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대한 논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근대 이전에 어땠는가,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할 때 대한제국은 독도를 뭘로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해방 후에 독도가 어떻게 됐는가죠.
일단 숙종 때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문제,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을 썼었습니다.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5&sn=off&ss=on&sc=on&keyword=독도&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0274
결론은 공도 정책은 일정한 주기로 그 섬에 들러 토산물을 가져오고 사는 사람들을 육지로 끌고 오는 적극적인 정책이었고,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으로 쭉 끊겼다가 숙종 때 안용복 이후 다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네, 여기에는 독도에 대해 확실히 명시된 것은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말한 송도(마쓰시마)와 안용복이 말한 자산도는 확실히 독도를 말 하는 것 같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없죠. 그럼 일본 쪽을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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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시청합기(온슈시초고키)
은주, 일본의 오키섬에 대해 설명하는 이 사료에서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중간까지는 한일의 해석이 같지만, 이 부분에서는 다르죠.
"일본의 오키시마로부터 북서쪽으로 배로 두 낮 하루 밤 거리를 가면 송도(松島)
[당시의 독도]가 있고, 송도로부터 하루 낮거리에 죽도(竹島)
[울릉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기죽도(磯竹島)라고 한다. 대나무·어류·바다표범이 많다. 생각해 보건대, 신서에서 말하는 소위 이소타케루
[五十猛]가 아닐까?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이 두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雲州)에서 은주(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한즉 일본의 서북 경계지는 차주(此州)로 한계를 삼는다"
마지막 문장이 문제입니다. 이것의 원문은 "然則 日本之乾地 以 此州 爲限矣"입니다. 此州를 한국에서는 이 주, 즉 은주로 보고 일본에서는 이를 울릉도와 독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1823년, 이는 오키국고기집으로 다시 나오는데 여기서는 이 州를 國으로 확실히 표기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여기서는 울릉도에 조선인들이 와서 산다는 것 역시 적어 놨죠.
저기서 운주는 이즈모, 현재의 시마네 현입니다. 조선에서 울릉도 보는 걸 시마네 현에서 오키 섬 보는 것과 비교한 것이죠. 울릉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 생각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비유일까요?
그보다 문제인 것은 여기서 州를 행정구역이 아닌 섬으로 쓴 게 있냐는 것입니다. 답은 없다입니다. 여기서 州는 66번 나오는데 그 중 65개가 행정구역으로 쓰였고 나머지 하나는 뜻이 불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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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 지령서
일본해 내 죽도 외 1도 지적편찬방사
죽도 관할의 건에 대하여 시마네현으로부터의 별지의 질품이 와서 조사한 바, 이 섬의 건은, (옛 정부의 문서 및 조선에서 온 공식 문서 등) 즉 원록 12년에 이르러 각각 왕복이 끝났으며,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다고 들었지만] 판도의 취사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별지서류를 첨부하여 위념해서 이에 품의합니다. - 명치 10년 3월 17일
답 : 문의한 취지의 죽도 외 1도의 건은 우리나라와 관계 없다는 것을 심득할 것.
1877년 시마네 현에서는 이 두 섬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한창 일본의 영토가 어디까지냐 할 때였죠. 이를 위해 시마네 현에서는 각종 문서를 주었고, 태정관에서는 일본과 관련 없다고 확정합니다.
이 죽도, 울릉도 외 1도가 무엇이냐는 것이 또 다른 떡밥입니다. 일본은 이를 울릉도 동쪽에 붙은 작은 섬 죽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독도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죠. 헌데 이 1도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차 1도는 송도라고 부른다. 둘레가 30정 정도이며 죽도와 동일 선로에 있다. 은기(오키섬)과 거리가 80리 정도이다. 나무나 대나무는 드물다."
참고로 울릉도를 설명할 때는 오키 섬에서 120리가 떨어져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건 독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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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측 주장에는 막부에서 도해 면허를 내 줬고, 이를 일본인들이 독도를 관리한 증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일본에 있는 섬에 갔을 때 도해 면허를 발급한 역사가 없습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남의 땅인 걸 아니까 그에 대한 면허를 내 준 것이죠.
1696년, 막부는 왜 1625년에 발급한 걸 아직도 쓰고 있냐고 탓합니다. 이는 이 도해 면허도 1회용이라는 걸 말 해 줍니다. 여기서 돗토리번은 울릉도가 일본에 속하지 않았다고 답변했고, 이 과정에서 송도, 독도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 여기서도 역시 독도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죠.
