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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21:51
당장 쇼와 죽을 때 분위기만 봐도 개엄숙했던거 보면 아픈 데 찔렸다기보다는
지들 최고존엄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해서 부들부들하는 게 맞겠네요.
20/07/31 21:58
오히려 관련 보고들 다 받으면서 깊게 개입한 최고 결정권자였습니다. 그 731부대가 다름아닌 히로히토의 승인 아래 만들어진 부대였어요. 육해군 대립이 극심해서 도조 히데키조차 알지 못했던 전체 전황을 유일하게 육해군 양 쪽에서 빠짐없이 보고받았던 인물입니다.
20/07/31 22:31
전후에 히로히토의 책임을 없애려고 바지사장 만든거라고 보면 됩니다.
전후 수습을 위해서 미군 그당시 일본 구세력등이 짝짝궁 해서 도조히데키 등에게 책임을 다 덮어씌운거죠. 히로히토는 허수아비로 만들고...
20/07/31 23:23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권한은 있었지만, 자기보신을 위해 침묵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굳이 군부랑 척을 지고 목숨에 위협을 받아가면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던 거죠. 그러니 스스로 도장찍는 기계, 바지사장으로 남은 겁니다. 윗분 말씀대로 덴노가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덴노 휘하의 직속기관인 군부최고기관 대본영이 고작 그런 위치로 남진 않았을 겁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일단 대본영이 핵심지시를 내리도록 하몀서 지휘권을 총괄했겠죠. 하지만 결국 대본영은 있으나 마나한 기관이 되고, 육해군은 전쟁 끝날 때까지 대립했으니까요...... 그러니 종전 후 미국 입장에서도 처리하기 난감해서(덴노가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덴노고 뭐고 전범재판 세웠을 겁니다), 결국 나중에 헌법으로 손발 전부 자르고 내버려둔 거죠.
20/07/31 22:01
히로히토의 전쟁에 대한 개입 정도와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 731부대도 히로히토의 승인 아래 만들어졌고 도죠 히데키조차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던 전체 전황을 유일하게 다 보고받고 파악한 인물이 바로 히로히토입니다. 히로히토는 순전히 미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살아남은 것 뿐, 원칙을 따지자면 교수대에 매달려야 할 인물입니다.
20/07/31 22:13
당시 일본은 그냥 히로히토가 있든 없든 중국에서부터 폭주하는 기관차였고 그 전략을 세운건 히로히토가 아니니까요
보고는 다 받고 도장은 찍었는데 진짜 실권만 따지면 바지사장에 가깝죠 동시기 영국도 조지 6세가 국가수장이지만 실질권력자는 처칠이었던것처럼
20/07/31 22:26
천황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최종 승인을 할 능동적인 권한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지금의 천황을 생각하시면 안 되요. 그 당시의 천황은 엄연히 최종 결정권이라는 실권을 가진 국가원수였습니다. 거기에 그 당시 일본에서 천황은 신성시되는 존재였고, 그 도조 히데키조차도 천황과 사이는 안 좋았을지언정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때 히로히토가 정말로 전쟁을 원하지 않아서 강력하게 반대했다면 제 아무리 도조 히데키와 군부라고 한들 전쟁을 밀어붙이기는 힘든 정치적 환경이었단 거죠. 도조 히데키는 실제로 전범재판에서 ‘천황의 의사에 반하여 개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이미 천황에게 면죄부를 주기로 한 연합군의 경고에 말을 바꿨어요.
