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4/08 23:09:50
Name 오후2시
Subject [일반] 뉴욕타임스 4. 1. 일자 기사 번역(베네치아의 바다장벽) (수정됨)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도이전을 추진하고 있고,
베네치아의 경우 바다장벽을 건설해 홍수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는 베네치아의 바다장벽 ‘MOSE’에 대한 소개입니다.

1: 인도네시아 수도이전


2: 베네치아 바다장벽 ‘MOSE’



기사내용
1) 베네치아의 바다장벽 ‘MOSE’에 대한 소개
2) 베네치아의 역사 : 바다는 부와 홍수를 주었다.
3) 해수면이 상승하고 도시가 가라앉자 대책이 필요했다.
4) 베네치아를 구할 해법 : 바다장벽 ‘MOSE’
5) MOSE 프로젝트는 부패에 의해 지연되고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6) 베네치아에 재난이 닥치자 MOSE를 가동하다
7) MOSE 는 베네치아를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구했지만, 해양 생태계 파괴의 위험이 있다.
8) 베네치아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거주민들이 떠나고 관광객들을 위한 테마파크로 되었다.
9) 마무리 : MOSE에게 감사를 표하는 베네치아 인들


( )는 번역 도중 애매한 부분 입니다.
*는 이해를 위해 추가한 부연설명 입니다.

[베네치아는 구해졌다. 베네치아는 슬프다.]

한밤 중 밀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채찍질하며, 파도가 높아지자 중앙통제실의 엔지니어가 화살표를 클릭하고 컴퓨터는 ‘상승’을 출력했다. 중앙통제실은 베네치아 석호 가장자리에 위치한 인공 섬에 있다.

* lagoon(석호)란 바다와 격리된 호수로, 흙이 바다의 일부를 막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깊은 물 속, 베네치아의 석호와 바다가 이어지는 4곳에, 78개의 거대장벽이 있다. 장벽은 해저에 힌지로 연결되어 있고, 속에 있던 바닷물을 비우고 공기를 채워 수면위로 떠오른다. 크고 사나운 파도를 막는 모습이 물위에 떠 있는 노란색 레고로 만든 방어선 같았다.

11월의 긴 밤 동안, 베네치아의 만조 예보관들은 리알토 다리 옆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들은 생방송으로 장벽 바깥쪽에서 20 feet(약 6.1m)의 파도가 치고 있는 걸 본다. 결국 장벽 바깥쪽의 해수면은 5.5 feet(약 1.7m) 더 높아졌다. 1세기 넘는 기록 중 3번째로 높은 수위이며, 일반적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거주민과 관광객들의 발을 묶으며 경제를 질식시킨다.

이번에는 다르다. 도시는 비로 흠뻑 젖었지만, 장벽을 넘은 바닷물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베네치아인들은 잔잔한 수로를 부드럽게 달리는 수상버스에서 신문을 읽는다. 점주들은 홍수에 대비한 펌프를 집어넣는다. ‘MOSE’는 실험적인 전자/기계 모듈을 뜻하는 이탈리아 약어로, 성경에 나오는 모세를 연상시킨다. 장벽 MOSE는 물을 가르고 도시를 구한다.

* 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바다를 갈랐죠.

“장벽이 없었다면, 재난이 닥쳤을 겁니다. 대신, 평범한 삶입니다. 모세의 하느님에게 감사해야죠.” Alvise Papa씨가 말했다. 그는 베네치아의 수석 만조 예보관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모자 가게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분수처럼 물이 넘칠 때 모자들을 옮겼다.


https://gifyu.com/image/SdhTY

이탈리아는 모든 역경에 맞서 홍수를 막는데 찬사를 보내지만, 50년 동안 진행된 MOSE와 1,500년부터 시작된 베네치아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다. MOSE는 공학 프로젝트 이상의 것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야망과 기술적 독창성을 상징하지만, 또한 정치적 불안정, 형편없는 통치, 관료주의, 부패, 부채 그리고 진행이 늦어진 것에 기반한 패배주의를 포함한다.

현재, MOSE는 도시의 파수병으로 기념되고 있지만, 멈출 수 없는 자연의 기후변화와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을 보여주는 기념비로 남을지도 모른다. 장벽은 약 500억 유로(약 530억 달러, 69조 원)의 비용이 들었으며 시간이 너무 걸렸다. 기후 변화 속도는 MOSE를 건설할 당시 예측했던 버틸 수 있는 수준을 앞질러 버렸다.

장벽을 높이는 모든 노력을 했지만, 다음 과제는 장벽을 낮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MOSE를 예상보다 더 많이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에 직면해 있다. 베네치아의 생명선인 바다로부터 도시를 봉쇄할 위협에 처해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기를 끊임없는 장벽 전개는 (물이 고여) 베네치아의 석호를 독성조류로 꽉 찬 악취나는 늪으로 만들고, 도시의 매력적인 수로가 역겨운 하수구로 변하게 된다.

