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12/30 01:47:13
Name 세이시로
Subject 프로리그 관전기 - 무리수, 어긋남
무리수와 가혹한 응징

KOR은 무리수를 두었다. 사상 초유의 개인전 모두 랜덤 출전. 그것도 검증된 랜덤 유저가 아닌, 한동욱과 차재욱이라는 테란 쌍두마차를 랜덤으로 출전시키는 모험을 감행한다. 여기에 팀플레이에도 랜덤 조합이 들었으니, 출전한 4명 중에 3명이 랜덤이라는 웃지못할 기록까지 남기면서.

KTF의 대응은 가혹한 응징이었다. 가뜩이나 저그가 불리한 인큐버스2004에서 랜덤 저그가 걸린 한동욱이 가로 방향의 불꽃 테란 변길섭의 병력을 상대할 길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원배럭 테크를 히드라로 공략할 생각도 해보고, 온리 히드라로 쌈싸먹기도 시도해 보았으나 -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 레이스 견제 이후 늦은 공업 타이밍까지 기다려 치고 나오는 변길섭의 화력은 업그레이드조차 되지 않은 히드라에겐 이기기 어려운 상대였다. 전략, 전술, 전투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주도한 변길섭의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승리.

다음 매치는 랜덤 차재욱과 프로토스 강민. 프로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민의 발목을 잡았던 차재욱이기에, 이번엔 초반 정찰이 힘든 섬 맵이기에, KOR의 구세주와 같은 에이스이기에... 그렇게 팬들의 염원을 받아서인지 차재욱은 강민과 가로 방향에 테란이 걸린다. 초반 견제 - 랜덤을 상대로? - 가 있지 않는 한 차재욱이 유리할 것은 불보듯 한 일일듯 했다.

하지만 몽상가 강민은 달랐다. 이 맵에서 저그가 패스트 뮤탈을 할 일은 없다는 듯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로보틱스 이후 셔틀과 옵저버를 뽑는 강민. 그리곤 차재욱의 원팩 더블을 확인하자마자 중앙멀티에 3게이트를 소환. 갑자기 쏟아져들어오는 강민의 셔틀과 발업질럿 드라군 돌파에 차재욱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후 경기는 강민의 완벽한 페이스. 템플러 드랍에 다템 드랍, 캐리어, 아비터까지 동원한 강민의 꿈에, 차재욱은 제대로 빠져 버렸다.

한 사람이라도 테란이 걸리면 필승이고, 그러면 팀플에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KOR의 엔트리는 분명한 무리수였고, 벤치가 얇은 팀의 한계를 바닥까지 드러내보였다. 현재는 KTF에 있는 옛 동료들을 아쉬워 하지는 않을 테다. 전태규 선수의 공백이 정말로 아쉽게 느껴지는 지금, 결국 전태규 선수의 부활이 팀의 성패와 연결된다는 점을 KOR팀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긋나버림

어디서부터 이렇게 어긋나 버린 걸까? 프로리그 2라운드부터 시작된 SK T1의 최악의 부진은 그랜드 파이널 진출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릴 것인가를 놓고 팬들의 기대를 집중시켰던 오늘까지도 계속되었고, 그 어느 팀에도 천적 관계를 허용치 않던 막강하던 T1이 삼성칸이라는 최하위 팀에만 4연패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게 되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성학승 선수의 오늘 경기는 한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예선 때 보여주던 소심한 플레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레퀴엠에서 러커 방어 이후 3가스 뮤탈을 가면 필승이라는, 적극적인 공격보다는 이정도로 대충 막아보지 하는 안일한 자세가 그대로 드러났다. 개인전에서 부진하다 해도 '스타리거'인 팀의 에이스 최수범 선수가 그런 것을 놓칠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책임감이 뚜렷했다.

팀의 패배를 목전에 두고 출전한 최연성은 여전히 강했다. 몇 차례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부진을 털기 위해서라도, 그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예상보다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깜짝 전략이었지만, 김근백 선수의 약간은 안일한 대처와 맞물려, 어떻게든 상대를 흔들고 물량으로 몰아치는 최연성 선수는 금요일 스타리그 출전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상대를 제압했다. 분위기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이 인 더 스카이의 저그-테란 조합 팀플은 대개 저글링-벌처로 흘러간다. 이 점을 이현승 선수의 저그는 어떻게든 유리하게 가져가 보려 한다. 일반적인 9드론 대신 입구 해처리를 하며 성큰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창훈 선수의 9드론 저글링은 허무하게 산화하고 임요환 선수의 벌처는 드론을 다수 잡긴 했으나 역시 결정적인 피해를 주지 못한채 막히고 만다. 그새 벌처와 저글링을 다수 보유한 삼성칸이 이창훈 선수를 끝내 버리지만 임요환 선수는 그것을 막지 못하고 레이스와 골리앗을 생산할 뿐. 레이스가 저그를 끝내지 못하고 골리앗을 실은 드랍쉽이 격추당하자 임요환 선수에게 남은 것은 GG뿐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역시 '임요환'이라는 존재는 상대를 흔드는 전략으로 승부할때 그 이름의 가치를 갖는다는 결론과 함께.

