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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7/09/12 04:33:22
Name 신불해
Subject "유방, 소하, 한신, 조참, 팽월 같은 잡것들보단 우리가 낫지!"



 중국사의 큰 흐름 중에 하나가 호한(胡漢) 체제입니다. 기존의 중국인을 의미하는 한(漢)과 소위 '오랑캐' 를 의미하는 호(胡)가 계속해서 합쳐진다는 의미입니다. 애당초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의 중원의 조그마한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확장되고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 시대 기록을 보면 그래서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치면 변방은 커녕 지형상 중국의 가운데 정도나 될 옛 초나라 지역쪽을, 주나라의 소왕(召王)이 흡사 로마 장군이 게르만족 땅 가다가 당한것마냥 순시하다가 죽기도 하고, 초나라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때 최초로 제후가 된 웅역(熊繹)은 제후들 회맹에 참가했을때 주나라 천자로부터 "형만(荊蠻) 오랑캐 놈은 밖에 나가서 화로나 지켜 임마." 라는 말 듣기도 하고, 최초로 왕위를 주장한 초무왕(楚武王)은 자기 입으로 대놓고 "나 남쪽 오랑캐인데 요즘 제후들이 보니 버릇없이 까불더라. 그러니 내가 왕이 되어야 겠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등.... 



 그런 초나라나 멀리 진나라도 한나라가 건국된 시점에는 자연스레 한화(漢化) 되었습니다.  그런식으로 과거에는 이민족이었던 존재들이 자연스레 '중국인' 이 되었고, 역사상 이런 사례가 계속해서 반복 됩니다.




 중국 역사상 이런 현상이 가장 격렬하게 작용했던 시기가 바로 남북조시대, 그 중에서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였습니다. 중국 내부에서의 통제력의 상실과 장벽이 사라짐에 따라 북에서부터 온갖 이민족들이 끝도없이 꾸역꾸역 밀고 내려와서 자리를 잡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중국인이 되어가고, 또 그러면 위에서는 또다른 이민족이 꾸역꾸역 내려오고 등등...



 그렇게 저글링 블러드 하듯 내려온 이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유력했던게 바로 '선비족' 이었고, 이런 선비족이 계통에서 가장 유력한 왕조였던 '북위' 가 탄생했으며, 그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갈라지고 난 후 동위가 '북주' 가 되었고, 이 북주가 훗날 수나라가 되어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때문에 수나라와 (본래 수나라 황족과 인척관계였던) 당나라를 '선비족 왕조'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올라가고 올라가다보면 선비족이 나온다... 는건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다만, 간혹 이런 말 하는 경우에는 '수나라, 당나라는 한족 왕조도 아니고 선비족이 세운 나라고 중국 역사도 아니다' 는 식의 괴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건 정복왕 윌리엄 이후의 영국 역사(그러니까 한 1,000년 가량)는 '영국인의 역사가 아니다'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인 말입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수나라, 당나라 황족 및 최고위 지배층들에게 "넌 절대 정통 중화인이 아니고, 자랑스럽고 씩씩한 상무정신을 지닌 선비족의 후예다. 유목민의 위대한 자긍심을 가져라!" 라는 따위의 말을 한다면, 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분노하면서 욕을 하거나 말한 사람을 자기들 모욕했다고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삼국지' 를 보신 분들이라면, 당시에 세력을 떨친 여러 호족들을 아실 겁니다. 삼국지의 군주 중 상당수가 그런 호족의 중심이라던가, 아니면 자기가 군주 되고 나서도 이런 호족들을 달래면서 협조를 얻는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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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거...




 이렇게 점차 세력을 키우고, 중앙에서 관직도 얻고, 또 그렇게 관직을 얻고 난 다음에는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에 의해서 자기들끼리 추천해서 계속 관직을 신나게 돌려먹다보니 이들은 점차 확연한 특권계층, 즉 귀족이 되어갔고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대략 후한 말기와 조위, 서진 시대부터 무려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한번 갈려나가기 전까지 거의 한 700년 가량. (물론 측천무후-당현종 시기에 관롱집단이 타격을 받는다던가 하지만 귀족정치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말입니다.)




 이렇게 수백년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면서 돌려먹고 특권을 키우고, 새로 황제가 되는 사람들도 당장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그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으니 뭐 손도 쓸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황제나 아예 나라가 갈려나가도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있고, 그대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더 특권과 가문은 키우고... 하는 흐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짓을 수백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들의 특권의식 및 가문빨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 되었는데.... 