베네치아 만의 수위를 유지하지 못하면, 베네치아는 결국 물에 잠기고 거주하기에 부적합한 도시가 될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엄한 궁전들과 교회는 바다 염분에 침식되어 역사가 씻겨 사라질 것이다.

현재, 베네치아는 안전하다. 하지만 미래에 고통스러운 등가교환은 시작했다. 해수면이 자주 높아져 도시는 끊임없이 장벽 전개를 필요하게 된다.

“그 시점에서, 저는 결정해야 합니다.”, “도시를 구해야 합니까? 아니면 석호를 보호해야 합니까?” 베네치아 수석 만조 예보관 Papa씨가 말했다.


가라앉는 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바다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도시가 형성된 이래, 물은 베네치아를 보호하거나 위협했다. 베네치아인들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5세기, 이탈리아 본토출신의 난민들이 갯벌과 섬에 처음으로 정착하고, 해안 퇴적물에 나무 말뚝을 박아 기반을 건설했다. 흰 이스트리아 돌로 방파제를 건설하고, 염분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들은 베네치아 석호를 필요에 맞게 다루었다.

* 로마가 이민족에 의해 약탈되면서 피난민들이 석호의 섬들에 모였습니다. 결국 로마가 멸망되자 그 곳에 정착해 베네치아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들은 기발한 재주로 베네치아 공화국을 부유하고 강력한 해양세력으로 건설했다. 첫 도제(최고 지도자)는 배를 몰아, 베네치아의 석호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황금반지를 던졌다. 이는 베네치아와 바다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아메리카의 무역로 개척과 나폴레옹의 등장은 베네치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앗아갔다. 베네치아의 국력은 쇠퇴했지만, 바다는 그대로이다.

한때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사례였던 베네치아는 물에 잠기는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은 베네치아에 대해 “그녀가 떠오른 곳에서 해초처럼 가라 앉은다.” 고 썼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베네치아의 쇠락을 은유했다.

1897년, 베네치아는 그들의 적에 대해 조치를 취했다. 운하 입구인 ‘Punta della Salute’지역에 만조 기준점을 설치했다. 20세기 초반 20년간, 만조가 3 feet 7 inch(약 110cm) 이상인 적은 6번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00년 이래 베네치아의 평균 해수면은 1 feet(0.3m) 정도 올랐다. 최근 20년 동안, 110cm를 넘은 만조는 150번 이상이었다.

단지 해수면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베네치아는 가라앉고 있다. 도시 아래의 토대는 자연적으로 가라앉고, 20세기 동안 인접한 상업 항구 ‘마르게라’에서 지하수를 끌어다 쓰면서 이 과정이 가속화되었다.

1950 ~ 1970년 동안, 베네치아는 거의 5 inch(12.7cm) 가라앉았다. 지하수 사용은 금지된 지 오래되었지만, 베네치아는 1년 당 약 2mm 가라앉는다.

1966년 11월, 6 feet(약 1.8m) 이상의 치명적인 홍수가 발생했다. 이는 기록상 최악의 사태였다. 물은 베네치아를 마비시켰고, 건물을 무너뜨렸으며 도시가 안전하다는 허술한 인상을 부쉈다.

이탈리아는 끔찍한 질문에 직면했다. ‘베네치아를 구할 수 있을까?’


명쾌한 해법

이탈리아 국립 연구기관은 “전체적인 해수면 상승”을 사실로 인정하고, 1970년 기업들을 대상으로 베네치아를 구할 방안을 제안하는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상적으로 장벽을 열고 닫아, 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기를 원했다. 또한 배의 통행이 가능하며 석호와 바다 사이에 물이 자연적으로 섞일 수 있어야 한다.


바다장벽이 작동하는 방법

장벽이 작동되면, 석호의 수위는 아드리아해의 수위보다 낮게 유지된다.


https://gifyu.com/image/SdhTf

공모전에서 채택된 밀라노의 회사 ‘Riva Calzoni’는 만조가 오면 장벽 내부에 공기를 채워 띄우고, 다시 물을 채워 가라앉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효과가 확실하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이며 고정된 노출 구조물보다 유지비용이 적다.

  MOSE(해양장벽)의 설계가 간결하고 우아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 건설계획은 향후 반세기 동안 이탈리아와 함께 했다.

1984년, 이탈리아 정부는 MOSE 시공을 대기업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에 하청 주고 1995년이 되면 장벽이 가동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 사업은 2003년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Silvio Berlusconi’ 총리는 공공사업 확대를 지지하며 MOSE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추정으로, 이 프로젝트는 2011에 완공될 것이다.