20/07/31 22:33
그당시 천왕이 최종결정권을 가졌다고 해도 국가정책이나 정치권력은 싸쓰마-조슈 인사들이 다 잡고 있었고
대정봉환 이후에도 천왕은 트로피였지 실권 자체는 크게 없었죠 메이지 천왕도 정치권한 크게 없었고 다이쇼 천왕 정치적 무시당한거 생각하면 아주 크게 차이는 없죠
20/07/31 22:47
그 당시 일본 제국 헌법에 따른 천황의 실제 국가원수로써의 권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천황은 일본 제국의 통치권 총괄자로써 문무관의 임명, 육해군의 통수권, 그 편재 및 상비병액의 결정, 선전 및 강화 및 조약 채경 등 군사 외교와 관련된 광범위한 권한이 그 당시 천황의 권한이었습니다. 이래도 그 당시 히로히토가 실권없는 바지사장에 허수아비입니까? 과거 조선을 비롯한 전근대 중앙집권 왕조에서도 신권이 강해지거나 하는 등 왕의 실권이 약해지는 일은 있었지만, 군주가 정말로 제대로 한 판 뜨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강력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었듯, 그 당시 일본 천황도 마찬가지였고 실제로 실권을 가지고 개입한 사례들이 엄연히 있습니다. 히로히토는 지속적으로 궁중 측근들과 함께 제국 의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실제로 행사했어요. 심지어 추밀원을 통해 와카쓰키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그 자리에 다나카 기이치를 총리에 앉혀 사사건건 정책에 간섭했습니다. 이 외에도 쇼와 천황에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국가 원수로써 실권을 행사했던 사례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히 세기도 힘들어요. 그리고 그러한 개입은 취임 직후부터 시작되어 중일전쟁 등 일본의 침략전쟁 전반에 걸쳐 있었습니다. 히로히토가 ‘가장’ 실권이 많은 인사는 아니었겠지만, 그것이 히로히토가 ‘실권’이 없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0/07/31 23:29
그정도 권한이 있었으면 그렇게 귀찮게 개입을 하지않고 직접 행사했을텐데
그게 불가능했기때문에 바지사장이라고 말한거죠 와카스키 레이지로는 당시 쇼와금융공황의 책임이 있었고 그걸 의회에 법안 상정안하고 천왕한테 다이렉트로 꼽았다가 꼽사리 맞은거고 결국 다시 내각대신 해먹기도 했죠 차라리 그 다음인 다나카 기이치가 오래해먹고 천왕 뜻 따랐으면 몰라도 2년도 안되서 군부한테 찍히고 의회에서 맞고 바로 실각당했죠 그당시 이누카이 츠요시가 총리 맘에 안든다고 암살 대놓고 당했는데 군부쪽 권력이 너무 세니 무죄된거 생각하면... 히로히토가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것도 아니고 전범인데 미국이 통치하기 편해야하니 살려둔건 당연한건데 히로히토는 직접 개입은 거의 막힌 바지사장이 권력잡으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던 포지션이라고 봅니다 30년대 당시 황도파가 권력 중심에서 밀리고 2.26,아이자와 사건 일어난거 생각하면 말이죠
20/07/31 23:54
히로히토의 여러 전쟁과 정국에 대한 능동적 개입은 결코 바지사장 수준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꾸 히로히토와 군부를 분리해서 보시려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논할 때 생기는 대표적인 오류라고 봅니다. 그 군부와 히로히토가 한몸이고 공범이거든요. 당장 통제파와 황도파 둘 모두 ‘천황 아래서’의 군부독재를 주장했던 파벌들이었고, 히로히토는 내각의 통제를 무시한 관동군의 진저우 점령 때, 관동군에게 그들을 치하하는 칙어를 내리며 내각을 무력화하려 시도했습니다. 육군과 해군이 모두 친왕을 참모총장과 군령부 총장에 앉혀 황실과 유착관계를 가지려 한 것도 덤이고. 정말로 히로히토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면 굳이 그랬겠습니까? 애초에 대본영정부연락회의의 안건은 쇼와 천황의 법적 근거 없는 어전회의에서 결정되었고, 쇼와 천황이 단순히 재가만 한 것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1936년 2.26 쿠데타 때 단호한 진압을 명한 것은 다름아닌 히로히토였습니다. 거기에 태평양 전쟁의 종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도 히로히토였고. 히로히토의 ‘실권’의 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도, 적어도 그게 꼭두각시나 바지사장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히로히토는 오히려 군부와 함께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공범이었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주도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행사했던 인물입니다.