 무협지에서는 '오대세가' 가 나오지만, 이 귀족집단에서는 소위 칠성십가(七姓十家)로 불리는 가문들이 최고였습니다. 칠성십가는 오직 자기들의 가문들끼리만 통혼하면서 '순수성' '배타성' 을 키워나갔고, 칠성십가에 포함되지 않는 가문들끼리는 통혼도 잘 하지 않았지만 만약 통혼하게 된다면 그쪽에서 어마어마한 재물을 받아야만 겨우 허락해주었습니다. 칠성십가가 그렇게 인정받던 이유는 그렇게 이민족이 들어오는 난리통 와중에 자기들이 가장 깨끗하게 혈통을 지켰다는 건데 글쎄 진짜 그랬을지는 저야 모르고...




 이들의 가문빨이 얼마나 대단했느냐면, 간단하게 말해서 "황제 가문도 가장 높은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가문의 격의 등급을 매기고, 그 가운데서 황실가문도 그 격에서 1등은 고사하고 3등은 하면 다행인 황당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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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천룡인이 된 문벌귀족들





 그런 귀족집단들 중에서도 수, 당나라를 이끌어간 주요 집단은 바로 무천진 관롱집단(武川鎭關隴集團) 입니다. 기존 귀족과 군벌이 결합된 그들은 칠성십가에 비해서 그나마 좀 배타성이 덜한 귀족 가문으로, (그리고 그래서 가문빨이 오히려 딸리는) 이들이 바로 북위-서위 및 동위-북주 및 북제-수나라-당나라로 이어지는 건국세력의 중추가 되었던 집단입니다.




 보통 우리가 중국 역사상 가장 한미한 출신으로 몸을 일으켜 황제가 된 개국군주를 주원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반대로 가장 가문빨이 극강이었던 군주는 누구일까요? 





당고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나라 고조 이연



唐太宗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태종 이세민




아마도 그 주인공은 당나라의 개국 군주 이연과, (사실상의 개국군주인)태종 이세민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일단 당태종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태종의 아버지 고조 이연은 팔주국(八柱國)의 후예입니다. 팔주국이란 서위 시절의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 에서 비록된 것인데, 서위 시절에 이 칭호를 받은 사람이 모두 8명 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문태(宇文泰) - 팔주국을 만든 사람.

원흔(元欣) - 황실의 위엄을 떨침. 

이호(李虎) - 우문태를 도운 사람

이필(李弼) - 장수로 이름을 날림

우근(于謹) - 모략가로 이름을 떨침

독고신(獨孤信) - 덕으로 이름을 떨침

조귀(趙貴) - 우문태를 도운 사람

후막진숭(侯莫陳崇) -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침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게임 설정 같은 기분도 드는데... 


아무튼 이 8명 중, 우문태는 팔주국을 창설한 사람으로서 '총령제군' 이라 여러 군대의 병권을 총지휘 했기에 반대로 다른 병력은 없었고, 원흔은 황족이라 병권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6명의 각각 두 명의 대장군을 거느렸는데, 이 12대장군은 또 다음과 같습니다.


(순서는 그냥 서술하기 편하게 쓴거지 실제로 무슨 순위가 있다거나 한건 아님)



1대장군 원육(元育)

2대장군 원찬(元贊)

3대장군 원곽(元廓)

4대장군 우문도(宇文導)

5대장군 우문귀(宇文貴)

6대장군 이원(李遠)

7대장군 달해무(達奚武)

8대장군 후막진순(侯莫陳順)

9대장군 양충(楊忠)

10대장군 두노녕(豆盧寧)

11대장군 하란상(賀蘭祥)

12대장군 왕웅(王雄) 




 이들이 바로 12대장군으로서, 즉 당시의 상비군 군권은 총령제군 우문태를 중심으로 한 팔주국 중 6명의 관할 아래 있는 12대장군의 손에 있었던 겁니다. 팔주국 십이대장군을 비롯해 이렇게 군벌적 성격과 귀족 성격이 합쳐진 '관롱군사귀족집단' 은 장수, 재상은 물론이거니와 황족까지 다 여기서 배출하며 맹위를 떨쳤습니다.