하지만 2010년 11월에도 전문가 집단은 힌지에 어떤 소재를 사용해야 하는지 논의 중이었다. 힌지는 해저에 가라앉은 장벽을 고정한다.

리알토 다리 아래에 위치한 10현인의 궁에서 전문가들은 *Magistrate of the Waters의 본부 직원들을 만났다. ‘Magistrate of the Waters’는 베네치아의 수자원을 감시하는 오래된 조직이다. 수세기동안 Magistrate에 근무한 전임자들의 초상화에 둘러싸여,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적 문제를 승인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났다.

“저는 공범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주요 전문가단 중 전기 엔지니어인 ‘Lorenzo Fellin’ 씨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magistrate 직원의 갑질에 항의하기 위해 회의를 박차고 나갔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를 “(magistrate는) 공공예산을 이미 초과 집행했기 때문에, 효과가 있든 없든 사업을 완료할 필요가 있다”는 인상을 분명히 받았다.

MOSE 프로젝트는 지속적인 논란과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힌지가 설치되자, 비평가들은 힌지가 해저에서 부식되거나 공진으로 장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수년에 걸쳐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문화, 미심쩍은 사업 수행과 정부 부패가 MOSE 프로젝트에 스며들었다. 2014년 베네치아 검찰청은 정부에게 비용을 과다청구하고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해 사업과 예산을 유지하는 사기를 발표했다. 그들은 최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35명을 체포했고 그 중에 ‘magistrate’의 관료도 있었다.

“(10현인 궁에 전시된 magistrate 전임자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불운하게도, 체포되었습니다.” ‘Valerio Volpe’ 씨는 새로운 베네치아의 물 관리 기관의 공무원이다.

그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가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고, 타 예산을 끌어다 쓰는 걸 꺼리며, 지출을 극도로 신중하게 심사했다. 스캔들에 연루된 많은 사업들이 중단되었다.

MOSE 프로젝트는 거의 방치되었다. 심지어 MOSE의 아버지로 알려진 ‘Alberto Scotti’에게도 경멸 받았다. “저는 MOSE 프로젝트에 환멸 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이 지연되자 말했다.


예고된 재난

2019.11.12. 밤중에 기온이 급락하자 태풍이 발생했다. 수석 예보관인 Papa씨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례적인 열대성 폭풍”이었다고 말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었어요.”

만조 수위는 6 feet(약 1.8m)를 넘었고, 베네치아의 85% 이상이 침수되었으며, 2명이 죽고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5성급 호텔인 ‘Gritti Palace’은 바닥에 물이 차오르고, 소파와 의자, 카펫이 흠뻑 젖었다. 폭풍은 가판대를 집어삼켰다.

“가판대는 이제 없습니다.”, “홍수가 쓸어갔습니다.” 가판대 주인인 ‘Walter Mutti’가 말했다.

수일이 지나고, 홍수가 다시 왔다. 수위는 5 feet(1.5m)를 넘었고, 수십년 중 최악의 수준이었다.

운하와 인도의 경계선이 사라졌고 석호가 도시로 쏟아졌다. 나무 울타리가 가게 창문 옆에 떠 있고 경보가 계속 울렸다. 학교는 휴업했고 식당은 문을 닫았다. 리알토 다리 옆에 있던 관광객들은 나무 판자 위에 여행가방을 둘러쌓았다. 그 모습은 마치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 같았다.

산 마르코 광장은 엄청나게 크고 깊은 수영장이 되었다. 수위는 물을 헤치며 걷는 정치가의 명치와 큰 쓰레기통 테두리까지 차올랐다. 광장에 서 있다면, 물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석호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탈출해야 합니다.” 성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를 복원하는 ‘Enrico Pinzan’가 말했다. 그는 성당 지하실로 뛰어가 귀중한 십자가상을 챙겼다. 물이 외벽을 뚫고 창문을 통해 쏟아지자 그와 동료들은 흙 포대로 물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고 벽돌 사이로 물이 퍼붓기 시작했다.

MOSE 프로젝트가 막으려고 했던 홍수였다. 엔지니어들은 장벽이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멈춰 있었다.


장벽을 올리다.

베네치아와 이탈리아는 대홍수 방지에 실패하자 정치적 압박, 국제적 조사와 불편한 자기반성을 겪었다. 바뀌어야 했다.

대홍수 이후 몇일이 지나고, 바다장벽 현장 관리자인 ‘Mirco Angiolin’는 안타까웠다. 바다장벽은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사람들이 MOSE 장벽을 필요로 할 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말하고 작동시킬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Elisabetta Spitz’ 여사를 MOSE의 감독관으로 최고 공공분야 관리자에 신속하게 임명했다.