20/07/31 23:38
바로 위에서도 말했지만, 덴노에게 권한이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걸 행사할 수 있느냐, 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군부 생각하면 대립각을 세우며 제동을 걸었을 경우 덴노 자신의 목숨도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게 육군이든 해군이든 누구한테든 간에요. 당장 5.15 사건만 해도 군부의 장교와 군인이 총리를 대놓고 암살해버린 다음 적당히 묻어버렸는데요...... 이런 사건까지 봤는데 덴노가 군부에 대립각을 어떻게 세우겠습니까. 역사를 봐도 폭주한 무장집단에 대립했다가 목 날아가고 꼭두각시 세워지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덴노도 굳이 대립각 안 세우고 스스로 바지사장으로 남은 것이겠지요. 즉, 실권은 분명 있지만, 전쟁의 최종책임자로 보긴 어려운 침묵하고 방관한 핵심 동조자, 로 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위에서도 말했지만, 덴노가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했다면 대본영이 그렇게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남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대본영조차도 육해군 나눠서 관리했던걸 생각하면......-_-;
20/07/31 23:55
문제는, 히로히토는 그 군부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한 몸 내지는 아무리 좋게 봐도 공범으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히로히토와 군부 사이에서 어느 쪽의 권력 주도권이 있었느냐를 논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이유입니다. 히로히토가 바로 그 군부의 전쟁 계획에 능동적으로 동조 내지는 개입했으니까요. 히로히토와 군부를 분리하면서 생각하는 순간,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논할 때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그 당시 군부정권의 주 대의명분 자체가 ‘천황 아래서의 군사독재’였어요. 그리고, 전쟁의 패전 시 항복을 결정하는 과정은 명백히 히로히토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20/07/31 23:57
한몸이라고 보긴 어렵죠. 덴노가 히틀러처럼 군부에게 직속명령을 내렸던 것도 아니고, 방향성을 제시한 것도 아닙니다. 전쟁의 방향 등 실질적인 계획과 실행은 군부가 했으니까요. 그러니 동조자, 혹은 협력자, 라는 표현이 제일 맞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기엔 덴노가 한게 너무 없어요-_-;
자기보신과 본인 권력 늘리려곤 했지만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한건 또 아니라서......그러니 미국도 종전 후 처리가 애매하니 그냥 적당히 끝내버린 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실권을 행사했다면 어떻게든 전범재판에 세웠겠지요. 전범이 아니다, 꼭두각시다, 라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도조 히데키처럼 적극적인 전범이다, 라는 의견에도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자기보신이든 뭐든 결국 침략전쟁 자체에는 열심히 도장 찍어주면서 동조했으니 전범이라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20/08/01 00:00
MirrorSeaL 님// 당장 사이판 명령 때 자국의 민간인들에게 다 죽으라고 도조 히데키를 ‘무시하고’ 명령 내린 게 다름아닌 히로히토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히로히토가 적극적으로 주도했음이 명백한 전범 행위입니다. 히로히토가 적극적으로 행한 게 없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가 큽니다. 저는 히로히토가 중일 전쟁부터 패전까지 능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군부와 히로히토의 책임을 분리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냥 사실상 한 몸이었거든요.
20/08/01 00:11
그러니까요. 덴노가 실질적으로 전쟁에 개입해서 명령 내린 사실이 그 정도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2차 대전 기간 동안 그런 칙령을 내릴 정도의 권한이 있음에도 권한을 행사한 사례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직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명령을 내린게 그것밖에 없을 겁니다(제가 이 부분까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결국 쇼와 덴노의 행동은 철저히 자기보신과 기득권을 지키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왜 전쟁 내내 침묵하다가 굳이 그 때 옥쇄 명령을 내리면서 자살하라는 칙령을 내렸는지는 저도 의문이지만, 뭐든 간에, 덴노의 행동을 보면 철저히 자기보신과 자신의 권력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그래서 공범이다, 전쟁의 주도자다, 라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전쟁 내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가 실권 한 번 행사하고 항복하면서 자기보신에 치중했으니까요-_-; 계속 말하지만, 전범인 것은 부정 않습니다. 위치가 위치인데 최고지도자가 자국민보고 '적 사기 올려주지 말고 걍 죽어라'라고 하는 게 결코 용납될 리가 없죠. 물론 칙령만 내리고 적극적으로 부대 등을 운용하면서 죽인 건 아니니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전범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최종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적극적인 전범이다, 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덴노가 전쟁의 방향성 등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도 덴노가 아니니까요. 그러니 사학자들이 도조 히데키를 무솔리니, 히틀러 등에 빗대면서 전쟁의 최종 책임자로 보는 것이겠죠.
