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자는 공명 181~234
"성도에 뽕나무 팔백 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 열다섯 경이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에는 스스로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서 임무를 받들 때는 따로 조달할 것 없이 제 한 몸의 입고 먹는 것은 모두 관부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생활의 방도를 차리게 하여 적은 양을 보태지는 않았습니다. 신이 죽었을 때 안으로 여분의 비단이나 밖으로 남은 재산이 있어 폐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촉한의 승상. 유언에서도 그의 청렴함과 충심,애국심이 돋보인다.
제갈량이 죽자 백성들이 단체로 제갈량의 사당을 만들라고 상소했고 유선이 거부하자 대신 길거리와 들판에서 제사를 지내었다고 한다.
순우경, 자는 중간 ?~200
"승패는 하늘이 결정했을 뿐 어찌 질문에 의미가 있겠는가!"
후한 서원팔교위이자 장군. 관도대전 때 조조군이 오소를 급습하자 열세임에도 분투했으나 결국 사로잡히고 처형당했다. 위의 유언은 오소전투 직후,조조가 순우경에게 어쩌다 패했냐고 물었을 때 한 말이다.
원술, 자는 공로 ?~199
"이 원술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후한의 정치가,장군,중의 1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감히 황제를 참칭했다가 재기불능까지 추락했고 그 후 꿀물을 찾다 죽었다.
위 유언은 부하에게 꿀물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꿀물을 가져오지 못하자 외친 말로, 그 후 원술은 분사했다.
여포, 자는 봉선 ?~198
"저 귀 큰 놈(유비)이 제일 믿지 못할 놈 이다!"
후한의 장군, 군벌. 위 유언은 배신과 반란을 거듭하다 결국 조조에게 사로 잡혔을때 유비가 조조에게 여포를 죽이라고 조언하자 한 말이다.
개소리로 보이지만 유비가 후일 조조를 배신하고 촉한을 건국하니 의외로 유언으로 맞는 말을 한 거일지도?
사마의, 자는 중달 179~251
'당초 미리 장례에 관한 유언을 지어 수양산(首陽山)에 흙을 파서 매장하고 분묘를 만들거나 나무를 심지 말라고 했다. 고명 3편을 지었는데, 평상복으로 염하고 부장품을 두지 말고 뒤에 죽는 자를 자신의 묘에 합장하지 말라고 했다.'
위의 장군이자 정치가. 유언만 보면 충신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이 사람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든 사마의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 아들들 사마사, 사마소도 황제를 하야시키거나 죽이는 등 '충성'을 했다.
유찬, 자는 정명 183~255
"내 싸움엔 항상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병이 깊으니 진심으로 천명이구나!"
오의 명장. 위의 장군 관구검의 반란때 관구검군을 도우려 여거와 같이 파견되었으나 가던도중 병에 걸린채로 위군에게 습격당해 전사했다.
특이하게도 전투 전에 머리를 풀고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여거, 자는 세의 ?~256
"모반하는 신하가 되는건 부끄러운 일이오."
오나라의 장군. 오나라의 간신배 손침을 해치우려 난을 일으켰지만 결국 진압당했다. 난이 진압당한 후,사람들이 위나라로 망명하라고 하자 위의 유언을 남기고 자살했다.
부융, 자는 불명 ?~222
"오(吳)나라 개들아! 한(漢)나라 장군으로 항복하는 자가 어찌 있겠는가!"
촉한의 장군.
이릉대전 때 퇴각하는 촉군의 후방을 맡았는데,이때 오나라의 장수가 항복하라고 하자 위의 유언을 말하며 항복을 거부하고 싸우다 전사했다.
동습, 자는 원세 ?~?
"장군의 임무를 맡아 이곳에 있으면서 적을 방비하는데 어찌 버리고 가겠는가! 감히 다시 이처럼 말하는자는 참수하겠다!"
오의 명장. 유수구 전투 때 풍랑으로 동습의 선단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부하들이 배를 버리자고 하자, 동습은 위의 말을 하며 거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풍랑으로 동습의 선단은 무너졌고, 동습은 익사했다.
장임, 자는 불명 ?~213
"노신은 끝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후한의 장군. 유비의 서촉행 때 포로로 사로잡혔다. 유비가 장임이 충용스럽다는 말을 듣고 항복을 요구하자 거부해 결국 처형당했다.
유비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학소, 자는 백도 ?~?
"나는 장수로 일생을 살았으나 그것이 그리 좋은일은 아니었던듯 싶다. 내가 싸울때 여러번 남의 무덤을 파헤쳐 돌과 나무를 취해 전투도구로 썼었기에 후장(고급 장례)하는것이 죽은 자에게 도움이 되지않는단 것을 안다. 너는 반드시 나를 평소입던 옷으로 염하거라. 사람이 살아있을때 처소가 있을뿐 죽은이가 따로 어디에 있으리? 내 묘는 동서남북 어디든 네가 마음대로 정하도록 하거라."