그녀는 2020.10. 3.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했으며 재난상황이 아닌, 작동여부 확인을 위해 장벽을 가동시켰다. 이탈리아의 관심은 바다를 막는 게 아닌, 코로나 감염 확산세를 막는데 쏠리면서 장벽은 조촐한 행사와 함께 올라갔다.

장벽은 작동했다. 엔지니어들은 스파클링 와인을 터뜨렸다.

그 이후로 베네치아는 만조로부터 보호되었지만, 도시의 일부분은 낮은 수준의 홍수에도 위태롭게 노출되었다.

MOSE 프로젝트를 구상했던 전문가들은 3 feet 7 inch (약 1.1m) 만조를 막는데 연평균 5번의 장벽 전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장벽이 2년 전부터 작동한 이래 49번 올라갔다.

월요일, 기후변화에 대한 다국적 조사단은 다음 10년 내로 지구 온난화의 임계점을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UN에 소집된 권위있는 단체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탄소 배출량이 많을 경우, 21세기 말 베네치아의 해수면은 2.5 feet(0.75m) 상승할 것이다.

전문가가 말하기를 이 추세대로면 장벽은 내려갈 때보다 작동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과 기록적인 강우량은 석호에 더 많은 물을 공급할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있기 전까지 장벽은 상시 전개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석호를 가두는 것이 아닌, 열어 두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립 연구위원회 해양연구소의 베네치아지부 소속 과학자인 ‘Georg Umgiesser’가 말했다.

‘Luigi D’Alpaos’은 파도바 대학 수력학 명예교수이자 MOSE 프로젝트를 확고히 비판한 사람이다. 그는 베네치아와 석호가 표시된 지도로 꾸며진 사무실에서 장벽의 상시 전개는 석호를 ‘베네치아의 늪’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어부와 해운업 종사자들은 바다장벽에 대해 이미 우려를 나타냈지만, MOSE에 힘을 싣는 관료들은 장벽이 올라와도 배가 통과할 수 있게 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MOSE 옹호자들은 오랜 시간 장벽을 운용할 때 일으킬 종말론적 예측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 특히, MOSE가 베네치아를 장벽이 설치되지 않은 해안도시보다 잘 보호하고 난 뒤 그랬다.

“(장벽을 작동하고) 50년 또는 100년 뒤에 석호가 어떻게 될지 우리가 아는 게 있습니까?” MOSE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인 ‘Scotti’씨가 말했다. 또한 어떤 기술이 미래에 존재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MOSE 사용을 대체하고, 산 마르코 광장과 11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성당과 같이 베네치아의 가장 낮은구역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댐과 취약구역 개선에 수백만 유로(수십억원)를 이미 지출했다.

베네치아 시장인 ‘Luigi Brugnaro’는 정부에게 10년간 도시보호 명목으로 150만 유로를 추가로 요청했다.

11월,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의 고위 관료들은 유리장벽 도입을 선언했다. 유리장벽은 산 마르코 성당과 눈부시는 황금 모자이크를 둘러싸고 ‘미니 MOSE’라 불린다. 베네치아 대주교는 투명한 장벽에 성수를 뿌렸다.


누구를 위한 베네치아인가?

당분간 이탈리아 인들은 베네치아, 이탈리아 나아가 세계의 성공에 대해 자축하고 있다.

“MOSE를 세계에 수출할 계획이 있습니다.” ‘Spitz’ 여사가 말했다. 그녀는 해수면 상승에 위협받는 도시에게 MOSE의 지적재산을 판매하자고 주장했다. 매년 6300만 유로에(약 910억 원) 달하는 막대한 MOSE의 유지비에 더해 장벽 올릴 때마다 드는 에너지 및 인건비의 $200,000(약 2.4억 원)을 충당할 수 있다.

* Spitz 여사는 위에 언급된 MOSE 감독관 ‘Elisabetta Spitz’ 여사입니다.

베네치아 시장인 ‘Brugnaro’ 씨는 뉴욕시 공무원들과 만났다. 그들은 비슷한 해수면 상승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베네치아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MOSE 장벽이 작동되고, 물에 잠기던 1층 아파트의 가격은 상승했다. 베네치아 공화국(697 ~ 1797년) 시절에 1층 거주구역은 금지되었다.

Spitz 여사는 1층 거주지에 대해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민박집으로 완벽하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에 질문이 생긴다 : MOSE는 베네치아의 무엇을 구했는가?

한때 활기, 창조성, 산업과 베네치아인들로 북적였던 도시는 이제 거주민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베네치아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장식된 테마 파크로 되었다. 막대한 보물로 가득 차 있지만 꾸밈없는 진짜 삶이 없다. 관광업에 찌든 베네치아는 위대함을 성취하던 장소에서 인스타그램 명소로 바뀌는 이탈리아의 변화를 상징한다.

베네치아는 후일을 생각할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지금은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기록상 3번째로 큰 만조가 온 아침, 석호와 운하에 물이 넘치지 않자 도시 전체에 뚜렷한 안도감이 퍼졌다.

