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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31 16:43:36
Name The xian
Subject [스타2 협의회 칼럼] Last & Rest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에 계신 분들.
그리고 프로게이머 및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 관계자 여러분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금일부로 저는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 자문위원직을 사퇴합니다.

지난 칼럼 작성 이후 상당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고, 오늘까지 결론을 내리려고 했던 결정입니다.


자문위원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되도록 팬들과 가까운 위치와 시각에서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를 바라보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 목소리에 따라 조언을 하고 비판을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그 모습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협의회에 계신 여러분들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팬들이 판단하시겠지요. 그 역할을 맡고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대를 가지기도 했고 기대를 표출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미성숙함 및 프로답지 못한 모습에 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칼럼을 통해, 때로는 외부의 시각보다 더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드리지 않았을까 우려됩니다.


아시다시피,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강제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스타크래프트2 리그 자체가 열린 리그를 표방하고 있고, 협의회는 구속력을 가진 협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협의회'입니다. 따라서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협의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협의회에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자발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하겠지요.

선의와 친분이 잘 유지되든, 게임단의 처우가 좋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든. 무언가가 있어야 협의회라는 단체가 그만큼 잘 유지될 수 있고 더욱 굳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를 이루는 각 게임단의 처지가 아직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다움을 제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미성숙한 상황입니다.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는 갈 길이 멉니다. 최근의 여러 사태들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호준 선수 계약건은 당초 팀의 협의가 없었다고 하면서 언론을 통해 이운재 감독이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계약서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협의회 및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 선수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치부만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스폰서를 모든 팀이 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초창기라면 몰라도 e스포츠 역사가 10년이 넘었는데 계약서 없이 프로생활을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팬은 이제는 많지 않지요. 팬들이 이제는 그런 일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협의회 규정 중에는 '선수 개개인과의 계약관계를 서면상으로 분명히 하여야만 한다', '게임단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게이머의 소속팀 이동에 관해 일체 관여 할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 TSL은 협의회 소속이었으니 이운재 감독이 이호준 선수의 계약건에 대해 불쾌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그것과도 위배되는 일이지요. 선수와 팀과의 약속은 규정대로 만들어 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쟁이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프로의 시스템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협의회의 신뢰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TSL 탈퇴 및 제명 과정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 이미 길게 설명한 내용이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기준과 체계에 따라 엄정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편향된 생각과 과정에서 나온 잘못된 결정이었고. 그로 인해 한 모임에서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제재수단인 '제명'이라는 절차가 졸지에 우습게 전락하고 말았지요. 더불어 협의회라는 단체가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사건 당사자들은 '오해로 비롯된 일'이라고 하면서 이번 일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달라고 했지만 그런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상황을 연출하기에는 이 일은 너무도 심각했지요. 지난 번 칼럼에서 '앞으로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번 일은 머리 위를 떠도는 칼처럼 계속 협의회에 대한 신뢰를 위협할 것입니다.'라고 경고한 대로 이 일은 이후의 이슈에서 협의회 측에 좋지 않은 말이 나오게 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의 NASL 불참이 - 실제로는 각 팀이 결정한 것임에도 - 협의회의 결정인 것처럼 알려진 사건이나, ZeNeX - 슬레이어스 사이의 선수 이적과 관련된 잡음 등에서 보듯, 실제로 협의회에 대한 신뢰나 능력 문제는 계속 시험대에 오르고 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잘못들로 인해 협의회는 물론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대해 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따라오는 것은 감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문위원이든 아니든 저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므로, 앞으로 여러 관계자분들께서 협의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합니다.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이 서로 마음과 뜻을 합해서 진행해야 하는 일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벌어진 시행착오나 잘못들이 정말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 리그의 권리와 고유의 성격이 침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이 앞으로도 뭉쳐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것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한편으로, 협의회에 계신 분들이나 없는 살림 속에 선수들까지 건사하며 살아야 하는 각 팀 관계자분들에 비할 바는 아닐지 모르나 저 역시 지난 8개월 동안 상당한 정신적, 물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자문위원 수락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사업부 폐쇄를 당하며 원치 않게 직장을 잃어버린 상황이었고. 지금은 개인생활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해 자문위원 명목으로 블리자드나 그래텍 등에서 거액을 받는다는 식의 황당한 유언비어가 들려오거나 이번에 공개된 여러 사건 등으로 인해 대체 협의회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할 때에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요.

저의 곤궁함을 비롯한 이런 이야기들을 몇몇 분들은 알고 계셨을 사실이나 이런 사실을 몰랐던 많은 분들께서는 '그런 부분을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은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의 초창기입니다. 다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해 바로 서는 데에 바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어려움들은 겪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니 너무 괘념치 마셨으면 합니다. 지금은 비단 저 뿐만 아니라 e스포츠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게임이라는 분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분야를 바라보고 살면서 게임의 즐기는 재미와 e스포츠의 보는 재미가 서로 잘 어우러져 대한민국의 게임문화가 반영구적인 성장 동력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런 저의 바람을 배신하는 일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e스포츠의 토대를 흔드는 일들 중에는 프로답지 못한,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일들이 원인이 된 것들이 많이 있으며, 그런 점이 더욱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물론 게임이나 e스포츠 모두 상업적 콘텐츠입니다. 따라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콘텐츠에 돈과 명예가 따라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콘텐츠에 돈이나 명예 등이 따라온다면 그것은 도둑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설령 처음에는 기본과 프로다움을 가진 콘텐츠라 한들, 갈수록 기본에 충실하지 않게 되고 프로다움에 충실하지 않게 되면 으리으리하게 쌓아 놓은 토대도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고 지금 쥐고 있는 재미와 명예도 한 순간에 사그라들 수 있습니다.

최근의 크고 작은 잘못들을 거울삼아,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제대로 된 체계를 만들어 가며 내실을 기하는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와, 협의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저는 다시 한 명의 e스포츠 팬으로 물러가 있겠습니다.


-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 자문위원 박원기(The xian) 드림.


* 이상으로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 칼럼 연재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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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31 22:34
수정 아이콘
Xian 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11/09/02 13:28
수정 아이콘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휴 ㅠㅠ
워3팬..
11/09/05 20:34
수정 아이콘
흠 이러나 저러나 해도 팬 입장에서 칼럼을 쓰시는 것도 더 좋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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