20/08/01 00:21
MirrorSeaL 님// 도조 히데키가 무솔리니였다면, 히로히토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그보다 더 질이 나쁜 인물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히로히토가 말씀하신 보신주의 때문에 권한을 '행사 안 한' 쪽에 가깝다고 봅니다. 혹시 패전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인 책임을 최소화하며 군부에 모든 것을 떠넘기기 위한 수단이고, 군부와 자신의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굳이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았던 거죠. 그리고 히로히토의 적극적 명령이라고 하신다면, 당장 중일 전쟁 때 관동군이 내각을 무시하고 진저우를 점령하자 그걸 벌하기는커녕 오히려 치하한 행위 등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알류산 열도에서의 수비군의 전멸 때 참모총장들에게 '확실한 승리를 얻지 못했다'고 질타한 것이나, 애투 군도에서의 패배 이후 육군과 해군의 대립을 지적하며 그들을 질타하는 것 등... 정말로 쇼와가 도장만 찍어주는 바지사장이고, 군부와의 권력관계가 일방적으로 군부 쪽에 쏠려있다면 나올 수 없는 역사적 정황들이 즐비한데요. 거기에 도조 히데키와 쇼와는 대립 관계긴 했지만 도조 히데키가 아예 쇼와를 무시하고 행동했던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꼬박꼬박 결정에 대해 보고하고 상의했죠. 도조에게 영국령 인도의 아삼 주를 공격할 것을 명령한 것은 다름아닌 쇼와였고. 마지막에 도조를 압박해서 결국 사임하게 만든 게 다름아닌 쇼와였고. 저는 쇼와가 전쟁의 최종 책임자이며, '적극적인 전범'으로써의 혐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20/08/01 00:34
예, 마찬가지의 의견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속적으로 '권한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결국 말씀하신데로 쇼와 덴노의 행동은 모든 게 자기보신과 자기 기득권을 지키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군부와 대립할 수 있는 권한은 있지만, 대립해봤자 기득권도,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그냥 침묵하고 동조한 거죠. 그 결과 결국 전쟁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게 되었으니,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진 것이죠. 전범이긴 한데, 재판에 세워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리스크가 너무 커서 침묵하게 된거죠. 말씀하신 사례들도 적극적인 개입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치하, 질타 등의 사례들이 전쟁의 방향성을 조절하거나 혹은 어떠한 계획을 입안, 실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마찬가지로, 영국의 여왕 또한 치하나 질타 등은 했지만 전쟁의 총책임자는 처칠로 보고 있죠. 마찬가지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계속 말하지만, 전범인건 부정하지 않습니다. 전범이 맞죠-_-; 동조자도 당연히 전범일 수밖에요. *근데 지금 글이 고쳐져서 다시 읽었는데, 아삼 주를 공격하라고 지시한게 쇼와 덴노였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혹시 자료 좀 주실 수 있을까요?
20/08/01 00:43
엘제나로 // 억 크크크 그러게요 왜 제가 여왕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멍청한 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아무래도 최근에 여왕의 권력 관련 영상과 자료를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영국법이 관습법적인 부분이 강해서 여왕이 아직도 거부권 등의 행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있다고......-_-; 브렉시트도 여왕이 막자면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정치적으로 위험하니까 안 한 것 같지만요.
그나저나 가볍게 검색해보니 제가 기억하는 데로 아삼을 공격하는 작전이 그 유명한 임팔 작전인데, 임팔 작전의 경우 지시한 게 쇼와 덴노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잘못된 정보인 것 같습니다.
20/08/01 00:43
MirrorSeaL 님// 적어도 전쟁에 있어서 '수동적'인 행위자는 아니었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씀하신 사례들이 국가 원수로써의 권한을 사용한 '적극적인 전쟁 개입'이 아니라면 그 당시 추축국의 지도자 그 누구도 전범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도 쫓겨났을 이유가 없구요. 다 떠나서, 도조 히데키의 사임을 압박하고 결국 사임시킨 것 등 항복 과정에서의 쇼와 천황의 행보는 국가 원수로써의 '실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전 단순히 계획을 세운 게 군부라는 이유로, 쇼와 천황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보기엔 너무나 미심쩍은 정황 증거들이 많고, 그것은 쇼와를 적극적인 전범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20/08/01 00:45
MirrorSeaL 님// 허버트 힉스의 히로히토 평전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 외에도, 허버트 힉스의 히로히토 평전이나 에드워드 베르의 '히로히토:신화의 뒤편"과 같은 책에서 히로히토의 능동적인 전쟁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저 역시도 이 두 학자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20/08/01 00:52
얘가체프커피매니아 님// 흠, 확실히 그렇게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황증거가 많긴 좀 많죠...
