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4/04/09 22:56:16
Name 트린
Subject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7)








놈이 입을 열었다.


“수사(修辭)로 가리려고 의도하여도 태생이 미천하여 사회의 맨 밑바닥을 이룬 채 강탈당하고,
침탈당하고, 약탈당하도록 예비된 인생이 감히 이몸 크로마틱 드래곤 클랜 소속 레드 드래곤을
섬기는 나 레드 사무라이에게 저항하느냐. 누구냐, 누구부터 구천으로 돌아가 또다시 업을 받
아 윤회의 굴레에 올라서서 그녀 역시 미천한 어미의 몸에서 태어날 때까지 본인의 나약함을
곱씹으면서 또다시 삶의 허무함과 죽음의 공포, 죽기 전 몸이 찢기고 불태워지는 괴로움을 되
새길 자가.”




*



수성이 말했다.


“얘 센 거 아시죠? 15점 마법 피해에 5점 불 피해 추가로 해서 20점이에요. 저비용 유닛 같은
애들은 스치면 한 방이죠. 게다가 사무라이 계열이라서 광역 피해 가능한 브레스 웨폰까지. 보
자. 그럼 어디로 갈까나, 어디로 갈까나?”




*



그러자 하플링 레인저가 대꾸했다.


“거 붉은 아저씨 말 많네. 친구들이 싫어하겠어.”




*



“수성 씨가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겠어요. 좀 조용히 하시고, 침 그만 튀기시고 얼른 플레
이하세요.”




*



레드 사무라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하플링 레인저에게 돌진했다. 끈적 버섯밭도 분노한
레드 사무라이의 기세 앞에는 별반 대단한 장애물이 아니었다.


“죽어라!”


레인저에게 달라붙은 레드 사무라이는 달려온 속도 그대로 불이 일렁이는 양손 도를 내리쳤다.
날렵한 하플링도 피할 수 없는 강하고 정확한 일격이었다. 하플링 레인저는 도를 고스란히 맞고
바로 주저앉을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러나 결국에는 버텼다. 하플링 레인저는 억지로 웃는 얼굴
을 하며 코퍼 사무라이 은실을 바라보았다.
은실은 굳으려는 표정을 애써 밝게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성공이야.’


주공인 레드 사무라이가 하플링 레인저와 두 마리의 늑대, 바드 등 다수가 모인 곳에 불벼락을
내리지 않고 단 한 명만 목표한 뒤 단 한 대만 때리러 이곳에 들어온 것은 사실상 고립을 자처하
는 수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숨어서 이를 보던 적 워밴드 리더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어비설 에비스레이터를 등장시
켰다. 2미터의 키에 인간형이지만 인간과 비슷한 점은 그것으로 끝인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번들거리는 남색 피부에 흉측한 얼굴, 혀를 대신해 입에서 튀어나온 촉수, 등뼈를
따라 돌출한 칼날 같은 돌기의 어비설 에비스레이터는 잠시 망설이다가 허리께에 한 쌍 더 붙
은 손톱이 긴 손을 꽉 쥔 채 토끼나 개처럼 역각으로 붙은 다리를 재게 놀려 끈적 버섯밭 한 중
간까지 들어왔다. 위협과 노출을 통해 레드 사무라이에 집중될 공격을 조금이나마 덜려는 의도
였다.
은실이 외쳤다.


“상관없어! 그레이클록 레인저!”


그녀의 외침에 응답하듯 그레이클록 레인저가 관리하던 늑대가 벽 뒤에서 뛰쳐나왔다. 늑대는
하플링 레인저가 레드 사무라이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잘 겨냥했다가 날카로운 이빨로 발목 부근
을 세게 물었다.


“으억!”


레드 사무라이의 비명은 분노와 놀람, 당황스러움이 어려 있었다. 공격이 성공적이라는 충분한
증거였다.


“다음!”


은실의 외침에 하플링 위저드가 주문을 외우더니 푸른색 빛 화살을 날려 그저 어설픈 자세로 서
있던 레드 사무라이의 등짝에다 꽂았다. 레드 사무라이의 출혈이 좀 더 늘었다.
하늘에서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로 적 워밴드 리더로 생각되는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고립된 레드 사무라이에게 모든 공격을 집중한다는 은실의 작전은 적중한 동시에 적 워밴드 리
더도 명백히 깨달은 듯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파충류 인간 트로글로다이트와 오크 워리어
가 전속력으로 뛰어서 그레이클록 레인저와 나머지 늑대 한 마리 앞에 달라붙었다. 협력 공격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오크 워리어는 약하다는 점이었다. 가로막힌 늑대가 신경
질적인 태도로 오크 워리어에게 달려들었다. 나름 갑옷과 가죽을 덧대 입었던 오크 워리어는
목줄을 물려 피거품을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지섭 닮은 애 죽었네.’


치렁치렁한 머리 스타일에 헤어밴드를 한 오크 워리어를 보고 든 소감이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났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 팬이 알았다면 목을 조를 만한 평가를 내린 은실
은 약간의 고민 끝에 그레이클록 레인저에게 트로글로다이트와 한 발짝 떨어지도록 지시했다.
거대하고 위협적인 도마뱀 같은 인간형 괴물 트로글로다이트는 그레이클록 레인저가 떨어지려
는 틈을 타 자신의 돌칼을 휘둘렀으나 맞히는 데는 실패했다.
그레이클록 레인저에게 레드 사무라이 쪽으로 좀 더 다가오라고 지시하려는 순간 은실은 할 말
을 잃고 말았다.
오크 워리어의 숨통을 완전히 끊은 늑대 주위로 보라색의 기운이 피어오르다가 몸 안으로 파고
들었다. 늑대는 좀 더 표독스럽고 잔인한 얼굴로 변하는 한편, 좀 더 커지고 거칠어진 것처럼 보
였다.
은실이 중얼거렸다.