1832년에는 독도 떡밥에서 유명한 하치에몬의 처형이 일어납니다. 이 때 막부는 도해금지 팻말을 내걸며 "다른 나라에 도해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한다"고 했죠. 일본에서는 이 때 독도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하치에몬이 독도까지만 가고 울릉도에 안 갔으면 안 죽었을 거라고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백 년도 더 전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 아니라고 한 상황에서 이 때 독도를 자기 땅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애초에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죽도와 송도를 같이 취급했습니다. 독도는 울릉도로 가는 길목이었을 뿐이었죠. 안용복 사건 때 역시 마찬가집니다. 일본인들부터 안용복도 그 둘을 같이 취급합니다. 일본측 사료에서는 강원도에 죽도와 송도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강원도로 가는 도중"으로 해석합니다만. 좀 어려운 얘기니 추가 설명 필요하면 댓글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안용복이 괜히 잘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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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논지는 이 정도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의 사료에 이게 더 잘 나타나고, 친절하게 이 둘을 같이 엮어서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게 울릉도 근처의 다른 섬이라고 하지만 그 자신이 친절하게 울릉도와 거리가 있다고 말 해 주고 있죠. 그리고 일본 땅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독도를 자기 땅으로 편입하기까지 그들이 독도를 경영했다는 것은 모두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독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기를 잡았든 이것은 모두 불법이라는 것이죠.
이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에 독도를 편입할 때입니다. 이 때 일본의 명분은 "무주지"라는 것이죠. 이 때에도 독도를 조선령으로 본 것을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런 거 다 무시하고 무주지였습니다.
이것이 성립되려면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는 독도의 존재를 몰라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지 볼까요?
대한제국 칙령 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것
2조 군정위치는 대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일
이 "석도"를 일본에서는 독도와는 별개의 섬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과 독이 혼동되는 것은 한국지명총람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고종은 울릉도 개척 정책을 폈고, 특히 호남에서 울릉도로 많이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독과 석이 혼동되는 것 역시 전라도에서 많구요. 다 똑같은 돌을 말한 겁니다. 석도라 한 것은 훈차고, 독도라 한 것은 음차일 뿐이죠.
결정적으로 이 석도가 다른 섬이고 독도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보고서는 없었을 겁니다.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소 안에, 본 군 소속 독도가 본부 바깥바다 백여리 밖에 있는데, 이달 초 4일 9시경에 증기선 1쌍이 우리군 도동포에 도착하여 정박하였고 (중략) 스스로 말하기를
[독도]가 이번에 일본의 영지가 되었기에 이번에 시찰차 나온 것이다 하는 바 (중략) 이에 보고하오니 살펴주시기를 엎드려 청하옵니다." - 광무 10년(1906) 4월 29일
이는 울도군수 심흥택에서 강원도 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의 손을 옮겨 조정에 보고됩니다. 여기서는 명백히 독도가 우리 것이라고 말 하고 있죠. 한편 1904년에 조사차 독도에 파견된 일본의 군함 신고호 역시 한국에서 이를 독도라고 부른다고 해 놓았죠.
이것이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간단합니다.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무주지로 전제하고 일본 영토에 편입합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나 시마네 현에서나 이를 고시했다는 증거가 없죠. 그리고 이들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주장하며 나온 것은 1906년 4월 29일이었습니다.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06년 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부가 폐지됐고 을사조약에 따라 2월 1일 통감부가 서울에 설치됩니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에 넘어갑니다. 다시 말 하면 그 때 독도를 되찾으려면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을 위해 일본에게 독도를 강점한 것을 따져야 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웃긴 일이죠. 한국이 독도를 몰랐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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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까지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 생각했다는 것은 모두 불법 어로일 뿐 무효이고, 20세기 초 독도를 무주지로 보고 먹은 것 역시 대한제국이 이미 독도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강제로 점령한 것에 불과합니다.
+) 그리고 이거 보면 둘이 모순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독도가 원래 일본 땅이라는 걸까요 20세기에 무주지를 새로 먹었다는 걸까요?
문제는 해방 후에 이게 제대로 먹혔느냐는 것이죠. 일본은 패전 후 자기들이 반드시 지켜야 될 섬들을 정해 미군을 설득합니다. 독도만이라도 자기 땅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죠.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SCAPIN 677호)에는 독도가 분명히 명시돼 있습니다. 한국은 이를 내세우죠.
http://mirror.enha.kr/wiki/%EC%97%B0%ED%95%A9%EA%B5%B0%20%EC%B5%9C%EA%B3%A0%EC%82%AC%EB%A0%B9%EA%B4%80%20%EA%B0%81%EC%84%9C%20677%ED%98%B8
한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의 로비로 독도가 빠졌고, 최종적으로도 빠졌죠.