위의 명장. 진창성에서 제갈량을 후퇴시킨 장군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진창성을 지킬때 무덤까지 파헤쳐 공성자재와 무기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유언에서 위의 말처럼 자신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고 아무곳에나 묻으라고 자식에게 당부한거 같다.
진궁 공대 ?~198
"청컨대 저를 밖으로 내보내 죽여서 군법을 밝혀주십시오."
후한의 책사, 장군. 원래 조조의 책사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실망해 여포와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국 조조에게 잡히고 말았고,조조는 가족의 안위를 들먹이며 협박해 그를 어떻게든 다시 등용하려 했지만 진궁은 결국 스스로 처형을 선택한다. 조조는 울면서 그의 마지막 길을 뒤따랐다고 한다.
우전, 자는 불명 ?~258
"대장부가 주군의 명을 받아서 병사를 이끌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 왔는데,이미 이길수가 없게 되고 또 적에게 손이 묶이게 되었으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겠다."
오의 장군. 위의 명장 제갈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원병으로 참전했으나 결국 진압 당하게 되자 항복을 선택한 전단, 전집과는 달리 위의 유언을 남기고는 위군에게 돌진해 전사했다. 최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장군다웠다.
마초, 자는 맹기 176~222
"신의 종족 2백여명이 조조에게 주살당하여 거의 다 없어지고 다만 종제 마대가 남았으니 미천한 종족을 위해 제사가 이어질수 있도록 폐하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후한의 군벌, 촉한의 장군.
조조에게 수차례 반기를 들었다 자신의 형제와 부모,친척들이 마대를 제외하고 전부 살해당했고 이 때문에 정월 초 하루 잔치 때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비에게 마대만은 꼭 보호해달라고 한듯하다.
태사자, 자는 자의 166~206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7척 칼을 지니고 천자의 계단에 올라야 하거늘,아직 그뜻을 실행하지 못했는데 나는 어찌하여 죽는단 말인가!"
오나라의 명장. 능력이 뛰어났으나 40세의 나이에 일찍 병으로 사망한다. 위의 유언은 자신의 능력을 전부 못 펼친 것을 한탄하며 문병을 온 장소에게 말한 것이다.
심배, 자는 정남 ?~204
"나의 주군께서 북쪽에 계신다."
후한의 장군,책사. 원소 사후 업성을 지키다 부하 심영의 배신으로 결국 조조에게 사로잡히는데, 이때 조조의 회유를 거부한 후 처형당했다.
처형 직전에 위 유언을 말하고는 주군 원상이 있는 북쪽을 보며 처형되어 이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탄식했다고 한다.
원상, 자는 현보 ?~207
"죽지 않는동안(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추위를 견딜수 없으니 자리를 마련해 주는게 어떤지?"
원소의 후계자. 원소 사후 조조군에 맞서 분투했고 10대 후반의 나이에도 조조군을 대패 시키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패배했고 공손강에게 형 원희와 함께 참수당한다.
위의 유언은 공손강이 자신을 잡아온 후 죽이기 직전에 한 말로,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공손강을 비꼬는 말이다. 자기를 비꼬는 이 유언에 분노한 공손강은 원상을 바로 참수했다고 한다.
조조, 자는 맹덕 155~220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해 옛 법을 따를 수가 없으니 장례가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으라. 군을 이끌고 주둔하는 자는 주둔지를 떠나지 말고 관리들은 각자 직임을 다하라. 평상복으로 염하고 금은 보화를 묻지 말라."
후한의 정치가이자 명장. 현실적인 유언을 남겼다. 그의 숙적 유비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신단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신단은 조비가 전부 참수 했다.
정기, 자는 계연 ?~222
"나는 군대에 있으면서 적을 만나 도망가는 것을 아직 익히지 못하였소, 하물며 천자를 수행하며 위험을 만났을 때 임에랴!"
촉한의 장군, 문관. 이릉대전 때 퇴각 중 적과 조우하자 퇴각하자는 주위의 말을 무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분투하며 적선을 여럿 파괴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전사했다.
방덕, 자는 영명 ?~219
"꼬마(관우)야, 어찌 항복을 논하느냐! 위왕께서는 정병 백만이 있으며, 위의를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네 유비 따위는 범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대적이나 가능할 줄 아느냐! 나는 나라를 위해 귀신이 될 생각이니,적의 장수 따위가 되지는 않을 생각이다."
마등군과 위의 맹장. 번성 전투 당시 포로가 되었을 때 관우가 항복을 요청하자 위의 말을 외치며 거절하고 처형당했다.
주유, 자는 공근 175~210
"길고 짧은 것이 인생이니 진실로 애석해 할 것도 못됩니다. 다만 제 작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주군의 명을 다시는 받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오의 명장, 책사. 적극적 팽창 정책을 벌이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오나라 라이징을 이끌었으나 안타깝게도 36세로 요절해버린다.
손권은 후일 황제가 되자 주유가 없었다면 나는 황제가 못 되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