앞서 당고조 이연이 팔주국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팔주국 중 '이호' 가 이연의 조부였습니다. 그리고 팔주국 '독고신' 이 이연의 외조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독고신' 은 다름 아닌 수나라 황제 '양견' 의 장인이었고, 양견의 아버지는 십이대장군 '양충' 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침공한 것으로 유명한 수양제 '양광' 은 당고조 이연과는 '이종 사촌' 이 됩니다. 파고들면 이중삼중으로 연결된 수준인 겁니다.




 그리고 당고조 이연과 결혼한 '두씨' 의 아버지는 신무공(神武公)에 봉해진 두의(竇毅)인데, 두의의 아내는 양양장공주(襄陽長公主)의 딸이었고, 이 양양장공주는 '북주 황제의 딸' 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 당태종 이세민입니다. 




 즉 이세민은 태어나고 보니 아버지는 최고 중의 최고인 팔주국의 일원이자, 수나라 황실과는 친척 사이고, 어머니는 수나라 이전 북주 황실 가문의 일원이었던 셈입니다. 여기로 가도 황실, 저기로 가도 황실이니, 그야말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나 진배 없었습니다.




 하여간 이세민의 출생 계보를 한번 알아보는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찰 지경이니,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오히려 더 끗발 높거나 한 주위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고, 그런 사람들이 나라의 지배자가 되어 다스리는 위치가 되었으니, 급기야 이런 말이 나올 지경이 됩니다.




.....


무덕 3년, 고조는 일찍이 상서우복야 배적에게 이르길,

 
"우리 이씨는 에전에 농서지방에서 귀갑과 보옥을 상당수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다.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제왕과 인척이 되었고, 내가 의병을 이르키자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수개월 지나지 않아 천자에 올랐다. 이전 시대의 황제로 말하자면 대다수는 미천한 출신들로 군대를 지휘하고 진형을 포진시키느라 고생하면서 결코 안심하고 살지 못했다공은 대대로 녹을 받는 명가로 회복했고 지위가 매우 높고 중요한 직무를 담당하는 관직을 지냈는데 어찌 고작 문서 담당 관리 출신인 소하, 조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나와 공만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선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당회요 권 36中




당고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야, 친구야. 내가 예전 황제들 한번 찾아봤는데 대부분은 개족보 패거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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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적


"이거 레알임 반박불가임"



(참고로 배적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스탈린 친구 보로실로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연의 절친이었는데 별 능력은 없어서 농민 반란군에게도 털리고 유무주, 송금강의 세력에 산서 지역을 털려 이세민이 수습하게 만든 사람. 그래도 이연의 베프라 문책 같은거 별로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던 금수저입니다."



당고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짜식들 뭣도 없는 놈들이 황제 해먹는다고 전전긍긍하느라 애좀 썻겠네 ^^"


"야, 친구야. 옛날 황제들도 그랬고, 그 황제들 도왔다는 그 뭐시기냐, 소하, 조참? 걔네들 내가 보니까 그냥 관청에서 글이나 쓰던 놈이더라. 우리가 명가 출신인데 어떻게 그놈들하고 우리가 똑같냐? 솔직히, 풉, 이야기하기도 쪽팔린다야^^"


"솔까 개국군주랑 개국공신 이야기해도 걔내들은 좀 쪽팔리구^^ 시간 지나면 너랑 나 정도가 그래도 끗발 난다고 후세 사람들한테 칭찬 받겠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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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소리야;; she발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나게;;"








...개국군주씩이나 되는 당고조 이연과, 그 절친인 배적이 서로 모여 옛날 황제들은 가문이 구렸던 인간들뿐이고, 그런 사람들 도왔던 소하 같은 사람들은 다들 신분도 천한 잡것에 불과하니 자기들 정도는 되어야 후세에 이름이 남을거라고 자뻑하는 황당한 장면입니다. 황제부터가 이러는 판이니, 다른 신하들이라고 말할것도 없습니다.