망연자실. T1의 선수들도, 팬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어디서부터 꼬였길래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나. 우리는 기적의 T1이 아니었나. 하지만 원인이 없는 문제는 있지 않다.

사람이 한번 수렁에 빠지면 의외로 헤어나오기는 쉽지 않다. 점점 나태해지고 안이해지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갈수록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 버리기 마련이며, 결국엔 운에 의존해 버리는 것이 망가져버린 사람들의 행태이다. 도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순간도 치열하지 않을 수 없던 그 이글거리던 마음이 다시금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필요없다. 헛된 꿈을 품을 것은 없지만, 희망이 남아있는 한 도전하는 것이 젊은 프로게이머의 정신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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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예비역
04/12/30 01:52
수정 아이콘
중앙멀티에 3게이트를 소환. 갑자기 쏟아져들어오는 강민의 셔틀과 발업질럿 드라군 돌파에 차재욱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
재방으로 이부분 보고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후기네요~ ^^
더딘그리움
04/12/30 08:55
수정 아이콘
종족의 제한이 랜덤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점이 프로리그의 또다른 재미더군요. 응원하는 팀이 진것은 아쉽지만....
특히 섬맵에서는 랜덤은 효과 있죠...
[비러스]대발
04/12/30 09:26
수정 아이콘
인큐버스에서 저그대테란은 저그의 승이 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썩 불리하다고 할 순 없죠.
THE LAKE
04/12/30 09:5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강민선수의 눈부시게 멋진 플레이가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그:테란 상대종족에선 저그가 약간 앞선다고 알고 있습니다.
04/12/30 10:32
수정 아이콘
대각이나 세로방향은 확실히 저그가 할만하지만..
가로방향은 테란쪽에 유리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04/12/30 11:20
수정 아이콘
인큐버스에서는 조형근 선수의 저그 플레이가 돋보이죠.
(2001 SKY때 인큐버스가 쓰여서 그런가..-_-aa)
손말사랑
04/12/30 11:51
수정 아이콘
한동욱 선수가 3종족중 저그를 가장 자신없어 한다고 김동수 해설위원이 그러더군요.
UNU_Devilmoon
04/12/30 13:49
수정 아이콘
아무리 랜덤이라도 강민선수의 꿈속에선 소용없죠(..)
슬슬 올해가 끝나고..새해가 다가오니까..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날라인가요....
2005년이 기달려집니다..
souLflower
04/12/30 14:14
수정 아이콘
후기 잘 읽었습니다...최수범선수의 책임감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강민선수의 랜덤테란차재욱선수상대로의 대처는 실로 놀라운것이었습니다...이로써 차재욱선수와의 상대전적에서 다시 앞서나가게 되었군요...2005년이 기대되는선수입니다...강민선수...
04/12/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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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욱 선수 바이오닉을 잘하는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아니었나요? 저그를 자신없어 한다면 그게 아닌 모양이네요.
퍼시베일
04/12/30 15:00
수정 아이콘
상대하는것과 자신이 직접하는것은 차이가 크죠. 이 종족전에 강하다고 해도 실제 그 종족을 직접하면 자신이 상대하던것만큼 게임감이 살아 있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예상은 쉬워도 타이밍같은 감은 많은 시간 훈련하지 않으면 어렵죠.
04/12/30 16:09
수정 아이콘
뭔가 토성님께서 오독을 하신 듯...^^;;
04/12/30 16:10
수정 아이콘
그리고,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글이 좀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필살의땡러쉬
04/12/30 19:01
수정 아이콘
솔직히 9드론뛰어서 해처리 빨리가는 저그한테 저글링싸움 진것도 이해안되고 임요환선수가 안도와준것도 이해 안되고 개인전에 랜덤 2명쓴것도 이해안가고. 본문과 일치 안하는점은 이창훈선수의 실수정도? 내 생각을 보태자면 임채성선수와 거의 1vs1분위기에서 확실히 임채성선수가 유리했던건 사실... 이현승선수 안당했어도 임채성선수가 이겼을것 같음
필살의땡러쉬
04/12/30 19:01
수정 아이콘
이현승선수가 못살아 났어도//
서정호
04/12/30 19:37
수정 아이콘
지나칠 정도의 전략적인 승부, 어제 티원의 팀플 패인이었다고 봅니다.
개인전도 마찬가지지만 팀플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기본기와 유닛생산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어제 임요환선수의 플레이는 그렇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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