두번째 부분에서, 그런 게 있다면 다른 기록이 있을텐데, 다른 기록이 없는 거로 보아 아마도 허버트 힉스가 잘못 쓰거나 혹은 그걸 인용한 분이 잘못 인용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임팔 작전의 실행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 그 자체였고, 추진하게 된 것도 무다구치 렌야가 온갖 난리를 친 덕분에 강제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히로히토의 지시가 있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히로히토의 지시가 있었으면 그 난리가 없었을 겁니다-_-;
20/08/01 00:53
얘가체프커피매니아 님// 결국 그당시 두체말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도 전범판정 안받고
북부 버리고 도망가서 그 실망감에 왕정유지 재판 국민투표에서 져서 나간거지 전범 판정도 안받았죠
20/08/01 01:00
엘제나로 님// 그래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평한 겁니다. 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능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한 자가 그 수준의 전쟁 책임도 지지 않은 것이니까요.위에서 언급했지만, 여러 정황들은 히로히토의 전쟁 참여가 단순히 '방관' 수준이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써 능동적인 행위자였고, 아무리 낮게 봐도 '공범자'이지, 꼭두각시나 바지사장은 아니었습니다. 히로히토 평전을 쓴 허버트 힉스는 그 당시의 일본은 히로히토의 '신권군주정'이었다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2941.html
20/07/31 22:17
제가 히로히토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도조와 다르게 명확한 보고를 받은 것과 실질적 권력을 갖고 전쟁을 계확하고 진행 시킨 건 많이 다르지 않나요??
다른 추축국의 수장들인 히틀러, 무솔리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실권이 작았던 건 사실이고, 히로히토가 실권이 있었다면 일본의 육해군이 그렇게 막장처럼 서로 싸우고 협력 안 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죠.
20/07/31 22:31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똑같이 추축국의 군주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전후 쫓겨난 게 설명이 안 되죠. 무솔리니 예기가 나와서 말인데, 무솔리니의 권력은 다름아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비호 아래 성립되었고 그가 한 마디 하자 바로 쫓겨났습니다. 히로히토의 실질적인 권한과 정치적 입지는 그와 비교해도 결코 가볍지 않았어요. 히로히토는 군부의 폭주를 막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개전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도조 히데키 다음으로 질이 나쁜 전범입니다. 도조 히데키의 죄질이 무겁다고 히로히토의 죄질이 낮아지는 건 아니에요.
20/07/31 22:40
무솔리니가 상당히 얼탱이 없게 권력을 잡은 것은 알고 있지만 한 마디에 쫓겨났다기엔 애초에 근본도 없이 전체주의 인기에 영합해서 권력을 잡은 인간인지라 전쟁에서 진 이상 실권이 거품처럼 사라지는게 당연한 사람이었죠.
사실 제가 일본 제국의 적확한 권력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권을 갖고 잇었냐 아니느냐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긴 합니다. 근데 당시 일제가 2차대전을 일으키는 건 필연이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히로히토라는 개인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히틀러가 미대 합격했다손 쳐도 당시 독일의 사회분위기상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의견에 전 동의하거든요.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히로히토에 대해 그 어떤 변론을 하고 싶지 않으며 그냥 히로히토가 실질적으로 어느정도 권력을 갖고 있었느냐가 순수한 궁금증이었을 뿐입니다. 근데 진짜 밑에 댓글들을 보면서 또 한 번 현타가 오네요. 역사를 바라볼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데, 일본 관련한 역사에 대해 의견을 낼 때엔 항상 감정을 갖고 저 같은 사람에 대한 질타가 많다보니 많이 슬픕니다.
