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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4 11:01
농담이 아니라 전세계 선진국의 얼리어답터가 한국이죠
특히 안좋은 것으로요... 전세계 좀 사는 나라들은 죄다 한국 출산율을 보고 따라가는 중입니다
25/04/23 21:26
2024년도 0.88
2023년도 1.16 2022년도 1.32 2021년도 1.54 2020년도 1.65 조금만 찾아봤는데 낙차가 말도 안되는 수준...
25/04/23 21:33
궁금해서 살짝 찾아봤는데,
1. 자원 생산해서 해외로 수출하는 것에 경제가 의존하는 구조이다보니, 외국 자본 유입이 크고, 그로 인한 물가가 높은 편. 2. 인구 2,000만 명 중에 700만 명이 수도에 몰려살고 있을 정도로 수도 몰빵. 3. 임금 개혁이 거의 없었어서 빈부격차가 심한데, 주변 국가들이 워낙 개판이라 선녀 취급 받음. 이런 상황이더라고요.
25/04/23 22:10
저출산 자체가 글로벌 트렌드죠.
세계의 출산율도 2023년 기준 2.25명으로 2.1명을 넘어 인구가 유지될거 같지만 저소득 의료취약 지역인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출산율이 높아 현재의 인구증가는 기대수명의 증가가 더 큰 영향을 준걸로 생각하고 세계의 출산율과 세계인구의 증가율은 꾸준히 감소세입니다. 현재의 추세라면 결국 세계의 인구는 줄어들게됩니다.
25/04/23 22:21
네 칠레의 수도에서 보는 풍경이라네요
https://www.czapp.com/wp-content/uploads/2024/05/Chile-1024x551.jpg
25/04/23 22:30
한국보다 먼저 진행되면 완만하고 늦게 시작하면 경사가 급하고 그런게 글로벌 트렌드인가 싶네요 인도같은 예외사례도 있기는 있고.. 이건 대부분의 국가를 딱 찍으면 거길 기준으로 해도 비슷하겠다 싶네요 거기보다 먼저면 완만하고 늦으면 급하고.
결국 늦게 시작할수록 진행도는 빠르다는건 비슷한 단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렴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거기가 특이점인가...?
25/04/23 23:34
(수정됨) 문화권을 초월해서 출산율이 박는건 인간의 사회진출/경제활동 시작이 늦어지면서 아이를 낳는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안됨+아동인권 상승 등으로 육아에 필요한 유무형의 자원이 개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증가함의 콜라보라 봐야겠죠
25/04/24 11:15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느낌인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디가서 함부로 말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만, 자본주의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빈부격차가 필연적이고, 빈부격차는 절대적 빈곤 보다도 상대적 박탈을 야기하며, 상대적 박탈은 성별, 세대를 포함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이러한 갈등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공하여, 출산을 저해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들의 경우 오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빈부격차가 아예 일반 사회의 특성으로 자리잡았고, 차라리 절대 다수가 비슷한 수준에서 빈자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빈자들의 사회가 상대적으로 안정되며 출산율도 1~1.5 수준에서 하향 안정화되는듯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 급격한 빈부격차 심화가 출산율도 급격하게 드랍시키는 듯 하며, 특히 온라인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기존 선진국들 대비해서 그 드랍률이 더 심한 듯 합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저는 나름 꽤나 확신을 가지고 있고, 특히 한국과 같이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사회적 위신이 중요한 나라들(주로 동아시아)의 경우 답이 없지않나... 싶기도 합니다.
25/04/24 13:02
(수정됨) + 기술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변화도 있죠.
사실 출산율이 2 이하로 떨어져서 인구 감소 추세로 들어선 건 비교적 최근이지만, 더 급격한 하락은 농경 중심에서 산업화로 변화하며 직장과 가정(즉 육아의 장소)가 분리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전후세대와 x세대가 태어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습니다. 정부의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정책에 즉각 호응하여 인구가 증가에서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이요.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어 있지 않던 시절+아이들이 열살 무렵부터 소 먹이고 돌 골라내며 일찌기 생산에 기여하던 시절에는 육아에 드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 외에 삶을 소비할 대안도 없었구요. 그런데 산업화가 사작되며 직장과 육아의 장소인 가정이 완전히 분리되고 많은 여성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아이를 키우고 보호하는 데 드는 금전적 비용과 인적 시간적 기회비용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정부의 프로파간다가 없었다 하더라도 많이 낳을 수가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죠. 그 결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상승하고, 물질적 풍요과 기술적 편의를 얻게 되었지만, 그만큼 육아의 기회비용은 더 크게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이 되며 치안과 복지까지 향상되니, 여성들에게는 결혼과 육아의 “필요성” 자체가 없어집니다. 남자의 완력이나 경제력이 여성들에게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게 된 것이죠. 현재보다 “더 나은” 사치적인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남자와의 결혼과 육아를 굳이 택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선택사항이 되어버립니다. 남자들은 여전히 결혼과 자녀를 여성보다는 더 원합니다. 여전히 임신과 출산이라는 신체적 부담이 여성에게 있고, 육아에 대한 책임 역시 경제적 책임과의 상대적 대가관계로서 여성에게 쏠려 있는 상황으로 인해, 남성에게는 아직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기회비용이 여성만큼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조건을 참아주기만 한다면] 결혼과 출산 양육은 남자에게는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남성들에게도 현실 여자 없이 그럭저럭 버틸만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자동화된 가사는 여성에게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개입 없이 남자 스스로도 가정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도화된 통신기술은 정서적 소통과 돌봄의 수요도 어느 정도 채워줍니다. 무엇보다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대체재가 생겼습니다. 남성의 성욕은 근본적이지만, 개별적으로는 즉각적이고 시각 의존적입니다. 마치 다른 배설욕처럼, 즉각적으로 발동되지만, 일단 한 번 해소되면 버틸만 해 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며, 사회화된 평균적인 남자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 조절도 가능한 종류의 욕구입니다. 남성의 성욕 발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자극인 시각적 자극입니다. 그러한 시각적 자극을 예전에 비해 월등히 빠르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르노 등을 통해 간편하고 빠르게 성욕을 발동시키고 해소하는 인위적이고 온전히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일련의 과정은 남성들을 성욕의 예속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시켰습니다. 결혼과 육아가 완전한 선택이 되어버린 여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남자가 더 높아진 기준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 기준이 높아질수록 비루한 대체재에도 남자들은 쉽게 타협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 대체재의 기술과 시장 역시 지속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모습입니다. 비교 문화, 체면 문화 처럼 개별적인 문화적 특성이 기여하는 변수 역시 당연히 의미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시 옛날의 농경사회나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어야 하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이런 방향으로 변화되어 온 것 자체가, 현재 내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누리고 있는 모든 편의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인류가 계속해서 증식하거아 최소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측면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술적으로 발전할 겁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한 명의 인간이 소모하는 전 지구적 비용은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농경사회에서의 한 인간이 소모하는 자원과 생산하는 쓰레기가 현재의 한 인간이 소모하는 그것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저출산은 결국 전지구적 필연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일 뿐 아니라, 그 결과가 다시 미치는 되먹임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도 필연적입니다. 우리나라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저출산 해결책은 마치 기후환경 위기와 관련하여 개별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대책들과 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저춣산은 미시적인 지역 차원의 솔루션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대규모의 과학적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날 때나 해결될 수 있는 문젭니다. 기후환경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다거나 인류의 번식욕을 이상현상의 수준으로 폭발시키는 자연현상이 발생한다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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