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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21 22:12:26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설득력 있는 글쓰기를 위해 (2) (수정됨)
https://pgr21.co.kr/freedom/97485

여기 적어 주신 글을 본 후 많은 점에 공감했습니다. 항상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해 왔고, 그 덕에 단문으로 깔끔하게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죠. 덕분에 pgr에서도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로 무언가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려움과 한계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설득력 있는 글쓰기의 최전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그 중 하나가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홍보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행동하도록 설득해야 하죠. 게다가 돈은 생존과 연결된 가치입니다. 그 돈을 쓰라고 설득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기막히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저는 아직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주르륵) 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최근에 특히 고민했던 점에 대해서 공유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보고자 합니다.


설득의 바탕, 정체성

설득력 있는 글쓰기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개중에는 헛소리도 있고, <컨테이져스>처럼 알찬 내용으로 꽉찬 명저도 있죠.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것은 안정된 반응을 끌어내는 방법이죠. 이야기로 포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확실한 보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이거나 표현적인 측면 이전에 고민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정체성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대방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방식의 내용이나 표현으로 호소하지 않으면 설득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과 내용으로 포장해도 무용지물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글을 썼다고 가정해 봅시다. 주장은 명료하고, 근거는 탄탄하며, 흐름상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내적 정합성이 완벽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주제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면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시위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설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그 글의 주제가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한다면 어떤 한국인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 주세요....)

설득력을 갖추려면 설득의 기술을 갖추기 이전에 설득하려는 대상의 정체성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주장과 논리와 근거를 알 수 있고, 이를 자극해야 설득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pgr에서 큰 호응을 받은 글이라 할지라도 다른 커뮤니티라면 무관심으로 넘어가거나 심지어 반대 폭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글은 설득력 있는 글일까요? 아니면 설득력 제로의 망글일까요?

다행히 이 글을 읽는 우리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양극화에 휘둘리지 않는 내용이라면 대개 어느 곳에서나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죠. 제가 pgr에 써서 큰 호응을 받았던 영화 글은 영화 전문 커뮤니티인 dprime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의견이 대립하는 사항을 다룬다면 양쪽 모두에서 같은 호응을 받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이게 꼭 극단적인 의견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벌어집니다. 해당 커뮤니티 사람들이 가진 정체성을 파악해서 그들이 자극 받을만한 내용을 쓰면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pgr을 예로 든다면, 아재 감성을 자극할 때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겠죠. 반면 더쿠라면 2~30대 여성에게 어필할 만한 내용이 더 설득력을 가질 겁니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라는 것이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pgr스러운 감성이 있네.'라고 했을 때 그 pgr스러운 감성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설령 말로 설명한다 한들 그것을 바로 적용하여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되면 글쓰기의 신 쯤 되겠죠.

그래서 저는 pgr에 글을 쓸 때 가장 좋은 반응을 끌어내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많이 머무는 커뮤니티가 pgr이고, 가장 많은 글을 쓴 곳 또한 pgr이며, 가장 많은 댓글을 단 곳도 pgr이니까요. 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pgr의 정체성이 몸에 벤 pgr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어떤 감성의 내용이, 어떤 근거가, 어떤 표현이 호응을 얻는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글이 써지죠. 안타깝게도 이것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pgr은 조금 튑니다. 다른 곳은 이렇게 장문으로 꼬치꼬치 따져가면 쓰는 글을 그닥 환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근거보다 결론을 사랑하고, 사색보다 활용에 방점을 두는 게 보다 광범위한 대중을 설득하는 데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사는 만큼 쓴다

그러면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이 어려운 문제에 있어 제가 찾은 해답 중 하나는 '사는 만큼 쓴다'라는 점입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가족으로서의 정체성도 있고, 직업으로서의 정체성도 있고, pgr회원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죠. 또한 정체성은 늘려 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기타를 연주하고 관련 커뮤니티를 다닌다면, 악기 커뮤니티 사람들의 정체성도 공유할 수 있겠죠.

그래서 다양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과 정체성의 교집합을 형성할 수 있고, 그런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학창 시절 공부만 하며 살았던 게 몹시 후회됩니다.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던 학창 시절의 가난이 참 나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이제라도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자 노력해야겠죠.

그나마 우리에겐 독서라는 수단이 있습니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경험이라는 자산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간접 경험이기는 하지만, 유튜브 영상이나 지금 이 게시글 같은 것에서 얻을 수 없는 농후한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후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서 보니 이 또한 참 pgr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래서 저는 많이 읽음으로서 많이 살고자 합니다. 그게 그나마 제가 찾은 해답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은 내레이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스피치가 아니라 내레이션입니다. 성우 분들의 고충과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도 배웠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연기'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서사 의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의지를 가지고 발화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내용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자를 대하는 자세도 뚜렷하게 가져야 합니다. 사실 책에서는 '연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화가 좋은 연기와 통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시된 대본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의도를 파악해서 인물에게 투여할 수 있을 때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레이션 또한 서사 의지를 가지고 해내야 좋은 내레이션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레이션에 좋은 연기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책을 통해 성우들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는 언젠가 다른 내용의 글을 쓸 때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발표를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고민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발표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의 정체성과 어느 정도 싱크로를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조금씩 제 정체성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계속 넓혀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설득력에 관한 제 고민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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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2시
22/12/22 16: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의 경우 사실을 나열하고, 숫자로 결과가 나오는
분야에 있어 그런가 감성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소위시절, 보고서를 제출하면 항상 빨갛게 칠해져
수정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지시에 따라 수정하다보면 재작성이 더 빠를 정도였죠.

제가 보고하고 승인 받는데 수십분이 걸리다보니,
나중에는 목이 쉴 정도 였습니다.
보다 못한 선배가 옆에 와서 거들어 주니
5분도 안되 통과하더군요.

희안한 일 입니다.
분명 같은 단어, 내용, 결론인데
사람에 따라 대응이 다르더군요.

오죽하면 텔레파시가 있어 머리 속 내용을
지연이나 왜곡없이 전달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지휘관의 '이거는?, 이게 맞아?'라는 말은
'솔직히 너의 말에 틀린점을 찾지 못했는데,
믿고 결재해줘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세부내용, 전제조건을 잘 고려했는지 의심스럽다.' 가
아닐까 합니다.
마스터충달
22/12/22 16:44
수정 아이콘
반대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의문스러운 점을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또한 '관계'라는, 존재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덧. 지난 번에 써주신 글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지키면서 살고자 했던 내용들이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니 제가 많이 놓치며 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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