자주 침수되던 카페의 점원은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여행 안내자는 판초를 쓴 미국인에게 MOSE가 없었으면, 베네치아는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Lucia Montan’은 손가방을 들고 리알토 다리를 떠났다. 손가방에는 노란 바다장벽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요. 마침내 우리는 안전해요.”라고 말했다.

만조 예측센터에 시장 대변인의 문의가 왔다. 대변인은 MOSE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웃었다. Papa의 동료들은 상담전화를 받고 어르신과 장애가있는 베네치아인의 민원을 들었다. 민원 내용은 기록상 최악의 홍수가 와도 집이 침수되지 않는지였다.

* Papa는 수석 만조 예보관인 ‘Alvise Papa’ 입니다.

“MOSE가 장벽을 세웁니다. 괜찮아요.” 예보센터의 ‘Alessandro Tosoni’ 씨가 답했다.



[Venice Is Saved! Woe Is Venice.]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 the tide rose, winds whipped and waves grew, an engineer in a command center on an artificial island on the rim of the Venice lagoon clicked an arrow on his screen reading, “Lift.”

Deep underwater, at the four mouths where the lagoon meets the sea, 78 giant walls fastened to the seafloor with hinges emptied themselves of water, filled with air and rose to the surface, where they held back the swelling sea like a defensive line of floating yellow Legos.

Over the long November night, the city’s high-water forecasters drank coffee in an office by the Rialto Bridge, watching live feeds of 20-foot waves crashing on the other side of the walls. Eventually, the sea level outside the walls reached more than five and a half feet — the third highest in more than a century of records, a level that would normally risk lives, strand Venetians and tourists, and drown the economy.

Not this time. The city was drenched with rain, but hardly a drop of seawater. Children wheeled book bags to school. Venetians read newspapers on water buses that ran smoothly in placid canals. Storekeepers put away their water pumps. MOSE, an Italian acronym for Experimental Electromechanical Module, evoking the biblical Moses, had parted the waters and saved the city.

“Without the walls, it would be a disaster,” said Alvise Papa, the director of the tide forecast center, who grew up rescuing merchandise from his father’s hat shop when high water shot up like fountains through cracks in the floor. “Instead, it’s normal life. Let’s thank the god of MOSE.”

But even as Italy now hails its against-all-odds success, MOSE’s story — 50 years in the making — and Venice’s — some 1,500 — are still being written. MOSE has already become much more than an engineering project. It came to embody Italy’s ambition and technical ingenuity, but also its political instability, bad governance, bureaucracy, corruption, debt and defeatism as delays mounted.

Now, though celebrated as the city’s sentinel, it may yet stand as a monument to the inexorable nature of climate change and the futility of man’s efforts to stop it. MOSE’s walls, costing 5 billion euros, about $5.3 billion, took so long to come together that the pace of climate change is already outstripping the projections they were built to withstand.

After all of the effort to get the barriers up, the future challenge will be finding ways to keep them down. Venice is already using MOSE more than expected, and faces the prospect of needing it much more than it had ever imagined against rising seas, so often that it would threaten to seal the city from the waters that are its lifeblood.
Its incessant deployment, experts warn, could render Venice’s lagoon a fetid swamp choked by noxious algae, turning the city’s charming canals into stinking open sewers.

Yet if the waters are not held at bay, there is little doubt that Venice will eventually be submerged and uninhabitable, its sublime palaces and churches eroded by the sea’s salt, its history essentially washed away.
Today, Venice is safe, but it is staring at a future of excruciating trade-offs, with the sea level so high so often that the city will require constant protection.

“At that point, I must decide,” Mr. Papa said. “Do I save the city or do I save the lagoon?”


The Sinking City

Venice exists because of and in spite of the sea. Since its founding, water has both protected and threatened it. Venetians have always struggled to keep a balance between the two.

When refugees from the Italian mainland first settled on the mud flats and islets here in the fifth century, they built foundations with wooden piles in the sediment. They erected sea walls in white Istrian stone, impermeable to salt. They manipulated the lagoon to fit their needs.

Their ingenuity built the Republic of Venice into a rich and strong maritime power. Its first doges, or leaders, sailed to the spot where the lagoon meets the sea and tossed a gold ring off a ship to signify Venice’s marriage to the sea.

Over centuries, new trade routes in the Americas and the rise of Napoleon stripped Venice of its geopolitical importance. Its power ebbed. But the water did not.

Venice, once an example of man’s dominion over nature, became known as a drowning place. Venice “sinks, like a seaweed, into whence she rose,” the Romantic poet Lord Byron wrote. Thomas Mann made the city a metaphor for decay in “Death in Venice.”