"창업한 군주와 신하 모두 귀족으로 하은주 3대 이후 모든 왕조는 우리 당나라에 미치지 못한다. 고조는 팔주국 당공의 손자이며 북주의 명의와 수나라의 원진 두 황후의 외척으로 북주태사 두의의 딸과 결혼하여 북주 태조의 사위가 되었다. 재상 소우, 진숙달은 양나라와 진나라 제왕의 아들이었고, 배구, 우문사급은 북주태사와 수나라의 부마도위였고, 양공인, 보덕이, 두항은 이전 왕조 사보의 후손이었다. 배적, 당검, 장손순덕, 굴돌통, 유정회, 두궤, 두종, 시소, 은개산, 이정 등은 모두 귀족의 후예였다. 한고조 유방, 소하, 조참, 한신, 팽월의 가문들에 비하면 어찌 가문의 등급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 소면(蘇冕)






거의 전설적 존재인 삼황 오제로부터 정통성이 이어지는 하나라와 상나라, 주나라에 이르는 3대 왕조만이 그나마 자기들 당나라 황실에 비빌만하고, 그 이하 잡것들은 감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며 눈물의 자화자찬 행복쇼를 펼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황실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중책을 맡았던 개국공신들의 가문 역시 대단한 귀족의 가문이었다고 추켜세우면서, 뜬금없이 가만히 있던 유방을 비롯하 소하, 조참, 한신, 팽월 등은 여기에 감히 댈수도 없는 천것들이라고 깝니다.






전한 공신들의 본래 출신

유방 - 외상술 먹는게 특기인 건달
소하, 조참 - 하급 관리
한신 - 아줌마들에게 밥 빌어먹던 백수
주발 - 누에 바구니 엮어서 팔고 먹고 삼
진평 - 가난뱅이 농꾼
팽월 - 물고기 잡으면서 도적 노릇함
경포 - 죄 짓고 노역장에 끌려왔다가 탈주
번쾌 - 개 때려잡고 개고기 팔아먹으면서 삼
관영 - 비단 짜서 먹고 삼
역이기 - 나이 60세에 미친 늙은이 취급 받으면서 문지기 노릇함



(본래 한韓나라 귀족인데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5명의 임금을 재상으로 섬긴 가문인 장량까진 못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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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개나 잡던 한나라 공신들 따위를 어이하여 우리 위대하고 고귀한 대당제국의 공신들에게 비비리! 크 감동 취해서 살살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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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면 다 말 타고 놀던 놈들이 놀고 자빠졌네;;"







관롱집단들은 당나라가 진행되면 측천무후나 당현종 때 타격을 받아 위세가 위축되고 약해지기도 하나, 귀족정치라는 큰 틀은 당나라가 이어지는동안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막연히 생각하기에 자유롭고 호방하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같은 자유분방한 느낌이 드는 이미지가 당나라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 당나라는 중세 귀족정치의 극한에 다다른 나라였습니다. 



가령 당나라의 국자학은 3품관 이상의 자제, 태학은 5품관 이상, 사문학은 7품관 이상의 자제가 배우도록 규정되어, 부모의 신분에 따라 교육의 기회도 달랐습니다. 당나라 중후반기가 되자 귀족 출신과 진사 출신의 관료들이 맞 붙은 우이의 당쟁(牛李黨爭)이 발생했지만 "금수저에 발끈하고 나선 명문이 아닌 집안들" 이라는 것도 사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뭐....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런 당나라의 귀족정치도 당나라가 무너지면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대타격을 가한 사람은 바로 오대 십국 시대, 후량의 태조 주전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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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이연과 이세민이 건국한 당나라를 무너뜨린 주전충은 역설적으로 탕산의 빈농 출신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주전충의 아버지는 본인이 장성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고, 주전충은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지역 유지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매일 두들겨 맞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당나라 말기 천하를 뒤흔든 '황소의 난' 을 틈 타 황소군에 들어갔다가 배신하여 정부군에 붙으며 세력을 확대한 주전충은 여타 세력들을 계략으로 누르고 힘을 키웠습니다. 당나라의 질긴 병폐 중 하나였던 환관들이 최후에 황제를 납치하여 봉상으로 납치하자, 주전충은 장안을 장악하고는 봉상의 실력자 이무정을 군대의 힘으로 눌러 굴복시켰습니다.



 주전충은 봉상에 입성해 72명의 환관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잡듯이 환관을 장안 등에서 잡아내 90여명이나 되는 환관을 추가로 죽였고, 이후 황제를 만나 환관 척살의 허락을 공식적으로 얻어낸뒤 지치지도 않고 그날 밤으로 제오가범(第五可范) 등 수 백 여명의 환관을 내시성(內侍省)에 몰아 넣어 죽였습니다. 환관들은 저마다 밖으로 울려퍼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冤號之聲,徹於內外)



 "억울 합니다! 억울 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본래 잔악한 주전충은 그런 환관들의 단발마 따위는 아랑 곧 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도륙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바깥으로 나간 환관들도 잡아 들여 아주 씨를 말려버렸으며, 단지 어리거나 쇠약한 환관 30여명만 살려두어 청소를 하게 했습니다. 당나라 최후 100여년간 거의 황제를 꼭두각시 수준까지 만들었던 환관들은 이렇게 어이없이 전부 도륙되어버렸고..



