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보성향이 강하고 이번에 이재명에게 투표했겠는가.

        한국의 보수세력은 진보세력은 목소리만 크고 실무는 모르며, 진정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엘리트 집단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에 꼭 부합하는 인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사회의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인사들이 정제된 진보사상을 피력하는 경우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보수세력은 이들이 중국이나 북한 간첩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많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간첩이란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의 그런 논리가.

        결국 윤석열 정권은 점차 소수화하는 일부 엘리트의 지지만 받는 가분수 정권이었다. 그들은 말끝마다 누군가가 ‘발목잡기’를 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신들이 사회 주류세력, 그리고 한창 활동하는 현역세대의 발목을 계속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은 현역세대가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특기할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의 중, 장년 현역세대는 더 이상 퇴행적 권위주의 세력의 사보타주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진정한 실력을 보일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실력이 어떤 것인지는 앞으로의 역사가 평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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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6/08 17:03
수정 아이콘
정말 이재명 정부가 일 잘 하기만 기도합니다 마지막 기회인 듯 한데 이념에 매몰되지 말고 국민주권이라는 말대로 국민만 보고 가길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0
수정 아이콘
언제부턴가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여당이 되면 나라가 잘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도 앞으로 5년간 나라가 평안하기만을 기대합니다.
+ 25/06/08 19:13
수정 아이콘
서로 X되바라 하면 X되는 건 결국 우리 국민이니까요
전기쥐
+ 25/06/08 17:14
수정 아이콘
산업화세대의 영향력은 이제 저물어가는 거죠.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0
수정 아이콘
그렇죠. 후기고령자 세대가 아직도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보긴 좀...
물러나라Y
+ 25/06/08 17:5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지구돌기
+ 25/06/08 18:16
수정 아이콘
윤석열 정부 초기 대통령실 일하는 거 보면서 말씀하신 부분을 크게 느꼈습니다.
이미 은퇴해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할 사람들 혹은 아직 경험을 제대로 쌓지 못한 청년층으로 채워지는 걸 보면서 불안불안했었는데, 역시나 이전 정부에 비해서 미숙한 부분을 많이 드러냈죠.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의 보수세력은 집권 역량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1
수정 아이콘
저도 놀란게, 꽤 오래전에 신문에서 보던 인물들이 또 다시 입각하고 청와대에 들어가더군요. 그만큼 인재풀이 바닥났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심지어는 이대남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대남 중에서 괜찮은 인물을 뽑아 쓰는 것도 잘 안되었던 것 같아요.
라라 안티포바
+ 25/06/08 18:32
수정 아이콘
윤석열보다 박근혜가 컸다고봐요. 그때부터 현타온 전문직군들이 많아서...
저번에 어디선가 봤는데, 보수논객이 민주당은 야심만만한 현역들 입각시키면서 당 차원에서 키워주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냥 아부하는 사람들이나 꽂아주면서, 당 차원에선 아무런 의미없이 3년 허비했다고 하더라구요.
답이머얌
+ 25/06/08 18:48
수정 아이콘
박근혜 정권의 탄생 부터가 산업화 세대의 단말마였죠.
근데...그런 꼴로 쫓겨날 줄은...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2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나름 자리잡은 분들 만나보면 이제는 진보세가 더 강하다는걸 느낍니다. 반면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이 도전자 위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3년을 보낸 것 같아요.
살려야한다
+ 25/06/08 18:35
수정 아이콘
'물론' '그렇다고'가 너무 많아요 크크
이그나티우스
+ 25/06/08 19:03
수정 아이콘
워낙 논쟁적인 주제다보니 너무 단정적인 톤은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해맑은 전사
+ 25/06/08 19:2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의 논지를 이어가면, 20년 정도 후에는 지금 세대가 잘 물러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도 아직 한창인 나이지만 은퇴 후가 가끔 머리에 떠오릅니다. 게다가 지금 10대 20대가 20년 후 우리 사회의 중심 축이 되면 어떤 결정을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리세대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이그나티우스
+ 25/06/08 21:56
수정 아이콘
저도 한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세대인 86세대(60년대생), 그리고 X세대(70년대생)의 퇴장이 한국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궁금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산업화 세대만큼이나 큰 영향을 줄 사건일 것 같습니다.
+ 25/06/08 19:27
수정 아이콘
무능한 사람들 곁에는 무능한 사람들만 모이고

유능한 사람을 무능한 집단이 끌어내리는 경향이 있죠.

국민의 힘은 이미 그런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이그나티우스
+ 25/06/08 21:57
수정 아이콘
간단히 생각해봐도 거액을 들여 당선되고 싶은 정치 지망생들이 국힘을 택할지 민주당을 택할지 생각해본다면... 이건 본인의 신념 이전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 25/06/08 20:24
수정 아이콘
공무원 출신이 공무원 컨트롤을 잘 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윤정부에 있었지만 이른 시기에 꺽여버린 게 현직 감각으로 공직 사회에 대한 운용의 묘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공무원의 폐쇄성과 그들만의 언어와 행태를 보여주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지자체장들의 지방 운영은 중앙의 도움을 받거나 하면서 야권 지자체장들보다 조금 더 나았을 상황인데도 전혀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보수의 이후 큰 과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그나티우스
+ 25/06/08 21:59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검찰직 공무원은 일반공무원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입직과정이나 커리어패스,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는 조직문화 등등도 다른 점이 많이 있는 듯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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