In 1897, Venice began taking the measure of its enemy, establishing a reference mark for high water at the Punta della Salute entrance of the Grand Canal. In the first two decades of the 20th century, Venice had high tides above 110 centimeters, about three feet and seven inches, only six times.

But the average sea level in Venice has risen nearly a foot since 1900. In the past 20 years, tides have exceeded 110 centimeters more than 150 times.

But it is not just that the seas are rising. Venice is sinking. The tectonic plates under the city are naturally settling, a process accelerated in the 20th century by the pumping of groundwater for use in the industrial port of neighboring Marghera.

From 1950 to 1970, Venice sank nearly five inches. The pumping has long stopped, but Venice still sinks about two millimeters a year.

In November 1966, a fatal flood of more than six feet hit, the worst yet measured. Water paralyzed Venice, destroying buildings and the already fragile sense of the city as a secure place.
Italy was confronted with a terrible question: Could Venice be saved?


An Elegant Solution

Acknowledging “general sea level rise,” Italy’s National Research Council held a competition in 1970 for companies to come up with proposals on how to rescue the city.

Ideally, it wanted walls that could open and close to stop high water, while also allowing ships to pass and maintaining the natural exchange of waters between the sea and the lagoon.


How the Sea Walls Work

When the walls are deployed, the water in the lagoon is kept at a lower level than in the Adriatic Sea.

Riva Calzoni, the Milan firm behind the winning idea, sketched sea walls that filled with air and floated up to meet the high tides, and then filled back with water to lower again, a secure but nearly invisible defense that would cost less to maintain than a fixed, exposed structure.

But if the idea of MOSE was elegant in its simplicity, the reality was more complicated. The project would accompany Italy through the next half-century.

In 1984, the government subcontracted the building of MOSE to a consortium of major Italian companies, and estimated that the walls would be put in place by 1995. It was not until 2003 that Prime Minister Silvio Berlusconi, a proponent of big public works, laid the first stone. The estimate then was that the project would be finished by 2011.

But in November 2010, a panel of experts was still debating which metal should be used on the hinges to lock the submerged walls into the seabed.

In the Palace of the 10 Wise Men at the foot of the Rialto Bridge, officials met in the headquarters of the Magistrate of the Waters, an ancient body overseeing Venice’s life aquatic. Surrounded by portraits of past magistrates going back centuries, some experts rebelled against the political pressure they felt to give approval on technical questions.

“I don’t want to be an accomplice,” Lorenzo Fellin, an electrical engineer on one key panel, recalled saying as he stormed out of a meeting to protest what he considered bullying from the magistrate. Mr. Fellin explained that he had the clear impression that “the idea was that since they had already spent so much public money, the project needed to be completed, whether it worked or not.”

MOSE became a constant source of controversy and doubt. Once the hinges were in place, critics raised concerns about whether they were rusting underground, and whether a physical phenomenon called resonance would break the walls.

Over the years, a culture of secrecy, shady business practices and government corruption seeped into the project. In 2014, Venice prosecutors revealed a scheme to overbill the government and bribe politicians to keep the project, and public money, flowing. They arrested 35 people, including top officials — among them the magistrate.

“The last photo that was put up,” Valerio Volpe, the official who now oversees water-related public works in Venice, said as he pointed at a picture in the portrait-lined boardroom. “Because, unfortunately, he was arrested.”

Afterward, from 2014 to 2018, public financing dried up as the state, loath to enable more graft, examined expenditures with extreme caution. Many businesses involved in the scandal folded.

The project was nearly an orphan — scorned even by the engineer who designed it and was known as the father of MOSE, Alberto Scotti. “I’ve rejected my paternity,” he said over maintenance delays.


Disaster Foretold

On the night of Nov. 12, 2019, a sharp drop in temperature caused what Mr. Papa, the head forecaster, described as never-before-seen “anomalous tropical cyclone.”

“The wind went crazy,” he said.

At its height, the tide hit more than six feet and flooded more than 85 percent of the city, killing two people and causing untold damage. In the five-star Gritti Palace hotel, water rose from the floor, soaking sofas, chairs and carpets. The storm swallowed a newsstand.

“It wasn’t here anymore,” said Walter Mutti, a news agent. “The water carried it all away.”

Days later, the water came again, reaching more than five feet, itself one of the worst levels in decades.

The border between the canals and the sidewalks dissolved. The lagoon spilled into the city. Wooden pikes floated up next to store windows. Long sirens whined. Schools were closed and restaurants shuttered. Tourists by the Rialto Bridge huddled around their suitcases on wooden planks, looking like climate-change refugees.

St. Mark’s Square was a vast, deep pool. Water reached the ribs of wading politicians and the lips of tall garbage cans. Standing in the square, you could feel currents. The whole city was part of the lagoon now.