20/07/31 22:48
위에 엘제나로 님께 단 댓글로 갈음합니다. 그 당시 히로히토 천황이 엄연히 실권을 가지고, 일본의 침략 전쟁과 내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은 명백하며, 실제 법적으로도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7/31 22:10
아니 좋은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전쟁계획 자체를 세운게 히로히토인가? 아니죠 대전략을 짠것도 히로히토인가? 아니죠 국가수장에 책임은 져야하고 도장은 찍었지만 실질권력자라기엔 좀 그렇죠 당시 일본은 아무리 따져도 무신정권에 가깝고
20/07/31 22:36
군부가 폭주한건 맞지만
고려 무신시대의 왕들이나 메이저 유신 이전 막부 시절의 덴노와는 차이가 큽니다. 영관급 장교들이 히로히토에게 보고 하러 갔다가 히로히토가 버럭하고 화내니까 그 다음날 보고 하러간 장교들 할복 할 정도의 위치였죠. 일본 육군과 해군의 폭주를 제어할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권력자 맞습니다. 일본군이 폭주한거 사후 승인을 해버리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마인드 였던게 문제죠 히로히토가 거부했으면 노구교 사건등은 그냥 사건으로 끝나고 중일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겁니다. /엘제나로/ 님이 얘기하신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일본에서 우리 덴노는 죄가 없다고 일본에서 내세웠던 입장인데 사실과 다릅니다.
20/07/31 22:46
노구교 사건때 결국 권력자는 고노에 후미타로였고 전쟁플랜은 군부랑 같이 짠거죠
중일전쟁은 오상회의가 주도했다고 봅니다 히로히토가 아버지인 다이쇼 천왕이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는거 보고 자기가 권력 잡으려고 노력해봤는데 한계가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당시 일본은 천왕은 일단 통합 상징성으로 세워놓고 귀족정+군부독재에 더 가까운 정치형태라고 봐요
20/07/31 22:52
해당영역의 결정을 없었던 일로 만들 권한을 실제 행사할수 있었고 다른일에는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경우에 자신의 권한을 쓰지 않았다면, 같은의견이었다고 봐야죠....
20/07/31 22:22
히로히토는 그 도조 히데키도 기겁할 정도의 전쟁범죄를 직접 명령한 명실상부한 전범 그 자체입니다.
폭주기관차를 제어하지 못한 바지사장이 아니라 가장 앞에서 폭주한 미친놈이고요...
20/07/31 22:26
히로히토가 세탁이 정말 잘 되어 있다는걸 새삼 느낍니다. 행적을 파면 팔수록 저 놈 밑에 제정신 박힌 아들내미가 태어나서 후대 천황이 되었다는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인데...
20/07/31 22:36
히로히토는 전쟁 범죄자이며 전쟁의 최종 책임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바지사장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애매합니다. 동시대의 최고 정치지도자 루즈벨트, 처칠,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와 비교하면 비교가 민망할 정도로 실권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육 해군이 서로 다른 나라인것처럼 통합된 지휘체제가 없었는데 이걸 시정할 수단이 실질적으로 히로히토에게 없었고, 다른 일에도 권위와 권한은 있었지만 실무를 집행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지사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보고를 받고 의견을 밝힐 수 있었지만, 전쟁의 실질적 결정자라고 하기에는 육군과 해군이 다 결정하고 재가를 받으려고 올리는 의견에 찬성을 밝혔지만 그 스스로 주도적으로 전쟁계획을 설계하거나 집행하지는 않았죠. 일본의 독특한 정치체계 - 막부시대부터 이어온- 때문에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20/07/31 22:46
제가 중고딩때 배운 국사에서는 히로히토가 바지사장인지 아닌지 어떤 권한을 가지고 그걸 어떻게 행사했는지 같은 일본 내부 정치나 사회구조 대한 교육이 따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졸지에 교육 못 받은 사람이 되버렸네요. 수능 국사 선택은 안 했는데 풀면 2등급은 나왔고 선택한 근현대사는 1등급이었습니다.
20/07/31 22:53
교육은 중고등학교에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윗 댓글에서 본인이 히로히토를 바지사장으로 알고 있다고 썼는데 대댓글에서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하면 성인이 되서 배운건데 어디서 히로히토는 바지사장이라고 배워서 쓰신건가요?
20/07/31 22:55
미디어에서 일본의 군부 폭주위주로 묘사되고 그에 반해 히로히토 천황은 보통 존재감 없거나 폭주하는 군부한테 끌려다니는 식으로 묘사되는게 일반적인 것 같은데요.
20/07/31 23:14
2차대전에서 일본 권력층 내부를 다루는 미디어라면 출처는 뭐...
