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비가 억수같이 내려 하천이 범람하고 난 이후의 어느 날 이었다.
평소 산책을 자주 했었지만 요 며칠 그러지 못해서 산책로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산보도 할 겸 해서 집 밖을 나섰다.
하천 산책로는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했다. 모래와 자갈이 길 위에 흩뿌려지듯 널려 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미처 물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죽어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 정말 피해가 심각하구나. 라고 혼잣말하는 내 앞에 더 중대한 피해가 놓여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산책로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큰 나무도 비 때문에 쓰러졌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곧이어 다른 생각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야 그냥 나무 위로 뛰어 지나가면 되지만 어르신들은 넘기 힘들겠는데?
유모차 끌고는 절대 못 넘겠다. 밤에 자전거 타시는 분들도 잘못하면 사고 나겠는데?‘
끊임없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서서 나무를 한번 들어 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헬스장에서 역기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내가 무슨...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자리를 피하려는데 어떤 남자가 나무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이 마치
‘나무가 이렇게 길을 막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칠 것 같으니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나무를 옮겨 봅시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눈빛으로 우리 둘이서는 무리다 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 남자는 내 신호를 오해하였는지 허리를 굽혀 나무 몸통을 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분을 놔두고 지나가기엔 마음이 쓰여 나도 나무를 잡고 끌어 보았다. 하지만 그 큰 나무는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역시 우리 둘이서는 무리네요.’
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분은 또다시 내 의도를 곡해하셨는지
“좋습니다. 어디 한번 해보죠.”
라고 말하였다. 아니 라는 내 말이 나오기 전에 그분은 다시 한 번 젖 먹던 힘까지 쓰시며 으라차차 기합을 넣었다. 안되는데 왜 자꾸 힘 쓰시지 라는 생각도 잠시, 나도 그분을 따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나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르는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 지나가던 시민 한분이 같이 힘을 실어주고 계셨다. 감사합니다 라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옆에서 지켜보시던 다른 시민분들께서 한 분, 두 분 나무에 붙어 힘을 보태주시기 시작했다. 도통 움직일 생각 안하던 고목이 영차영차 기합 반동에 맞춰 길 위에서 치워졌다.
우와. 이걸 해내내. 라는 뿌듯한 마음도 잠시, 다 같이 기합과 힘을 합쳤던 시민 분들은 임무를 완수하자 서로 얼굴보기 쑥스러운 듯 데면데면한 분위기만을 남기고 서둘러 각자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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