“We had to escape,” said Enrico Pinzan, a mosaic restorer in St. Mark’s Basilica, who had run down to grab a precious crucifix from the crypt, where water had breached an outside wall and gushed through the windows. He and others tried to hold it back with sacks. But the water was too strong and started shooting through the bricks.
This was it, the big one that MOSE had been designed to stop. Engineers at the time said it was ready. But it stood down.


Lifting the Walls

The failure to stop the great floods brought political pressure, international scrutiny and uncomfortable introspection to Venice and all Italy. A change had to be made.

In the days after the flood, Mirco Angiolin, the site manager at the sea wall’s command center, lamented that the walls were ready but that no one was in charge to say, “I take responsibility,” and to activate MOSE when it was needed.

“We need a chief,” he said.

Rome accelerated the appointment of Elisabetta Spitz, a top public-sector manager, as MOSE’s overseer.

She said she “made the decision” on Oct. 3, 2020, to lift the walls, not to answer a crisis but as a simple test. With relatively little fanfare, the walls went up as Italy’s attention was absorbed not in beating back the sea but in breaking the wave of the coronavirus contagion.

They worked. Engineers popped Prosecco.

Since then, Venice has been protected from high-water events, but the parts of the city that flood at lower levels remain precariously exposed.

The experts who had conceived MOSE estimated that the sea walls would need to be raised an average of five times a year to stop tides of about three feet, seven inches. Since MOSE began functioning about two years ago, the walls have already been raised 49 times.

On Monday,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an authoritative body of experts convened by the United Nations, said the Earth was likely to cross a critical threshold for global warming within the next decade.
According to their best estimate, the sea level in Venice could rise by nearly two and a half feet by the end of the century, if emissions are high.

At that rate, experts say, the walls would need to be up more often than they were down. Combine that with the increasingly common violent winds and record rainfalls that push more water into the lagoon, and the walls may need to be raised nearly constantly, turning the decision on its head.

“You would be talking about opening the lagoon — not closing the lagoon,” said Georg Umgiesser, a scientist based in Venice at the Marine Institute of Italy’s National Research Council.

Luigi D’Alpaos, a professor emeritus of hydraulics at the University of Padova and a staunch critic of the project, said in his office decorated with maps of the lagoon that the constantly raised walls would turn the lagoon into “the swamp of Venice.”

Fishermen and other shipping interests have already expressed concern about the walls, but officials supportive of MOSE point out that navigable locks are in the works for boats to pass when the barriers are up.

Defenders of the sea walls expressed frustration with doomsday predictions about their effect in a century’s time, especially since MOSE has now left Venice better defended than many other coastal cities.

“In 50 years, in 100 years, what do we know what the lagoon will be like?” said Mr. Scotti, the project’s head engineer. Or for that matter, he added, what technology there will be.

Already, instead of using MOSE to protect the lowest-lying parts of the city, like St. Mark’s Square and its magnificent 11th-century basilica, local and national authorities are spending millions of euros to dam and raise vulnerable areas.

Luigi Brugnaro, the mayor of Venice, has asked the government for another €1.5 billion over 10 years to help protect the city.

In November, Italy and Venice’s top officials inaugurated glass barriers — which one called a “mini MOSE” — around St. Mark’s Basilica and its shimmering gold mosaics. Venice’s patriarch splashed the transparent barriers with holy water.


Venice for Whom?

For now, Italians are celebrating their success — for Venice, for their country, perhaps even for the world.
“There’s the plan of exporting MOSE as an international model,” said Ms. Spitz, the manager. Selling intellectual property to other cities threatened by rising seas, she argued, could also help pay for MOSE’s enormous upkeep, estimated at €63 million a year, in addition to the $200,000 in energy and labor costs every time the sea walls are raised.

Mr. Brugnaro, the mayor, said that New York City officials had contacted Venice because they feared similar high water and “they want to understand how we did it.”

Since MOSE started working, real estate prices for once waterlogged ground-floor apartments, which were banned as far back as in the Republic of Venice, have gone up.

They were “perfect,” Ms. Spitz said, “for a bed-and-breakfast.”

All of which raises a question: Which Venice is MOSE saving?

The city, once dense with energy, creativity and industry — and Venetians — is now largely abandoned by residents, becoming a floating and brocaded theme park. It is filled with incalculable treasures, but ever more lacking in real life. Its addiction to tourism has become emblematic of Italy’s transformation from a place that made big things to an Instagrammable paradise.

That is now a threat that Venice has the luxury to contemplate another day: It has, for now, won its survival from the rising sea. On the morning of the third highest tide level ever recorded, a palpable relief spread through the city as the water stayed out of the lagoon and in the canals.

Managers of frequently flooded cafes talked about a “transformation,” tour guides explained to Americans in ponchos that “if it were not for MOSE,” the city would be flooded, and Lucia Montan stepped off the Rialto Bridge carrying a tote bag adorned with a graphic of the yellow sea walls. “It’s a wonderful feeling,” she said. “Finally we’re safe.”