“흡혈 지하묘지.”


이곳의 기운 때문에 처음 1회 적을 죽인 유닛은 공격 굴림과 저항 굴림에 +1, 접근전과 원거리전
대미지에 각각 +5의 혜택을 받는다던 법칙이 홀연히 떠올랐다. 그 법칙이 맞는다면 늑대는 지금
악의 기운을 받아 좀 더 강해진 것이었다. 좋아해야 하는 걸까?
……일단은 그랬다.
은실은 마음을 바꿔 그레이클록 레인저에게 소리쳤다.


“트로글로다이트를 쏴!”
“트로글로다이트. 알겠습니다.”


화살은 보기 좋게 가장 가까운 파충류의 몸을 파고들었다. 은실은 울부짖음을 배경 삼아 잠시
기다렸으나 적 지휘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형세가 불리하니 숨어 있자는 생각인 듯했다.
은실은 단숨에 달려 그레이클록 레인저의 화살에 이미 상처를 입은 트로글로다이트에게 달려들
어 일격을 먹였다. 녀석은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초승달을 닮은 녹색 눈을 위아
래로 희번덕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미안.’


잠시 후 계획대로 코퍼 사무라이 워밴드 리더 은실에게 악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머릿속에 끔찍
한 심상들이 순간적으로 들어왔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전쟁, 학살, 살인, 처형, 식인 의식
같은 가장 안 좋은 장면들만 모아놓은 심상은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뚜렷해질 것 같았지만 은
실은 당연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팔다리에 근육이 오르고, 근처의 적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길에 자연스레 약점을 찾는 교활하고
잔인한 지혜가 실리는 현상이 느껴졌다. 악의 기운이든 뭐든 어쨌든 은실은 확실히 강해졌다.
그 사이 하플링 레인저가 외쳤다.


“자, 내 차례인가?”


하플링 레인저는 허리에서 롱소드를 꺼내 눈앞에서 뻣뻣하게 굳어 힘들게 서 있는 레드 사무라
이에게 휘둘렀다. 사무라이는 피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검이 두 번이나 들어가 레드 사무라이는 이제 갑옷 색깔로만 붉은 게 아니었다. 출혈과 함께 놈
의 의지도 조금씩 아래로 새는 중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은실은 그렇게 느꼈다.




*



“항복하시죠?”
“네?”


은실은 좀 멍청한 아이를 타이르는 교사처럼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말했다.


“항복하시라고요. 저는 살인범을 잡아야 해요. 그것도 한두 명을 죽일 속셈이 아닌 치명적인
살인범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놈은 누군가를 죽일 계획을 세우
고 있거나 실행에 옮기는 중일지도 몰라요. 뭐가 더 중요한지는 수성 씨도 잘 알겠죠?”
“저는 항복하지 않겠습니다.”
“왜요? 트로글로다이트랑 오크 워리어는 죽고, 레드 사무라이는 5점만 더 피해를 입는다면
사기 굴림을 해야 해요.”
“전 그렇게 보지 않아요. 조공은 아스 님 말대로지만 주공은 아직 살아 있어요. 어비설 에비
스레이터에 티플링 캡틴이 나서면 이 정도 상황은 금방 뒤집을 수 있어요. 전 항복하지 않겠
습니다.”
“그래요…….”


은실은 미리 준비한, 최고로 치사한 수법을 써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까지는 쓰
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여러 개의 버튼이 달린 주머니 속 리모콘의
특정 버튼을 꾹 눌렀다.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5-08 16:24)
* 관리사유 : 연재글 이동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공지 [공지] 연재게시판 종료 안내 [9] Toby 14/07/21 36662
766 유랑담 약록 #11 / 120612火 _ 동네 한 바퀴 / 외전3 _ 게임, 계층, 취미, 한류 [11] Tigris45788 14/06/30 45788
765 유랑담 약록 #10 / 120611月 _ 미인의 도시 아키타 / 외전2 _ 삿포로의 신년맞이 [9] 삭제됨40771 14/06/25 40771
763 유랑담 약록 #08 / 120609土 _ 다자이 오사무의 우울 [11] 삭제됨34355 14/06/17 34355
761 유랑담 약록 #06 / 120607木 _ 홋카이도의 마지막 별하늘 [5] 삭제됨32345 14/05/27 32345
760 유랑담 약록 #05 / 120606水 _ 흐린 날의 노면전차, 하코다테 [6] 삭제됨39891 14/05/22 39891
759 유랑담 약록 #04 / 120605火 _ 8인7일 계획 / 외전1 _ 홋카이도의 먹거리 [6] 삭제됨33687 14/05/16 33687
755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5) 트린29328 14/07/10 29328
754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4) [2] 트린29579 14/06/19 29579
753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3) [1] 트린30122 14/06/05 30122
752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2) 트린30824 14/05/22 30824
751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1) [5] 트린31551 14/05/08 31551
750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8-끝) [4] 트린31166 14/04/23 31166
749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7) 트린31130 14/04/09 31130
748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6) 트린30575 14/04/02 30575
747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5) [1] 트린31689 14/03/26 31689
746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6) [2] 캡슐유산균31081 14/03/23 31081
745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5) [1] 캡슐유산균30315 14/03/20 30315
744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4) [3] 캡슐유산균27533 14/03/15 27533
743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3) [3] 캡슐유산균28113 14/03/15 28113
742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4) [2] 트린28077 14/03/21 28077
741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2) [1] 캡슐유산균27980 14/03/08 27980
740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3) 트린28924 14/03/12 2892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