 그 후가 조정에 있던 귀족들이었습니다. 귀족들을 쳐내는 것은 환관들을 쳐내는 일보다도 오히려 간단했습니다



 대략 천하가 혼란해진 무렵부터 세력을 가진 무인들이나, 환관들도 모두 '가자' 라고 불리우는 양아들을 대거 받아들여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군사 세력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난세에도 문벌귀족들은 이러한 '가자' 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한고조를 비웃었던 그 고귀한 혈통에, 어디에서 온지도 모를 가자 따위를, 그것도 한두명도 아닌 대거 받아들인다면 그 문벌이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주전충을 돕던 참모 중에 이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진사 시험에 여러번 도전했던 그는 끝내 급제하지 못하여 선비들과 문벌들에 대해 원한이 뼈에 깊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진은 주전충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이 무리들은 항상 스스로 청류라고 여기며 뻐기는데, 어디 한번 그들을 황하에 내던져 스스로 탁류가 되어보게 해봅시다!"(此輩常自謂清流,宜投之黃河,使為濁流!)



 그러자 주전충은 "참 재미있겠다." 며 한번 껄껄 웃고는, 그들을 모두 죽여 황하의 물 속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환관도, 귀족들도, 지난 수백여년간을 버틴 이 존재들은 이 파격적인 폭군의 앞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도륙되었습니다. 구체제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주전충에게 있어서는, 한신과 팽월, 소하를 비웃게 했던 귀족들의 족벌 따위는 그저 '재미삼아' 황하에 내던져 볼만한 구경거리를 만드는 정도의 가치에 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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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충 : "캬, 끈 없는 번지점프 라이브 시청 꿀잼~~"





중간에 후당 장종 이존욱의 시대처럼 다시 귀족적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런 당말 이후의 오대십국 시대를 거치면서 귀족적 분위기는 쇠퇴하였고, 송나라와 원나라 무렵에는 대중문화의 전성기가 펼쳐진다고 보통 이해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중문화가 발전하건 어쩌건 그야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계속 잘 먹고 잘사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최소한 자기들이 스스로 


"하은주 정도 아니면 옛날 황제들은 '신분이 천해서' 우리나라에 못 비빔" 


"옛날 공신들 개나 때려잡던 놈들이라 우리같은 고귀한 핏줄에 댈것도 아님" 


"솔까 황제 가문도 우리 집안에 비하면야 그냥 벼락출세한 가문인듯" 하고 난리치던 때에 비하면야 뭐 ...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2-14 15:5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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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로즈
17/09/12 04:58
수정 아이콘
유럽의 귀족은 서로마를 정복한 이민족 장군들이 그 시조로 아는데 중국이 그렇게 안된건 그 들을 공인해줄 '교황'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17/09/12 05:45
수정 아이콘
크크 잘봤네요. 체제가 안정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고 저런 특권집단이 점점 세지는게 팩트인듯 해요.
홍승식
17/09/12 10:41
수정 아이콘
그런데 본문에서 나온 당나라 귀족들은 중국역사상 최고의 혼란기라는 위진남북조의 시기에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놈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거라서 조금은 다르긴 합니다.
임시닉네임
17/09/12 06:30
수정 아이콘
저 두산선수 약쟁이 같은데
sen vastaan
17/09/12 06:57
수정 아이콘
과연 전통의 죽창
호우기
17/09/12 07:17
수정 아이콘
당은 공신 숙청도 거의 안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가문빨이 있으면 필요성이 적긴 했겠네요
대신 아들놈이...
앙골모아대왕
17/09/12 07:19
수정 아이콘
사실 지금 현재 중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죠