저는 히로히토가 전범인가? 하면 글쎄... 전범이란 무엇인가 부터 다뤄야 한다고 봅니다만, 2차대전 발발(그러니까 미국을 공격한다)에 책임이 있는가 묻는다면 예스입니다. 왜냐하면 천왕은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권력기관을 가지지 않았기에 주도적이지는 않으니 이걸 '전쟁범죄'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행과정에서 본인이 NO 입장을 피력할 권력도 있었고 기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게다가 천왕이라는 직위가 . 전 정권에서 최순실이 비서하고 다 알아서 하고 503은 권력행사 안하고 드라마만 봤다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죠. 아예 정책보고선상에서 배제된 다른 권력 라인이라면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도, 보고 다 받고 거기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책임이 없다 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20/07/31 22:50
진짜 기분이 많이 나쁘네요. 2차대전 당시의 일본 천황에 대해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점을 갖고 있는 것이 님이 말하는 '제대로 된'역사 교육을 못받은 사람이나 할 만한 생각인가요? 진짜 윗분 말마따나 제가 수능 국사 만점 1등급인데 우리나라 역사 교육이 무너진거네요 그럼.
20/07/31 23:06
히로히토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졌는가? 에 대한 의문점을 가진 거라면 정상적인거고 문제없고 질문을 하면 됩니다만
거기에 대해 '바지사장이었다' 라고 현재 역사학적 중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윗댓글에도 보이는 관점 중 하나가 일본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학이 민족주의 때문에 진실을 못본다는 류의 관점이 있는데 지금 2차 대전 발발에서 히로히토가 책임이 어느정도 있는가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민족주의 사학은 별 관심이 없는 문제입니다. 식민지배를 쇼와 한참 이전에 이뤄진거고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총독부 지배가 연구대상이니까요. 그리고 제 댓글 단 두분의 논증구조는 참 독특하네요. "국사성적이 좋으니까 내가 말한게 옳다"는 건가요?
20/07/31 23:10
그걸 또 그렇게 받아들이시네 일반적인 공교육과정에서 착실하게 따라갔는데 공교육에서 가르쳐주지 않는거 모른다고 교육 못 받은 사람 취급 받는게 기분나쁘다는거죠. 이걸 [나 1등급이니까 내말이 옳다]라는식으로 이해하다니 참 독해하시는게 독특하시군요.
20/07/31 23:17
당연히 논증구조가 독특하죠. 님이 역사교육 제대로 못받았다고 하는 구조 자체부터가 독특한데 제 대답도 독특 할 수 밖에 없잖습니까?
그리고 무슨 역사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데 있어서 책임까지 집니까? 권위있고 영향력있는 역사학자가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 말하는 것에 대해 어느 곳에 책임이라는게 전가됩니까? 일반인이 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중론이 아닌 반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조롱받을 정도의 책임을 갖아야 하는건가요? 제가 좋아하고 많이 접하는 역사랑 님이 생각하는 그런 위압적인 역사는 많이 다르네요. 그리고 뜬금없는 민족주의 사학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문단의 첫번째 문장에서의 역사에 대한 '진실'이라는 것은 함부로 발언하면 안되는 단어입니다. 역사학자들이 하는 말에 잘 귀 귀울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문장에서 '민족주의 사학'이라는 건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정체입니다. 주류학계에서 그런것이 존재합니까? 세번째 문장에서의 총독부 지배에 대한 연구도 대상이겠죠. 하지만 2차대전에서의 일제 권력구조도 연구대상입니다. 어찌하여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는 범위를 한정하십니까?
20/07/31 23:11
단언컨데 저 2차대전 시기의 수 많은 악당 중 가장 편하게 뒈진 게 하로히토입니다. 히틀러, 무솔리니는 말할 것도 없도 스탈린도 죽은 후에나마 격하됬는데 이 인간은 그런 것도 없이 너무 편하게 뒈졌어요. 아, 그나마 프랑코가 이 인간만큼 편하게 뒈지긴 했는데 그래도 이 쪽은 히로히토보다는 더 자국 내에서 사후에 욕을 쳐먹긴 했지만.
20/08/01 00:51
어차피 죄다 전쟁범죄자인데 한국사람이 바지사장이니 뭐니 이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하는걸 보니 저 일본 트위터 반응이 이해가 되네요.
20/08/01 05:26
히로히토 자리에 도죠 히데키가 들어가는게 더 적절했다는 생각.
그러나 히로히토가 들어갔다고 해서 엄청난 오류냐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 아예 천황제를 폐지했다면 모를까 살린 이상 정치적으로 외교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이냐면 그건 맞다는 생각. '정의'와 사회적 옳음은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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