In the forecasting center, messages came in from the mayor’s spokesman mocking all the people who had protested against MOSE. Mr. Papa’s colleagues answered a hotline and listened to elderly and disabled Venetians asking whether the record-high water would flood their homes.

“The MOSE is up,” a worker, Alessandro Tosoni, responded. “There’s no problem.”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오후2시
23/04/08 23:18
수정 아이콘
그림 링크가 PGR에서는 바로 올라가지 않네요.
양해 바랍니다.
멍멍이개
23/04/09 01:02
수정 아이콘
열심히 하는 모습 응원합니다.
“Without the walls, it would be a disaster," "Instead, it’s normal life. Let’s thank the god of MOSE.”
장벽이 없었다면, 재난이 닥쳤을 겁니다. 대신, 평범한 삶입니다.
->참사를 피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장벽 덕분입니다 / 장벽 덕분에 재난이 닥치는 일 없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영어번역이 업은 아니지만 저라면 이런식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번역하신 문장이 한국어 네이티브에겐 좀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네요.
오후2시
23/04/09 09:47
수정 아이콘
조언 감사합니다.
지탄다 에루
23/04/09 12:22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기사 감사합니다.
이 장벽 때문인지 베네치아 수로의 부패가 심해진다는 뉴스도 최근 본 거 같기도 해요. 어느 게 정답일지 궁금해 집니다.
에이치블루
23/04/09 16:41
수정 아이콘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403 [일반] 출근길, 쓰러진 남성…모두가 외면할 때, 그저 빛난 '시민 영웅 [60] will13967 23/04/09 13967 4
98402 [일반] [팝송] 미미 웹 새 앨범 "Amelia" 김치찌개6398 23/04/09 6398 0
98401 [일반] 뉴욕타임스 4. 1. 일자 기사 번역(베네치아의 바다장벽) [5] 오후2시12989 23/04/08 12989 11
98400 [정치]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쇼크에 "최대 사형" 개정안 발의 [121] dbq12315934 23/04/08 15934 0
98398 [일반] [역사] 맥도날드가 근본인가? / 햄버거의 역사 [41] Fig.141548 23/04/08 41548 33
98397 [정치] Cyber Power by Nations [7] singularian13025 23/04/08 13025 0
98396 [일반] 이것은 일반글인가 정치글인가? [34] 안초비9994 23/04/07 9994 7
98395 [일반] MSI는 자사가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알려옴 [6] SAS Tony Parker 9221 23/04/07 9221 2
98394 수정잠금 댓글잠금 [정치] 중소기업 지원을 줄이고 고용유연화 해야 하는 이유 [117] darkhero19419 23/04/07 19419 0
98393 [정치] 대통령실, 청년세대 마음 되찾기 부심…온라인 여론 흐름 주시 [153] 기찻길17235 23/04/07 17235 0
98392 [일반] 7800X3D 살펴본 후기+그래서 견적은? [53] SAS Tony Parker 9975 23/04/07 9975 1
98391 [일반] 정자교 붕괴 현장감식, 전국에 위험 도사린다 [53] Nacht11909 23/04/07 11909 3
98390 [정치] "경제효과 연 2천억"이라더니…1년도 안 돼 한산한 청와대 [173] 밥도둑19973 23/04/07 19973 0
98389 [정치] 강남구청장의 클래스 [81] 네야15192 23/04/07 15192 0
98388 [일반] 나는 솔로 13기 간단 리뷰 [68] 피우피우14078 23/04/07 14078 7
98387 [일반] 그저 달리기를 시작한 이야기 [86] 사람되고싶다10243 23/04/07 10243 11
98386 [일반] 카구야 님은 고백받고 싶어 -첫 키스는 끝나지 않아- 를 보고 왔습니다. [17] 及時雨7933 23/04/06 7933 1
98385 수정잠금 댓글잠금 [정치] (쌀)농민이 이 사회에 기생하는 메커니즘(feat 양곡법) [259] darkhero21516 23/04/06 21516 0
98384 [일반] 오늘 부산 퇴근길은 지옥이네요 [7] style11488 23/04/06 11488 0
98383 [정치] 尹 대통령 “의석수로 밀어붙인 법안, 모두 거부” [281] 빼사스21334 23/04/06 21334 0
98382 [정치] President의 번역명이 하필 대통령인건에 관하여... [22] 9658 23/04/06 9658 0
98380 [정치] 최고지도자 [60] 인간흑인대머리남캐10163 23/04/06 10163 0
98379 [일반] 세계육상연맹의 트랜스젠더 여성부 출전 금지 결정 [94] 라이언 덕후12714 23/04/06 12714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