기득권 공산당 엘리트 지배 체제에

시황제
순규성소민아쑥
17/12/14 19:30
수정 아이콘
크킄크 시황제 맞네요 시황제.
블랙번 록
17/09/12 07:54
수정 아이콘
그래도 관롱집단은 남조 귀족집단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도사의 길
17/09/12 08:34
수정 아이콘
전 중국 역사서들보면 허위가 많아보여요. 삼국시대
중국이라고해도 실제론 장안 낙양 주변 위아래쪽 약간 정도지...나머진창작같아요
바스테트
17/09/12 16:49
수정 아이콘
실제로 중국 남부 지방은 본래 그들이 오랑캐라 부르던 이민족들이 나라 만들고 다니던 동네기도 하고..(..)
거길 자기네 영토라고 하긴 했어도 정말 제대로 행정력이 미치고 중국의 경제력을 끌어올린건 송나라떄나 가서죠
(오나라랑 촉한떄 처음으로 중원 외 지역들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진나라떄 박차를 가해 당나라떄부터 조짐이 보이다 송나라떄 포텐 폭발..)
17/09/12 08:53
수정 아이콘
최치원등이 탈신라해서 당나라로 튀었으나.. 실상은 비슷한 동네로 간거였군요.
17/09/12 11:29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정말 당나라의 실상은 잘 모르고 갔나보네요
이건 생각도 못해본 과점입니다
서현12
17/09/12 17:22
수정 아이콘
근데 최치원이 탈신라를 할때가 하필이면 본문에서 설명하는저런 귀족층이 몰락하던 당말이라...

저런것보다도 당대 당나라 내부사정 자체가 그냥 문제여서 겨우 외국인 출신 빈공과 합격생을 쓸 상황이 안된 탓도 큽니다. 당나라 역사 전반을 보면 저런 관롱귀족 측에서 점차 과거에 합격한 관료층과 절도사로 대표되는 지방군벌로 세력의 축이 넘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요. 당시 절도사들만 보면 고선지, 부몽영찰, 이정기, 복고회은, 가서한, 안록산 같이 이민족, 외국계 한미한 가문 출신이 절도사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치원과 반대로 당나라 초에 건너가서 비록 주필산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사후 당태종이 친히 어의를 덮어주고 그 공을 1등으로 삼아 대장군으로 추증한 설계두 같은 케이스도 있고 최치원보다 한 두세대 전의 장보고만 해도 6두품인 최치원보다도 한참 낮은 평민의 신분으로 하서절도사 휘하 서주 무령군 소장으로 1천에서 5천 정도의 군사를 거느리는 직책에까지 오르고 이를 바탕으로 당, 신라, 일본을 넘나드는 국제적인 거물로 성장한 보면 이것도 약간은 케바케죠.
미네랄배달
17/09/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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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없는 번지점프 라이브 시청 꿀잼일듯,
중계해주면,
별풍이라도 쏴주고 싶네요 크크크크
겨울삼각형
17/09/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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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글이네요.


그러니 빨리 고아, 거지출신 황제의 일대기를 연재해주세요!!
cadenza79
17/09/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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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신불해님 글이로군요!!! 일단추천.

근데 주전충이 쓸어버린 거 좀 과장된 거 아니었을까요? 어차피 정부가 돌아가려면 관료집단은 놔뒀을텐데 말입니다.
후당 이후에는 모두 승자에게 복속하고, 다음 왕조도 고스란히 받아들이죠. 그러다 보니 풍도같은 케이스도 있었고...
신불해
17/09/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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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충이 쓸어버렸다는건 일종의 상징적인 장면이고,

실제로는 물론 한번에 쫙 갈렸다기보다는 계속된 혼란과 신흥세력의 등장으로 점점 기반이 사라져가고 관료제도가 정비해져감에 따라 저물어갈 사람들은 저물어가고 적응하며 살아남는 계층은 남은 가문빨로 영재교육 시켜서 과거 합격해서 새 시대 스타일의 지배적 계층으로 옮겨가고..하는 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가령 자치통감을 남긴 송나라의 사마광만 해도 그 사마의로부터 내려오는 서진 황족인 하내 사마씨의 후손이기도 하구요.
홍승식
17/09/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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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사마씨 가문은 진짜 유서가 깊은 가문이네요.
위로는 초한지 시대의 은왕 사마앙부터 시작이니 사마광까지라고 하면 천년이 넘게 명문이었군요.
17/09/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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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씨라는 성 자체가 관직명에서 나온거라
루크레티아
17/09/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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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 매혈이 있었다면 천롱인들의 피값이 얼마나 했으려나요 크크크
불굴의토스
17/09/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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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는 지금으로 치면 지방직9급 출신이죠?
홍승식
17/09/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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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은 아니고 7급 정도??
서현12
17/09/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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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지면 북위시절 육진으로부터 시작된 북쪽 수당시기 관롱귀족집단과 후한말 생겨나기 시작해 남조에서 번성한 문벌귀족은 구분되야죠. 본문의 글은 그걸 좀 뭉뚱그리는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엄밀히 따지면 후한말-남조까지 이어지던 문벌귀족은 남조 양나라 말 후경의 난에서부터 이미 어느정도 박살난 상태였고, 수-당 시절은 무진천관롱집단이 정권을 주도한 형태였는데요. 불론 북쪽에 남아서 아무리 순수한족 가문빨 어쩌고 해도 육진의 난 이후 생성된 군사집단인 관롱집단의 실권을 넘진 못했습니다. 당나라 후기 절도사들이 지방을 주도하던 시절엔 말할것도 없고요.