얘기하면 길어질테니 아래 산타님이 링크해주신 블로그의 글들을 링크해 보도록 하죠.
http://blog.naver.com/cms1530/10004005195
미 국무부는 독도에 대해 양유찬 주미 대사등에게 물었지만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 했다고 하며 한국에서 이 섬의 위치를 확인시켜주지 못 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건 문제입니다만 자세히 조사해도 어려울 판에 전쟁 중에 시간을 길게 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들을 만족시켜주진 못 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정보를 줬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걸 받아줬을지 의문입니다.
http://blog.naver.com/cms1530/10003962648
52년 10월 3일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보낸 문서에서는 이 섬이 한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자질구레한 말을 한 뒤 일본에게 넘긴다면 군사목적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세가 드러나는 것이죠.
48년과 52년, 독도는 미 폭격기의 훈련장으로 쓰입니다. 어차피 일본에 받은 것도 많겠다, 미국으로서는 이 땅이 한국땅이든 일본땅이든 별 상관 없었습니다. 그저 친미 지역으로 남으면 됐을 뿐이죠.
독도가 이 미군의 훈련장소에서 벗어난 것은 195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태도 역시 변합니다.
http://blog.naver.com/cms1530/10032918209
여기서 미국은 러스크 서한을 통해 확실히 일본의 입장을 들어줬지만 이건 여러 입장 중 하나일 뿐 53년 현재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현재까지 내려져오고 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다시 생각해 봐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독도가 빠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대놓고 독도를 일본 땅으로 밀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이는 일본이 겪고 있는 모든 영토 분쟁과도 연결됩니다. 소련과 문제가 되는 남쿠릴 열도는 초안에는 일본 영토에서 명백히 빠졌지만, 나중으로 가면서 이것도 애매하게 작성됐습니다.
일본 편을 드는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미국은 그 때 하고자 하면 우리에게 좋든 안 좋든 독도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영토 분쟁 역시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일본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 지역들이 분쟁 지역으로 남는 것이었죠.
일본은 한국, 러시아, 중국과 대만과 모두 각기 섬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일본은 고립되며 미국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과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좀 더 협력해주길 바라지만 자기를 무시할 정도로 붙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한 데 묶인 만큼 서로 친하긴 하되 그래도 미국에게 매달리길 바랄 뿐이죠.
네, 독도는 분쟁지역입니다. 하지만 이는 양국의 주장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진짜 일본 편을 들었을 거면 한국전쟁 동안 그냥 미군을 진주시키든지 해서 한국인들을 쫓아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땅이라고 확실히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그게 미국에게 유리하니까요. 독도에 대해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것 같나요? 그렇다면 그건 독도 문제에서 한국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져 갔습니다. 단지 한국 해군의 문제가 아니라 전범국, 평화를 외치는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죠. 거기다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문제입니다. 중국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과 더 친해져야 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뺏긴 땅"의 대표인 독도를 그냥 한국 땅으로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군사적인 협력을 바라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모순된 행동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건 한국 역시 마찬가집니다. 일본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까 걱정하던 이승만 때라면 모를까 한국이 발전해 가면서 독도 문제는 그저 여론을 이용하는 수단에 가까워져 갔습니다. 정치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독도는 일본에 못 줍니다. 독도는 일제에 가장 먼저 빼앗겼던 땅이고, 우리 독립의 상징이니까요. 거기다 군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독도를 잃는 의미는 너무도 큽니다. 그렇다고 독도를 이용해 반일 감정을 지나치게 고취시킬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싫다 해도 지금 일본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 버렸으니까요. 그냥 한 번 이용해 먹고 묻을 뿐이죠. 양 쪽의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거기다 어차피 우리가 실질 점유한 이상 문제를 더 키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가 있을까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느냐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더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외교적으로 큰 싸움이 나든, 그냥 인터넷에서 키배를 벌이든 알아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그 곳을 우리 땅이라고 생각한다면요. 이를 위해 일본의 주장이라도 확실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일본의 주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깨뜨릴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19세기까지 일본의 어부들이 독도나 울릉도에서 어업을 했던 것은 불법이었고, 일본 정부에서도 그걸 인정했습니다. 지금의 일본 정부는 왜 그렇게 문서로 일일이 남겨놨냐고 분통을 터뜨릴 겁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울릉도였지 독도가 아니었구요.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갑자기 입장을 바꿔 무주지니까 독도를 먹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이걸 몰래 자기 땅으로 삼은 걸 알았을 때는 외교권이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이 때에 이르러서 러일전쟁 등을 통해 일본은 독도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대한제국은 아직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 했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히 자기 땅이라 인식했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해방 후, 미국은 어느 쪽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라 일본의 로비와 자기들의 이익 때문에 독도를 누구 땅으로 확실히 정하지 않고, 분쟁 지역으로 남겨뒀습니다.
이상,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더 길게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준비가 덜 됐고 다 쓰면 글 몇 편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1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