당장 본문에 언급된 원씨, 우문씨, 독고씨만해도 그 실상은 선비족으로부터 내려온게 아니겠습니까, 북위의 황실 원씨의 정체가 실은 이민족에 불과했던 탁발선비의 탁발씨인거야 역사를 공부하면 금방 알 수 있고요. 관롱집단만해도 당태종과 측천무후에게 대판 깨져서 세력이 침체되었다가 8세기 초에 당현종이 즉위해 개원의 치를 선포할 무렵에는 이미 황제에 충실한 관료집단화되어 있었기도 하고요.

본문에서 언급한 칠성십가는 이른바 군성(郡姓)으로 영가의 난이 일어나고도 강북에 남아서 오랑캐의 지배를 받은 귀족이고, 군성이라 부르는 까닭은 자기가 사는 군에서 확실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북위부터 강북 한족귀족의 핵심층입니다만, 북위시절 최호의 국사필화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민족 황족, 귀족에는 언제든지 쓸려나갈수도 있는 쪽이었습니다. 자기들까리 통혼하면서 순수한족이라고 잘난척은 다 했습니다만 결국 과거제의 정착과 함께 귀족층에서 관료층으로 전환한 일부 빼곤 몰락하고 말죠.

반면 무진천 관롱집단은 노성(虜姓)이라고 해서 북위의 건국 공신 문중인 팔씨(八氏), 북위 황실과 뿌리가 같은 십주(十胄)가 2등급, 세력과 존비를 따져서 3등급에 36족, 4등급에 92성이 성립되고 여기서 이주영의 난에서 살아남은 귀족과 무천진 군벌이 연합하여 관롱집단을 이루어 우문태에 의한 서위 건국부터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우문태와 동향 가문인 무천진 출신 가문들이 8주국 12대장군을 독점하면서 관롱귀족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해 서위, 북주, 수, 당의 정치적 중추 세력이였고, 특히 군권을 장악하여 무력과 정치력을 한데 아울렀으니 이쪽이야말로 실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한시절부터 서진시기에 한참 잘나나가다 영가의 난으로 남쪽으로 사마씨 황실따라 도주한 무리를 또 교성(僑姓)이라고 하는데 강남 지역의 귀족으로 오호십육국시대에 남쪽으로 내려간 피란민에서 시작된 집단(교성이란 이름도 원래 살던 군에서 떠난 귀족). 이들은 남조가 박살나면서 실제적인 세력은 약해졌습니다. 후한말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세력이지만 세력 자체는 약했고 원래 강남에서 살던 오성(吳姓)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죠.

수-당 시절의 귀족 양태를 구분짓자면 이렇게 정확하게 구분지어서 말해야지 후한말부터 이어진 귀족 체제가 그대로 이어졌다는 식의 서술은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위에서 호한체계의 융합을 언급하셨고 수-당의 성립이 이로인해 이루어진것이니만큼 이전 한족귀족이 모든걸 주도하던 후한말~서진 말까지의 흐름과 무조건 동일시 할 순 없다고 봅니다.
신불해
17/09/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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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zh.wikipedia.org/wiki/%E5%A3%AB%E6%97%8F_(%E4%B8%AD%E5%9B%BD)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6905&cid=42975&categoryId=42975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577


넒게 보면 지역에 따라 분화되긴 하는데 기본적으론 문벌사족으로 묶기는 하는것 같아서 글에서는 뭉뚱그려 설명했습니다. 남쪽으로 피난하지 않은 사족을 일컫어 군성(郡姓), 남쪽으로 피난한 세력을 교성(僑姓)이라고 하는식이더군요.

일단 남쪽으로 내려간 세력은 제껴놓고 북쪽의 세력 중에선 말씀하신대로 실권 자체는 군벌과 결합하여 나타난 관롱집단이 더 컸지만 남쪽으로 피난하지 않고 남아있던 '산동집단' 이 관롱집단과 양대산맥을 이루고, 산동집단은 '황제도 우리보다 끗발이 더 높진 않다' 는 식의 '부심' 이 더 컸고, 반면에 관롱집단은 관롱집단대로 "예전에 쪼끔 더 잘나가면 뭐하냐, 지금은 너네 가문들 전보다 쇠락하고 우리가 한수 위인데" 한다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남북조는 본래 주된 관심분야는 아니라서 이해가 좀 피상적이긴 하겠지만요.



아, 댓글 다는 중에 더 달아주셨네요.
서현12
17/09/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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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동진을 세운 낭야 왕씨 같은 일족(왕희지의 일족)이 산동사성이었죠. 결국 후경의 난으로 개박살이 나서 망하다시피 했습니다만.
신불해
17/09/12 11:43
수정 아이콘
사실 글을 작성한 계기가 "본래 뻔히 선비족인 사람들이 엄청난 가문빨 자랑하며 한나라 개국공신들 비웃는 아이러니" 가 참 웃기고 재미있다는 식의 이야기라, 후한말기의 한족 문벌집단이 같은 흐름으로 계속 이어져내려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었는데 배경을 이야기하며 중간 과정을 설명하면서 피상적으로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서 잘 와닿지 않게 제가 적은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서현12
17/09/12 11:55
수정 아이콘
그거 말씀하시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700여년간의 흐름이 모두 다 동일한 줄기였다고 해버리면 안될거 같아서 부연 설명은 필요할듯해서요. 무례를 용서하시길.
Paul Pogba
17/09/12 12:07
수정 아이콘
크으 너무 재미있네요

근데 저 정도면 황제의 위엄이 사나요?

흔히 천자라고 해서 엄청나게 위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저 정도면

그냥 꼭두각시 수준인데 ㅡㅡ;;
서현12
17/09/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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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한족귀족들인 군성이 아무리 잘났다고해도 선비족 출신 이민족 귀족들한테는 실권이 모자랐습니다. 그냥 '족보빨이 우리가 더 짱'이라는 식으로 말한거죠.

북위시절에 이런 군성인 청하 최씨 중에 최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위 3대 황제 태무제 시절의 신하인데 북위의 국사 편찬 작업의 총책임을 맡아 북위 왕조가 중화문명을 받아들이기전 이민족으로서 야만적인 풍습 그리고 신조들을 서슴없이 적어논 다음에 이걸 대로에 돌로 된 비석으로 떡하니 새겨서 북위 선비족 황실의 치부를 대놓고 일반 백성들이 길가에서 그냥 볼 수 있도록 만천하에 공개해 버린 짓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최호의 일족과 내외손 관계에 있었던 화북 한족 귀족 128명이 함께 숙청되었고 최호의 집안인 청하 최씨뿐만 아니라 범양 노씨, 태원 곽씨, 하동 유씨 등 한인 사족들이 죄다 화를 입었는데 이를 일명 '국사필화사건'이라 하지요. 한마디로 집안 끗발을 자랑했어도 실제로 과도하게 깝치면 실권 잡고 있던 쪽에서 개박살을 낼수 있었다는 겁니다.
Paul Pogba
17/09/12 12:29
수정 아이콘
오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실권자라면 그냥 저런 놈들 다 쓸어버릴텐데

그러지 않은게 신기하네요.

물론 아무리 실권을 잡았어도 나라를 돌리려면 인재가 필요하니

그런 기존 귀족들을 무시 할수 없었을거라는건 이해가 갑니다
서현12
17/09/12 12:33
수정 아이콘
뭐 저 전까지 최호가 북위의 신하로서 충실하게 일하긴 했으니까요. 나라의 역사를 과감하게 기록한다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해도 오늘날로 따져도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할 일을 전근대 왕조시대에 황실상대로 저질렀으니...
치열하게
17/09/12 12:42
수정 아이콘
우아 꿀잼
경성아재
17/09/13 13:14
수정 아이콘
북위 말 이주영이도 잘났다는 선비족 황실을 황하 속에 던져버렸던 것 같은데.. 크크
치킨은진리다
17/09/13 17:39
수정 아이콘
중국 역사는 뭔가 스펙타클 하네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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